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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죽 먹고 파`~~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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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대학 동기 녀석의 회사 때려친다는 전화..
간만에 만나 이런저런 사는 얘기하다가 그 녀석 기운 좀 돋아준다는게 쪼끔 오버해서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
아침에 눈떠 아스피린 두알 먹고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하니 30분 지각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실험실 입구가 보이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교수님 목소리..
아차.. 어쩌다 지각인데 걸리면 억울하지~ 발소리 죽이며 잽싸게 뛰어 실험실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가방 던지며 자리에 앉아 일거리 펼치는 순간 벌컥 열리는 실험실 문..
아슬아슬 쎄입~~ ^^
술냄새 삼키며 방긋 인사드리고나니 교수님 커다란 시커먼 비닐봉투를 불쑥 내미시며
"푸욱 고아서 앞방 옆방 뒷방 돌려 나눠먹어라" 하신다.
"???"
봉투안엔 반토막난 생닭이 10마리 들어있었다.
허걱.. 실험실서 라면먹으며 곯는 원생들 생각하신건 눈물나는데, 점심때 불러서 한그릇씩
사주시지.. ?아먹으라고라고라..
어찌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음식 잘해먹기로 소문난 앞방으로 생닭들고 도움을 청하러 갔다.
(참고로 앞방은 한국전통음식, 옆방은 향미화학, 뒷방은 식품위생, 그리고 울방은 식품개발이 전공분야이다)
아니나다를까 평소 접시보다는 비이커 닦는 울방과는 다르게 다양하게 갖춰진 조리기구들..
맛난거하면 울방에도 곧잘 나눠주는 큰손으로 소문난 언니가 커다란 곰국 솥을 꺼내더니 바로 닭손질에 들어갔다.
실험도 끝나서 설렁설렁 문서작업하는 요즈음인지라 나도 손걷어부치고 칼잡으니 내밑으로 1,2학기들 딴짓거리할수 있으랴..
찹쌀불리고 삼과 대추, 마늘 준비하고~
(다 어디서 나오냐구? 식품학 실험실이란 이방저방 뒤지다보면 못해먹을 것이 없다구여..
남는 실험재료로 음식해먹는다는게 유일 매리트..)
불에 올려놓고 뿌듯한 표정으로 랩미팅에 들어갔다.
1시간 후 진행상황을 보러가니 삶아진 닭을 건져놓고 얼큰한게 먹고싶다는 박사언니의 말에
우리의 요리장, 양념장을 만들어 조물조물 닭무침을 하고 있었다.
그래여? 손댄김에 먹기 좋게 다 찢어놓을까? 둘이 셋이되고 또 다들 달라붙어 닭살 찢기~
10마리 발라내니 커다란 양동이 한가득이다.
12시반, 드디어 닭죽완성!
원래 실험실생활이란 실험시간은 변경되도 밥시간은 12시 6시 철칙으로 지켜지는 법이다.
30분이란 시간은 엄청난 인내를 요하는 것.
옆방과 뒷방으로 부르러가니 이미 시켜먹거나 식당으로 내려갔으니..
별수없이 따로 덜어놓고 저장실험용 김치를 꺼내어(예비실험 끝난거다.. 먹어두된다) 맛나게 먹었다.
1차 입짧은 사람들 물러나고 2차로 끝까지 수저 안놓는 인간들..
밑에 눌은 것이 구수하고 맛있다고 솥바닥을 긁어 먹는 중.
아침에 생닭 던져주신 우리 교수님 식사하고 올라오시는 길에 어떻게 삶아 먹는지 궁금하셨던지 확인 차 들르셨다.
수저를 입에서 빼고 감사합니다~ 합창하고나니 교수님 흐믓한 미소를 지으시며
"잘먹고 실험들 열심히해~" 하고 나가시며 한마디 더
"좀더 우아(?)하게 먹으면 더 좋을껄.."
우리들은 항상 스승님 기대에 아주 조금 못미치는가보다.
누룽지 해결하고 옆방 뒷방 한냄비씩 돌리러가니 선뜻 안받아들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관능검사하다 남은 거 아니냐고 이번엔 죽실험이냔다 (관능검사란 우리방에서 하는 실험인데
일종의 맛식별검사로 5층 석사생들은 고정 마루타이다 ^^).
고개한번 흔들어주고 씨익 웃으며 떠넘기고 나와 설겆이 마치니 2시로다~
오전 내내 닭하고 씨름하느라 실험계획 다시 짜야하는 녀석들이 몇명이나 되려나..
한가한(?) 모대학 가정관 5층 식품학 실험실의 어느 비오는 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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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전체에서 오늘 하루는 닭냄새가 진동할듯..
향미분석방 눈초리가 곱지 않겠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