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광하 치리아코 신부님 글 (케이크) 주님의 평화 ! 오늘도 행복과 평화를 사시길 기도하며 ....... 그리고 , 언제나 우리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와 사랑을 본받는 참된 자녀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 (와인) 애메 뤼시엥 뒤발 신부 A. 생텍쥐페리(1900-1944)는 그의 영원한 작품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술고래의 별을 방문한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술고래를 보고 어린 왕자는 물었다. ‘술은 왜 마셔?’ ‘잊어버리려고 마신다.’ ‘무얼 잊어버려?’ ‘창피한 걸 잊어버리려고 그러지.’ ‘무엇이 창피해?’ ‘술 마시는 게 창피하지!’ 술꾼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그 별을 떠났다. 어린 왕자는 길을 가며, ‘어른들은 참말이지 괴상하고도 야릇하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낭시의 예수회 수도자였던 애메 뤼시엥 뒤발(Aime Lucien Duval 1918-1984)신부 역시 지독한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참혹한 전쟁의 절망에 빠져있던 프랑스인들에게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지닌 뤼시엥 신부는 희망의 존재였습니다. 그에 대한 이런 소개의 글이 있습니다. “뤼시엥 신부님은 12세에 벌써 천부적인 재능으로 피아노, 음악, 작곡법을 공부, 최초로 이미 노래를 지었고, 작사, 작곡, 노래를 통한 복음 활동으로 유럽 각 도시와 아메리카, 캐나다까지 건너가 청중을 감동시킨 시절은 30대에서 40대 초반, 동맥경화증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나를 구원하시고 그대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나이다.’ 하신 신부님, 결국 마지막 콘서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매츠에 들렀다가 과로로 그곳에서 졸도, 운명하셨다고 한다. 비상한 직감력에, 시인이며 작곡가며, 기타 연주가며 또한 가수였던 신부님, 테이야르와 상통하는 신학사상의 예리한 소유자로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양 남달리 괴로워하신 분.”(A. 뤼시엥 뒤발, 《달과 놀던 아이》, 열린, 184쪽) 18세에 예수회에 들어가 사제가 된 뤼시엥 신부는 그야말로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으로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청중을 사로잡은 최고의 복음 가수였습니다. 더구나 감미로운 프랑스 샹송을 부를 때면 관중은 열광을 하였습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팬들이 뤼시엥 신부를 따라다녔는지 그가 공연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엄청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도원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였습니다. 무슨 신부가 세속의 가수들처럼 인기몰이 공연이나 하고 다니느냐며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수도원에서는 뤼시엥 신부가 장거리 공연에 필요한 오토바이를 사주는 것도 인색했으며, 그 많은 수입을 벌어 와도 위험한 오토바이 대신 중고 자동차 한 대 사주는 것도 아까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뤼시엥 신부에게 무관심했고 심지어 비웃기까지 하였습니다. 공연 포스터를 수도원 게시판에 붙여도 어느 누구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공연 내용에 대해 묻는 동료들이 없었습니다. 또한 공연관람 무료 초대권을 식탁에 두어도 누구 하나 집어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집단적 무관심을 보였습니다. 환호하는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공연을 끝내고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뤼시엥 신부를 기쁘게 맞이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에게 무섭게 찾아오는 것은 지독한 고독이었습니다. 뤼시엥 신부는 너무도 고독했고 참혹하리만치 외로웠습니다. 그러다가 그 무서운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술로 달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도원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마시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한 병, 그러다가 세 병, 나중에는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셨습니다. 급기야 수도원에서는 냉장고를 자물쇠로 잠갔고, 뤼시엥 신부는 공연 후 돌아오는 길에 술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 홀로 외로이 술을 마셨습니다. 공연 중에도 술에 취해 있었고, 기도 중에도, 운전 중에도 술을 마셨습니다. 급기야 뤼시엥 신부는 50세에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알코올중독을 불치병으로 인식한 그는 삶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못하고 죽음을 바라보며 방황하게 됩니다. 두 번이나 알코올중독자 요양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고, 열 명이 넘는 의사를 만나 치료를 시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던 그는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술을 끊는 단주 모임에 나가게 되고 거기서 사제이지만 알코올중독자란 사실을 털어놓으며 엉엉 울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자신의 가엾은 처지를 다 쏟아내며 치유의 길을 걷게 됩니다. 훗날 술을 완전히 끊게 된 뤼시엥 신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술을 마시게 했던 꿈,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없어 괴로웠기에 지난날엔 술을 마셨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진 지금 내게는 술이 필요 없으며 마시지 않는다. 어린 꼬마가 꿈을 지녔던 것이 정말 옳았다. 왜? 술을 끊은 어른이 그 꿈을 실현했으니까. 그리고 그 어른은 행복하게 늙어간다.”(같은 책, 《달과 놀던 아이》, 176쪽) 뤼시엥 신부가 죽음과 싸웠던 알코올중독의 원인이 지독한 고독 때문인 것을 알게 된 수도원 식구들은 잘못을 인정하며 뤼시엥 신부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서로가 관심과 사랑을 나누며 새로운 수도원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과연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고통은 무관심입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무관심 뒤에 찾아오는 것은 죽음의 고독입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무관심이 고독하게 죽어가는 이웃을 방치하게 만드는 비정한 현실을 보며 뤼시엥 신부가 아파했던 고독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달나라를, 우주를 왕복한다 하여도 이웃집을 갈 수 없다면 우주의 왕복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들려오는 세상의 온갖 고통의 소리에 우리 믿는 이들조차 무관심으로 외면한다면, 도대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무관심으로 냉혹해진 세상에 우리가 알릴 수 있는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청소년들을 지극한 사랑의 관심으로 보살핀 돈 보스코(1815-1888)성인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사랑하십시오.” 뤼시엥 신부는 서로가 같은 처지로 아파하는 단주 모임에서 울며 이렇게 자신을 겸손히 고백합니다. “저의 이름은 뤼시엥입니다. 저는 알코올중독자입니다.” (눈물) 뤼시엥 신부님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슬펐습니다 . 그리고 사제인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 어쩌면 아직도 제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 뤼시엥 신부가 있으리란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 또한 우리는 왜 , 그리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격려와 관심이 그토록 부족한 것일까 , 성찰해 보았습니다 . 많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겠습니다 . (방긋) 너무 긴 글 , 끝까지 읽어 주시어 고맙습니다 . (축하) 오늘도 아름다운 인생 순례에서의 많은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 사랑합니다 ! (촛불)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