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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구철의 눈에 띤 것은 희부연 달빛아래 가마솥 옆에 놓여 있는 낫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승대는 왼 팔을 놓지 않았고 재덕이 왼손을 빼 승대의 머리를 감싸 쥐고 다시 주먹을 날리는데 구철이 낫을 움켜쥐고 방으로 다시 뛰어들어 재덕의 왼 쪽 무릎 아래를 찍었다.
그리고 승대와 구철은 급히 방을 빠져나가 도망을 쳤다.
재덕을 박힌 낫을 이를 악물고 흔들어 빼고 쩔뚝이며 집으로 돌아와 아궁이에 베어링 외륜을 집어넣고, 방을 들어왔다.
재덕을 본 정순이 놀라서 울면서 메리야스를 찢어서 손목과 정강이를 묶어 주었다.
한편 승대와 구철이는 서로를 부축해 가며 피투성이가 되어 방골 구정의 집에 들어섰다.
구정이 피투성이가 된 둘을 헝겊을 쪼개어 묶고 날이 새자 버스를 타고 마석을 나가서 승대는 57바늘을 꿰맸고. 구철이도 스무 바늘이나 꿰매야 해다.
그리고 진단서를 끊었다.
한편으로 소문을 듣고 만석이가 찾아와서 재덕을 어제 밤의 싸움의 내용을 각색을 해서 이야기 했다.
내용은 먼저 손목을 물고 빨아서 주먹으로 서너 번 치니 놓고서 피를 방문에 뿜고. 몸싸움 중 문이 열려서 다리를 걸어서 업어치기를 했는데 진승대가 넘어지면서 댓돌에 머리를 부딪쳐서 깨졌는데 내가 쫓아 나가 승대를 마당에 자갈이 많은 곳에다 절구 찧듯이 찧어서 머리가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구철이도 낫으로 내 무릎을 찍고서 낫을 빼려고 할 때 오른발로 머리를 걷어차서 넘어지며 댓돌에 부디 쳤는데 조금 앞으로 넘어 졌으면 얼굴이 엉망이 되었을 뻔 했다고 했고 나는 간신히 낫을 빼고 집으로 들어와 상처를 동여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쪽은 둘이고 나는 혼자고 나는 맨 손이였는데 그 쪽은 무기를 써서 싸웠다고 하며 만석을 시켜서 낫을 치우지 못하게 하고 싸움이 있었던 창복이네 건넌방은 손도 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다.
그리고 만석에게는 가평 경찰서에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가서 잘 이야기 하라고 가평으로 보냈다.
한편 진승대와 구철이는 진단서를 떼어 가지고 고소를 하러 가평경찰서를 찾았는데, 형사가 하는 말이 싸운 장소가 의정부 경찰서 관할이어서 의정부 경찰서에 고소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싸운 내용을 들어보고 두 사람이 일부러 싸우기 위하여 상대편 집 가까이 찾아가고 거기다 낫으로 덤벼들었다면 상대가 나를 죽이려 했다고 하면 살인 미수 죄도 뒤집어 쓸 수 있다고 했다,
승대와 구철은 뜨끔했다.
결국은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궁리 끝에 고소를 하지 않는 게 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석이 가평 경찰서 형사계를 찾아온 때는 승대와 구철이 다녀간 뒤였다.
아는 형사를 찾아간 만석은 점심을 하자며 근처 중국집으로 데리고 나왔다.
만석의 이야기를 들은 형사는
“응 아까 고발장을 써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어.”
“그래 벌써 왔다 갔어. 우리 매형 하고 싸운 사람들인데 많이 다졌거든 고발장을 좀 빼 주면 안 될까?”
“좀 어렵긴 하지만 자네 부탁인데 내가 힘 좀 써 볼게.”
“그래 고맙네. 내 이 은혜 잊지 않겠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하면서 준비해 가지고 간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재덕에게 잘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재덕은 암만 생각해도 분통이 터졌다.
이 모든 사단이 백 계모 미랑이가 구정 구철을 꼬드겨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서 재덕은 작대기를 짚고 꽃재 미랑의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보다 앞서 순례가 꽃재 상호내 집에 갔다 오다가 미랑이네 집에 들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수동 아범은 좀 어 때?”
“건넌방에 처박혀 있어요.”
“에이그 사람들이 왜 그래?”
“아니 형님 구철이도 많이 다쳤다면서요.”
“말을 하면 뭘 하나 머리를 스무 바늘을 넘게 꿰맸는데. 아주 짐승이야 짐승.”
“그나저나 형님 속상하시겠어요.”
“에 휴 말하면 뭘 하나 사람을 어떻게 그 지경이 되도록 패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떨려서 지금도 치가 떨려.”
“오죽 하시겠어요.”
순례의 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재덕이 대문을 들어서며.
“큰어머니! 큰어머니가 뭐라고 했기에 구철이와 진승대하고 싸우게 만듭니까.”
“내가 뭔 말을 했다는 건가?”
벌써 재덕은 마루에 올라앉으면서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구철이 그놈 하고 승대 그 놈이 나를 죽이겠다고 낫까지 빼 들고 덤빕니까?”
“아니 그래 사람이 어떻게 짐승이 아니고 그 모양을 만드나”
“뭐라고요 짐승이라니요.”
짐승이라는 소리에 재덕이 벌떡 일어나 금방이라도 미랑을 때릴 듯이 덤벼들려고 하자 옆에 앉아 있던 순례가
“아범아 왜 이러니, 이러면 안 된다.”
면서 팔을 잡고 매달리자 재덕을 몸을 세차게 흔들며 순례를 뿌리쳤다.
순례는 그 바람에 뒤주가 있는 곳까지 떠밀리고 말았다.
“애 구구 허리야.”
그때 안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금순이가 소란에 나와 있다가.
“오빠 왜 이러세요. 오빠 그러지 마세요. 엉 엉 엉.”
무릎을 꿇고서 울면서 빌었다.
재작년 아버지 돌아갔을 때 다정다감하게 금순을 달래며 형묵의 임종을 지켜 주던 그런 재덕의 모습은 없었다.
“오빠 잘못했어요. 엉 엉 엉.”
딸처럼 어린 금순이 울면서 빌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던 재덕은 막내로 자란데다가 누이가 없어서 오빠라는 말에는 유독 마음이 누그러져서
“아니다 아무 일도 아냐.”
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쩔뚝거리며 돌아왔다.
순례는 화가 났다.
아무리 양 계모라도 어미인데 나를 구석에다 밀어 던져. 괘심한 놈 하면서 바로 병묵의 집으로 가서 내려오지 않았다.
양묵이 찾아가니
“그 놈이 나를 밀어서 뒤주에 부딪쳐서 꼼짝을 못하겠어요.”
“내 이놈을 그냥.”
“내 수동 애비가 싹싹 빌기 전에는 절대 안 내려가요.”
“내 이 녀석을 끌고 와서 싹싹 빌게 할 거요.
양묵이 그렇게 큰소리를 쳤으나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양자를 들여 가지고 내 속을 썩이네. 에이그 내 속이야.’
양묵은 몇 칠을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순은 몇 칠이 지나도 순례가 오지 않으니 쾌재를 불렀다.
아주 안 내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는 이래도 그만이고 저래도 그만인 셈이 되었다.
그놈의 영감태기가 뭐라고 내 아들 놔두고 말도 안 듣는 여우같은 며느리에 깡패 같은 양아들 하고 같이 살고 싶지 않은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양묵은 저녁마다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명자 상호 재롱을 보면서 사는 재미에 빠져 들고 있었다.
속이 탄 양묵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아침 밥상을 받은 자리에서
“사람을 어떻게 팼기에 그 모양을 만들어.”
“뭐가요. 아니 그 놈들 다친 것은 가슴 아프고 내 다리 찍힌 것은 보이지 않나요.”
양묵은 순례를 때렸냐고 물었는데 재덕은 순례를 뿌리친 일 밖에 없어서 구정이와 승대를 때린 것으로 오해를 해서 그렇게 대답을 한 것이었다.
“금수 마도 못한 것 같은 이라고.”
“금수라니요.”
“그래도 뭘 잘했다고 꼬박 꼬박 말대꾸야 금수가 아니면 그럴 수는 없는 거야. 아파 죽겠다고 누워 있는데도 그래 꿈쩍도 안하고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짐승이나 할 짓이지.”
“아니 제가 때려서 누워 계시 다고요. 원 세상에, 사람을 음해해도 분수가 있지…….”
“음해라니 사람이 누워 있고 꼼짝을 못하는데 음해야!”
양묵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밥상을 들어서 재덕을 향해 던졌다.
재덕을 향하여 날아오던 밥상을 재덕은 반사적으로 주먹으로 막아서 처냈고 상위에 위에 그릇은 관성에 의해 재덕의 무릎 위에 앉아서 밥을 먹던 정자의 위로 떨어졌다.
뜨거운 국 국물이 정자의 오지랖에 쏟아지고 놀란 정자가 울어 제치고, 양묵은
“에이 이놈의 집구석 불을 확 질러 버리던지 해야지.”
하면서 밖으로 나갔고, 그와 동시에 울고 있는 정자를 재덕이 안고 나가면서 옷을 벗기고 순자를 내려놓은 정순이 달려 나가 찬물로 씻기면서 살펴보니 다행히 몇 군데만 약간 붉은 부분이 있었으나 별로여서 옷을 갈아 입혔다.
화가 치민 재덕은 옷을 갈아입고 도림개말로 가서 흥수와 선진에게
“너희들 오늘 수고 좀 해 줘야겠다.”
“뭔 일인데요 형님.”
“우리 양 서모께서 편찮아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하니 가마 바탕 좀 매어야겠다.”
“내 형님.”
그렇게 동내에서 시집갈 때 쓰는 가마 바탕을 꺼내어 흥수와 선진에게 양쪽에서 매게 해서 성난 소처럼 식식 거리며 꽃재 병묵의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 어서 병원으로 가십시다. 어이 병묵이 요 한 채 내오게.”
병묵 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머리가 빨리 돌아간 것은 병묵의 처 영란이었다.
“아니 배가 속 아리 가 났다가 가라앉았으면 됐지, 뭔 병원을 가겠다고 해서 난리를 피워요. 구구로 주는 밥이나 드시면 될 걸 가지고.”
하면서 병묵에게 눈짓콧짓을 했다.
“어머니 속 아리는 갈라 앉아서 괜찮아요. 형님 괜한 고생 하시지 말고 돌아가세요. 모시고 가도 제가 모시고 가야지요.”
그러는 사이에 영란은 건넌방 순례에게로 가서
“난리 꾸미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수동 아버지 성질을 몰라서 그래요, 에이그 참.”
그래도 재덕이 버티고 서 있자.
“형님 그러지 말고 가세요. 제가 이렇게 빌잖아요.”
재덕으로서는 더 이상 고집을 피울 필요가 없었다.
“안 가시겠다 내 자네들 수고 했네. 내가 이따 저녁에 한잔 삼세.”
재덕이 순례에게 와서 사과를 하게하고 순례를 집으로 오게 하려던 양묵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재덕은 정순에게 개선장군처럼 오늘 꽃재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날 밤 수동이는 꿈속에서 순례가 관솔불을 들고 양묵에게 넘겨주고 구부정한 모습의 양묵이 두엄 밭에서 지붕에 불을 붙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고 불이 나면 어떡하나 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순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정순을 쾌재를 불렀다.
양묵은 저녁만 먹으면 꽃재 순례의 건넌방으로 가서 자고 내려와 조반을 들었다.
말 그대로 남가 식 북가 숙이 되었다.
얼마 후 경동 이는 꽃재 미랑의 집은 득현이 에게 팔아 버려서 미랑과 금순은 구정 이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리고 만석도 물막골에 있는 두 노인 부부가 살고 있는 집 사랑방을 얻어서 이사를 했고, 미랑의 집에 있던 나사식 작기를 전리품 인양 재덕이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 작기는 쓰러져 가는 집을 버팀목을 대고 작기의 구멍에 작을 쇠 지렛대를 넣고 돌려서 집을 바로 세우는데 요긴하게 쓸 수가 있어서 빌리러 오면 빌려주고 돈을 받았다.
양묵이 빌려주면 양묵의 용돈 재덕이 빌려주면 재덕의 용돈이 되었다.
그것도 자주 있는 게 아니고 서너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였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정순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양묵의 경제권 완전히 재덕에게 넘어가고 돈 쓸 일이 생기면 달라고 하면 처음에는 잘 주는 가 십 더니 대답을 하고 몇 칠 지나서 주더니 아예 잊어 버렸는지 주지 않았다.
‘이 그 내가 벌어 써야지’
그런 양묵에게는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니 농가의 제일 큰 재산인 소를 치료해 주는 일인데, 일종에 가축병원 왕진이었다.
소가 아프면 소 주인들은 대개가 일을 나가기 전인 아침 일찍 찾아와서 소가 병이 났으니 가시자고 하면 옷을 챙겨 입고 갔다.
양묵은 소 치료를 하려면 우선 소 주인에게 소의 신장 보다 약간 먼 거리에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곳을 택해 코뚜레 양쪽에 끈을 매어서 짧게 나무에 매어서 소가 꼼짝 못하게 하고 뒷다리도 나무에 묶어서 꼼짝 못하게 하고 주인은 서서 소고삐를 쥐고 있게 한 다음 대나무 통에서 크고 작은 바소 중 적당한 바소를 꺼내어 소를 침을 놔주면 아침을 융숭히 대접하고 돈 보다는 궐련 한 보루 또는 썰어서 봉지에 담아 놓은 풍년초 라는 담배를 서너 봉씩 주어서 벽장에는 향상 몇 보루의 궐련과 서너 봉의 풍년초가 있어서 양묵과 순례는 담배가 떨어질 날이 없었고 집에서만 담뱃대에 풍년초를 피우고 출타 중에는 늘 궐련을 넣고 다녀서 다른 사람들처럼 담배쌈지를 넣고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재덕이 어느 날 담배가 떨어지고 돈도 없자 양묵이 출타한 틈을 타 새 풍년초 봉지들 아랫부분을 살짝 뜯어내고 담배를 함 줌씩 꺼내고 다시 밥풀로 붙였다
그리고 궐련 아랫부분도 뜯어내고 담배 두 개비를 빼는데 수동이가 들어왔다.
재덕이 입에다 손가락을 대고 이야기 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그런가 하면 만석은 살림감수의 눈을 피해서 나무를 베어다 다듬고 켜고 대패로 밀어서 남에 땅을 빌려서 양지 바른 곳에 여덟 칸 겹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자 물막골에 자주 다녀왔다,
그리고 삼순이는 이웃에 사는 정선이라는 총각과 의 남매를 맺어서 정선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고 정선의 동생 욱선과 영선이도 삼순을 누나라고 부르며 지냈다.
그해가 갈 무렵 아침부터 눈이 내려 소복소복 쌓이던 날 낮에 토끼장을 본 수동이는 깜짝 놀랐다.
토끼가 보이질 않았다,
수동이가 눈을 맞으며 찾아 나섰다.
봄부터 그렇게 열심히 키우고 가을에 먹을 게 없어서 소죽을 끓이면 소 보다 먼저 콩깍지를 한 바가지 떠다주며 열심히 키웠는데 그리고 내년에 새끼를 낳기 시작하면 여러 마리로 불어날 수 있었는데. 두 시간을 넘게 찾아다녔으나 수동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찾지를 못했다.
그 무렵 태준이가 형 태환이네 집에 놀러 왔는데 복현이 삼촌 정균이와 도기와 어울려서 콩을 파고 속에 청산가리를 넣어서 꿩을 잡으려고 만들었다가 무슨 백장으로 닭이 지나가는 곳에 뿌리고 몰래 가져다 먹으려고 해서 애꿎은 형기내 닭이 세 마리나 죽었다.
그것을 안 형기 할머니가 노발대발 해가고 태환이가 닭 값을 물어 주고 끝났다.
그 일로 해서 태준이는 황골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해가 가고 설이 다가오자 떡을 해오는데 영순내 방앗간에서는 삯을 받지 않고 가래떡을 빼 준다고 해서 갔는데 물이 얼어서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어서 얼음을 깨내고 사람들이 돌려가면서 떡을 빼 냈다.
그리고 설이 되자. 재덕은 언제 원수처럼 싸웠냐 하는 듯이 초하룻날은 수동이를 데리고 순례와 미랑에게 세배를 다녀오고, 초이튿날 안마산 지묵의 집에 세배를 갔다.
재덕이 세배를 하고 사랑방에 있는 동안 수동이는 안방에 있게 되었는데. 지묵의 부인이
“수동아 너 엄마 안 보고 싶으냐?”
수동이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재수의 부인이
“아유 어머니 안 보고 싶을 리가 있어요.”
했다. 왜 당연한 걸 물어 보는지 하기야 그런 질문은 한 두 번 들어 보는게 아니라서 금방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재덕을 따라서 충묵 할아버지 그리고 소동이 할머니한테 까지 세배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재덕은 선복 이와 용단이 에게는 늘 그랬던 것처럼 초사흘이 지나서 초닷샛날 저녁 무렵에 정순이의 목이 다 빠진 다음에 왔다.
그런데 무슨 심산지 재덕은 세배는 하지 않고 저녁을 먹으며 용단이 딸아 주는 술 몇 잔 마시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정순에게는 늘 그게 불만 이었다.
아무리 선복이 희상의 큰집 머슴에 엄마가 몸종을 지냈어도 자기를 품고 자고 자식까지 둘 식이나 낳았는데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이 지나고 사흘째 되던 날이면 아이들은 세뱃돈을 자랑하고 도림개말에 가서 장난감을 사서 가지고 노는데 아이들 모두 주머니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유행 이었다.
수동이는 올해 세뱃돈을 한 푼도 받지를 못했다.
그런 수동이가 몰래 재봉틀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아랫목에 걸려 있는 재덕의 양복 주머니 속에서 백 환을 꺼내어 주머니에 넣고 도림개말에 진승이네 가게에 가서 주머니칼도 사고 화약을 사서 돌멩이 사이에 넣고 때려서 뻥 뻥 터트렸다.
그것을 안 재덕이 그날 저녁에 혁대를 말아 쥐고 때리기 시작했다.
울면서 구석에 몰려서 울면서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수동이를 끌어내어 종아리며 허벅지에 채찍을 가했다.
“엉 엉 엉 아버지 다신 안 그럴게요, 엉 엉.”
“어디서 도둑질을 배웠어.”
또 다시 매질이 시작되고
“아이고 나 죽네, 엉 엉 엉 다신 안 그럴게요. 흑 흐 흑, 아버지 나 좀 살려 주세요. 엉 엉 엉.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매는 멈추었고, 재덕이
“다신 안 그럴 거지.”
“흐 흑 흐흐 흑 훌쩍 네”
하면서 고갯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재덕은 한참 후 흐느끼는 수동이를 끌어안고 잠자리에 들어서
“수동아.”
“네, 흐 흐 흑.
“도둑질 하면 나뿐 사람 된다.”
“네 흑 훌쩍.”
하면서 고갯방아를 찧었다.
“애비가 너 잘되라고 때린 거야 알겠니.”
“훌쩍 네.”
그렇게 토닥여 가며 잠이 들었다.
재덕으로 서는 애비로서의 또 다른 일면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양묵에게는 또 다른 재주가 있었다.
양묵은 지난봄에 산기슭에 삼씨를 뿌려 칠월 삼복더위에 삼을 베어다 윗부분을 딴 드럼통으로 솥을 걸어서 삼을 넣고 그 위에 드럼통을 하나 씌워서 삼을 삶아 내서 벗기고 쪼개어 놓았던 것을 겨우내 노끈을 꼬아서 고드랫돌에 감아 돗자리 틀에 올려놓고 뒤쪽에는 짚을 대고 앞에는 왕골을 쪼개어 대어 가며 자리를 짰다,
그런가 하면 지난 칠월에 산에 다니면서 베어 온 싸리나무를 껍질을 벗겨서 말려서 대문 옆 마구간 선반 위에 올려놨는데, 재덕이나 정순이 수동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싸릿가지를 쑥 뽑아 들고 들어와서 때렸다.
‘저 말썽꾸러기 녀석 때문에 내 아까운 싸릿가지만 축 나 네 에이그.’
싸리까지 하나도 양묵의 피와 땀이 잔뜩 들어가 있었으니 엄청 아까웠다.
양묵은 말려 놓은 싸릿가지로 채반이나 광주리 다래끼 또는 바구니나 종다래끼를 만들어 팔았는데 교통이 발달 되면서 남부에서 나는 대나무로 만든 대바구니가 올라오면서 바구니는 안 만들고 벗기지 않은 싸리나무로 삼태기 또는 지개에 올려놓고 두엄이나 흙을 파 옮기는 소쿠리나 병아리를 가두는 우리를, 그리고 가을에 베어 놓은 쑥대나 억새대로 칡이나 삐삐선(군통신선)으로 발을 역고, 싸리나무로 삼태기 바구니 종다래끼를 만들어 삼십 리를 걸어서 마석 장에 내다 팔았다.
그리고 양묵은 날이 풀리자 사랑방 툇마루에 앉아서 삼 껍질이나 싸리나무 껍질로 새끼 60여m를 꼬아서 그것을 하필이면 아침에 꽃재 에서 내려와 마당가에 있는 향나무에 얼레를 매어 놓고 40여m를 감아 놓고 정순에게 수동이를 불러내라고 했다.
“수동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신다.”
수동이가 눈은 부비면서 억지로 일어나서 나가면.
“이 끈 끝을 잘 붙잡고 있어라.”
“네”
그러면 20m쯤 되는 끈의 끝을 수동이가 붙잡고 서 있고 양묵은 나무에 묶어 놓은 얼레를 돌리면 수동이는 추워서 달달 떨면서 서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리면서 조금이라고 줄이 늦춰지면,
“단단히 붙잡아라. 꼬인다.”
그리고 너무 팽팽히 당기고 있으면 얼레를 돌리기 힘이 드니 줄을 잡아당겨서 수동이가 끌려오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얼레를 돌려서 웬만큼 꼬아지면 평평하게 해지라고 끝에 옹이가 있는 나무에 한 바퀴 감고 훑어서 끝에서 미리 표시해 둔 곳 까지 막대에 돌돌 감아서 또 20여m를 풀어서 얼레를 돌려서 옹이가 있는 나무에 한 바퀴 감고 훑어서 겹쳐 꼬기 시작하면 그 끝을 또 수동이가 잡고 있어야 하고 그렇게 겹쳐서 꼬고 나면 또 막대에다 감고 얼레에 감겨 있던 나머지 20m를 풀어서 수동이에게 잡으라고 하고 또 얼레를 돌렸다.
그런 다음 아까 감아 두었던 막대에 끝을 겹쳐서 꼬아 나간다.
이 때 쯤 이면 밧줄을 잡고 있는 수동이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주둥이가 나오면.
“이 그 주둥이는 여든 댓 발 은 나와 가지고, 일 하기 싫은 놈이 밥은 왜 먹남.”
그런데 벌써 물막골 애들은 학교에 가면서 그냥 가지 않는다.
“수동아, 학교 가자!”
수동이는 입을 쭉 빼 밀고 거의 울상이 되어 갈 무렵이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수동이는 허둥지둥 밥을 먹고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야 했다.
그런데 양묵은 삼과 싸리나무 껍데기로는 양이 모자라자 이번에는 나무껍질 중 질기고 부드러운 소재로 바뀌었는데 아무래도 몇 년씩 묵은 나무껍질 이다 보니 거칠고 해서 얼레에 감아서 바를 만드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힘들다 보니 시간도 좀 더 오래 걸렸다.
그리고 장에 만든 물건을 팔러 갈 때에는 명자가 캐 온 달래 냉이 씀바귀 또는 산나물을 같이 가져다 팔아서 명자의 공책 연필 등 학용품을 사다 주었다.
그렇지만 재덕에 대한 미움이 커서인지 수동이에겐 연필 한 자루 공책 한권도 없었다.
그리고 암탉 한 마리가 알을 낳고도 둥지에서 나오지 않고 꾹 꾹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정순이 둥지를 떼어다 부엌 옆 깊숙한 곳에 내려놓고 집에 있는 알을 넣어서 품게 하려고 보니 10개 밖에 안 돼서 현용이네 집에 가서 10개를 빌려다 둥지에 넣어 주었다.
졸지에 알 낳을 둥지를 잃은 다른 암탉들은 부엌 나뭇가리 속에 으슥한 곳을 파 혜치고 앉아서 알을 낳았다.
그리고 알을 품는 암탉은 하루에 한 번 정도 정순이 다른 닭은 다 쫓아내고 별도로 먹이를 주었다.
그렇게 21일이 되는 날 병아리들이 하나 둘 껍질을 깨고 나왔다.
그리고 재덕이 병아리를 한 마리씩 주둥이를 까 주면서
“이렇게 해야 잘 먹고 큰 잘 큰단다.”
병아리들은 처음 사흘은 참깨를 주었다.
수동이는 학교 갔다 오면 한참 동안 병아리 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느 놈은 엄마 닭 등에 올라가 있는가 하면 어미 닭 날갯죽지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숨바꼭질을 하였다.
그렇게 개나리꽃이 핀 울타리 밑을 어미를 따라다니는 것도 일주일이 지나자 어미와 떨구어 별도로 병아리를 마당에 모아 병아리 치룽에 가두고 쌀겨와 싸라기를 주었다.
어미 닭은 한 동안 치룽 주의를 맴돌며 꾹 꾹 거렸지만 얼마 쯤 지나자 병아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모이를 먹고 떠다 놓은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모이를 쪼아 먹고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한편 제철은 아들 며느리 손자의 재롱을 보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는데 늘 마음 한구석에 납덩이처럼 쌓인 희상에 대한 애절함 때문인지 요즈음에는 도통 먹기만 하면 토하고 속은 늘 쓰려서 입원을 했다.
그리고 오늘 넬 하는 상태가 되었다.
큰딸 근상이 달려오고, 희상이도 급히 달려 왔다.
그리고 근상 희상 남식이 지켜보는 가운데 희상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한을 안고 돌아가시게 했다고 생각을 하니 희상의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장지는 제철의 고향인 황골 선산에 묻혔다.
막 제대를 하고 온 용동이가 희상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작은 어머니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고맙네. 어머니 안녕하시지?”
“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고 윤희의 집에 잠깐 들렸다.
윤희가 희상의 두 손을 감아쥐며
“동세 얼마나 상심이 큰가?”
희상은 윤희를 보면 눈물부터 나왔다.
“동세 힘들겠지만 세월은 잠깐 일세, 몇 년 만 지나서 수동이가 크면 자네가 대 머리 아닌가. 그 때 까지 만 참고 기다리게. 내 그 물건 사람으로 치지도 않네.”
하면서 희상을 위로 격려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양묵의 둘째 형 완묵이 죽었다.
살림을 날 때 별로 가지고 나오지를 못 대다가 양묵만큼 근면하지 못해서 겨우 끼니를 때우며 살았는데 작은아들 재만이가 태어나고 얼마 후 전쟁 통에 부인마저 잃고, 큰 아들 재수는 사십이 넘도록 결혼도 못 시키고 삼부자가 어렵게 살았는데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완묵은 방꼴 형묵의 묘 옆에 나란히 묻혔다.
그리고 재만은 학교에 나오다 말다 했는데 안 나오는 날이 많아졌다.
“수동이는 애 보라고 하면 몰래 빠져나와 학교에 와요.”
라고 수업 중 말을 해서 칭찬을 받게 한 적도 있고 힘센 애들이 수동이를 건들면 도와주기도 한 수동이의 응원군 이었다.
그리고 따스한 봄날 정순의 친구 명순이 놀러 왔다
명순이는 이제 미용사가 되어있었다.
정순이가 삼순이 병숙 엄마 그리고 영란이 등 몇몇을 불러서 파마를 했다.
멀리 마석까지 가지 않아도 머리를 할 수 있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파마약 냄새가 났다.
정자도 머리를 해 주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러나 돌이 지난 순자는 연년생이라 그런지 발육이 늦고 돌이 지나서 겨우 서기는 했지만 엉금 엄금 기어 다니며 바름벽을 발라놓은 진흙을 파서 입에 넣고 맛있는 과자처럼 아작 아작 먹었다.
뿐만 아니라 화로 가에 앉아서 감진 숯덩이를 꺼내어 과자처럼 아작 아작 씹어 먹었는데 정순이 그때 마다 손가락을 넣어서 꺼냈지만 향상 볼 수 없는 노릇이고 정순이 안 볼 때 입에 집어넣고 우물, 우물 씹어서 잘 발견할 수가 없었다.
가끔씩 수동이가 발견을 해서
“엄마 순자 또 검정 먹어요.”
“이놈의 계집애가 미쳤어.”
하면서 엉덩이를 때리고 손가락을 넣어서 숯을 꺼내곤 했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은 금조 미명을 기하여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을 완전히 장악 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기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혁명위원회는
①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②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③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④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 한다.
⑤민족의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⑥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이 직정돠 정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중장 장도영
1961년 5월 16일 새벽 5시, 반란군이 서울을 장악한 직후 쿠데타 주도 세력이 구성한 최고 권력 기구. 의장에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장도영, 부의장에 쿠데타의 실질적 지도자인 박정희가 선임되었다.
곧이어 군사혁명위원회는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는 성명을 발표하고 6개항의 혁명공약을 내걸었으며 오전 9시를 기해 남한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함과 동시에 포고 제1호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옥내외 집회금지 △국외여행 불허 △언론에 대한 사전검열 실시 △야간통행금지 시간 연장(저녁 7시~새벽 5시) 등이었다.
5월 18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조회 시간에 선생님 한분이 나와서 혁명공약을 낭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혁명가를 가르치고 불렀다.
명랑한 새아침에 태양도 밝다 당신은 들로 가고 나는 공장에 가난했던 지난날을 떨쳐 버리고 너도나도 국가 재건 잘살아 보세 재건, 재건 만나면 인사 부지런한 생활 속에 혁명 과업 이루세.
첫댓글 그사건이 결국은 양묵과 순례를 떼어 놓는 결과가 되었네요.
그게 양자에요?
아니면 점령군인가요 .
또 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