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07 교착어와 시
최근 읽은 아리스토텔리스의 "시학"에 의하면 메소포타니아에서 최초의 문자가 발명된후 인쇄혁명으로 대중이 실질적으로 접근가능하기 전까지 문학은 기본적으로 운문이었다. 그가 문학이 아닌 시학이라고 책의 이름을 지은 이유중의 하나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물론이고,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의 자연철학이나 루크레티우스의 과학 저술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전 영역에서 운문(시)을 사용했던 이유는 당시의 사회적 기술 한계와 사상적 배경이 결합한 결과였다. 가장 핵심적인 4가지 이유는 1) 구전(口傳) 전통과 암기의 필요성 2) 지식 전달 방식의 특성 3) '문학과 학문'의 경계가 없던 시대 4) 보편적 지식인의 언어 규범이었다. 따라서 산문은 일상적인 계약서나 연설문, 행정 문서 등에 쓰이는 낮은 단계의 문체로 취급받곤 했다.
3절운율, 6절운율, 비가운율은 고대 그리스와 라틴어 문학에서 시를 지을 때 사용하던 핵심적인 전통 격식 운율(Metre/Prosody)들을 일컫는 말이다. 고대 서양 문학(호메로스, 사포 등)의 뼈대를 이루는 개념으로, 6절운율 (육보격, Hexameter)은 하나의 행이 6개의 음보(Foot)로 구성된 운율로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내는 데 가장 탁월한 율격이기에 서사시에 주로 사용되었다. 비가운율 (엘레기 운율, Elegiac Couplet)은 '6절운율 한 행'과 '5절운율(Pentameter) 한 행'이 교대로 짝을 이루어 끝없이 반복되는 연주형(Couplet) 형식으로 슬픔을 노래하는 비가(Elegia, 애도하는 시)에 쓰여 장중함과 서정적인 멈춤이 결합하여 독특한 리듬감을 준다. 3절운율 (삼보격, Trimeter)은 '짧은 음절 하나 + 긴 음절 하나'의 세트인 '단장격(Iamb, ◡ —)'을 기본으로 하여, 한 행이 3개의 더블 음보(Metron, 총 6개 격격)로 구성된 운율로 구어와 유사했기에 그리스 비극과 희극에서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받을 때 주로 사용되었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대사들이 '5보격 운율'을 따랐던 것과 같은 원리다).
4절운율(사보격, Tetrameter)은 한 행이 4개의 음보로 구성된 시의 운율을 의미한다. 서구 고대 고전 운율(3절, 6절)의 맥락과 우리 한국 전통 시가의 맥락 모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리듬 시스템이다. 한국어는 단어 뒤에 조사(-가, -를, -의)나 어미가 붙는 교착어이기 때문에 영어나 유럽어처럼 문장 끝 단어의 발음을 맞추는 '각운(Rhyme)'을 만들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대신 한국어 노래는 3·4조나 4·4조의 글자 수(음수율)와 네 마디로 끊어 읽는 4음보율을 통해 말의 리듬감(노래의 운율)을 만들어낸다. 한국어와 관련이 깊다고 알려진 우랄알타이어계는 물론 국제 공용어로 발명된 에스페란토(Esperanto) 역시 규칙적인 교착어의 방식을 채택했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시를 지어야 하는 제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