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필리프
출생-사망 : 1773.10.6 ~ 1850.8.26
국적/왕조 : 프랑스
재위기간 : 1830년~1848년
활동분야 : 정치
프랑스의 왕(재위 1830~1848). 7월혁명과 더불어 왕위에 올라 2월혁명 때까지 군림하였다. 그의 통치 기간은 프랑스 시민사회의 융성기에 해당하며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계급지배가 강화되고 저널리즘이 확대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오를레앙가(家) 출신이다. 부친은 통칭 ‘필리프 평등공(平等公)’이라고 불렸으며, 프랑스혁명에 동조하여 왕족의 신분으로 왕권을 비판하였고, 그도 마찬가지로 16세 때 혁명에 가담, 1792년 북경군(北境軍)의 장교가 되었다. 발미의 전투에 참가하고(1792), 네덜란드의 네르윈덴의 전투에서 패배한(1793) 후, 그를 옹립하여 왕정을 회복하려는 C.F.뒤무리에의 음모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고,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였다. 그 뒤 약 20년간 북독일 ·스칸디나비아 ·미국 ·시칠리아 등지를 편력하였다.
1814년 왕정복고(王政復古)와 함께 프랑스에 귀국하여 팔레루아얄관(館)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자들의 결속을 꾀하고, 라파예트 후작과 J.라피트 등에 추대되어, 7월혁명과 더불어 왕위에 올랐다. ‘프랑스 국민의 왕’으로서 1848년 2월혁명 때까지 군림하였다. 그가 통치한 18년간은 프랑스 시민사회의 융성기에 해당하며,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은행가 ·대기업가 ·대지주의 계급지배가 강화되고 저널리즘도 확립되었다. 그러나 잇따른 경제불황의 여파로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치열해지자 정부는 이것을 탄압하였고, 외교상의 실패(이집트 문제)로 2월혁명이 일어났다. 그는 손자인 파리 백작에게 양위했으나 왕정은 폐지되고, 1848년 영국에 망명하여 뇌이 백작으로서 만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