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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 이유/출 2:16-25
성경본문 : 출애굽기 2: 16-25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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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상호목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은 반갑지 않습니까? 저희 바누아투 팀과 이집트 팀은 주님의 은혜 가운데 1주일 혹은 10여일의 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미션 2008을 위해 물질로 동참해주시고 기도로 동참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섬김과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미션 2008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와 저희 팀원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보여드리고, 한 곳이라도 더 방문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섬겨주신 이집트의 권선교사님과 우리 바누아투 팀원들에게 당신의 집까지 내어놓으시는 등 최선을 다해 섬겨주신 고금숙선교사님, 그리고 현지 사역자와 연결해주셔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신 봉유종선교사님, 원천희선교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희 팀이 인천공항 근처의 숙소에 머무를 때 이른 새벽에 찾아오셔서 기도해주시고 오전 내내 여러 가지 선교물품들을 준비하는데 협조해주시고, 이집트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사랑으로 섬겨주시고 밤새도록 밤잠 설치며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주신 오세아니아선교회 회장님과 총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바누아투 팀과 이집트 팀이 사역을 마치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금요일 선교보고 때 들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누아투 팀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타나섬에 도착한 후 다른 마을로 가기 위해 3시간 동안 배를 타고, 4시간 동안 산을 오르는 등 이동하는 가운데서 얼마든지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7명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와 모기와 풍토병의 위험 속에서도 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7명을 보니까 고생을 해서 체중이 4Kg이나 빠진 팀원도 있고, 모기에 물려 팔에 상처가 있는 팀원도 있고, 햇볕에 그을려 얼굴이 탄 팀원도 있지만,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이집트 팀도 시차가 13시간이나 차이가 나고, 뉴질랜드와 기후가 전혀 다른 중동이었지만, 그곳에 있는 11여 일 동안 하나님의 손길을 매순간 느꼈습니다. 저희 이집트 팀은 무엇보다도 테러의 위험, 자동차 사고의 위험, 풍토병의 위험, 등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위험 속에서도 안전하게 저희 팀을 인도해주시고 동행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이미 들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센 지방을 방문했을 때는 단 돈 1불도 주지 않았는데 이집트 경찰차 3대의 에스코트를 거의 4~5시간 동안 받는 특권도 누리게 하셨습니다. 세겜과 사마리아를 방문했을 때는 모슬렘 축제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피하게 해주셨습니다. 갈멜산에서는 바비큐 나온 팔레스타인 가족으로부터 고기와 빵과 야채와 음료수 등을 융슝하게 대접받게 해주셨습니다. 또 랜트카를 빌려 교대로 운전하며 이집트에서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STOP' 싸인에서 Stop을 하지 않았지만, 경찰로부터 구두 경고만 받고 아무런 딱지도 떼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이집트에 도착한 지 삼 일째 베두윈 마을들을 방문했는데, 그 때는 남자들이 양이나 낙타들을 끌고 광야로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집안에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 여자들과 나이어린 아이들만 있었는데, 이스라엘을 방문한 후 다시 이집트로 돌아와서 다른 베두윈 마을들을 방문했을 때는 달랐습니다. 모슬렘 축제기간이라 남자들이 일하러 나가지 않고 집안에 있는 바람에 한꺼번에 많은 베두윈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한국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오세아니아 선교회를 통해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해주셨고, 전혀 예상치 않은 분들을 만나 위로받게 해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손길은 뉴질랜드로 오기 위해 인천공항에 가서도 느꼈습니다. 뉴질랜드에 오기 위해서 인천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속을 하는데, 카운터 여직원이 저와 집사람의 이코노미 석을 비즈니스 석으로 바꿔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직원에게 제 마일리지로 업그레드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좋은 자리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좌석이 업그레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집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즈니스 석에 타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또 오클랜드에 도착해서 국내선을 타려고 하는데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Air New Zealand 직원이 짐이 많다고 Over Charge를 내야 한다고 해서 제가 “우리는 International Passenger입니다”라고 한 마디 했는데, 한참동안 생각하더니 한 푼도 받지 않고 그냥 짐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선교를 갔더니, 선교기간 내내 아니 선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하나님의 손길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곳을 출발한 후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성령께서 계속적인 깨달음을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특별히 이집트와 이스라엘 곳곳을 방문하는 동안 계속적으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집트 팀의 팀원용으로 만든 포켓용 수첩에 쓸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메모해야 할 만큼 많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광야에서의 삶’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시고 많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번에 가서 다시 확인했지만,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거칠고 메마른 땅입니다. 도착한 다음 날 우리가 탄 자동차가 30분 정도 달리자 카이로 시내를 벗어나게 되었는데, 카이로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광야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팀원들이 신기하여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 똑같은 장면이 계속해서 펼쳐지자, 나중에는 아무도 그 광경을 사진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시속 140Km 속도로 거의 2시간 가깝게 달렸지만, 녹색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건축하다 중도에 멈춘 건물이나 가끔씩 싯딤나무만 보일뿐 끝없이 광야가 펼쳐졌습니다. 모슬렘에서는 광야에 대하여 ‘알라신의 동산’이라는 멋진 표현을 사용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광야의 특징은 강렬함, 잔인함, 그늘이 없는 태양입니다. 저는 물이 없어 황무하고 모래와 바위로 뒤덮인 그곳을 보면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광야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5장에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하자 원망하고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17장에서 신 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시 물을 얻지 못하자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모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광야는 물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곳입니다. 뉴질랜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도 찾기가 어려운 곳이 광야입니다. 거기다가 이번에 우리 팀이 갔을 때는 겨울이기 때문에 그렇게 뜨겁지 않았지만, 여름철 낮 시간에는 바람 한 점 없는 40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였다가도 저녁에는 추위가 엄습하는 곳이 광야입니다. 어떻게 보면 광야는 사람이 도무지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물도 없어 식물이 자랄 수 없고, 뜨거운 햇볕을 피할 그늘도 없고, 타는 목을 축일 물이 없는 광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장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40년 동안이나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곧장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을 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과 3절을 보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to humble you) 너를 시험하사(to test you)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to teach you)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이 말씀에는 중요한 세 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첫째로 'to humble' 즉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삶을 살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둘째로 ‘to test' 즉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셋째로 'to teach' 즉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떡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는 무언가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낮아 질 때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고, 매달리다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광야에서 우리의 인격이 잘 훈련되고 나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삶을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모세를 택하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서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애굽 왕실에서 이미 40년 동안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일꾼으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디안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비록 그가 히브리 사람을 힘들게 하는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나서 애굽의 바로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망을 친 것이 분명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도 선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40년 동안 광야에 있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에 대해서 기록된 것이 별로 없을 만큼 모세는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아침에 일어나 양들을 끌고 밖으로 나가 풀을 먹이고,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반복적인 생활을 40년 동안이나 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광야로 이끄신 이유는 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훈련시키기 위해 40년 동안이나 광야에 있게 하셨습니다. 원래 그는 궁궐에서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각종 산해진미를 먹고 일반 백성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대접을 받으며 살던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가 도망자가 된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가 자기 동족인 히브리 사람을 돕다가 이런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두고 봐라. 내가 다시는 어느 누구도 돕지 않겠다. 내가 힘들게 도와주고 나서 이런 꼴을 당했는데, 내가 미쳤다고 또 내가 남들 도와주나?”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있어도 나 몰라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전히 모세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광야로 도망을 친 모세가 하루는 우물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때 미디안 제사장의 딸 7명이 우물로 왔습니다. 그리고 물을 길어 양들에게 먹이려고 하는데, 젊은 목동들이 와서 그 여자들을 괴롭히고 나중에는 양들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게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물곁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모세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혼자인 반면 상대방 목동들은 여러 명이었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잘못하면 그 목동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도와주고 나서 또 배신당할 수 있었지만, 모세는 그 여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떻게 도와주었는지 성경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모세는 목동들의 위협을 물리치고 그 여인들로 하여금 양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는 이러한 훈련을 통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의 인격이 다듬어졌습니다.
만약 모세가 광야에서 이러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약간의 어려움만 있어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갈 수 없다고 두 손 들었을 것입니다. 수도 없이 중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포기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받은 모세는 결코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9번씩이나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마음을 바꾸는 바로왕 앞에서도 모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 물이 없어 우리가 죽게 생겼다, 애굽에서는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었는데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내어 굶어죽게 만든다고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임에도 모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에게도 예상치 않은 광야생활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자매님에게는 시집살이가 광야생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제님에게는 상사와 동료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는 직장이 광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가정은 전세계적으로 극심하게 위축된 경제 때문에 어려워진 사업장이 광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줄로 믿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통해 그의 인격이 훈련된 것처럼, 만약 광야생활을 통해 우리의 모가 나고 부족한 인격이 훈련되어진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생활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에 닥친 광야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광야와 같은 어려움을 인격을 훈련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광야에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세를 민족을 구원하는 큰일을 할 수 있는 지도자로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훈련시키실 때, 그를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냥 훈련시키지 않으시고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목동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던 7명의 여인들을 도와줌으로 그 여인들의 아버지 루우엘을 만나게 됩니다.
18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여기 ‘르우엘’은 출애굽기 3장 1절에 나오는 ‘이드로’라는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추측컨대 ‘르우엘’이 본명이고, ‘이드로’는 그가 제사장이 된 후에 얻은 공식 이름인 것 같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 루우엘을 만났습니다. 루우엘은 나중에 모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루우엘은 모세의 장인이 되어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었을 뿐 아니라, 모세를 지도자가 되게 했던 멘토의 역할까지 감당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루우엘은 은혜를 갚지 않고 급히 도망쳐 온 딸들을 책망할 만큼 예의바른 사람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갚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18장 1절 이하를 보면 모세가 그의 처자식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났을 때, 모세가 달려가서 부둥켜안고 입 맞추는 대상은 그의 아내나 자식이 아니라 장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장막 안으로 함께 들어간 사람은 아내가 아닌 장인이었을 만큼 장인인 루우엘은 모세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모세가 지쳐 있을 때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라고 충고할 만큼 루우엘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런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광야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하면 다 떠나 버리는 것 같고,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무도 없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돕는 사람들을 남겨놓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자기 곁에 아무도 없고 혼자만 남았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는 등, 아무도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4장 11절을 보면, 의사 누가가 끝까지 바울 곁에 남아서 도와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요셉 주위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만의 계략에 의해 민족이 몰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모르드개를 위해 하나님은 에스더를 미리 왕비로 세워놓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광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남겨 놓은 사람들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와 의를 위해 힘쓰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함께 일할 사람들을 붙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아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낙심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구도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고, 어느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보면,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수준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해 쓰러지려고 하면, 피할 수 있는 길을 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러한 하나님이 좋습니다. 저는 저의 수준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또한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에서,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삶속에서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미국의 어느 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회사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업무는 백화점 내에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남들이 말하는 일류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인데, 하찮아 보이는 일을 한다는 것이 불만스러웠습니다.
급기야 한 젊은이는 자기의 능력과 학벌에 맞는 직장을 찾아보겠다고 말하며 사표를 내고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젊은이는 달랐습니다. 물론 그가 원하던 일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안내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장님이 자신을 그곳에 배치한 것은 뭔가 나름대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내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면서 백화점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님들이 백화점에 대해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손님들의 취향이 무엇이며, 또 손님들이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회의가 있을 때마다 윗사람들에게 그것을 보고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의 보고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백화점은 손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맞출 수 있었고, 또 그에 따라 백화점의 매출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게 되어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그 백화점의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페니 백화점의 J,C 페니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위해 하나뿐인 독생자 까지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아무 의미도 없이 저와 여러분들을 광야로 몰아내어 고생을 시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실 때는 분명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역사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역사하시기도 하고,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과 25절을 보십시오. 거기에 보면, 세 개의 중요한 동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의 조상들에게 해주신 약속들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아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도 들으십니다. 그리고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풍요의 강물 흐르는 부요한 땅에 살 때에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뿐 아니라, 거치른 광야와 같은 인생길 걸어갈 때도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환경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그것에 좌우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곧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