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의 ‘황무지’(작품)
20세기 초에 유럽과 미국의 모더니즘 시에는 낭만주의적 주관성과 전통적 형식에 고착하는 시의 사조가 시대의 사조(과학,기술, 사회가 엄청나게 발달했는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더니즘 시인들은 개인적인 표현을 하는데 벗어나서 좀 더 지적인 객관성을 지향했다. 엘리엇은 이 시를 지을 때 모더니즘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시의 제목은 어부(漁夫)왕에 대한 아서왕의 전설과 관련되어 있다. 어부왕은 성배를 간직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가 성 불구자가 되자 왕국 전체가 생식력을 잃고 매마른 황무지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엘리엇은 물과 갈증, 성정에 함축되는 죽음을 시의 주요 주제로 삼았다. 첫 행은 아주 유명하다.‘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한다. 봄이라 해도 아무런 보장도 없음을 표현했다.(*4월이 잔인하다고 한 것은 죽음의 땅에서는 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황무지(The Waste Land)는 모더니즘 시인인 T. S. 엘리어트가 1922년 출간한 434 줄의 시이다. 이것은 “20세기 시 중 가장 중요한 시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았다.[1] 이 시는 난해함이 지배하는 시로, 문학에서 넓고, 부조화스럽게 나타나는 풍자와 예언의 전환, 그 분열과 화자의 알려지지 않은 변화들, 위치와 시간, 애수적이지만, 호출 등이 나타나는 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현대 문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그 유명한 싯구들 중에 첫 행의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손안에 든 먼지만큼이나 공포를 보여주마”(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 그리고 마지막 줄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주문인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는 유명한 구절들이다.
황무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여름은 우릴 놀라게 했어요, 슈타른베르크 호(독일에 있는 호수) 너머로 와서
소나기를 뿌리고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4] 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대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사람의 아들아[5], 너는 말하기는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6]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7]
이시는 '성배(聖杯) 전설'을 이용하여20세기 유럽 문명의 황폐함을 '황무지'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전체 5부 중 제시된 부분은 제1부로, 시인은 죽음과 재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인 사월이 잔인한 것은 작고 연약한 씨앗이 겨울의 언 땅을 뚫고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억이나 욕망 없이 모든 것이 잠든 겨울이 오히려 따뜻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인은 행복했던 과거의 독일 생활을 회상하게 된다.
그 내용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여인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시인의 의식은 다시 황무지로 이어지고 황무지의 구체적 이미지가 제시된다. 여기에서 시인은 에스겔의 성경 구절, '인자(人者)여,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를 인용하여 이스라엘 사람이 겪었던 고난을 현대인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이후의 행에서 시인의 명상은 행복한 사랑의 노래로 이어지고, 사랑이 생의 절정의 순간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이라는 절망적인 마무리로 이를 대조시켰다. 이것은 바그너의 가곡 '트란스탄과 이졸데'의 3막 24절을 인용한 것으로, 다시 황무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잠시나마 느꼈던 사랑의 꿈이 깨어지고 다시 황무지의 현실로 돌아오는 절망적 느낌을 준다.
이 시는삶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여러 요소들, 즉 외로움, 공허함 등이 생생하게 나타나지만, 역설적이게도 부활에 대한 기대 의식도 함께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 이 시의 배경- 성배(聖杯) 전설
'성배전설'에 의하면 어부(漁夫, 물고기는 생명의 상징) 왕은 저주를 받아 병들고, 성불구가 된다. 그 결과 그가 다스리는 나라에는 강에 물이 마르고 들에는 곡식이 생산되지 않아황무지가 된다. 이 저주는 왕이 나올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왕과 나라를 구하려면 마음이 순결한 기사가 황무지 한복판에 있는 위험 성당으로 가서 육체와 정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성배(聖杯, 최후의 만찬 때 쓰였고, 후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창에 찔렸을 때 흘린 피를 받았다고 하는)를 찾아내야 한다.
성배를 찾게 되면, 그 힘으로 어부가 왕으로 회복되고 황무지에 다시 풍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이와 같이 다양한 신화적, 종교적 자료를 사용해서 공허와 고독과 비이성, 무분별한 성(性) 적 행각이 판치는 고대 황무지와 같은 근대사회를 그려내고, 그 사회가 재생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있다.
현대 문명의 황폐함을 노래한 시이다.
**모더니즘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나타난 예술운동의 경향이다. 특징은 전통과 단절이다. 19세기의 부르주아지 사회가 찬양했던 경제적, 도덕적 가치를 부정한다. 경험과 개인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모더니즘은 문학의 독자성을 강조한다. 이전의 문학이 (사회주의 문학, 리얼리즘 문학) 내세웠던 가치들을 무시한다. 공리주의, 도덕주의를 무시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리얼리즘이 사회를 고발하는 것은 사회의 질서를, 개인의 도덕성을 바로세우기를 강조한다.
모더니즘이 찬양하는 경험과 개운주의란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고, 개인이 먼저라는 것이다. 문학이 사회질서를 세운다는 목적이 아니고, 문학 자신만을 위한 문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독자성이고, 문학의 목적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