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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5년 되는 날 새벽이었다.
2015년 6월 25일 새벽 04시. 동해안에서 엄청난 섬광을 동반한 폭발음이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독도. 그 거대한 바위섬은 화염에 휩싸였다가 금세 흔적도 없이 바다에 가라앉았다. 폭격의 강렬한 여파는 울릉도에까지 미쳐 잠을 자던 섬 주민들은 지진이 난 줄 알고 혼비백산하였다. 그 시각 아베 총리는 자신이 파견한 함대로부터 독도 침몰을 보고받고 청와대 핫라인에 신호를 띄워 박근혜 대통령을 호출하였다. 그 시각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서 취침 중이었기에 핫라인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의 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고희를 코앞에 둔 노회한 정치인은 새벽 4시에 울린 핫라인 벨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의 동공이 일순간 팽창했다. 이 시간에 울리는 핫라인이라면 경우의 수는 오직 한 가지다. 전쟁 발발. 수화기를 귀에 가져간 이병기 비서실장은 몇 초간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비서실장 이병기요.”
건너편에선 입맛을 쩌억 다시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곤 이내 아베 총리의 말을 받은 통역사가 이렇게 말했다.
“총리께서 말씀하십니다. 비서실장. 그쪽 대통령에게 전하시오. 한반도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전화는 딸각. 끊어졌다.
텔레비전에는 손석희 아나운서의 음성이 다급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면은 그저 앵커석만을 덩그러니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예. 국민 여러분 제이티비시 뉴스의 손석희입니다. 현재 속보가 전해졌는데요. 일본 측 함대의 공격으로 독도가 침몰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저는 현재 자택에 머물고 있는 상태에서 본사로부터 이와 같은 단신만을 전해 들었습니다. 곧 스튜디오로 복귀해서 자세한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저희 제이티비시 뉴스에 채널을 고정해 주시고 사태를 예의주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전쟁 발발의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이점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곧 정식방송으로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손석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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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를 통해 넘어온 그의 음성이 전파를 타고 수십만의 시청자에게 전달되었다. 손석희 아나운서는 옷을 챙겨입고 지하주차장으로 가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걸었다. 평소에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지만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국무회의는 신속하게 소집되었다. 잠에서 덜 깬 국무위원들은 다소 비현실적인 상황에 어리둥절해 했다.
곧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 나왔다. 이른 새벽 충격적인 소식에 머리만 간단히 다듬고 나온 상태였다. 서른 명의 국무위원 전원이 독도 침몰 사십 분만에 자리에 와 앉았다.
“이병기 비서실장께 간단한 보고를 받긴 했습니다만. 국무위원들께 정식으로 다시 한 번 설명을 좀 해주시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차분한 음성이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었다.
“예. 금일 새벽 공 사 시경 일본으로부터 연결된 핫라인으로 아베 총리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하길 한반도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이라는 협박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병기 비서실장의 음성은 다소 떨리고 있었다.
“한반도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이라면.. 전쟁의 선전포고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대통령의 음성은 여전히 냉정하리만큼 침착했다.
“아예 한반도를 지구 상에서 없애버리겠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새누리당 김무성대표가 나지막이 대꾸했다.
그때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휴대전화가 부우웅 거리며 주머니에서 울렸다. 당황한 장관은 급히 휴대전화를 끄려 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전화를 받게 했다.
“군 관련 보고일지 모르니 일단 받으시지요.”
한민구는 고개를 돌리고 최윤희 합참의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짤막하게 대꾸를 하고 폰을 닫았다. 낯빛이 창백해진 장관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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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 전인원 인천항으로 철수 중이고, 평택주둔 미군들은 이미 평택항 통해 중국으로 피신 중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위계상 군 통수권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이런 순간이 오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을 외면해버리고 자국 군대를 철수 중인 미합중국과 일개 국가의 영토를 무자비하게 침공하며 쳐들어오고 있는 일본군.
박정희 장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던, 민족 최초의 여성대통령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 시각 야당 정치인들도 하나둘 영등포 당사로 모여들고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파란색 간판엔 아직 불도 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문재인 대표는 7층 회의실에 도착해 당 최고위원들과 긴밀히 의견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다들 집에서 급히 뛰어나오느라 꼴들이 말이 아니었다. 일부는 회의실에 도착해서야 양말을 신었고, 와이셔츠 단추를 허겁지겁 잠그며 등장하는 의원들도 여기저기 보였다. 곧 박지원 의원이 회의실에 나타났다. 그가 등장하자 문재인 대표를 에워싸고 있던 의원들이 기세에 눌려 뒷걸음을 쳤다.
박지원 의원이 문재인 대표 앞에 섰다.
“이거 어찌해야겠습니까. 지금 독도가 폭파되었다고 하던데.”
“예 의원님. 저도 소식 듣고 급히 뛰어나왔습니다.”
“문 대표. 여기서 우물쭈물 뭉개고 있지 말고 일단 당사 도착한 최고위원들부터 데리고 청와대로 갑시다.”
“아.. 예 의원님. 일단 의원님들 충분히 오시면 저희 입장을 정리한 후에. 지혜를 좀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문 대표. 이 사람아. 독도가 폭파되고 일본이 함대꾸려서 쳐들어오고 있어. 전쟁하자는 소리야. 근데 뭐 입장을 정리하고 지혜를 모아? 이게 지금 애들 소꿉놀이인 줄 알아? 노무현이가 일처리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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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당장 청와대로 가서 박근혜하고 전쟁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당장!”
목청 좋은 박지원의 음성은 그날따라 우렁찼다.
정치로부터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작가 유시민은 택시를 타고 제이티비시 본사로 향하고 있었다. 파주 출판단지 한쪽에 마련된 집필실에서 밤새 쓰고 고쳐 쓰기를 반복하던 그가 간이침대에 몸을 뉘인지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각. 손석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전쟁 발발 가능성 있다는 소식을 그에게서 들었다.
“유 작가님. 지금 바로 저희 뉴스룸 스튜디오로 오세요. 저도 가고 있습니다.”
군 독재자들에 맞서 싸우며 젊음을 소진하고 정치권에서도 트러블메이커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여기저기 휘둘리다, 마침내 자신 정치인생의 완전한 실패를 인정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지 불과 3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전쟁이라니. 참 지독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앞 좌석에 앉아 정면을 주시하며 상념에 빠져있던 그때, 그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기 그림 옆에 뜬 발신자를 보니 김어준이었다. 다큐멘터리 제작한다고 이 년 반동안 연락 한번 안 되던 총수였다.
“어. 김 총수. 웬일이야?”
“예 형님. 소식 들으셨죠? 독도 막 가라앉고 난리 났던데.”
“어 들었지. 지금 손석희 씨한테 전화 받고 상암동 본사로 가는 중이야.”
“형님. 이건 일반적인 전쟁 이랑은 달라요.”
“그게 무슨 소리야?”
칼칼한 유시민의 음성이 가늘게 갈라졌다.
“형님. 제가 그동안 다큐제작이 아니고 일본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그거 추적하고 다녔어요. 이거 군사전쟁 아니에요. 일본이 벌이는 주술사들의 전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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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일본이 함대 띄워서 조금 전에 독도를 폭파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형님. 그거 일본 군대 아니고 일본의 겐즈이 라는 주술사가 죽은 군인들 불러내서 만든 귀신함대에요. 제가 2년 반 동안 추적해서 알아낸 거예요. 저 지금 포항가는 중이에요. 운전중이니까 일단 쫌있다 통화해요.”
평소에도 뚱딴지같은 소릴 곧잘 하는 친구였지만 이번에는 참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은 유시민은 여러모로 심정이 착잡했다. 고개를 빼꿈 앞좌석으로 내밀어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조금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택시는 뻥 뚫린 제2자유로를 이백 킬로 가까운 속도로 내달렸다.
청와대 국무회의장은 국무위원들의 소음으로 가득했다. 다들 마이크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한마디씩 했다.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그때, 김무성 대표가 단상을 손으로 쾅쾅쾅 쳤다.
일순간에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다들 대통령 각하 앞에 모시고 뭣들 하는 거요. 입들 다무세요.”
각 부처 장.차관들도 그 위세에 눌려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 넓은 공간에 적막함이 가득했다.
“각하.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입장을 정리하시고 행동을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무성의 조용한 채근에 박근혜 대통령은 이내 작심한 듯 말했다.
“혹시 모르니 미국에 통화를 한번 시도해 보지요. 혹시 오바마 측에서,”
이병기 비서실장이 말을 가로챘다.
“백악관과 쉼 없이 접촉 중입니다만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일부러 피하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한 번 입을 앙 다물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정변을 일으키고 통치를 하던 미개한 시대가 아니다. 이미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치며 민주주의가 시민들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때다. 독단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핫라인 연락조차 외면하는 미국에 의지한 채 사태를 방관할 수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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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밑으로 폰을 만지작거리며 문자로 보고받던 이병호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 각하. 지금 북한 김정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통화 가능하시면 바로 연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이요? ”
“예. 각하.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쪽에서도 독도 침몰 소식을 접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국정원장은 마이크 옆의 선을 끌어당겨 자신의 폰에 연결했다. 잠시 후 목청을 가다듬는 김정은의 목소리가 장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아아. 북한 제1비서 김정은이오. 박근혜 대통령 연결되었나요.”
비대한 세습 왕자의 목소리는 우리 쪽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차분했다.
“네. 대통령 박근혜입니다. 국무회의장 연결되어있으니 할 말 있으면 지금 하도록 하세요.”
“국무회의라면.. 지금 장.차관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듣고 계시다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비대한 왕자는 마치 수줍음을 타듯 어물쩍거리고 있었다. 폐쇄된 왕국 안에서 공포정치나 펼치는 비열한 놈이 우리 대통령 앞에서는 기가 죽어 말 한마디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군. 병신같은 놈. 보수적 집권 여당 수뇌부들은 경멸스러운 인권유린자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며 속으로는 연신 욕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일본에서 남한에 선전포고를 하고 침공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압니다. 남한이 우리 북측에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다면 우리의 핵을 이용해서 힘을 합쳐 일본군을 격퇴할 수 있습니다.”
“핵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인가요?”
“현재 우리 북한은 열다섯 기의 핵탄두를 보유 중입니다. 그중에 다섯 기 정도는 즉시 사용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의 탄두를 그대로 쏘면 그야말로 핵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백 개의 작은 덩어리로 옮겨 담으면 강력한 무기로 활용 가능합니다. 핵을 쓰면 지구가 사라집니다만. 잘게 쪼개어 발사하면 적을 전멸시키는 선에서 끝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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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마이크를 끄고 국방부 장관에게 육성으로 물었다.
“맞는 말인가요?”
장관 역시 마이크 버튼을 내리고 대답했다.
“저희가 지금까지 입수한 정보로는 맞는 말이긴 합니다.”
딸각. 마이크를 다시 켠 박근혜 대통령이 협상을 시작했다.
“일단 받아들입니다. 경제적 지원은 어느 정도 규모로 요구하시는지요”
“미화 현금으로 1,000억 달러 원합니다.”
“천억 달러면..”
“한화로 110조 원 정도 됩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김무성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님 와계시죠?”
“예. 여기 있습니다.”
“가능한가요?”
“현금으로 마련하려면 좀 힘듭니다.”
“달러 현금 아니면 남측과 협력하지 않겠습니다.”
돼지의 음성이 스피커로 울렸다.
“최대한 노력해 주세요 총재님.”
박근혜 대통령이 다독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화 현금. 1,000억 달러 지원 약속 합니다. 바로 안되면 시간을 두고서라도 분명히 지급을 약속합니다.”
“전액 현금으로. 명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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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돼지는 다시 한 번 다짐을 구했다.
“알겠습니다. 일본군 상황을 지켜보고 다시 통화하도록 하지요.”
제이티비시 뉴스룸 에 손석희 앵커가 막 도착했다. 그 역시 양말도 못 챙겨 신고 허겁지겁 달려온 상태였다. 역시나 제정신이 아닌 스탭들이 달려들어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고 방송장비를 스탠바이 시키고 있었다. 손석희 앵커는 오는 길에 진중권 교수에게도 연락을 취해놓았다. 급박한 시국이니만큼 진 교수는 교수직을 맡고있는 경북의 교직원 기숙사에서 자신의 개인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유시민 작가와 진중권 교수가 1분을 차이로 두고 뉴스룸에 도착했다. 서로들 급히 인사를 나누었다.
“아니, 딴지일보 김 총수가 전화를 해서는 이게 주술사들의 싸움이라던데, 뭐 들은 거 있으세요?”
유 작가가 둘에게 물었으나 손 앵커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대꾸조차 없었고 진 교수는 슬그머니 웃었다.
“요새도 음모론 퍼뜨리고 다니나 보네요.”
지식인의 허위를 찢으며 사방 난리를 치며 돌아다니는 김총수가 진 교수 입장에선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2011년 이후로 그가 퍼뜨려온 음모론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이성적 각성을 촉구하였으나 김총수가 제기한 음모론은 속속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었다. 진 교수는 은근 자존심이 상했다.
“김어준 씨 그런 소리 자주 하잖아요. 이상한 소리 하는 거 듣지 마시고. 자 일단 방송 준비부터 하시죠.”
진 교수는 일찌감치 옷매무새를 다듬고 착석해 있었다.
유시민 작가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해했다. 이런 엄중한 시국에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닌데 ...
메인앵커이자 보도부문 사장인 손석희는 청와대와 새정치민주연합당사 그리고 독도를 떠나 내륙으로 접근 중인 일본 함대에 맞서고 있는 해군 사령관을 동시에 연결하도록 했다. 해군 사령관은 그쪽 장비를 통해 제이티비시로 영상을 송출해 왔다. 영상은 다소 흐릿했지만, 내륙으로 돌진해오는 수십 척 일본함대가 작은 점으로 보이며 시야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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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모두 세팅되었고 진행 스탭이 진 교수와 유 작가의 안주머니에 휴대용 마이크를 넣어주었다.
“자 1번 카메라”
프로듀서가 외치자 스튜디오 전체를 앵글에 담은 지미집 화면이 띄워졌다.
“자, 2번. 3번”
이번에는 손 앵커와 두 게스트를 담은 화면이 확인되었다.
“자 청와대 확인해보죠. 영상. 음성. 확인됐나요? 네. 좋습니다. 이번엔 새 정치 민주연합 쪽 확인합시다. 영상. 오케이 오, 옥.. 저거 뭐야?”
박지원 의원이 문재인 대표의 멱살을 부여잡은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말리던 의원들도 지쳤는지 다들 바닥에 나가떨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꼴사나운 광경이었다.
프로듀서가 말했다.
“야, 새정연에 지금 누구 나가있냐?”
“김서진 기자 나가 있어요”
“야, 서진이 연결해서 지금 카메라 돌고 있다고 외치라 그래.”
잠시 후 영상으로 보이는 새정치민주연합 화면 밖에서 누군가 ‘카메라 돌고있슴다!’ 라고 외쳤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표의 멱살을 쥐고 나뒹굴던 박지원도 옷을털고 일어나 매무새를 정리하고 의자에 앉았다. 문재인 의원도 코밑으로 내려온 안경을 고쳐 쓰고 카메라 앞 의자에 앉았다. 선거 결과를 참관할 때처럼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응시했다.
“지금 전쟁 날 판인데 제1야당이 이거 뭐하는 건지. 참 내.”
프로듀서가 혀를 끌끌 차며 손 앵커에게 묻는다.
“손 앵커님. 준비되셨죠?”
“예. 저는 준비됐습니다. 유 작가님. 진 교수님. 시작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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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예 그럼요.”
뉴스룸 전체를 비잉 돌던 카메라가 멈추고 이내 손석희 앵커를 화면에 가득 담았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이티비시 뉴스의 손석희입니다. 아까 제가 저의 자택에서 급히 알렸듯이 지금 일본 측이 함대를 파견해서 저희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를 파괴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핫라인을 통해 청와대에 연락을 취했고, ‘한국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이다‘ 라는 일종의 선전포고를 해왔다고 하는데요. 먼저 청와대 연결해 보겠습니다. 자, 박근혜 대통령 나와계시지요?”
그때였다. 유시민의 폰이 진동으로 울렸다. 김어준이었다. 손 앵커가 박근혜 대통령과 상황보고를 주고받는 동안 유시민은 ‘통화거부’ 버튼을 누르고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지금 생방송 중이야. 무슨 일이야.’
‘형님. 지금 심각하다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청와대랑 무슨 얘길 하겠다는 거야. 청와대랑 연결 끊고 나랑 통화해요. 통화 내용 생방으로 내보내고. 전화 받아요.’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일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판에 청와대의 뻔한 보고만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유시민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화를 주고받던 손 앵커의 말을 자르고 중간에 툭 튀어나왔다.
“손석희 앵커님. 지금 김어준 총수에게 전화가 왔는데. 긴급하게 전할 내용이 있다고 하네요. 중요한 내용이라는데 바로 연결 좀 할 수 있을까요?”
앵커 생활 삼십 년이 넘은 손석희였지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진중권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프로듀서가 카메라 뒤에서 기다란 라인을 끌어오며 외쳤다.
“김어준 연결해요. 이런 상황에서 헛소리 지껄일 사람 아냐.”
유시민은 자신의 폰에 프로듀서가 끌어온 라인을 꽂아 연결했다.
“아아. 여보세요. 아 형님. 내가 이거 군사전쟁 아니라고 했잖아요. 주술사들 싸움이라니까. 왜 말을 안 들어.”
“어.. 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전화 연결이 된 것 같은데요.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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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손석희 앵커시군요. 예. 김어준임다.”
“저희가 조금 전에 유시민 전 장관을 통해서 전해 듣기는 했는데. 이것이 일본군대의 짓이 아니다. 아.. 일본군대의 짓이 아니고, 일본 주술사들의 싸움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데요?”
“아 네. 제가 지난 대선 직후에 제보를 받고 이 년 넘게 조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에 겐즈이 라는 유명한 주술사가 있어요. 수십 년 전부터 거의 전설처럼 말로만 전해지던 사람이에요. 근데 이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이냐 하면 죽은 사람들 불러내는 사람이에요.”
“죽은 사람을 현재로 불러낸다. 이 말씀이신가요?”
“네. 맞아요. 지금 일본이 우경화를 하다못해 아주 극우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잖습니까? 이제 아주 미쳐가지구, 죽은 귀신들까지 불러내서 군사 대국화 하려는 계획을 세운거에요. 군사대국 만들어서 주변국들 다 잡아먹어 버리겠다 이거죠. 근데 웃긴 건 아베 정권이 그 전설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겐즈이라는 주술가를 얼마 전에 실제로 찾아낸 거죠.”
“그 죽은 사람을 불러낸다는 겐즈이.. 라는 주술사를 통해서 아베 정권이 주술사들의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말씀인가요?”
“지금 대단히 심각한 상황인데... 참 만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네요.”
진중권이 헛헛하게 웃으며 펜을 손가락 위에 뱅뱅 돌렸다.
김어준이 받아서 말했다.
“어... 만화 같은 헛소리 아니구여. 지금 독도 폭파한 게 일본의 죽은 총리예요. 함대가 지금 한 스무 척 정도 모여서 동해에서 내륙으로 진격해 올 거구요, 거기서 젤 대가리로 치고 들어오는 함대 대장이 일본의 이토 히로부밉니다. 백 년 전에 안중근 의사 손에 죽은 그 아저씨 말에요.”
프로듀서가 외쳤다.
“동해 현장으로 화면 돌려봐.”
화면이 다시 해군에서 전송하는 장면을 송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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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점으로 보였던 일본 함대는 어느새 내륙 가까이 와 있었다. 거리로 보면 십 킬로가 채 안 되어 보였다.
수십 척의 대형 군함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무섭게 진격해 오고 있었다. 우리 측 해군도 해변가 뭍과 물 위에서 전열을 다듬은 채로 포구와 총구를 왜구의 함대에 조준한 채로 포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군 제2 사령관이 현장에 있었으므로 명령은 그가 내릴 것이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적군의 함대가 점점 시야에 들어왔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왜구의 함대는 거리가 좁혀지자 그야말로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위용을 드러냈다. 전쟁경험이 없는 해군 사령관은 침을 꼴깍삼켰다.
이내 가장 앞쪽의 함대에 양손을 허리에 얹고 턱을 치켜든 자의 모습이 해군 측 영상장비를 통해 제이티비시의 화면에 그리고 수백만 인터넷 라이브 영상송출 화면과 텔레비전 화면에 잡혔다.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그의 등 뒤에서 찬란한 금빛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손 앵커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조용히 읖조리듯 물었다.
“아... 저기 저게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인가요?”
고개를 돌려 진중권 교수를 바라보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영상에 집중하던 진중권이 말했다.
“아 네.. 무슨 일일까요 이게. 아... 이토 히로부미 맞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어준은 다시금 자신의 구형 지프 랭글러 핸들을 잡고 포항으로 달렸다. 가는 도중에 ‘뱅주도사’에게 수십 번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그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고 김어준도 뱅주도사의 지독한 고집을 모르는 바 아니어서 통화는 일단 포기하고 집에 쳐들어가기로 했다.
동해 앞바다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이토 히로부미의 영혼을 불러내어 부활시킨 전설 속의 주술사 겐즈이는 이미 목이 잘린채로 함정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머지 않아 자신을 다시 저승으로 돌려보내야할 겐즈이의 목을 베어 버리고, 육체를 가지고 부활한 이토 히로부미 전 일본 총리 영혼은 이 세계에서의 영생을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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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측은 공포탄을 공중에 수천 발 발사하며 대치했다. 이준혁 해군 제2 사령관이 대형 스피커를 동원해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 해군 제2 사령관 이준혁이다. 더이상의 대한민국 영해침범을 허락지 않는다. 내륙 오킬로 전방진입 확인시 즉시 발포한다.”
황금빛 눈부신 빛으로 아우라를 뿜어내는 이토에게, 바로 옆의 통역사가 말을 전했다. 한국 측 젊은 사령관의 말을 옮겨 들은 이토 히로부미는 한쪽 입꼬리를 치켜들며 비웃음을 흘렸다.
한 손을 공중에 쳐들고 무언가 웅얼거리던 이토가 허공을 긁으며 그 팔을 후려쳐 내렸다.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이준혁 사령관의 몸에 내리꽂혔다. 부지불식간에 그의 몸은 까만 재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이토의 말을 받은 일본 측 통역사가 한국말로 이렇게 전했다.
“장군께서 말씀하신다. 가엾은 제군들이여. 장난감같은 무기들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오늘 밤 아홉 시 이곳에 다시 돌아오겠다. 한반도땅, 오천만 국민과 함께 제군들 전원을 수장시켜 버리겠다. 그때까지 다시 준비하라. 나 이토 총리를 장난감 군대와 싸운 야박한 지도자로 만들지 말라!”
일본의 수십 척 함대는 기수를 돌려 유유히 일본 쪽으로 사라져 갔다.
해군 측 장비를 통해 현장을 생생히 목격한 수백만 국민과 제이티비시 뉴스룸 전 인원은 한동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오가 조금 지나자 북으로 보낼 돈이 거의 마련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준비가 끝나면 판문점에서 돈을 전달토록 비서실에 지시 했다. 전군에 데프콘1이 발령된 상태였고 청와대에도 전 국무위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바마 이 새끼를...”
김무성 대표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대통령 각하. 김정은이한테 돈이 곧 전달될 테니 이참에 아예 미국 본토를 초토화시켜 버리시죠. 이미 우리를 등져버린 미국인데 지켜야 할 신의도 뭣도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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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안되지요. 일단 일본군대에 맞서서 대응을 제대로 해낸 다음에 차차 해결해야 할 겁니다. 국방부에선 잘 준비를 하고 있지요? 오늘 밤에 다시 찾아온다고 했죠. 그 이토라는..”
“예. 그 이토 히로부미 귀신에 맞서 우리 측도 대응 준비 중입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의문스러웠다.
“어떻게 죽었던 총리를 부활시켜 함대를 끌고가 공격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저희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입니다만. 지금은 상황의 해석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힘을 모아 적을 격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국방부 장관은 항상 전쟁을 준비해 온 관료답게 냉정하게 대답했다.
비록 미군은 배신하고 떠나갔지만 이런 관료를 곁에 두고 있으니 대통령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렇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책을 세워 보세요. 상대가 귀신의 군대를 보냈으면 우리도 귀신같이 대응해야겠지요.”
“귀신같이 대응한다...”
한민구 장관은 손 앵커의 속보방송에서 전화연결 되었던 김어준이란 자를 떠올렸다. 언론사 총수라고 했나. 삼 년 가까이 일본의 음모를 추적하던 자라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더 있지 않을까.. 그는 곧 참모들을 불러 김어준과 개인적으로 연락할 방법을 가지고 올 것을 지시했다.
오후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각. 청와대는 마련된 현금을 한국은행 수송차량에 실어 판문점으로 보냈다. 천문학적인 액수인 만큼 청와대 비서실과 한국은행 측에서 여러 명을 붙여 같이 이동했다. 북측에서도 사람과 차량을 보내 현금을 받아갈 준비를 마쳐놓았다.
현금 꾸러미에서 몇 뭉치를 무작위로 끄집어내어 분석장비로 확인한 북측 일행은 현금을 모두 자기들 차량에 옮겨실었다. 청와대 비서실 인원이 일본을 겨냥한 조속한 무기배치를 부탁했다. 북측 인원들은 김정은 제1비서실장께 현금수령을 보고한 후 차후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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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금세 사라졌다. 별다른 선택권이 없는 비서실 인원들과 한국은행 직원들은 다시 남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왔다.
위기 상황이 닥치자 관료집단은 평소와 달리 꽤나 민첩했다. 한민구 장관은 참모를 통해 불과 십여 분만에 김어준과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안녕하시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오.”
“예. 잘 알고 있슴다. 개인적으로 통화하는 건 처음이네요.”
“나를 잘 알고 있단 말이오?”
“네. 제가 3년 가까이 일본 극우파 정치인들 캐고 다녔거든요. 겐즈이를 통한 한국 점령 시나리오도 제가 처음 알게 된 거고. 한국 쪽 대응매뉴얼이 어떻게 되나 군 수뇌부 조사도 좀 했죠.”
“그렇군. 여튼. 삼 년간이나 이 일 관련해서 조사했다는데 오늘 그 이토의 함대가 다시 찾아온다는데 어찌할 생각이오. 삼 년간 조사하면서 이런 사태를 예견했을 것이 아니오.”
“뭐 있나요. 귀신 불러서 쳐들어오면 우리도 귀신 부르는 수밖에 없죠. 귀신한테 대포 수천 발 쏴봐야 뭐하겠어요.”
“귀신을 부른다..”
“제가 한국에서 주술사 겐즈이에 대항할 도사를 하나 발견했어요. 뱅주도사라고. 포항 사는 할아버지 하나 있어요. 지금 뱅주도사네 집 앞에 다왔슴다. 나중에 통화하죠.”
뚝-
일개 국가의 장관인 자신과 통화를 하다가 저렇게 끊어버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황당했으나 일본에 대항할 일말의 수단을 발견했으므로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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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선 김정은이 자신의 서재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현금 1,000억 달러를 받았다. 남한의 화폐가치로 110조 원. 정말로 핵을 사용해 군사행동을 해버릴까. 시나리오를 써본다. 그래서 일본을 궤멸시켜 지구 상에서 없애 버리고. 남한과는 고려연방제 통치를 하면서 북의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평화적 제스처를 취해 미국을 살살 달래가면서 평생 통치 활동을 이어간다. 이설주와의 관계에 자녀가 생기면 그 자녀들에게 수십 년간의 기간을 두고 권력을 세습한다. 그 자신은 권력 최상부에 너무 갑작스레 올라서느라 치러야 했던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으니.. 이십 년 정도 시간을 두고 권력을 물려주면 별 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의 생각대로 일본을 궤멸시켜버리고 핵으로 미국을 협박하고 달래며 남한과 평화 기조를 유지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면 당장에 일본에 퍼부을 핵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에겐 핵이 없는 것이다. 지구를 멸망시킬 핵탄두도 없고 따라서 그것을 쪼개어 쓸 수도 없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핵을 어떻게 만들어 낸단 말인가. 자신의 발랄한 상상력에 탄복한 김정은은 테이블 위에 놓인 미제 초콜바를향해 팔을 쭈욱뻗어 손에 가득 집고는, 우걱우걱 씹었다.
손석희, 유시민은 그때 케이티엑스 포항 편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김어준의 요청으로 몇몇 방송 스탭들을 데리고 뱅주도사의 집으로 가서 설득을 같이할 생각이었다.
이 문제에 삼 년이나 매달려온 김어준의 주장은 겐즈이가 살려낸 이토에 맞서려면 군대의 대응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도 누군가의 영혼을 불러내어 이토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청와대 국무회의실은 이미 정오를 기하여 대체로 낙담하는 분위기였다. 주한미군은 전원 철수했고 백악관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주한 미국대사도 이미 자국 군인들과 중국으로 피신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본은 귀신을 앞세운 군대를 가지고 오늘 밤을 기하여 대한민국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선전포고하였으며, 그나마 핵탄두를 쪼갠 특수 무기를 지원한다던 북한은 아직도 반응이 없었다. 적막한 국무회의장. 그 와중에 보고를 받은 이병기 비서실장이, 북한에는 핵이 없다는 김정은의 자백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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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평온을 유지하던 대통령도 그 순간만큼은 이성을 잃고 주먹을 움켜쥐고 몸을 떨었다.
뱅주도사의 집 앞에선 여전히 김어준이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당이 넓은 옛날 한옥이었다.
“아 도사님! 문 좀 열어보세요! 지금 이토 히로부미가 부활해서 우리나라 사람들 다 죽게 생겼는데. 아 문 좀 열어봐요!”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카메라와 송신 장비 등을 갖춘 손석희 일행이 김어준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저쪽에서 문을 안 열어주시나요?”
손석희가 물었다.
“네. 아 저 양반 진짜 고집이 너무 쎄가지구. 다시는 귀신 부르고 그런 거 안 한다고. 아 정말 미치겠네. 다 죽게 생겼는데 정말.”
손석희가 녹슨 철문을 두드리고 어르신- 하고 불렀다.
“도사 어르신. 잠깐 이야기라도 좀 나누시지요. 멀리서 왔습니다.”
여전히 대꾸가 없었지만 손석희는 목청을 조금높여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지금 굉장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일본측에선 백 년 전에 죽은 총리를 불러내서 한국을 궤멸시키겠다고 협박 중이구요. 오늘 밤 다시 공격하러 온다고 합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남지가 않았습니다. 어르신.”
그때 안쪽에서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저벅저벅 마당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철제 대문이 끼이익-하고 열렸다.
“들어들 오시게. 큰 기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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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은 어리둥절했다.
“아니 내가 열어달라 그럴 때는 대꾸 한번 않던 양반이. 참 내.”
손석희의 방송팀 일행과 유시민 김어준은 뱅주도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도사는 마루로 올라가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래. 내게 무얼 원하는가. 미리 말해두네만 나는 귀신을 부르는 의식 따윈 다시는 안 하네.”
김어준이 치렁치렁한 머리를 뒤로 쓸어올리며 말한다.
“도사님. 저번에 몇 번 보여주셨잖아요. 아니 노무현 대통령도 두어 번 불러서 같이 막걸리도 마시고 그랬는데 참.”
“그 주둥이 다물지 못하겠나. 어쨌든 나는 다시는 그런 의식은 하지 않네.”
“연유를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손석희가 부드럽게 그러나 위엄있게 물었다.
“그들을 자꾸 부르면 그들이 다시 돌아가 매우 힘들어하네. 내 눈에는 그게 다 보이니 참으로 괴롭지 아니할 수가 없네.”
“에이 무슨. 그때 노무현 대통령 두 번째로 모셨을 때 막걸리 맛 좋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이보게 어준이. 그렇게 사람 속을 모르나. 여기 잠깐 내려왔을 때야 괜찮은 척 하는 것이지. 다시 돌아가면 한동안 매우 괴로워하네.”
“하지만 도사님. 이번만큼은 매우 중차대한 상황입니다. 일본의 이토 총리 유령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나라도 똑같이 영혼을 불러내어 맞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손석희 앵커가 도움을 구하듯 유시민에게 눈짓을 보냈다.
“네. 맞습니다. 도사님. 이번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니 한 번만 저희에게 힘을 좀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미 사위가 어둑해져 가는 시각이었다. 이내 뱅주도사가 입을 열었다.
“이번엔 노무현이는 안 되네. 그 친구는 워낙에 마음이 착하고 여려서, 돌아가면 이번에는 더욱더 힘들어할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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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알겠습니다. 도사님. 그러면 일단 생방송 준비를 좀 해도 될까요?”
뱅주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잖은 손 앵커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김어준은 조금 삐졌다.
“차암- 내.”
손석희 일행은 생중계 준비를 금세 마쳤다.
마루에 뱅주도사가 자리를 잡고 앉았고 양 옆으로 손석희 유시민 김어준이 앉았다. 카메라는 마당에 설치하고 정면에서 마루 전체를 화면으로 잡았다.
손석희는 본사 콘트롤룸과 화면구성을 다시 확인했다. 청와대와도 통신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모두 양호했다.
손 앵커의 이어폰에서 본사 프로듀서의 음성이 들렸다.
“자, 레디하고... 쓰리 .. 투 .. 고~”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이티비시 손석희입니다. 계속 상황을 전해드리는 와중에 저희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영혼을 앞세운 군함을 몰고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또 그 공격 시한을 오늘 밤으로 못 박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 저희가 어렵사리 모신 분인데요. 자 여기 멀리 포항까지 와서 뵙게 된 뱅주도사님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도사님.”
뱅주도사는 고개를 슬며시 꾸벅하여 인사를 받았다.
“예. 저희가 일본의 영혼 군함 대에 맞서기 위해서 뱅주도사님을 찾아뵈었는데요. 삼 년여간 일본의 이런 음모를 추적해오고 또 대안을 마련하려 절치부심했던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말하길, 도사님은 이승을 떠난 영혼을 불러 이 세상으로 모시고 올 영험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도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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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서로가 힘든 일이긴 하지마는. 뭐 맞기는 맞소이다.”
“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김어준 총수의 주장으로는 수차례 확인을 이미 하셨다고 합니다. 김어준 총수님, 맞나요?”
“그럼요. 이 도사 할아버지 돌팔이 아님다. 제가 여러 번 직접 확인했구요.”
“자 그럼 이제 우리는 뱅주도사님을 모시고, 일본군대에 대항할 인물을 선정해야 할 텐데요, 가장 빠른시간안에 국민의 의견을 모아야 하기에 저희 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투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그때 손석희 앵커의 이어폰에서 본사 프로듀서의 음성이 들려왔다.
“손 앵커. 잠시만요. 지금 청와대에서 연락 왔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데? 바로 통화를 좀 해보세요.”
“아.. 네. 지금 청와대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고 하는데요,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전화연결 됐나요?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박근혜입니다. 우선 손석희 앵커님과 통화하기에 앞서, 한국의 영토 독도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영혼을 앞세운 유령군대에 선전포고를 당한 작금의 현실에 매우 비통함을 느끼고 있고 또한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통령인 저의 책임입니다.”
“예. 대통령께서 대국민 사과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자 저희가 본사로부터 급하게 대통령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요, 따로 용건이 있으신지요?”
“그 저기.. 현장에 계신 도사님 이름이..”
“예 뱅주도사님 입니다.”
“아 예.. 그 뱅주 도사님께 여쭙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인데.. 혹시 영혼을 불러내신다면 저희 아버지의 영혼을 좀 불러내 주실 수 있는지... 그거를 좀 여쭙고 싶습니다.”
“아.. 그러니까 고 박정희 대통령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자 뱅주도사님. 가능할는지요? 물론 이승에 왔다가 다시 가시면 당신께서 매우 힘들어하신다고는 하지만, 지금 나라 사정이 매우 위태로운 때이고, 국민을 위한 발걸음에 고 박정희 대통령도 잠시 와서 도와주시는 걸 마다하진 않으실 텐데요. 어떤가요. 도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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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못할 거 있겠소.”
“아. 바로 대답을 주셨습니다. 가능하시다고 말씀을 해 주셨구요.”
그때였다. 손 앵커의 이어폰에 대고 본사 프로듀서가 다시 외쳤다.
“손 앵커, 새정연에서도 연락 왔어. 박지원이야. 받아봐.”
“아 네,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지원 의원께서도 전화를 주셨네요.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연결해 보겠습니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새 정치 민주연합 박지원입니다. 지금 시국이 매우 불안정한 때에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우리 민족의 결속을 촉구하면서 손 앵커와 현장의 도사님께, 우리 야권의 정신적 지주이신 김대중 대통령을 불러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아, 네. 박지원 의원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고 김대중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셨죠. 한평생을 정치적 동지로 그 운명을 함께하셨던 두 분이십니다. 아.. 참 이게 상황이 좀 어렵게 되었군요. 자, 그럼 어떻게 할까요. 시간이 없습니다. 벌써 저녁 6시가 조금 넘었는데요, 일본군이 쳐들어오기 전에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바로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투표 진행할까요?”
본사 프로듀서가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오백만 이상이 동시 접속해버리면 과부하가 걸리므로 트래픽 확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 본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요. 기술적인 문제로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 뭐 그렇게 어렵게 할 거 있나. 그저 두 명 다 불러내면 되지.”
뱅주도사가 조용히 뇌까렸다.
“네? 그게 가능하시겠습니까?”
손석희 앵커가 물었다.
“난 이제 몰라. 그 양반들 불러내는 건 일단 하는데 다시 돌아가서 괴로워한들 나는 이제 알 바 아니라구.”
“예. 방금 뱅주도사 께서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김대중 대통령을 동시에 이곳으로 불러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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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주도사 주변의 손석희 유시민 김어준은 물론 카메라 뒤의 스탭들과 서울 상암동의 제이티비시 본사. 그리고 한국의 수백만 시청자는 텔레비전 앞에서 또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숨죽여 뱅주도사를 주시했다.
뱅주도사는 안 주머니에서 부적 두 장을 꺼내 마룻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불을 찾았다. 평소에 골초인 유시민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도사에게 건넸다. 도사는 곧 알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읊어댔다. 한 음절 한 음절로 뚝뚝 끊어진 주문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읊어대던 도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마루를 딛고 일어섰다. 카메라 쪽 방향으로 큰 절을 두 번 올리고는 라이터를 켜 부적을 태웠다. 부적은 금세 흔적도 없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카메라의 이쪽과 저쪽. 온 국토가 잠시 고요한 적막 안에 놓였다. 도사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았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또다시 중얼거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곤 다시 침묵했다. 모두의 숨소리만 사방에 가득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화면을 주시하던 모든 국민도 숨을 죽였다. 청와대의 참모들과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 무거운 적막을 찢으며 도사가 까무러치듯이 마룻바닥을 수차례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성대가 찢어지도록 외쳤다.
“일천구백칠십구 년도 시월 이십육일. 박정희 귀신. 내 앞에 나오시게!
이천구 년도 팔월 십팔일. 김대중 귀신도 내 앞으로 오시게!”
티비와 컴퓨터로 영상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 두 사람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이내 모습이 점점 선명해졌다. 본사의 프로듀서가 도사를 찍고 있는 카메라 감독에게 위치를 바꿀 것을 지시했다. 카메라는 사이드로 방향을 옮겨 뱅주도사와 갑자기 나타난 두 인물을 동시에 잡았다.
별 두 개를 모자에 박은 육군 소장과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젊은 김대중이 도사 앞에 마주 보고 섰다. 김대중은 호기롭게 양손에 주머니를 찔러넣고 있었고 박정희 소장은 선글라스를 낀 채 두 손을 허리에 얹은 늠름한 모습이었다. 젊은 군인 박정희. 청와대 국무회의장 대형 텔레비전으로 현장을 지켜보던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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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중계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이 조용히 탄성을 내뱉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으로만 부르던 아버지를 마이크에 입을 대고 소리내어 불렀다.
“아버지...”
박근혜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다.
“아버지. 정말 오랫동안 그리워했습니다. 매일 밤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그리웠습니다. 아버지.”
단정한 군복차림의 박정희 소장은 현장 감독의 모니터용 소형화면으로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딸을 지켜보았다. 그리곤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 딸 근혜야. 그동안 잘 자랐구나. 이제 젊은 시절의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구나. 근혜야. 울지 말고 온전히 정사에 온 힘을 쏟거라. 너를 믿고 따르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거라.”
“아버지...”
눈물이 울컥했던 박정희 소장은 이내 군인으로서의 모습으로 돌아와 허공을 향해 외쳤다.
“나 육군 소장 박정희. 대한민국 수호의 임무를 띠고 왜적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자 자랑스런 나의 병사들을 데리고 이 세상에 잠시 들렸노라. 자, 나의 병사들은 용맹한 기상으로 저 왜놈들을 쳐부수러 진격하자! 대한민국 육군, 이만오천 육 사단 병사들이여! 나와 함께 싸우러 가자!”
박정희 소장은 뱅주도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대문을 나섰다. 뱅주도사의 한옥 밖에는 어느새 끝없이 긴 줄로 병사들이 사열해 있었다.
하얀 목장갑을 낀 사열대장이 우렁차게 외쳤다.
“앞으로이-- 갓!”
병사들은 절도있는 걸음새로 앞으로 진격했다. 박정희 소장은 지프 차량에 올라타 이만오천 군사의 가장 앞으로 내달려 사단을 인솔했다.
그때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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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저 양반은 항상 좀 시끄러운 데가 좀 있어. 그냥 혼자 오지 멀 이만오천 명을 데리고 유난을 떨고 말이여.”
젊은 김대중이 껄껄 웃었다.
호기로운 젊은 청년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외쳤다.
“국민 여러분. 저 김대중이가 잠시 여러분 곁에 왔습니다. 도사가 실력이 좋아서 더군다나 젊은 시절의 몸으로 왔습니다.”
다시 한 번 껄껄 웃었다. 시선을 카메라에 고정한 김대중이 말했다.
“어이 박지원이. 날 보고 있는가? 그간 잘 지냈는가? 몸 아픈 데는 없고?”
화면이 새정치민주연합 당사 영상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각하. 저는 잘 있습니다.”
박지원은 고개를 떨군채 눈물을 참았다.
“잘 있으면 됐제. 그러고 서로서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그저 통 크게 넘어가라고. 세상에 부랄달고 나와서 너무 쫀쫀하게 그러며는 안되는 거제. 그르지 않어?”
“예 맞습니다.”
박지원은 이내 슬쩍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자 이제 옆에 문재인이 하고 손을 잡으랑게.”
김대중이 감독용 소형 모니터로 새정치민주연합 현장을 지켜본다. 박지원도 문재인도 서로 주뼜거릴 뿐이다.
“아 늙은 거 둘이서 염병 떨지 말고 손잡고 악수 하랑게. 아니 대통령이 시키는데 재깍 재깍 안 움직이는가?”
둘은 쉽게 손을 잡지 못한다.
“그러면은 저그 문재인이 손을 먼저 내밀드라고. 아무래도 박지원이가 손윗사람잉게. 자존심이 상할 수가 있응게 말여. 자 문재인이. 손을 내밀드라고.”
문 대표가 슬며시 손을 뻗었다. 박지원도 못 이기는 척 문재인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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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잡았으면은 위아래로 흔들드라고.”
둘은 여전히 서먹하다.
“대통령 하는 말을 개똥으로 듣는가? 자, 흔들드라고!”
문재인이 팔을 슬며시 흔들었다. 이제 또 금방 떠나가실 자신의 대부를 위해서 두 눈 질끈 감고 박지원이 문재인을 감싸 안았다. 문재인도 두 팔을 뻗어 박지원을 크게 안았다.
“기왕에 하게 될 거 시킬 때 바로바로 하지 뜸을 들이는가 말이여.”
껄껄대던 김대중이 손을 뻗어 유시민과 김어준을 가리켰다.
“자네 둘은 어디 가서 연설할 때 쓸 연단이랑 마이크랑 스피커 챙겨오드라고. 나는 혼자 왔응게 자네들이 좀 도와주더라고.”
손석희가 물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왜구들과 싸우실 생각이신지요?”
“아, 나는 박정희 소장처럼 군대도 없고 그저 혈혈단신 혼자 왔으니 혼자 싸워야제. 나한테는 그저 세 치 혀밖에 없어. 그런데 말여. 자네도 앵커니까 알겠지마는 말으 힘이라는 게 참으로 대단한 거여. 맞제? 내가 오늘 왜놈들을 내 세 치 혀로 아주 아작을 내버리겠다. 이 말이여.”
박정의 소장은 이미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포항 동해안 해변가에 집결해 있었다.
유시민과 김어준은 포항 시내에서 대형 스피커와 앰프를 사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젊은 김대중은 탄탄한 두 다리로 걷는 것이 신기했는지 혼자서 좀 걸어가겠다며 박정희 소장이 지나간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손석희와 그의 방송스탭들도 서둘러 해안가로 가서 방송 준비를 했다. 소금기를 머금은 동해바다의 바람이 매서웠다.
청와대 국무회의장에는 대형 텔레비전 두 대가 더 들어왔다. 전 국무위원 및 기타 청와대 직원들이 회의장에 집결해 모니터를 주시했다. 조윤선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대통령의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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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또 컴퓨터 앞에 모였다. 일본 귀신의 말대로라면 이것이 그들 생의 살아있는 마지막 하루일 것이었다. 방송 화면은 청와대와 박정희 소장과 그의 군사. 그리고 각 대도시의 현장 상황을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보여주었다. 걷는 즐거움에 빠진 젊은 김대중은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화면이 계속 뒤바뀌는 와중에 동해 앞바다를 찍고 있던 화면에 무언가 불빛이 보였다. 바로 당일 새벽 독도를 침몰시킨 그 유령의 함대. 저승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 이토 히로부미의 함대였다. 금빛의 아우라를 등에 업은 귀신 총리는 이내 검은 파도 같은 군함 수백 척을 이끌고 동해안에 다다랐다. 박정희 소장의 군대는 해안가에 소총수를 두고 후방에 탱크를 배치했다. 전국에서 지원된 박격포부대 50여 대대와 포병 30개 연대도 합세했다. 해안가에 집결한 우리 측 함대도 백여 척에 달했다. 일본에서 대한해협을 가로질러 한반도를 향해 진격해온 일본의 귀신함대 역시 위세가 대단했다. 수백 척의 함대가 일제히 뱃고동을 울렸다. 수만 마리 까마귀떼가 이미 어둑해진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죽음의 기운을 가득 담은 거대한 그림자가 포항 앞바다에 그리워졌다.
수백 척을 이끌고 온 맨 앞 함대 뱃머리에 이토 히로부미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섰다. 그들과 박정희 소장의 군대와의 거리는 이제 오백여 미터에 불과했다. 이토의 말을 받아 옆의 통역사가 함대 스피커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나 이토 장군이 선언한다. 너희 한반도땅을 이시간부로 죽음의 해저로 끌어내리겠노라. 대 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한 제물로 바쳐질 한민족이여. 이 순교로운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라!”
이토가 한쪽 팔을들어 뭍을 향해 뻗었다. 순간 이토의 함대 격납고에서 수천의 무장병사가 줄지어 나타났다. 전열을 이루고 있는 뒤쪽 함대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다리를 꿈틀대는 기다란 지네를 보는 것 같았다. 중간쯤 오다가 택시를 잡아탄 젊은 김대중이 우리 쪽 뒤편에 나타났다.
“저 미친놈이 뭐라고 씨부리는 것이여? 야이 왜놈으 새끼들아! 김대중이가 여기 왔다, 이 쌍놈으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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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곧 자신의 지시대로 해안가에 마련된 연설대에 올라섰다.
마이크를 톡톡 두드려 스피커가 제대로 울리는지 확인했다.
“아아. 잘 들리는가?”
손석희가 양쪽 귀를 손으로 급히 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여기 한반도를 사수하러 박정희 소장과 함께 나 김대중이가 여러분 앞에 섰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테니, 여러분 왜놈으 군대병사들은 어서 함대 대가리를 돌려 당신들의 땅으로 가라!”
이토의 지시에 따라 격납고에서 나온 병사들전원이 앉아쏴 자세를 취한 후, 총구를 움직여 김대중을 겨냥했다.
“나 김대중이가 나으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가라사대! 너희 일본 왜놈들은 당장 총구를 치우고 우리 민족 궤멸의 환상을 접으라! 한반도는 인류역사의 흐름 안에 영원할 것이며! 또한, 나으 후손들과 이 강산 역시 영원히 빛을 잃지 않으리라! 자 우리편 신의 군대여! 왜놈들의 심장에 총구와 포구를 조준하라!”
박정희가 동시에 손짓으로 명령했고, 그의 병사들과 전국에서 지원된 포병, 보병들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저기, 박 소장, 마이크는 내가 잡았응게 발포명령은 내가 내릴라니까는.”
박정희 소장이 젊은 김대중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신으 군대여!”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토 역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김대중의 우렁찬 명령이 스피커로 터져 나왔다.
“발포하라!”
우리 쪽 군대는 화력을 총동원해서 왜놈들의 함대를 공격했다. 저쪽도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포구에선 연신 불을 뿜어댔고 하늘을 뒤덮은 까마귀들은 마치 온몸으로 종을 때리듯이 우리 쪽 병사들의 머리에 자신들을 내리꽂았다. 까마귀떼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왜놈들의 함대에 불이 붙고 이제 몇 척은 침몰하기 시작했으나 이토는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우리 쪽 병사들도 희생되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뱅주도사가 안주머니에서 부적하나를 더 꺼내더니 그 부적에 불을 붙여 허공에 흩트렸다. 그리고는 김대중의 연단으로 올라가 잠시 그의 자리를 빌려 마이크에 입을대고는 통곡하듯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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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팔백구십오 년도 시월 팔일! 명성태 황후 민 씨! 이곳으로 나와 주시게! ”
화염과 피로 얼룩진 해안가 전투, 아수라장의 와중에 아직 열아홉에 불과한 어린 명성황후의 모습이 양국 군사를 내려다보며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홀로그램과도 같았다. 그녀의 모습이 하늘과 땅을 뒤덮었다. 그러나 전투에 맹렬한 양국 병사들은 황후의 출현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직 이토만이 함대의 뱃머리에서 거인같이 솟아오른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말했다.
“저 계집의 눈알을 파버리고 목을 썰어버리라!”
곧 하늘에 맴돌던 까마귀떼들이 그녀에게 돌진하였으나 공중에서 증발하여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린 황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선땅을 떠나시게”
이토는 옆구리에서 권총을 꺼내어 그녀에게 겨누어 쏘았다. 총알 역시 공중에서 연기가 되어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발악을 하며 외쳤다.
“대일본제국 귀신의 군사여! 저 조선년의 육신을 갈가리 찢어 해저에 수장하라!”
함대는 포구를 돌려 황후를 조준했고 수백 척의 다른 함대들도 이토 함대를 따라 포구를 그녀를 향해 조준하였다.
황후가 조용히 눈을 감자 검은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며 열렸고 두 개의 태양이 하늘을 뒤덮었다. 작렬하는 태양을 바라볼 수 없어 모두들 황급히 손으로 눈을 가렸다. 김대중 대통령도 손석희 앵커도 모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이토역시 망막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두 팔로 하늘을 막았다. 짙은 선글라스를 쓴 박정희 소장만은 당당히 두 손을 허리에 얹고 그 상황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었다. 명성황후가 조그만 입술을 움직여 천하에 울리는 음성으로 차분히 말했다.
“나의 조선. 이제 태양의 나라가 되어 유구한 역사를 품고 영원으로 나아가리라. 저 잔악한 외세의 나라는 침몰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고요히 사라지리라. 태양의 나라. 나의 조선이여. 이 땅과 이 하늘에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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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뜬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무섭게 작렬했다. 왜놈들의 함대는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마지막 순간에 이토 유령은 칼을 꺼내어 뱃머리에서 할복자살하였다. 허공에는 까마귀떼가 허망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우리 쪽 사람들도 태양이 너무 눈부셔 팔로 얼굴을 감싸고 다들 주저앉아 버렸다. 박정희 소장은 표표히 사라지며 조금씩 작아지는 황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곧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장 먼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것은 김어준 총수였다. 다들 해안가에 널브러져 쓰러져 있었다.
“유시민 형님. 형님. 일어나봐요.”
그가 팔을 흔들어 깨우자 유 작가가 곧 정신을 차렸다.
“김총수, 어떻게 된 거지? 우리 모두 잠들었던 건가?”
“글쎄요, 모르죠. 손 앵커님은 어디 계시나.”
김어준은 곧 저쪽에 엎어져 있는 손석희를 찾아내어 그도 흔들어 깨웠다.
다들 깊이 잠들었던 게다. 저 멀리 수평선에 계란 노른자 같은 동그랗고 예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박정희 소장과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그들의 군대는 사라지고 없었다. 국방부지원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수백 척 함대와 탱크는 지시에 따라 본대로 복귀준비를 시작했다.
내세로 잠시 돌아온 황후가 태양의 나라를 선언한 순간 이 나라의 모든 백성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태양의 나라에서의 첫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영원한 역사의 흐름 속에 힘차게 전진해나갈 민족의 중흥을 꿈꾸며 오천만 국민은 조용히 일상의 시작을 준비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