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신>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고요?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고요? 잘 하셨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세상에 글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공인된 문인의 자격을 얻는 것이 유리하지요.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문인으로 등단하는 길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문예지에 추천을 받는다든지, 문학단체나 신문사들이 주관하는 공모에서 당선된다든지, 개인 작품집을 간행한다든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화려하게 등단하는 길이 '신춘문예'인 것 같습니다. 매년 신년호 지상을 수놓은 자랑스런 당선자들의 얼굴을 보노라면 흐뭇한 생각이 듭니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렇거늘 본인들이야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수천 대 일의 관문을 뚫고 당선의 영광을 안았으니 각광을 받을 만도 하지요. 글공부하는 사람치고 신춘문예를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로메다 님, 투고하신 것은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설령 입선되지 못한다 해도 너무 실망해 하지 말기 바랍니다. 수천 명 가운데서 선택을 얻는다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뚫고 들어가는 일처럼 어렵고 어려운 일입니다.
언젠가 내 중학시절 체육 선생님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지요? 시골 중학교에서 어린 나에게 처음으로 시에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그분 말입니다. 내가 매일 일기장에 열심히 시랍시고 글을 썼다는 얘기도 했던가요? 그 글들 가운데 괜찮다고 생각되는 몇 편을 골라 잡지사에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학원』이라는 청소년 잡지의 독자문예란에 투고한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 내가 보낸 작품이 영 실리지 않았습니다. 실망한 나는 그 체육 선생님을 찾아가 하소연을 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제 작품을 보시고 칭찬을 해 주셨는데, 잡지에서는 실어주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헛 칭찬을 해주신 것 아닌가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여기 쟁반에 여러 가지 종류의 과일이 놓여있다고 치자. 사과, 배, 감, 귤, 포도… 등 많이 있구나. 그 중에 하나만 골라 먹으라고 하면 너는 어떤 걸 집겠니?" "그야 제가 좋아하는 사과를 집지요."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만을 골라야만 하는 경우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달콤한 감을 선택하고 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새콤한 귤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택받는 것은 선택한 사람의 기호에 좌우되는 것이지 과일의 우열 문제와는 크게 상관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아무리 좋은 과일도 선택자의 기호에 맞지 않으면 선택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서 마지막 하시는 말씀이 "내가 선자였다면 네 작품을 골랐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선택받는 일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열심히 쓰도록 해라!"
로메다 님, 당선된 작품이 응모작품들 가운데 최상의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선자가 바뀌면 당선작도 바뀔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란 객관적 기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니까 상품의 가치처럼 차별화하여 평가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한두 사람의 선자들에 의해 평가된다는 것은 지극히 무모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작품을 놓고 우열을 따지는 공모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고료를 내걸고 시행되는 신춘문예 제도는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들에게 자극제로 작용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마치 로또가 부를 꿈꾸는 가난한 서민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듯이 말입니다.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는 것도 한결같지 않습니다. 권위 있는 문예지인 경우엔 그 제한된 등용의 관문을 뚫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싸구려 문예지들은 매번 신인들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양산해 내기도 합니다. 등단하기 쉽다고 해서 그런 하류 잡지들에 선뜻 몸을 내미는 것도 신중해야 합니다. 등단한 뒤의 처신이 개운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보통사람에게 출생지(出生地)가 따라붙듯이 문인에겐 늘 출신지(出身誌)가 달라붙습니다. 하기야 작품만 잘 쓴다면 별 문제될 일도 아니긴 합니다만―.
로메다 님, 신춘문예도, 권위 있는 문예지를 통한 데뷔도 여의치 않다면 개인 문집을 만들어 등단하기를 권하고 싶군요. 특정 잡지에 겨우 몇 편의 작품으로 인정받아 등단하는 것보다 수십 편의 작품이 실린 문집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떳떳한 등단입니까? 물론 작품집을 엮는 데는 출판사 선정이며 출판비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언젠가는 치러야할 과제이니까 그것을 미리 치른다고 생각하면 크게 억울해 할 것도 없습니다.
로메다 님, 언젠가는 사람들이 품에 안고 싶어하는 예쁜 시집을 가지십시오. 가능하다면 그 시집의 표지를 당신이 손수 고안도 하고 당신이 존경하는 기성문인의 짧은 글을 얻어 책의 머리에 놓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날이 기대처럼 쉬 오지 않더라도 너무 조급해 하지 말기 바랍니다. 더디 올수록 당신에겐 좋은 작품들이 쌓이게 될 것이니까요. 문운을 빕니다.
- 임보 교수 시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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