6.25 참전용사 마을의 슬픈 역사
(재)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연구소장
(2012. 4. 23.)
● 주지하다시피 필리핀은 6.25 전쟁 때 미국․영국 다음으로 일찍 참전하였습니다.
1950년부터 5년 동안 5개 전투대대 7,500여명의 전투병을 파견하여 사망 112명, 부상 229명이 발생했었고, 이들은 서부 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린 바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 한국은 반세기만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되었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필리핀에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 중심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필리핀 남쪽의 큰 섬인 민다나오 섬 면적은 남한의 넓이와 유사하고 6.25 전쟁 당시 이 지역 출신 장정들이 약 1,200여명이 참전하였으나, 이후 이지역을 장악한 반정부군인인 회교반군(공산당) 조직은 북한 공산괴뢰군을 쳐부수려 한국전에 참여한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을 처단하고 일가친척들을 전부 다른 섬으로 추방시켜 버렸습니다. 지금 이 섬의 북쪽에 위치한 부투완 지역은 자체적으로 공산조직을 몰아내고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된 마을을 건설하여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있으나 한국정부는 지금도 몇 년 전 한국 건설노동자들의 피살사건으로 인한 위험지역으로 또 회교반군(공산당) 출몰지역으로 분류하고 한국인 여행자제 또는 금지지역으로 경계령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역 관내 참전용사가 살던 칼멘郡 관할 민다리가오面 산간 오지 마을에서 한국의 새마을과 선진채소농법 기술전수를 간절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곳 군수는 제가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 담당업무 및 새마을 소득증대 학교장을 9년이나 겸직한 사실을 알고 수차례 인편을 통하여 도움을 요청해 온 바가 있습니다. 가장 오지인 민다리가오面의 경우 인구는 약 1,800여명이나, 18세 이상의 피선거권자는 1,008명으로 비록 교육수준은 낮으나 마을의 노동력은 풍부합니다.
● 그동안 한국정부는 6.25 전쟁 당시 UN회원 참전국 16개국과 물자지원 5개국 등 도합 21개 국가 중 현재 한국보다 못 사는 에티오피아, 필리핀, 태국, 터키, 남아공, 그리스, 콜롬비아 등에 보은의 차원에서 ODA 자금지원과 참전용사 직계가족들 중 한국유학을 희망하는 자녀들에게는 무료교육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재단이 지원코져하는 필리핀의 민다나오섬의 칼멘군 내 거주하는 참전용사에게는 6.25 참전 자체가 훗날 천형(天刑)의 쇠사슬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들 민다나오섬 출신의 필리핀 참전용사가 귀국 한지 3년 후부터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북한 군사 고문단의 사주를 받은 회교반군은 공산괴뢰군을 쳐부수려고 한국전에 참여한 이들 참전 용사들에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족들을 포함하여 관련 인물들의 즉결재판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국의 경우 DJ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까봐서 애써 이러한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필리핀 정부 역시 이곳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 실정입니다.
이제 저희 재단은 이들의 유배생활과 같은 외곳 분지에 힘겹게 숨어살다시피 하는 주민들에게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현장을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바닷가 도시마을에서 해발 320m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 8㎞를 걸어 생활물자를 구입해오는 이들의 산간오지 마을에 생활물자운반과 통학용으로 4륜구동 농업용 트랙터에 트레일러를 부착토록 하고 이것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 소형 포크레인 등 장비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자체 경비 2천 8백만원과 행정안전부 예산 6천만원, 합계 8천 8백만원) 뿐만아니라 방앗간을 차려주기 위해 소형 곡물분쇄기도 준비했습니다. 지금도 스스로 마을을 지키고, 회교반군(공산당)과 대처하기 위해 소초를 순찰하는 무장한 민병대의 늙은 얼굴을 쳐다보노라면 제가 마치 죄인인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대한민국 국민여러분,
필리핀 외딴 산속에 있는 6.25 참전 용사 마을의 슬픈 역사를 이해하시고 많은 격려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