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신> 안드로메다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대학의 문에 들어서게 된 것을 축하해 마지않습니다. 별로 유명한 대학이 아니어서 크게 자랑할 것 없다고 겸손해 합니다만 원하는 학과에 지원해서 합격의 판정을 얻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문과 대신 천문학과를 선택했다고요? 잘 하셨습니다. 학문의 우열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인문학 가운데서 가장 심오한 것은 철학이고 자연과학 가운데서 가장 원대한 것은 천문학이지 않습니까? 나는 문과에 다녔습니다만 대학 시절 천문학 강의를 자주 들었습니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 자리한 인근에 당시 천체우주관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자주 찾아가 별자리들을 바라보며 광활한 우주 속에 묻히곤 했습니다. 만일 내게 새로운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로메다 님처럼 천문학을 택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몇 억 광년으로도 잴 수 없는 광막한 우주 공간에 눈길을 돌리면 이 작은 지상에서 앞을 다투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깨닫게 되지요.
로메다 님, 안드로메다 성좌를 좋아한다고요? 그래서 닉네임을 로메다라고 했군요. 일찌감치 별을 좋아했으니 천문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로 보입니다. 안드로메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아닙니까? 이디오피아 왕 세페우스와 카시오페이아 사이에 태어난 미녀 공주지요. 해신(海神)에게 바치기 위해 바위에 결박되어 있는 그녀를 영웅 페르세우스가 구해내서 그의 아내로 삼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신화 속에 등장한 인물들이 죽은 뒤에 별들이 된다는 거지요. 그러니 안드로메다 성좌는 공주님 별이군요.
백과사전을 살펴보았더니 안드로메다 성좌 부근에 안드로메다 은하도 있더군요. 타원형의 안드로메다 은하는 약 2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지름은 약 10만 광년, 밝기는 태양의 약 100억 배라고 기록되어 있군요. 초속 30만 km의 빛이 1년 동안 달리는 거리가 1광년인데 200만 광년이면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계'에 그래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은하라고 하는군요. 그런 은하들이 수십 개 모여 은하군(銀河群)을 이루기도 하고 또한 수백 수천 개의 은하들이 모여 은하단(銀河團)을 이루기도 한다고 하니 이 우주가 얼마나 광막한 것인지 참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런가 하면 로메다 님,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미세한 세계도 신비롭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몇 십만 배로 확대된 전자현미경의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눈썹털 하나가 광막한 대륙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작은 눈썹털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꿈틀거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딱정벌레처럼 머리와 발과 더듬이를 정교히 달고 있었습니다. 해설자의 얘기론, 우리가 샤워를 한번 할 때마다 우리 몸에 기생하고 있는 수억만 마리의 미생물들이 씻겨 내려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샤워는 그들에게 노아의 홍수보다 무서운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녀석들을 보면서, 우리도 어쩌면 어떤 큰 분의 눈썹 끝에 매달려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쓴 것이 「무진사설조(無盡辭說調)」라는 산문시인데, 졸시집 『산방동동(山房動動』(한국문학사, 1984)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어제는 내 친구인 미생물학 교수가 전자현미경 얘기를 했는데, 몇 십만 배로 늘릴 수 있다는 그 전자현미경을 통해 인체(人體)를 관찰하면, 우리의 눈 주위에 박힌 눈썹털 하나에도 수십만 개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는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딱정벌레들처럼 발과 머리와 몸통의 형체를 제대로 갖춘 의젓한 생명체로 살아가고 있다는데,
오늘은 내 친구인 천문학 교수가 망원경 얘기를 하는데, 은하계 속에는 수많은 태양계들이 널려 있다는데, 별과 별 사이는 몇 십만 광년(光年)이나 되는 것도 있고, 아니 어떤 항성(恒星)에서 출발한 빛은 아직도 이 지상에 도달되지 않은 것도 있는데, 이 우주의 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도대체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어느 분의 눈썹털 속에 들어앉아 보채는 것인지,
인간들이 그 가녀린 지혜를 얽어 로케트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도 하여 달도 화성도 휘어잡아 보는 것은, 어느 한 눈썹 속의 딱정벌레가 옆 눈썹으로 건너뛰는 일처럼 우습고 우스운 일이어서 철학을 하는 내 친구 하나는 그저 술잔 속이나 들여다보면서 그 시리고 시린 마음을 달래기도 하는데,
일전(日前)에는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어느 심령학자가 사후(死後)의 얘기를 하는데, 장차 우리가 돌아갈 곳은 시간도 공간도 아닌, 밝은 자는 밝음 속에서, 어두운 자는 어두움 속에서 영원히 스며 흐르는―, 영혼 본연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조금은 덜 허허로운 얘기를 하기는 하는데,
허나 내 육안(肉眼)으로 보면 알맞게 부푼 저 산과 들판, 곱게 자란 초목, 훈훈한 바람, 저 빛깔 고운 과일, 내 가족들의 따스한 체온…… 어떤 분이 이 지상에 내 마음 오래 매어 두려 베푸신 풍성한 환영(幻影)임을 내 모르는 바 아니로되, 이 한 꿈 더디 깨기를 바라는 것은, 이 한 꿈 더디 깨기를 바라는 것은……. ―졸시 「무진사설조(無盡辭說調)」전문
로메다 님, 시가 너무 길어 읽기에 지루했을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제목에 '사설'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습니다. 별로 대단한 작품은 아닙니다만 배경이 자못 허허롭지요? 이 광막하기 그지없는 세계에 대한 '허허로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허정(虛情)(속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한 심경)에서 시는 싹이 트는 것도 같습니다. 마음속에 맑은 허정을 기르십시오. 그리고 가능한 한 그 허정을 키우십시오. 세상을 바라다보는 시야의 폭을 보다 넓고 깊게 가질수록 허정은 점점 자랄 것입니다. 작은 웅덩이에서는 큰 고기가 자랄 수 없습니다. 고래를 기르는 것은 좁고 얕은 민물이 아니라 넓고 깊은 대양입니다. 큰 시를 낳기 위해서는 원대한 세계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로메다 님, 아니, 안드로메다 님, 빛나는 별로 광활한 우주를 유영(遊泳)하면서 마음을 크게 키우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광활한 마음의 바다에 거대한 시의 물고기가 자라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천문학도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 임보 교수 시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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