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점에서 밀포를 거쳐
장마가 끝물로 치닫는 칠월 중순 목요일이다. 웃비가 그쳐도 언제든 비가 내릴 조짐인 날씨라 우산은 챙겨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창원역을 지날 때 내렸다. 근교 강가로 나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교외로 다니는 출근길 회사원과 같이 갔다. 용강고개를 넘으니 들녘에 소재한 사학 재단 고교로 다니는 학생들도 보였다.
하루를 지치게 보낼 회사원과 학생들 틈바구니에 기점부터 타고 가는 우선권으로 좌석에 앉아 감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용잠삼거리를 지난 동읍 행적복지센터 앞에서 내리게 되었는데, 지쳐 보인 이들에게 하차로 빈자리를 안겨줘서 다행으로 여겼다. 거기서부터 서너 시간 이상 걸어 가술까지 갈 요량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좋을 듯했고 햇볕이 드러나지 않으면 더 좋을 듯했다.
용잠에서 무점으로 가는 들길을 걸으니 눈앞에는 정병산을 등지고 들어선 덕산 일대 높은 아파트가 들어왔다. 고속도로와 국도가 지나는 길목이라 교통이 좋아서인지 몇 해 사이 예전과 다른 집단 주거지 스카이라인이 형성되어 있었다. 구룡산과 용강고개에서 흘러온 중앙천이 동판저수지로 흘러든 곳에서 무점마을로 갔다. 농사로 살아가는 한적한 시골 분위기가 나는 마을이었다.
동판저수지 둑길로 드니 전방으로 길게 이어진 제방과 넓은 들판이 드러났다. 둑길 가장자리는 가을에 화사한 꽃을 피울 코스모스가 싹이 터 생장의 시동을 걸었다. 길섶에는 늦은 봄 행정 당국의 인력이 지원 나와 제초해둔 자리에 흙을 돋우고 뿌린 씨앗은 촘촘히 싹 터 자랐다. 장마철 이후 한여름이면 폭풍 성장해 잎줄기가 무성해져 수많은 꽃송이를 맺어 가으내 꽃을 피울 테다.
둑에서 바라보인 저수지는 갯버들이 무성했고 수면 가득 넓은 잎을 펼친 연은 홍련과 백련으로 피운 꽃이 불국 정토를 펼쳐 보여주는 듯했다. 주남저수지와 산남저수지에서도 연꽃을 본다만 거기보다 개체수가 훨씬 많고 근접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둑길 중간쯤 가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부부를 만났다. 칠순을 헤아리는 노부부는 진영에서 주천강 둑길을 따라 걸어왔다.
동판저수지가 끝난 배수문에서 주천강 둑길로 들었다. 주남저수지에서 시작된 주천강이 동판저수지 물길과 보태져 진영으로 흘러갔다. 건너편은 대산 들녘과 맞닿은 창원시였고 남쪽에 해당하는 제방은 진영 좌곤리로 이어져 김해시였다. 주천강이 진영으로 흘러가는 둑을 그간 방치하다가 당국에서는 진영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에게 생태하천으로 단장해 산책코스로 개발 중이었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구간에서 남포교를 지난 외딴 농가엔 할머니가 살았다. 텃밭에는 고추와 참깨가 자라고 마당귀에 여러 가지 꽃을 가꾸며 소일하는 듯했다. 할머니는 밀식으로 자란 들깨를 뽑아 안고 둑 너머 버리려고 했다. 초면이지만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며 그 잎을 따면 찬으로 먹을 수 있겠노라고 했더니 이파리를 포개서 따는 시범을 보이며 따 가져가십사고 했다.
둑길에 퍼질러 앉아 들깻잎을 딴 뒤 밀포마을을 지났다. 우암리에서 대산 들녘을 돌아온 작은 물줄기가 주천강으로 보태지면서 섬처럼 고립된 밀포였다. 바깥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곳이라 그윽하거니 숨겨두었다는 뜻의 ‘밀(密)’ 자를 쓴 마을이었다. 들녘 들길을 걸으니 25호 국도가 진영에서 수산으로 가는 ‘진산대로’였다. 아울렛 거리로 명명된 등산용품 가게에는 손님이 더러 보였다.
입고 있는 조끼가 낡아 수선을 맡길 시점이라, 유명 브랜드 폐점 재고떨이 광고가 붙은 가게에 들었더니 마음이 내킨 조끼가 없었다. 그와 이웃한 다른 가게서 여름 조끼를 하나 사서 찻길 노변을 따라 걸어 상포마을을 지난 가술에 닿았다. 마을도서관으로 들리기는 시간이 너무 지났더랬다. 국숫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나오니 소나기가 내려 카페로 들어 ‘천변 깻잎’을 한 수 남겼다. 24.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