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고향친구 부부와 단풍이 곱게 물든 북한산을 등정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날이 그날인 노년의 삶이지만 어릴 때의 고향친구를 반추하는 글을 써볼 용기는 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랬던 친구를 소환해준 것은 테마수필 원고청탁이었다. 가끔씩 마음으로만 떠올리던 친구를 책에다 싣는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친구를 떠올리노라면 지난 세월 속 고향산천도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초등생 친구들 셋이 당시 유행하던 말을 따다 ‘삼총사’란 이름을 붙인 것도 잊히지 않는다. 우린 한 동네에 살았지만 같은 학년이나 학급은 아니었다. 6.25 피란에서 돌아와 이삼 년 시골을 전전하느라 바로 복학하지 못한 내가 학년에서 처졌고 옆집 친구는 한 살이 더 많았다.
동갑내기 친구는 서울에 살면서도 북한산은 처음이라 했다. 군대생활 마치고 바로 서울에 정착하여 회갑을 넘겼으니 그 세월이 얼마인데 북한산이 처음이라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는 매일 아침 운동을 겸해 사는 집에서 가까운 대모산만 올랐다니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 싶었지만 부부가 동행한 길이라 입을 다물었다.
본격적인 백운대 등산로에 들어서서 고도를 높이자 눈앞엔 장관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깎아지른 바위봉우리들에 친구는 연신 탄성을 질러댔다. 친구가 인생 노년에 처음 만나는 북한산 감동을 난 한창 푸르던 청년기에 접했었다. 복무하던 군부대가 북한산 인근 의정부 시내에 있었고 내가 휴대한 구닥다리 리코카메라 때문인지 병사들은 나를 잘 따랐다.
옆집 친구는 쉰 초반에 이승을 떴다. 그가 매입했던 덩치가 큰 시유지 임야에 문제가 생겨 법정소송을 걸면서 마음고생이 심했고 그것이 건강을 크게 해쳤다는 후문이다. 자수성가하여 고향 시내에 제법 큰 상가건물까지 가졌던 친구는 내가 귀향할 때마다 호박을 비롯한 텃밭 작물을 차에다 가득 실어주곤 했었다.
내가 주경야독하던 서울을 아무런 연락 없이 친구가 찾아왔을 때가 60년대 초반이었다. 지독한 가난이 불러온 당시의 ‘무작정 상경’ 바로 그것이었다. 7남1여 중 둘째인 친구는 중학을 진학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 버스 조수로 일하다가 약관의 나이에 이르기 전 대도시 진출을 남몰래 결행했던 것. 둘이서 발품을 팔아 친구는 용산 삼각지의 작은 철공소에 취업했었다. 하지만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든 친구였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고향과 산으로 붙은 전북 무주가 개발될 무렵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무주의 임야매입을 권유했었고 빤한 월급쟁이 형편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주는 친구가 그린 청사진만큼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지만 난 오래도록 굴러온 행운을 놓친 것 같은 짠한 마음이었다. 친구가 바위들이 많은 금오산 자락에 눕던 날은 유족들의 슬픔이라도 말해주듯 종일 가을비가 추적댔다.
서울 친구는 제대 직후 상경 당시 겨울철이면 자취방 머리맡 자리끼 물이 얼었던 얘기로 고난의 세월을 떠올린다. 농고를 나온 친구는 보리를 볶아 전통시장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었다. 잠실이 개발될 때 집과 공장을 지었다고 했다. 그랬다가 수요가 늘어나자 포천에 별도로 공장을 세웠다고 자랑하면서 그 업종에선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동서식품 등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거래처를 많이 빼앗겼다고 푸념했었다.
우리 부부가 상경할 때면 차를 가지고 직접 김포까지 마중을 나왔던 친구는 공장하던 곳에 방을 넣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여분이 생겨 우리 부부가 서울에서 가끔씩 숙박신세를 지기도 했었다. 사업에 어느 정도 성공했는데도 친구가 복권을 열심히 사기 시작한 것은 목적이 따로 있었더라고 한다. 고향에서 연애 결혼한 중년여자를 서울에서 버리기 위해서란 걸 알고 아내가 이를 갈면서 그 사실을 우리 부부에게 폭로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남부끄러운 일이 까발려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나의 실수라도 있었는지 여의도 호텔에서 친구의 2남1녀 자녀 중 큰아들 결혼주례를 내가 맡은 이후론 서로 연락이 두절되면서 소원해졌다. 스무 살에 자원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을 길러낸 얘길 재미나게 들려주던 친구. 이 글이 활자화된다면 친구에게 보내어 잠시라도 조강지처를 버리려 기도했던 복권 뒷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강 문 석
부산대 사회교육원 소설창작과정, 부산교대 사회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국제신문 문예창작교실, 동국대 사회교육원 여행작가과정 수료. 가톨릭신문 위촉기자, 실버넷뉴스 사진부 기자 역임. 2004 <에세이문예> 창간호 신인상. 제5회 부산수필문인협회 우수작품상. 부산문협 <문학도시> 2020 7월호 소설작품 당선. 수필집 『산으로 남고 싶은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