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장독대의 된장을 푸러 갔다가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것을 보고 한동안 된장이 들어간 음식은 일절 먹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 모두 엣날부터 먹어왔던 우리의 전통적인 발효식품이다.
인류의 발달과 더불어 식품의 저장, 가공하는 기술들도 함께 발달되어 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발효식품이다.
식품을 발효시키는 이유는 소화를 돕고 영양을 증가시키고 저장 기간을 늘리는 데에 있다. 미생물에 의한 식품의 발효는 식품의 영양소를 소화, 흡수되기 쉬운 형태로 바꿔 주고, 또 발효 과정 중에 다른 영양소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로부터 즐겨왔던 전통적인 발효식품에는 장류와 주류, 식초류가 있따.
고추장과 된장은 전통적인 발효 상태로 두게 되면 미생물의 발효에 의해 가스가 생기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곧 식품의 영양이 풍부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고 지금도 숙성 중인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곰팡이나 구더기는 신체에 해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것을 거두어 내거나 끓이는 정도로 해서 계속 먹어 왔다.
하지만 요즘 수퍼마켓에서 파는 된장과 고추장은 너무나 얌전하고 조용하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발효식품이라면 수퍼마켓은 조용할 날이 없어야 한다. 여기서 뻥, 저기서 뻥! 유통되는 발효식품들은 발효 과정 중에 생기는 가스로 인해 포장 용기가 터지고 국물이 흘러 나와야 한다. 즉, 유통 자체가 곤란하거나 오랜 시간 동안 유통 기간이 보장될 수 없어야 한다.
만약 상품이 훼손되지 않고 완전하게 유통을 하려면 가열 살균하여 미생물의 발효를 중단시키거나 방사선 조사를 하던지 방부 처리를 하여 더 이상의 숙성 과정을 막아야 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된장과 고추장이 그 옛날의 맛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흔히들 한다.
수입콩으로 만들어낸 허연 된장에서는 전통의 구수한 맛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것을 더 맛있게 느낀다. 대량 유통되는 포장 고추장은 아주 달콤하다. 그래서 달지 않고 텁텁할 수도 있는 재래 고추장보다 달콤하고 윤기나느 포장 고추장을 더 좋아하는 듯 싶다.
식품의 부패와 발효를 막고 유통의 안전성을 위해 살균하고 방부 처리했다는 것 못지 않게 식품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유전자가 조적된 콩인가, 아닌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입 과정 중에 얼마나 많은 농약과 화학비료, 방부제와 살충제가 사용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더 넓은 의미로 식품의 안정성을 따져본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먹어 왔던 식품의 모양뿐만 아니라 원 재료와 가공 방식, 맛과 향, 영양 등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예전과 다름없이 똑같은 식품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너무나 다른 식품을 먹고 있다.
대부분 유전자 조작 콩으로 의심되는 수입 콩으로 만든 된장으로 끓여낸 된장찌개에 그 옛날의 된장찌개의 영양과 구수한 향수가 있을 수 있을까. 또 맵기보다는 케첩만큼 달기만 한 포장 고추장에서 재리 고추장의 정신 번쩍나게 하는 기운이 있을 수 있을까.
발효의 전통은 지혜의 전통이고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장맛을 나누고 베푸는 더불어 삶의 전통이다. 지혜는 없고 지식만 난무하는 시대, 알맹이는 없고 쭉정이만 있는 시대, 포장은 그럴싸해도 내용은 없는 시대에 대량 제조된 허연 된장과 달콤한 고추장을 먹으면서 '나도 전통이 좋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지 말자.
식품의 질이 달라지고 있다. 환경의 파괴와 오염에 따라 식품의 영양소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과 가공 기술의 발달은 식품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식재료들과 화학조미료의 맛으로 공통되는 다국적 식품 재벌에 의한 전 세계적인 식품의 획일화 전략이 판을 치고 고소득 작물만으로 모든 농업이 재조정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인류는 지속적인 영양 불균형의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지역적인 농촌 경제의 부활 속에 전통적, 지역적인 식품의 다양한 수확과 유통, 안전한 가공 방식이 전제되는 식품의 생산과 소비, 이것을 지속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각성과 연대가 더욱 절실히 필요할 때다.
그렇게 농촌이 살고 당이 살고 먹고 사는 일들이 안정되어야 개인적인 삶이 구체적인 힘을 갖고 안정되며 나아가 사회적인 안정감으로 확산된다.
김수현님의 '밥상머리 마음공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첫댓글 이상한 일이 있어요. 우리농 매장에서 구입한 재래 된장이 맛도 없고, 조용해요. 어찌하나ㅜㅜ 지혜는 없고 지식만 난무하는 사회라는 말씀, 참으로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