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6일 묵상 본문 : 이사야 41장 14절 – 20절 – 먼저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명자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맞이합니다.
이른 아침 아직 덜 깬 상태에서 주의 말씀을 대합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죄와 허물을 주님이 아십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로운 마음과 주를 향한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오늘도 내 삶의 인도자 되시는 주님을 따르게 하시고 주를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15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버러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버러지는 지렁이를 뜻하며 아무런 힘과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도우시고 타작기로 삼아 열방을 심판하는 도구가 되게 하십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교회의 모습을 의미하며 주와 함께 다스림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물을 구할 때 샘을 주시고 광야에 나무를 심어 하나님의 능력을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렁이로 표현하신다.
땅을 파고 들어가 흙을 먹고 밟으면 꿈틀대는 것 이외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동물이다.
이런 지렁이 같은 존재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며 한계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지렁이 같은 존재를 바꾸어 세상의 심판을 행하는 타작기로 만드신다.
그래서 산들을 평지로 만들며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일을 하게 하신다.
이런 존재적인 완전한 변화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신약의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며 교회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교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은 확연하게 대조된다.
지렁이와 타작기는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변화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얻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드러난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능력이 되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 교회는 초라하며 무능력해진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가 세상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지 않기 때문이요 자신이 가진 것으로 살아가려는 모습 때문임을 발견하게 된다.
교회가 세상의 능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교회는 지렁이와 같은 존재가 된다.
하나님의 능력을 힙 입지 않으면 지렁이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의 지탄을 받아도 꿈틀 대는 것 이상의 반응은 나오지 않는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드러낼 수 있는 반응이 없다.
그래서 교회가 재물을 쌓고 정치적 힘을 발휘할수록 드러나는 것이 추한 모습뿐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 때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타작기가 된다.
진리와 비진리가 무엇인지 분별시키는 능력을 얻는 것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진리는 드러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냄과 같다.
결국 교회가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타작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내 안의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 내 안에 내 생각이 죽고 주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그래서 말씀은 늘 모든 성도들의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며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말씀이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이지만 내 안에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부족하다.
보이는 것마다 말씀에 어긋나는 모습을 발견한다.
어찌 이런 자가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었는지 참담할 뿐이다.
그러나 다시 말씀 앞에 나아가면 말씀은 전하는 자가 아닌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내게 먼저 주어진 사명임을 발견한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듣고 순종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듣고 순종하면 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사라짐을 가르치신다.
듣고 순종함이 하나님 백성의 능력이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통로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백성의 사명임을 가르치신다. 이것을 망각함이 죄악이며 교만이 된다.
오늘 하루도 주의 말씀으로 살아가길 원하고 은혜 가운데 순종하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말씀 가운데 저의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이 하나님 백성의 사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나의 모습이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그 가운데 반응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진리로 내 마음을 채우게 하시고 주님 앞에 겸손히 머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