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이미 이전 2011년부터 다음앨범에 대한 작업은 시작되었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까지 내기로 했던 6,7집 연작을 아예 폐기하게 되버리면서 작업이 더더욱 길어지게 됩니다.
2015년 초에 들어서야 현재 앨범에 대한 갈피가 잡히게 되고 곡 작업이 마무리된 후 녹음에 들어가게 됩니다.
따지고보면 녹음 및 믹싱 마스터링에만 1년 반이 넘어간 셈입니다 ㄷㄷ
2015년 11월 1일
드디어 오늘부터 녹음.
6집 레코딩의 시작이다.
2015년 11월 2일
어제 드럼톤을 잡고 오늘 드럼 녹음을 했다. 실질적인 첫 녹음을 마치고 다들 파김치가 되었다.
녹음이란 이것과 저것중에 어느것이 더 좋은지,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저 녹음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를 결정, 결정, 오로지 결정하고 판단하는 일을 종일 그리고 매일 반복해야 하는 과정이다.
용량에 비해 너무 많은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지쳐 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2015년 11월 6일
오늘부터 보컬 녹음이다. 계획대로 어제까지 드럼 베이스 그리고 기타의 50%가 끝났다.
다른 앨범과 달리 사전 준비를 충실히 해온 결과인것 같다.
이렇게되면 12월 중으로 되어있는 싱글 발매일을 지킬 수 있을지 확률을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
가사도 됐고 5집때처럼 능룡이랑 싸우다 목이 가서 몇달에 걸쳐 하루에 단어 하나씩 노래를 녹음할 일도 없으니
아마 몇일내로 소스 녹음은 다 끝날것이다.
싱글 발매일 말인데, 우리는 지금의 페이스를 회사에 알릴거고 그럼 곧 홈피 대문에 발매일 공지가 뜨겠지만,
그걸 믿을 사람은 많지 않겠지.
그렇다고 믿어달라고 할 염치도 마음도 없다.
누누히 말했지만 이 앨범은 그저 완성이 되어서 세상에 나오는 자체만으로도 난 감사하니까.
2015년 11월 8일
오늘 보컬 녹음을 했다. 주어진 시간을 넘겨가며 어쨌거나 한곡을 마쳤다.
그리고 직장인이 퇴근하듯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뭐랄까, 어떤 일을 한 이십년 넘게 한 끝에 그 일에 더이상 어떤 대단한 열매가 주어질거라는 그런 막연한 기대나
환상이 사라진 지금 그저 담담하게 그저 일로써 마주할 수 있는 이런 시간들이 주어지는것 자체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2015년 11월 22일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녹음을 끝낸 곡의 가사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다시 녹음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 이앨범에 좀 더 악착을 떨고 싶어졌다.
그럴 이유가 생겼다.
사생결단 할 것이다.
2015년 11월 24일
나는 일을 할때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거나 방해를 받게 되는 상황이 오면 쉽게 말해서 발작을 한다.
남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격한 감정 상태가 되는데 특히나 지금처럼 일정때문에 긴박한 순간이 되면 그 긴장감에 온 몸과 마음이 통제가 불가능한 화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일을 하면 예민해지고 신경을 건드리는 상황이 올수밖엔 없기때문에 그때 치미는 울화가 목을 때린다는 거다.
운전대만 잡으면 감정 조절이 안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같은 것들이 참 바보같고 한심하게 여겨져 나만은 그러지 말자 다짐하곤 도로위에 부처가 된지 오래인데 일을 할때만은 그게 안된다.
벼라별짓을 다해봤지만 도저히 통제가 안되서 그저 감당하는 것밖엔 수가 없다. 요즘도 그런 와중인데 오늘 싱글 발매 일이 잡혔다.
2015년 11월 25일
12월 17일 자정에 싱글을 공개하기로 했는데 만약 그때 아이돌이나 다른 아다마들이 음원 공개를 하면 어떡하나라는 의견이 나왔다가 다들 어이 없어서 웃었다.
어차피 우리가 음원을 내봤자 음원 차트 오백등 안에도 못들텐데 이건 무슨 독립 영화 찍어놓고 베테랑이랑 개봉시기 겹쳤다고 우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이요 고려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 게지. 세상이 나를,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으면 안되는거여.
2015년 12월 4일
히로시마로 날아가 받아온 신비의 명약은 일년 가까이 먹어본 결과 아쉽게도 나에겐 완벽하게 듣지는 않고 있다.
그저 하루 열두번의 광적인 설사와 출혈을 막아주는 정도의 효능을 보일 뿐 여전히 세상의 많은 것들을 먹지 못한채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믹싱이 있어서, 나는 요즘 스튜디오에 거의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차에서 내내 대기하다
피자를 시켰다길래 그것만 먹고 작업실로 같이 가자는 능룡이의 말에 끔찍하게도 맛있어 보이는 피자를 사람들이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을 내내 침흘리며 지켜만 보다 일어서야 했다.
어저께는 김밥을 사다 먹는데 엷은 복통이 와서 또 잠깐 우울했었는데.
8년전에, 이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할때 나는 서른 일고여덟, 딱 지금의 능룡이 나이였고, 그때는 내 몸이 이렇게 망가질줄은 상상도 못한 채 정말 광적으로 위장을 혹사하면서 녹음을 했다.
난 담배를 안하니까 그걸 엄청난 양의 술과 밀가루로 그 모든 긴장과 스트레스를 달랜거다.
매일 네다섯끼씩 한끼당 서너개의 밀가루 음식으로 배가 터질때까지 폭식을 하곤 후식으로 또 밀가루와 설탕을 더이상 들어갈데가 없을때까지 몸안에 욱여 넣으며 그렇게 버틴 과정이었다.
다시 돌아가도 그것, 그러니까 밀가루가 없었으면 나는 그 일을 해낼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어쨌거나 그 댓가는 너무 가혹했다.
그 뒤로 김치 한조각 못 먹는 반병신으로 이렇게 살게 되었으니.
내 병이 원인미상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해소되지 않는 염증인 것이고 밀가루가 얼마나 큰 염증유발물질인지를 생각해보면..
칠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올해 딱 한번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네시간 걸려 차를 몰고 강원도엘 가서 횡성에서 한우등심을 먹고 떼라로사에 가서 티라미스 한조각을 먹었는데 그 댓가로 모처럼 간 여행길에 내내 배아픔에 시달리다 끝내는 밤새 미친듯한 설사에 울면서 다음날 아침 집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우울하던지.
이렇게 단 하루조차 어딜 가지도 못하고 살아야 하나?
그래도 이렇게 죽지 않고 또 살아보겠다고 꾸역 꾸역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쨌든 댓가를 각오하면 한달에 한번쯤 짜장면을 먹을 수도 있고 말이지.
그나저나 믹싱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2015년 12월 8일
이번에 노래 녹음을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에 혼자 일종의 뒷풀이를 하러 광화문엘 갔다가 광장에서 본 한장의 사진이 가사를 다시 쓰게하고 새 멜로디를 만들게 했다.
아마 이 징글징글한 나라는 적어도 내 살아생전엔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
2015년 12월 9일
일단 5일까지 음원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일정은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다.
미루고 미뤄서 이제 남은 시간은 3일.
가장 최악의 상황은 이것도 넘겨서 부산 사인회 갔다가 거기서 대구로 직접 못가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믹싱한걸 보고 다시 대구로 내려 가는 거...
2015년 12월 18일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언니네이발관 리더 이석원입니다. 차린것 별로 없어 걱정했는데 후하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능룡이 칭찬좀 많이 해주십시오. 지금 듣고 계신 곡들, 능룡이가 다 한 겁니다.
그럼 연말 따뜻하게 잘 보내시고, 저희는 계속 남은 곡들의 작업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번 싱글과 관련한 공연의 계획은 따로 없습니다.
부지런히 작업해서 정규 앨범으로 찾아뵙겠습니다. peace."
2015년 12월 25일
인생은 목표를 이루나 안이루나 허전한 거.
이제 여덟곡이 남았다.
운동량을 더 늘리고 체력을 더 길러야 해.
2016년 1월 4일
두려움 가득 안고 새해를 시작한다.
남은곡은 여덟곡.
앞서 발표한 곡들도 다시 뜯어 고치게 된다면
사실상 열곡.
부디 우리에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 체력과 용기와 행운이 주어지기를.
2016년 1월 5일
연말부터 작업을 재개하긴 했는데 초반 페이스가 너무 좋지 않아 집에서 계속 테레비만 보면서 널부러져 있다.
극도의 자신감 저하 상태랄까. 아무튼 그래서 이거 저거 볼 거리를 찾다가 오랜만에 무한도전을 몰아서 보게 되었는데
참 여전히 웃기기도 더럽게 웃기고 특히 이번 추격전에서 광희의 너무나 열심히 하는 모습에 새삼 깊은 인상을 받았다.
광희는 나이도 어린데 어쩌면 저렇게 성공에 대한 열망이 한결같을까.
근데 그 간절함이 보기 싫거나 거부감을 주지 않는 건 자기 욕망에 준하는 성실한 모습을 함께 보이기 때문일까? 미란다 커의 법칙 증말..
2016년 1월 6일
"저는 저의 결과물이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관해서도 이석원의 작품이라는 선명한 존재감과 일관성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평범하고 저라는 사람의 정체성과 상관없는 디자인이 제 이름을 달고 나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2016년 1월 22일
그러니까 내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거지. 나는 누굴 만나든 상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그건 내가 일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섭취하고 그것 없인 못사는 존재인 빵을 대하는 내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어.
나는 세상에서 빵이 가장 중요하지만 걔에 대해서 잘 몰라. 알고 싶지 않아. 관심이 없어. 그냥 빵을 먹고 싶다는 내 욕구만 충족이 되면 돼.
사랑하지 않는 거지. 그래서 빵좋아하는 애들이 무슨 어디 좋은 빵 먹으러 다니고 뭘 먹어봤네 이런거 난 하나도 안부러워. 빠리 바게뜨요? 그런걸 어떻게 먹어요?
난 먹어. 지금은 건강때문에 못 먹지만 암튼 난 상관 없어. 난 그저 단 밀가루 덩어리가 내 뱃속에 들어가주기만 하면 되거든.
그게 충족이 안되면 잠을 못자니까 빠리 바게뜨 아니라 더한거라도 그냥 뱃속이 채워만 지면 되는 거야.
내가 궤양성 대장염이란 어처구니 없는 병에 걸려서 물 한모금도 못마시게 되었을때 당연히 빵도 못 먹잖아.
그럼 1월 그 추운때에 밤 열한시 삼십분에 집앞에 있는 빠리 바게뜨앞에 가서 매일 삼십분을 서 있어.
먹고 죽을까 참을까 고민하느라고. 너무 먹고 싶어서 환장하겠어서.
내가 이 병때문에 삶의 질이 극한으로 떨어진건, 순전히 빵을 못 먹기 때문이었어.
근데 그렇게 중요한 건데도 난 걔한테 관심이 없어. 빵이란 건 어떻게 만들어지며 무슨 종류가 있으며 각각의 명칭은 어떻고..
몰라. 십원도 안궁금해. 사랑하지 않는 거지. 사랑은 관심이잖아. 이게 내가 여자나 그밖에 세상 많은 것들을 대하는 시선이랑도 비슷해.
난 누굴 만날때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아. 그저 아 당신이 이제 얼마동안 내 외로움과 기타 등등을 채워줄 사람이군요. 잘 왔어요. 고마워요. 나좀 살려줘요.
나도 당신이 원하는 걸 해드릴게요. 이렇게밖에 관계를 규정하지 못하거든. 그러니까 난 진짜 사랑이란 게 뭔지도 모르고 사랑이 소중한 건지도 모르는거여.
지금까지 늘 그래 왔다고. 그 좋아하는 빵을 만들어 먹으라면 귀찮어 죽겠는것처럼, 사람을 만날때도 난 어떤것도 포기하거나 희생해본적 없음은 물론이요 노력을 하고 소중히 여길줄도 몰라.
그러니까 헤어졌지만 간직하는 사람이 없어. 누구나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지만 난 그런것조차 없어. 그나마 있는 것도 관계를 못 잊는거지 그 사람을 기억하는게 아니야.
무슨 그리움이 아니라 내가 사람에게 걸었던 마지막 기대가 완전히 접힌 때라 그렇지 순애보처럼 곧잘 포장을 하긴 해도 사실은 순애보 근처에도 못가는 얘기인거야.
사람을 못 잊은게 아니라 만나는 동안 관계를 지속했던 내내 내 슬프고 허무했던 감정만 기억하니까. 그리움에 상대가 없다는게 얼마나 외롭고 불쌍한 노릇이냐.
그러니까 난 나쁜놈 이전에 불쌍한 놈이라니까.
2016년 1월 25일
작업이 되지않아 괴로운 마음에 점을 보다.
얼마전부터 내 방안에는 저장강박증 환자처럼 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
2016년 2월 1일
다시 작업 시작.
2016년 2월 4일
지난달 28일에 정균이가 미국으로 떠났다.
잠깐 다녀오는게 아니라 거기서 아예 자릴 잡을 생각인가 보더라.
녹음을 할때는 와주기로 했지만
글쎄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
녹음이야 어찌 한다 쳐도
활동은 이제 거의 같이 못한다고 봐야 할 것이고.
음악생활의 일단이 뭔가 매듭지어져가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2016년 3월 5일
애도가 조금씩 귀에 들어온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
2016년 3월 7일
프로야구 개막일이 다가오면서 나의 작업 페이스도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싱글이 나오고 나서 최근 한 두달간은 음악 생활 이십년만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닌가 한다.
내가 음악 하는걸 싫어하고 말고를 떠나서 일을 그저 일로써 받아들여 맡은 임무를 해내면 될뿐이라는 이 담백한 사실을 실천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터널을 빠져 나오고 있으니 다행이다.
2016년 3월 15일
창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관해 흔히 하기 쉬운 착각은
그게 창작만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
2016년 3월 18일
다시 거의 매일 작업실에 나간다.
작년 싱글 발표 직후부터 올 1,2월까지 도무지 작업을 할 수가 없어 미치고 환장하게 힘들었는데 그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놀랍게도 가사가 쓰일 소스가 쌓였다.
한편 작년에 책을 내놓고 다시 새로운 결과물을 내기까진 기약이 없으므로 블로그의 짧은 글들이 유용할 수밖엔 없는데,
그것을 위해 이미 써둔 글을 다시 올리는 이른바 재활용은 내가 대단히 자주 애용하는 카드.
타인의 피드백은 창작자의 외로움을 달래는데 큰 도움이 된다.
2016년 4월 3일
이렇게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길
바랬어.
2016년 4월 10일
여전히 쉬지 않고 작업중이지만
열심히 한다는 것
오래 한다는 것 만으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2016년 4월 21일
인생은 진짜 살면 살수록 너무나 아이러니다.
음악적 능력이 쇠퇴하면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되살아 나고 있다.
음악을 일로써 시작한 후로
작업을 할때 빼곤
자발적으로 음악 듣는 일을 결코 하지 않았었는데
요즘 음악 듣는게 그렇게 좋다.
2016년 5월 5일
어린이날에도 예외 없이
능룡이와 나는 작업을 계속한다.
2016년 5월 9일
타이틀곡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2016년 5월 23일
꽤 괜찮은 날이었다.
타이틀곡을 좀 더 만지고 있다.
2016년 5월 29일
타이틀곡을 계속 만지고 있다.
2016년 5월 30일
계획대로
전곡의 작곡이 95% 정도 완료되었다.
유월부터는 가사와 어레인지에 집중한다.
물론 편곡도 상당 부분이 되어 있는 상태다.
다만 가사가 관건.
그간
나한테 할 얘기가 얼마나 쌓여 있을지.
2016년 6월 1일
마지막이다
집중해야 해
2016년 6월 7일
가사에 들어갔다.
첫곡의 제목이 정해졌다.
이별 후에.
2016년 6월 9일
녹음 초읽기에 들어갔다.
회사에서 스튜디오와 미팅을 시작했다.
미국에 가 있는 정균이가
한달이상 와서 체류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마지막 앨범이니만큼
어떻게든
정균이의 연주가 담겨야 한다는게
우리 생각이다.
2016년 6월 11일
타이틀곡을 계속 만지고 있다.
2016년 6월 12일
칠년간의 이 기나긴 프로젝트의 마지막 순간
곡이 다 만들어지면 일차 해방이요
가사가 다 되면 이차 해방
노래 녹음까지 마치면 완전한 해방이다.
그 뒤의 작업은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면서 할 수 있다.
2016년 6월 13일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는 어떻게 사는지 왜 사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게 앨범을 만드는 일이 내게 복인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2016년 6월 14일
정균이가 녹음을 위해
칠월 십일에 들어와 주기로 했다.
2016년 6월 16일
타이틀곡을 계속 만지고 있다.
2016년 6월 17일
오늘
가제가 킹이라는 곡의 구성을
최종적으로 잡았는데
곡 길이가 정확히 육분이었다.
만약 싱글로 발표되었던 애도와 혼자추는춤이
앨범에 수록된다면 이번앨범에는
육분짜리 곡만 여섯곡이 넘을것 같다.
육집은
우리 디스코그래피중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앨범이 되길 원했는데 어떡하다보니 또 이렇게 됐다.
2016년 6월 18일
능룡이랑 나는 요즘
녹음을 앞두고 곡작업의 남은 공정들을
하나 하나 클리어해 가고 있다.
정균이의 귀국일이 녀석의 현지에서의 일정때문에
칠월 십칠일로 미뤄지게 되었다.
2016년 6월 20일
언제나
곡 만들기의 모든 과정 중에서 가사쓰기는
가장 힘든 과정.
왜냐하면 이건 작곡과 달리
확률싸움일 수가 없기 때문에
2016년 6월 24일
세곡의 제목이 지어졌다.
1. 이별 후에
2. 홀로 있는 사람들
3. 불의 거리
2016년 6월 25일
이번 앨범의 녹음을 하게될 스튜디오측에
다섯곡의 데모를 보냈다.
가사를 쓰다 보니
이별 후에 라는 제목이
좀 더 어울리는 다른 곡이 있어서
그리로 갖다 넣었다.
따라서
원래 이별 후에라는 제목을 가질 뻔 했던 곡은
이제 새로운 제목을 찾아야 한다.
2016년 6월 28일
지난주부터
무슨 일인지
체중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평소 체중 61에서 2를 오갔는데
갑자기 바지가 헐렁해
오랜만에 체중을 재보니
60.1
그래도 50키로대까진 안갔구나 했는데 왠걸
바로 다음날
59.5로 내려가더니 오늘은 58.5까지..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받아봐야겠다.
2016년 6월 29일
어제
녹음을 앞두고
스튜디오측과 미팅을 가졌다.
매니저와
멤버 세명이 모두 참석했다.
오늘 체중은 58.9
어제보다
사백그람이 올라서
병원엘 안갔다.
2016년 7월 5일
피검사 결과
내 많은 장기들이
아주 건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뼈다귀처럼 앙상한
몸을 회복할 수 없을뿐.
2016년 7월 8일
우리의 마지막 앨범이
세상에 대한 비관과 부정적 시선으로
가득찬 작품이 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연히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것들에
대해 노래하는 것.
2016년 7월 9일
오늘은 이번 앨범 녹음을 위한
첫번째 합주가 있는 날.
정균이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 셋이 초벌 합주를
하는 것이다.
참
두호형은 신이다.
2016년 7월 10일
개와 돼지가
타이틀곡을
계속
만지고 있다.
2016년 7월 12일
인생이 이렇게까지 좆같을 필요가 있나?
마지막 앨범의 주제가 이런 것이어야만 하나?
2016년 7월 13일
최근 매일 합주를 하고 있다.
이 합주는 녹음에 대비한 것인데
컴퓨터 안에서만 존재하던 곡들을
실제로 연주 해봄으로써
곡을 좀 더 구체화 현실화 할 수 있고
또 하나
녹음 직전에 합주로 곡을 들어보고 싶다는
엔지니어의 요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2016년 7월 16일
바쁜 하루였다.
능룡이랑 타이틀곡을 계속 만지고 있다.
2016년 7월 18일
돈을 받고
반찬 만들어 주는 사람을
구해야 겠다.
내가 장담하지만
끼니때마다 엄마를 보면
이번 앨범은
못 나온다.
2016년 7월 19일
합주를 계속하고 있다.
정균이가 귀국했다.
2016년 7월 23일
싱글에서 드러났다시피
이번 앨범의 기조가
미니멀한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오늘 새로 기타 세션을 들였다.
정균이가 미국에서 들어와
늘 그렇듯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2016년 7월 26일
오늘
이번 앨범의 녹음 일정과
드럼, 베이스를 녹음할 스튜디오가 정해졌다.
2016년 8월 7일
매일 거듭되는 합주를 통해
차곡 차곡
녹음 준비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제 조금씩 연주자 여섯명의
호흡이 맞아 간다.
2016년 8월 12일
녹음 준비로 매일 매일이 분주하다.
15일엔 엔지니어를 상대로 앨범의 수록곡들을
직접 연주해 보이는 일종의 시연회가 있고
실제 녹음은 29일부터 들어간다.
항상 멤버 이상으로 우리 일을 도와주던 정균이지만
이번엔 정말 그 어느때보다 많은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새삼 고맙다.
2016년 8월 15일
수색에 있는 어느 스튜디오에서
비공식이긴 하지만 육집의 수록곡들로
최초의 라이브를 가졌다.
청중은 이 시연회를 요구한 이번 앨범의
레코딩 엔지니어및
우리앨범의 유통과 매니지먼트를 맡아주고 있는 회사분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직접 오늘의 사운드를 잡아주고
여러 편의를 봐주신
프리 사운드의 김성희 대표등이었다.
일정을 마친 다음엔
능룡이와 새벽까지 녹음 준비를 위한
긴 미팅을 가졌다.
집에 오니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었다.
2016년 8월 18일
상문이를 보러 성당에 다녀왔다.
그동안 갈때마다 좁은 유골함에
앨범이며 피크며 너저분한 물건들이
먼지 가득 쌓여 있는걸 보는게
그랬는데 오늘 싹 치워 버리니
속이 다 시원했다.
2016년 8월 19일
며칠 강행군으로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능룡이는 나보다 일이 다섯배는 더 많은데
이번에 노래 녹음을 스튜디오가 아닌 작업실에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작업실을 스튜디오와 똑같은 환경으로
만들기위해 공사하고 telefunken u47 등의 마이크와
기타 여러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했다.
2016년 8월 20일
매일 일이 늦게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허기가 지기 때문에
뭘 먹고 잔다.
그럼 내 몸 안에 들어간 음식물들은
내가 자는 동안 소화되지 못하고
성대에 안좋은 영향을 준다.
2016년 8월 22일
혼자 추는 춤을
싱글보다 훨씬
댄서블하게.
2016년 8월 23일
새 작업실이 아주 아늑하다.
2016년 8월 26일
오늘도
담주 월요일 시작되는 녹음을 앞두고
종일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2016년 8월 31일
어제
팔년만에
새 앨범의 녹음을 시작했다.
2016년 9월 1일
실로 오랜만의 앨범 녹음이다.
작년말에 싱글을 녹음하면서 앨범 녹음이라고 생각하고 하자고 했지만 역시 실전은 완전히 다르다.
들어가는 돈이 다르고 노력이 다르고 집중력이 다르고 체계가 다르다.
팔년만의 녹음. 세월이 흐른만큼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긴장과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스튜디오에 가득 들어차 있는 온갖 군것질 거리들을 나는 하나도 먹을 수가 없다.
녹음에 지친 사람들이 식사시간에 온갖 달작지근한 것들을 먹을 때에도 난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오집때는 툭하면 술에 하루에 여섯끼식 오로지 밀가루와 단것들만을 먹으며 그렇게 몸을 혹사해가며 하던 녹음을 이제는 몸을 지켜가며 해야 한다.
녹음 진행도 이제는 내가 아닌 능룡이가 한다.
더이상 나는 녹음을 감당할 정신적 체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너무나 할게 많아진 능룡이를 위해 정균이가 미국으로의 귀국을 미룬 채 정말 많은 것들을 함께 해 주고 있다.
어제는 계속 드럼을 녹음했는데 대정이는 스튜디오 연주에 워낙 강해서 별로 어려움은 없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리듬 소스의 녹음을 에이급 스튜디오에서 한 뒤 많은 돈을 들이긴 했지만 여타 녹음들을 작업실에서 할 수 있게 된 것또한 잘한 선택인것 같다.
이 모든 과정이 예정대로 끝나고 나면 앨범의 마스터링은 이십년만에 다시 영국으로 보내게 될 것 같다. 꼭 그때처럼 시월, 혹은 십일월에.
2016년 9월 10일
원하는 어떤 글도 쓸 수 있고
음악도 할 수 있다.
세상에 드문 좋은 팔잔데
왜 안 행복할까
웃기지만 바로 그래서
음악을 하고 글을 쓴다.
2016년 9월 14일
킹(가제)이라는 곡의 베이스가 아무래도 만족스럽지가 않아 기왕 정균이 신세를 지는 김에 염치불구하고 근 일주일을 매달렸다.
그랬더니 오늘 거진 완벽하게 맘에 드는 녹음이 되었다.
작업에서 만족할때까지 시간과 공을 들이는게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다시한번 깨닫는 경험이었다.
아니라고 하는 이들도 많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모든 결과물은 들이는 시간에 정비례해서 그만큼 더 좋은 내용물이 담긴단 생각이다.
물론, 이것은 창작자로서 꽤나 큰 핸디캡이 아닐 수 없는데 인생은 유한하고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타협하지 않는 한 평생 발표할 수 있는 작품의 수가 남들보다 적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나같은 경우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빠른 피드백을 원하게 되었고 이런 더딘 작업 속도가 일의 선택에 있어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016년 9월 21일
사실 애도는
작년 년말 싱글로 발표한 직후만해도 반신반의 했었다.
그래서 이걸 앨범에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울질을 하느라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는데
뜻밖에도 오래 귀에 묵직하게 걸린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만든 곡을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경우가 드물고
그래서 만든 곡들을 거의 버리는 바람에 작업이 오래 걸리는건데
이런 경험은 거의 처음인것 같다.
2016년 9월 22일
여러차례 수정이 거듭되던 정균이의 베이스 녹음이 지난 월요일에 끝났다.
지금은 26일부터 시작될 타이틀곡을 포함한 기타 녹음에 대비하고 있다.
2016년 9월 25일
계속 녹음을 도와주던 정균이가
오늘 엘에이로 돌아갔다.
일과 건강 면에서 부정적인 루틴이
정립되어 가고 있다.
이를테면
녹음을 하게 되면서
몸에 안좋은 것들을
끝없이 먹게되는데
긴장때문에
도저히 억제가 안된다던가.
2016년 9월 26일
내일부터 기타 녹음이 시작된다.
뒤이어 곧바로 보컬 녹음에 들어간다.
2016년 9월 27일
친구를 위해 홈런을 치고 울면서 그라운드를 달리는 디 고든을 보며 아침부터 눈물이 났다.
생전에 상문이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너네 음악은 울면서 달리는 음악이라고.
그러니까 너네는 계속 울면서 달려야 한다고.
페르난데스의 명복을 빈다.
2016년 9월 30일
"로자 파크스가 있었기 때문에 마틴 루서 킹이 행진할 수 있었고 오바마가 달릴 수 있었다?
저자 타네하시 코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투쟁하면 얻을 수 있다고 격려하지도 않고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꿈을 좇지 말고 그저 깨어 있으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저자가 지나치게 비판적이라고 비판한다.
흑인이 흑인의 현실을 말하는데, “지나치다”는 판단은 누가 하는가? 그는 답한다.
“나는 작가다. 희망적이어야 할 책임은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오늘부터 보컬 녹음이다.
모니터 세팅을 시작했다.
2016년 10월 7일
지난 앨범이 주체할 수 없는 발산의 결과물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긴 낚시를 하듯 만든것 같다.
뭔가를 만드는 시간보다 원하는 게 나올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들이 더 많았고
그러다 뭔가 나와서 뚝딱거리며 만지고 다듬는 일을 할때에도
뭘 한다라는 느낌보다는
그 자체가 그저 기다림으로 이해되었다.
앨범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긴 기다림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무엇을 기다렸던 건지는
우리 스스로조차
나중에 앨범에 담긴 걸 들어봐야 알게 되겠지만
아무튼 우린
오늘도 녹음을 한다.
아니, 오늘도 기다린다고 해야 정확할까.
2016년 10월 10일
다음달이면
이발관이 결성된지 이십이년 데뷔앨범을 낸지는 꼭 이십년이된다.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개인적 소회는 아무래도 설레임보다는 감사함에 가깝다.
락커답진 않을른지 모르겠지만
활동을 끝내는 순간까지
아니 이제야말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뮤지션이 아니라 회사원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이 일을 부단하고 성실하게 해내고 싶어.
그리고나면 석달 뒤엔
마흔 일곱이 되어 있겠지.
2016년 10월 12일
모든 일상을 작업에 맞추고
하루 해야할 일을 아주 사소한것까지
일일히 계획을 세워서
매일 80% 이상씩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으로써
지난 46년간
뮤지션으로써는
22년간을 살아오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이 게을렀던 것이
한이 되어서.
2016년 10월 16일
"“그래서 나는 내 공화당 동료들에게 우리가 정당보다도 우리 나라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이 글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도널드 트럼프란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정균이가 다시 엘에이에서 서울로 건너오는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지금 변경할 수 없는 녹음 일정을 소화중이고
정균이는 공항에 도착하는대로 우리와 합류할 것이다.
2016년 10월 24일
지난 토요일엔 올해로 십주년을 맞이한 GMF 에 참가해 수변무대에서 공연을 가졌다.
녹음중에, 더구나 지금처럼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 건 드문 일인데 주최측인 마스터플랜과의 오랜 신뢰관계,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게 된 정균이 때문이었다.
2016년 10월 30일
마흔일곱이 가까와옴에 따라
일과
생활에 관한
새롭고도 총체적인
매뉴얼을 정립해가고 있다.
남은 수명이 얼마가 됐든
창작자로서 제대로 능력발휘를 할 날은
많이 남지 않았으므로
생활을 절제하고
가급적 시행착오를 줄여
시간을 규모있게 쓰지 않으면
남은생을 가치있게 보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2016년 11월 3일
시력 보호를 위해
8년간 봐오던
내방의 55인치 티비를
버리기로 했다.
2016년 11월 21일
여전히 녹음을 하고 있다.
타이틀 곡을 계속 만지고 있다.
2016년 11월 27일
오늘은 나만 녹음을 하루 쉬었다.
타이틀 곡을 계속 만지고 있다.
2016년 12월 18일
정확히 이십년만에
메트로폴리스에서의 마스터링.
2016년 12월 31일
이제 마흔 일곱.
음악 어렵다.
인생 쉽지 않다.
2017년 1월 4일
음악으로서의 음악이 아닌
삶의로서의 음악.
2017년 1월 8일
난 한번 지치면 회복이 되질 않는 타입이라
일이 이렇게 장기전으로 가면
지치지 않는 게
그 자체로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이 되어 버린다.
2017년 1월 25일
공부하고 싶다.
운동하고 싶다 .
여유가 간절히 필요하지만
일단은 이 일이 끝나기라도 했으면 좋겠네.
2017년 1월 27일
남은 생동안 지금보다 더 힘든 순간이 온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덜 자랐다.
2017년 1월 29일
여전히 녹음을 위해
일체의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집에 틀어박혀 있다.
동물농장이 800회라더라.
십수년전 그때 그 아이들이 어떻게 변했나 찾아가보니
당연히 동물들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기에
대부분 죽거나 사람으로 치면 구십살 백살도 넘긴
너무도 늙고 쇠약해진 모습들이 되어 있었다.
늙어서 너무 늙어서
다리를 절고 귀가 먼 아이들을 죽을때까지 돌보는
사람들과 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들과 함께 해온 동물들.
나는 동물을 그토록 좋아하는데도
여지껏 단 한번도 그애들이 죽을때까지
책임져 준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사랑으로 알고 행했던 많은 것들이
실은 그애들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었다.
그런 내 무책임함과 무지가
내가 기르던 아이들에게
얼마나 몹쓸 일이었는지 생각하면
아직도 죄책감에 몸서리가 쳐진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동물들을 위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감과 애정은 절대로 그 아이들을 기르지 않는 것.
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외로워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동물을 들이지 않으리.
그게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작은 생명 하나 책임질 줄 모르는 내가
좋아하는 존재들에게 조금이나마 더는 죄 안짓고
사는 길이다.
2017년 2월 3일
스틸녹스 5mg
로라반 0.5mg
*스틸녹스 : 수면제의 일종
*로라반 : 항불안제의 일종
2017년 2월 19일
마지막으로 타이틀 곡을 만지고 있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7년 2월 20일
음악이란 건 어째서 단 한순간도 수월히 넘어가는 과정을 허락하지 않는 걸까.
2017년 2월 21일
나는
이번 생은 글렀어 보다
더 절망적인 말은
상상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다음 생이란 없으니까
2017년 2월 25일
왜 집중을 요하는 일은
불량식품 없이는
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2017년 2월 26일
표류하고 있다.
음악이 내게
끝내 상처로 남게되진
않길 바랬거늘..
2017년 2월 28일
다시 믹싱중이다.
이제 남은 시간이 정말 많지 않다.
2017년 3월 2일
녹음을 하다 브레이크 타임이라
차를 빼서 나가는데
저만치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앞도 안본 채 리어카를 몰고 디립다 돌진을 하더니
내 차를 그대로 받아 버리고 말았다 ..
그래 차에 앉은채로 어안이 벙벙 .. 해 하고 있는데
할머니 고개를 한번 숙이시고는
그대로 가버리신다 ..
저 저 .. 저러구 가면 어떡해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나와 혀를 차는데 ..
난감했다
할머니 쫓아 가서
연락처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내려서 보니
차 범퍼엔 허옇고 깊은 상처가 나 있었는데
이걸 보상하려면 할머니가 한달 내내 주운 폐지를 다 팔아도 안될
것이었다.
형 어쩔 수 없어
멍하니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능룡이가 싸인을 준다.
그래 맞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사고'
피할 수 없는
한시간뒤 다시 돌아와 정신없이 녹음을 하고
자정이 넘어 나와보니
그세 잊고 있었던 허옇게 패인 자국.
이 놈을 참으로 지난했던
이 마지막 녹음의 징표로 삼아야 겠다.
2017년 3월 3일
이제 작업을 끝내기로 하고 메트로 폴리스에 마스터링 예약을 했다.
남은 시간은 한달.
주위 사람들은 내가 또 멋대로 일정을 연기시킬 거라 생각하겠지만
이건 나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큰 돈을 댄 투자사가 1년짜리 계약서를 몇번씩 다시 쓰며 손해를 감수하고 있고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몇년째 이일에만 매달리는 동료들이 있다. 물론 한계를 넘어서 인내하고 있는 그들에게 미안해서 종료를 결정한 건 아니다. 정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면 빌어서라도 다시 한번 연기를 부탁해보겠지만 앨범한장 만드는데 칠년이면 시간은 넘치도록 주어졌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마지막이 아니면 발휘될 수 없는 집중의 순간들이 있는데 그걸 해야할때가 지금이라고 판단했다.
2017년 3월 4일
오늘도 정신 없이
쫓기는 기분을 가지고서 하루를 보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무리 정리를 해도 뭔가 놓친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영 평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2017년 3월 6일
정말 이대로 끝내도 되는 걸까?
종료에 임박하자
돌연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드러나(는듯) 하기도 하고
그밖에도
이런 저런 이유들로 마음이 흐트러져
어떻게든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아직은 할 게 많이 남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초조함과 불안감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파악하면서
작업에 타격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D - 20
2017년 3월 7일
늘 일을 끝내야 하는 순간이 되면
뭔가 엄청나게 보잘것 없는 걸
만들었다는
자괴감 같기도 하고 죄책감 같기도 한
아무튼
초라한 기분이 밀려온다.
오늘은
다른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에이포지 이백장을 가져다
전체 가사를 곡당 일곱부씩
프린트 해서
작편곡과 믹싱을 포함 녹음 전체에 대한
점검을 하기로 했다.
이걸 마쳐야
이 초조함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고
작업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거세한채
더 집중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D -19
2017년 3월 8일
음악을 만들때 구성을 가장 중요시 한다.
이게 잘 되어야 곡이 오래도록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곡 자체나 구성에 대해 스스로 오케이 하는 방식은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긴 하지만 간단하다.
아무리 들어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을때까지 반복해서 듣는 거다.
어떤 곡이든
이년째 안 질리다가 이년 하루째 질리면 미련 없이 버린다.
좋았다 안좋았다 하는 곡은 안좋은 곡이다. 이것도 버린다.
그제 마지막 곡의 구성을 확정했다.
기본적인 구성으로 가기에는 변수가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조합해 봤지만
녹음에 들어가도록 픽스를 못하다가
기어이 녹음이 다 끝나갈 무렵까지 이 고생을 시켰다.
그래도 결국 같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작업을 할때
어떤 부분이든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으면
그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다 라는 생각으로 매달린다.
그럼 결국 문제가 보이고 해결을 할 수 있으면 같이 가는 거고
아니면 버려야 한다.
D -18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재판관이 이십분간의 드라마틱한 밀당 끝에
팔대떡 전원일치로
박근혜의 파면을 선고하던 순간
더이상 그가 내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란 사실에 기뻐
눈물이 났다.
이제 녹음하러 가야지.
D - 16
2017년 3월 12일
파면을 당해
집으로 쫓겨가면서
박근혜는
성원해주신 국민께 감사하다고 했다.
오늘은 저녁때 노래 녹음이 있어서
종일 악착같이 잤다
D - 14
2017년 3월 13일
어린시절을 함께 한
성북동과 그 인근 그러니까 가회동과 재동 등지에
여즉 살고 있는 친구들이
헌재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명을 지르더니
이젠 삼성동에 사는 친구가 공포와 스트레스에 질려 있다.
이 무법천지 난장판이 언제나 끝날까...
더불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것만 같은 이 무자비한 녹음도 ...
D -13
2017년 3월 15일
잠들기전 뉴스에서
촛불 시위 150일 어쩌구 하는 기사를 보고
노래 녹음과 믹싱을 시작한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를 실감했다.
11월즈음부터 시작했으니 다섯달 남짓.
그동안 단 한명의 친구도 만나지 않고 오로지 녹음만을 하며 보냈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은 건 바빠서만은 아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인생에서 무슨 성공같은 걸 하는 것 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획득해 가는 게 더욱 중요한 일로 여겨지더라.
그래서 열심히 일했고
최소한 내 앞가림을 하게 되자
원래도 별로 넓지 않던 인간관계가 더욱 좁아졌지만
필요에 의해 사람들을 만나던 때보다 외로움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덜했다.
D -11
2017년 3월 16일
내게 녹음이란 일은 아주 단순하게 이해된다.
이것과 저것중에 어느게 더 나은지를 하루 종일 일년 내내 고르는 작업이다. 그 이것과 저것은 곧잘 수십 수백개로 불어나서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그런 일을 매일 일년쯤 하다보면 일상 생활에서는 아주 작은 결정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르고 약속이 있으면 어느 길로 가야 빠를지 생각한다던가..
흔한 결정 장애는 아니다. 장애가 있으면 큰일난다. 결정해야 하는게 내 일이니까. 단지 일에서 너무 많은 결정에 시달리다보니 일상에서는 아무 것도 결정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종의 결정 알러지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종일
뇌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그짓을 하다가
집에 갔는데 엄마가 "얘 이것들좀 먹어봐 하나는 초록마을에서 산거고 하나는 한살림에서 사온건데 어떤게 맛있는지 비교해봐."
이러기라도 하는 날엔
왜 내 입에서 비명소리가 나는지
엄마는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D - 10
2017년 3월 19일
앨범을 낸 뮤지션이라면
녹음을 했는데 데모보다 못해서
난감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몇달 몇년간 심혈을 기울여 정리하고 다듬어서
비싼 돈 주고 고급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녹음한게
작곡 초반에 작업실에서 얼기 설기
손가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부담 없이 만든 것보다 못할 때..
그때
의 그 당황스러운 기분 ..
그래
그 부담 없음을
계산 없는 자연스러움을
재현하려 애를 써 보지만 ..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원래 데모는 그런 거야 라고 자위하며
앨범에 그대로 싣게 된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근데
녹음을 거듭할 수록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며
그건 도저히 극복될 수 없는 일인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안되는 걸 어떻게든 하려고 드는 편이 되었다.
온갖 인위적인 노력과 계산으로
그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자연스러움을 재현하는 일.
지금 두곡이 여전히 그래가지고
아주 매우 많이 난감하다.
D - 7
2017년 3월 20일
그 데모 문제와 관련해서 첨언하자면
이런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할때
데모는 오랫동안 듣던 거라 귀에 익어서 좋게 들리는 거라는 식의
말을 나는 너무 싫어한다.
그게 귀에 익어서 좋게 들리는 건지 정말 좋은 건지조차
구분 못하는 귀로 음악하지 않으며
그럴 가능성을 대비해서 수없이 꼼꼼하게 자기 판단을 검증해야 하는게
음반 만드는 사람의 기본이기에.
D - 6
애초에 문제가 있는 버전은 결코 귀에 익을 만큼 자주 오래 들을 수 없다.
문제가 있게 들리는 건 반드시 문제가 있는 거다.
2017년 3월 21일
화염방사기로
지금까지 녹음한 거 다
불태워 버리고
음악계를 떠났으면 좋겠다.
2017년 3월 22일
아무튼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늘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지랄을 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7년 3월 23일
재작년 겨울이었다.
싱글 혼자추는 춤의 보컬 녹음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에
광화문을 찾았다가 이젠 더이상 몸을 보호할 필요가 없어
12월 그 추운 칼바람을 뚫고 광화문 광장엘 나갔다.
바람을 쐬러. 이제 살았다는 해방감을 느끼려.
그리고 그 사진을 보았다.
배에 오르기 직전 단원고 어떤 반의 아이들이 함께 모여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아이들은 잠시 후 자신들에게 닥칠 참혹한 운명은 꿈에도 예감하지 못한 채 더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광화문 사거리를 무심히 지나는 수많은 차와 사람들.. 도대체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
다음날 이미 녹음이 완성된 곡 엔딩부의 멜로디를 다시 쓰고 가사도 이렇게 고쳐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쳐 있다 누구도 누굴 이해하지 않는 곳에서 .. "
그리고 거기에 능룡이가 길고 긴 기타 솔로를 다시 해 넣으며 우리는 엔딩부 전체를 다시 만졌다.
마치 검고 큰 조기가 새찬 바람에 깃발처럼 펄럭이는듯한 ..
그렇게 그저 이땅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노래는
종반부에 이르러서는 조곡이 되었다.
앉아서 우는 것으로 추모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식대로, 그러나 그 끝은 무겁고 장중하길 바랬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세월호가 삼년만에 다시 떠올랐다는 뉴스를 보았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혼자추는 춤의 믹싱을 하는 날.
모든 트랙이 저마다 자기 자리를 가진 채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웃고 울고 노래하며 자기 소리를 뽐냈으면 좋겠다
고 오더를 보냈다.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사람들은 곧잘 혼자가 되기에
살아 있다는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너무 자주 까 먹는다.
2017년 4월 10일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마스터링을 앞두고 막바지 믹싱 중이다.
2017년 4월 11일
꿈을 입밖으로 꺼내어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꿈이란 게 대체로 조롱속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라 그랬을까.
지난 새벽엔 꿈에서도 믹싱을 했다.
2017년 4월 25일
난 영화 전편에 흐르는 그 고독의 정서때문에
에이리언 시리즈를 좋아한다.
아주 많이 완전히 좋아해서
블루레이도 다 있다.
사람 잡아 죽이는 괴물이 나오고 피가 낭자해도
이 시리즈는 내게 그저 고독하고 사색적인
영화들일 뿐이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다.
곧 개봉을 앞둔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어떨까.
2017년 4월 30일
무슨 노랫말 연구 하는데서 연락이 왔는데
니네 노래중에서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가장 많이
언급된 노랫구절이 뭘꺼같냐길래
뭐 이런 이런 큰일이다? 나는 보통의 존재? 뭐 그런것들이 아니겠냐고 했더니
'날씨가 좋구나 너를 잊으러 가야지' 랜다.
진짜에요?
난 몰랐네.
2017년 5월 7일
어떻게 해봐도
마음속이
어지러우면
행복하지 않은 거야.
2017년 5월 17일
어 .. 이날 낮 열두시에 사전 선공개될
노래는 어떤 곡이냐면
만약 우리가 이십삼년에 걸쳐서
언니네이발관이란 제목의 어떤 연재물을 봐왔고
이제 그 최종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가정했을때
뭐랄까 그 작품의 주제가격인
곡이랄까..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지었고 ...
암튼
다함께 각자
울면서 달리면서 따라 부르면 좋겠다는.
2017년 5월 25일
꼬박 한달을 마스터링을 하다 월요일이 되어서야 최종 픽스를 했다
셀 수 없이 모니터를 하며 수정 사항을 정리해서
자존심 쎈 엔지니어에게 매번 장문의 편지를 써가며 작업을 했다
당신의 뛰어난 실력과 열정어린 작업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한번 더 해야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며
지난번과 이번이 어떻게 다른데 그래서 뭘 더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녹록치 않은 경력에 자기 주관 뚜렷하고 성격은 보통 센게 아니다.
실력은 말할나위 없지만
납득하지 않으면 잠시도 자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에게 수없이 편지를 쓰며 그때마다 작업을 마칠 즈음엔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인사하곤
며칠후 다시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어제 마지막 작업을 하고
함께 차까지 마신 후 감사했다 작별인사까지 하곤
마침내 마스터 시디를 공장으로 보내고 난 다음에도 난
담당자를 붙들고
정말 만분지 일에 하나 샘플 시디를 추출해서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내게 시간이 얼만큼 있는가를
물었다
시간이 거의 무한히 주어졌지만 그래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미 공장에서 생산공정에 들어간 시디를 모니터 하다
뭔가를 발견했고 모든 사람들을 스탠바이 상태로 만든 후
밖에서 약속이 있던 엔지니어에게 전화해 다시 스튜디오로 가게 한 다음
긴 상담을 마친 후에야 그냥 가도 문제 없겠다는 결론을 얻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환도로 길에서
다시 다른곳 몇군데를 또 추가로 확인하다 문득
이제 그만하자 석원아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
그렇게 내게 이일은 끝나 버렸다
울고 지랄 하고
묻고 또 묻고 절망하고 매달리고
귀가 헐어 터질때까지 듣는 일.
가사 쓰기를 마쳤을때도 노래 녹음을 끝냈을때도
믹싱을 마쳤을때도 마스터링을 끝냈을때도
정신없는 다음 작업에 마지막이라는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는데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 이제 더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냥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2017년 5월 27일
아니 때만되면
어디서들 숨어 있다가 그렇게들 나타나서
시디를 사주는 거야?
참 고맙다
나 이십년동안 먹여 살려준 사람들
★ 출처 -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 ( http://HiphopLE.com ) (복사 시 출처를 남겨주세요~)
첫댓글 좋은 음악이라 좋긴한데
이정도면 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런 집착이 좋은 음악이 나온 이유일까 싶기도 하고 뭐 복잡하네요 ㅋㅋㅋ
리스너의 입장에서는 좋은 음악이 나오면 좋긴 하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2008 앨범 이후로 9년만에 마지막 앨범이 나왔어요..ㅠ 음악으로 위로 받는다는 느낌을 이 밴드때문에 처음 느꼈어요
@다스 베이더 왜 마지막이에요?
@iswide 보시면 알겠지만 노래 하나 만드는데 강박증에 가까울정도로 완벽을 추구합니다. 앨범 작업 중에 버린 노래만으로도 앨범 몇개 만들걸요. 저리 작업이 오래 걸리니 본인도 지쳐하고 그래요. 2009년부터 다음 앨범이 마지막이라 계속 그랬어요.
진짜 오래 기다렸다ㅜㅠㅠㅠ
와 드디어 ㅜㅜ
나중에 읽기
언니
드디어...
한편의 소설을 읽은 느낌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