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산 여름 숲에서
칠월 셋째 주말을 맞았다. 막바지 장맛비가 오려는 날씨인가 싶어 아침 일찍 나서던 산행은 머뭇거렸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강항의 ‘간양록’을 펼쳤다. 저자는 조선시대 관리로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왜국에 머물며 고초를 겪으면서 남긴 기록이었다. 한문 원전이 북한 학자에 의해 ‘조선고전문학선집’으로 먼저 번역 출간되어 우리나라 보리 출판에서 재간행한 서책이었다.
‘조선 선비 왜국 포로가 되다’라는 부제가 붙은 간양록은 정유재란 포로가 되어 적국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저자와 식솔들의 신산한 삶이 잘 그려진 기록문학의 백미였다. 낯설고 어수선한 틈에도 작자가 처한 상황을 소상히 드러내고 임금께 당당히 상소를 올렸다. 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기록이 북한 학자들에 의해 먼저 번역되어 우리나라로 들어온 책으로도 의미가 컸다.
토요일 오전 예보된 비는 오지 않고 날이 개어 뒤늦게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진해로 가는 151번 버스로 원이대로를 거쳐 안민터널 입구에서 내렸다. 남천 상류 자동차 정비업소를 지나자 천선동 옛터 빗돌이 당나무와 같이 나왔다. 창원이 신도시로 개발될 때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동신제를 지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던 자리였다.
근년 개통된 제2 안민터널에서 성주사 수원지를 돌아 산문으로 들었다. 관음전 불상을 경내로 옮겨 간 터는 성주사와 연이 닿는 스님의 부도가 몇 기 놓여 있었다. 부도탑을 지나자 몇 해 전 세운 일주문은 단청을 칠하지 않고 예서체 편액만 걸려 있었다. 보조 기둥이 곁들여도 일주문답게 커다랗고 둥근 두 기둥이 공포가 기교를 한껏 부린 다포식 도리로 팔작지붕 추녀를 떠받쳤다.
절집으로 들어 법당을 향해 손을 모으고 지장전 곁으로 가니 연지는 촘촘히 자란 수련이 꽃을 피웠다. 관음전 뒤에서 불모산으로 오르는 비공식 등산로로 들었다. 불모산동 저수지와 성주사 바깥 주차장에서 시작된 등산로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나 절 경내에서 오르는 길은 이정표가 없다. 템플스테이 참여자와 일부 신도들만 알고 찾는 숲길이라 호젓해 좋으나 멧돼지는 걱정이었다.
참나무를 비롯한 높이 자란 활엽수가 우거진 숲으로 드니 장맛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소리를 내면서 흘렀다. 개울을 건너다가 맑은 물에 손을 담그니 시원함이 더해 왔다. 너럭바위에 앉아 배낭에 넣어간 술빵을 꺼내 간식으로 삼아 먹었다. 이후 등산로를 벗어나 숲을 누비면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소진될 열량을 미리 확보해 두어야 했다. 얼마간 뒤 쉼터에서 일어나 숲으로 들었다.
여름 장마철 불모산 숲으로 들면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 붙은 영지버섯을 볼 수 있다. 숲으로 들어 가랑잎이 삭아 부엽토가 되어 쌓인 바닥을 한동안 누볐다. 간간이 삭은 참나무가 보였으나 영지버섯은 띄지 않아도 인내심을 발휘해 산등선을 누볐더니 마침내 한 무더기 찾아냈다. 이후 숲을 더 누벼 식용으로 삼는 자연산 느타리버섯과 진흙버섯과 유사한 약용버섯도 만났다.
해발고도를 높이지 않고 기슭으로만 다녀도 숲이 우거져 자칫 방향 감각을 잃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인적 없는 숲을 누비면서 영지버섯을 더 찾아냈다. 숲으로 들어 발품 판 보람으로 삼림욕을 겸해 버섯을 따는 성과를 거두었다. 산비탈을 내려가 개울에 닿아 얼굴의 땀을 씻고 배낭을 추슬러 짊어졌다. 개울을 건너 숲을 빠져나가려니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긴장했다.
지난번 들렀을 때도 거기서 멧돼지가 헛기침하듯 ‘쾍!’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미가 몇 마리 새끼를 거느리고 있었다. 단독 개체 수컷은 맞짱을 뜨려는 듯 공격성을 보이는데 젖먹이를 거느린 어미여서인지 순순히 물러가 다행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목에 건 호루라기를 ‘휘리릭!’ 불고 숲을 빠져나왔다. 절집 경내는 신도들이 타고 온 차들이 오후에도 몇 대 보였다. 2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