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길을 걸어 유등으로
장마가 끝물에 이른 칠월 중순 수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뒷배란다 밖을 내다보니 정병산으로는 운무가 끼어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했다. 장마철이면 가끔 볼 수 있는 운무인데 특히 날이 새는 즈음에 반짝 스치고 지나는 풍경이 더 멋졌다. 일전에도 ‘장마철 비구름’이라는 제목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겼는데 이번에도 ‘끝물 장마 운무’라는 가락을 한 수 떠올려도 될 듯하다.
이른 아침을 해결한 후 자연학교 등교 교통편은 열차로 이용하기로 마음을 정해 길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중앙역으로 가기 위해 퇴촌삼거리로 나갔다. 새벽이면 퇴촌교 근처 쌈지공원 체력 단련 기구엔 몸을 푸는 이들이 보였는데 날씨가 흐려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창원천 상류 천변을 따라 도청 뒷길을 따라가면서 내정병봉과 날개봉으로 걸쳐진 운무를 더 가까이서 바라봤다.
창원중앙역에 이르자 진주를 출발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가 도착하기는 시간이 한참 남았더랬다. 한림정까지 기본 구간 요금에 해당하는 열차표를 한 장 마련해 놓고 맞이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서울로 올라갈 KTX산천을 타려는 승객들이 나타나는 즈음 무궁화호는 먼저 도착해 창원으로 출근하는 이들이 내리고 대구를 항해 출발해 비음산 터널을 지난 진례에서 대피선으로 비켰다.
진례역에서 고속철을 앞세운 뒤 진영을 지난 한림정에서 내린 승객은 혼자였다. 역 앞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 봉지를 들고 정원이 잘 가꾸어진 주택지를 지나 들녘으로 향했다. 술뫼로 가는 길은 자동찻길 보도를 따라 걸어도 되나 동선이 더 먼 들녘을 나갔다. 농지로 물길이 흘러오는 수로 언저리는 놀리지 않고 콩이나 참깨를 심어 잡초 한 포기 없이 말끔하게 해 놓았더랬다.
북면 마금산 온천에서 김해 생림으로 뚫는 국가 지원 60번 지방도는 몇 해 걸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본포를 거쳐 창원 대산 강변 수산대교까지는 완공되어 차량이 다닌다. 연전 우영우 변호사 드라마 배경이 된 팽나무로 알려진 북부리에서 유등을 거쳐 한림으로 통하는 구간은 미완인 채 공사를 계속했다. 경전선 철길과 화포천 습지는 사장교 공법으로 다리를 놓아 건너게 했다.
한림 들녘으로 나가 외딴 축산 농가를 지나 새로운 길이 뚫리는 노변은 앞서 수로 언저리처럼 밭작물을 가꾸었다. 김해 강변에서 초여름 특산물로 유명한 산딸기 심어 수확을 마쳐 내년을 대비해 전정과 제초를 잘해 놓았다.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곳인데 한 할머니는 유모차를 밀고 와 콩을 돌보았다. 잡초가 얼씬 못하게 깔끔하게 김을 매고 웃자란 잎줄기를 잘라 낮추어 주었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쌀 가공 시설을 지난 큰동뫼에서 술뫼로 갔다. 강변의 야트막한 산이 숟가락을 엎어둔 듯한 형상이라 시산(匙山)으로 불리는 동네다. 주말은 부산 자택으로 돌아가고 주중은 술뫼 농막에 머무는 지인을 찾아 안부를 나누었다. 농막 생활을 영상으로 제작해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지인인데, 일전 받쳐 든 우산에서 빗소리가 들리는 멋진 영상으로 올려두어 잘 봤다.
언덕에 심어 가꾼 원추리가 피운 꽃이 저물지 않은 농막 거실에서 결명차를 같이 들면서 창밖으로 탁 트인 둔치를 바라봤다. 강 건너 밀양 명례에는 인조 반정 때 제주도로 유배 간 광해군을 호송했던 이가 귀로에 강변 풍경이 좋아 은퇴 후 낙향해 지은 낙주재(洛洲齋)가 아스라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하려니 지인은 청정지역 풋고추를 넉넉하게 따주어 고맙게 받아왔다.
다음 방문 때 다시 뵙기로 하고 언덕을 넘어가니 술뫼 파크골프장이 나왔다. 잔디밭에는 여가를 보내는 동호인들이 운집해 막대로 공을 굴려 구멍으로 몰아갔다. 가동에서 낮은 언덕 모롱이를 돌아 강둑을 더 걸으니 유등 배수장이 나왔다. 강마을에서 기르는 덩치 큰 싸움소는 임자가 둔치로 물아와 고삐에 묶인 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종점에는 시내로 들어갈 마을버스가 다가왔다. 2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