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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방꼴에서 눈칫밥 아닌 눈칫밥을 먹고 지내던 금순은 경동이네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거기서도 금순이는 경동이의 동생으로서의 생이 아닌 식모살이로 전락 하고 말았다.
그리고 재덕의 집에서는 또 한 마리의 암탉이 뒤늦게 알을 품어서 알을 깠는데 이런 무엇이 잘못 됐는지 다 골아 버리고 두 마리만 깨어났다.
그중 한 마리는 잘 먹고 잘 자라는데 한 마리는 덩치가 절반만 했다.
그리고 잘 보살펴 주지 않아서 그런지 두 마리가 향상 붙어 다니며 울타리 밑에 다니며 오디를 주워 먹어서 멀떠구니 부분이 향상 시퍼렇게 내 비치었는데 수동이가 우 하고 쫓았는데 도망을 치다가 수동이가 내 딛는 발아래로 뛰어 내리는 바람에 밟혀서 그만 멀떠구니가 튀어나오고 다리를 파르르 떨면서 죽고 말았다.
정순이 보고서
“세살이 껴 가지고 하는 짓 하고는”
그리고 죽은 병아리를 손질하여 간장에 졸여서 재덕이 먹었다.
몇 칠 후 학교에서 돌아온 수동이가 공책이 필요해서 공책을 사 달라고 했더니 정순 이가 달걀 하나를 가지고 가서 바꿔 오라고 시켰다.
수동이가 달걀을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감싸 쥐고 학교를 거쳐서 가다가 쉬는 시간에 나와 있던 육학년 회진 이가
“수동아 물동아 개똥아!”
별명을 부르며 놀리자 수동이는 발길질을 했다.
발길질을 했지만 어림없는 일 혀를 날름 한 회진 이가 역으로 발길질을 했는데 그만 달걀을 움켜쥔 손을 찼다.
계란이 깨지고 수동이는
“엉 엉 엉 내 계란.”
하면서 울기 시작 했다.
난감한 것은 회진이었다.
놀리느냐고 발길질 한 번 했는데 깨진 계란을 꺼내 들고 울고 있으니 난감해 하는데, 6학년 담임인 신용욱 선생이 지나가다가 울고 있고 난감해 하는 회진을 보고
“회진아 애 왜 우니.”
“제가 장난을 하다가 발로 툭 찼는데 그만 주머니에 들어 있던 달걀이 깨져서.”
“그래 따라와.”
하면서 교무실로 데리고 가면서 수동이 손에서 깨어진 계란을 받아서 호로록 마셨다.
“요새 계란이 얼마냐?”
“삼십 환 이레요.”
“얼마 전 까지 이십 환이더니 그렇게 올랐어.”
하면서 의자에 걸려 있던 양복 주머니에서 삼십 환을 꺼내 주어서 수동이는 그 돈을 받아 가지고 진승이네 가게에 가서 공책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어 6월6일에는 전문 24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이 공포되었다.
이 법은 「헌법 규정 중 국가재건비상조치법과 저촉되는 규정은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의 규정에 의한다」는 내용을 명시, 기존 헌법의 일부 규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또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국회가 구성되고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최고통치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 국회를 폐지함과 동시에 국가권력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집중시킨 점에서 입헌주의 헌법과는 유가 다른 초헌법적인 통치법이었다.
특히 이 비상조치법은 최고 회의가 5·16군사쿠데타 이전 또는 이후에 반국가적·반민족적 부정행위 또는 반혁명적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고, 이러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를 둘 수 있게 함으로써 군사정부의 통치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7월3일에는 장도영이 물러나고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다.
5·16 이후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따라 이루어진 특별군사재판에서는 자유당과 민주당 치하의 부정·부패 및 5·16 전후의 반혁명사건을 총괄적으로 입건처리하기 위해 1961년 7월 12일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를 개설 되었다.
이어서 깡패를 소탕하고 빰 한대 때리면 벌금이 삼십 만환 이라는 이야기 돌았다.
이어 주먹깨나 쓰던 사람들은
“세상 좋아 졌네, 자유당 시절 같았으면 이걸 그냥”
자유당 시절이 좋았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재덕 또한 그런류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꽃재 금동이 아버지의 환갑날이었다.
이웃에 사는 용단이도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정자를 데리고 갔다
음식상이 나왔는데, 정자가 떡 접시를 혼자 먹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 했다.
용단이 달랬지만 누구도 손을 못 대게 울고불고 발버둥을 쳤다.
그걸 재덕이 보았고, 순간 버릇을 고치든지 해야겠다며, 정자를 용단에게서 빼앗아 왜 버릇없이 구느냐며 뺨을 때렸다.
정자가 코피가 터지고 용단이 정자를 빼앗고 정자는 놀라고 공포에 젖어 흑흑 느끼면 울음을 멈추었고 복자 엄마가 급히 솜을 가지고 와 코를 막았다.
집으로 돌아온 용단은 중얼 거리며 재덕을 욕했다.
“미처도 단단히 미쳤어, 어린 게 뭘 안다고 때려 에이그.”
재덕의 폭력성은 알고 있었지만 금 쪽 같이 위하던 외손녀가 뺨을 맞고 코피가 터지니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병숙 이는 엄마가 사다 주었다는 까만 운동화를 신고 자랑을 했는데 앞에는 흰 줄이 들어가 예뿐 운동화였다.
샘이 난 수동이는 병숙 이네 댓돌위에 있던 병숙이 운동화를 몰래 훔쳐내어 변소 간 잿더미에 묻어버렸다.
생각에는 누군가 변을 보고 똥 삽으로 재를 파내어 똥을 덮어서 파내면 금방 찾아갈 줄 알고 묻었다.
그러나 신발이 없어진 게 수동이 짓이라고 하면서 추궁을 했지만 아니라고 부인을 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신발이 나올 줄 알았는데 변소에 가지 않았는지 운동화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초조해진 수동이는 스스로 신발을 찾아다 봉당 위 댓돌에 몰래 올려놓았다.
방학 무렵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순복이 삼촌 수천이가 트랜지스터 수신기를 사 가지고 와서 대나무 끝에 철사를 엮어서 집 앞 죽은 대추나무에 묶어 세워 안테나를 설치하고 순복 이네 사랑방에 헤드셋을 설치했는데 순복 이내 놀러 가면 헤드셋을 머리에 씌워서 귀에 대주어 듣게 해주었다.
올 여름방학에도 예외 없이 대학생들이 농활을 나왔다.
농활 마지막 날 수동이는 저학년 반에서 노래를 제일 잘 했다고 상을 준다며 농활 하는 동안 묵고 있던 청룡말 공회당까지 가서 공책을 한권 주었다.
그래서 수동이가 제일 잘 하는 게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순이는 홀몸이 아니고 입덧 중 이었는데 노랗게 익은 배꼽참외가 먹고 싶었다.
어느 날 양묵이 출타한 틈을 타 수동이를 불렀다.
“수동아 너 이거 가지고 개울 건너 새창벌 가는데 원두막 있지.”
“네.”
“얼른 가서 참외 바꿔 와라.”
하면서 보리쌀 두 되를 자루에 퍼 주었다.
수동이가 살금살금 빠져나가 개울을 건너서 새창벌 원두막에 갔더니 주인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울 엄마가 참외 바꿔 오래요.”
“오냐.”
하면서 배꼽참외 여섯 개를 주어서 가지고 왔는데 정순은 부엌에서 까서 껍질을 두엄 밭에 버리지 못하고 아궁이 속에 넣었다.
수동이는 처음으로 정순이 잘라주는 바람에 생전 처음으로 참외를 먹어보았다.
그리고 재덕은 안마산 재수는 증조할아버지며 소동 이에게는 고조할아버지인 건호의 산소를 재덕은 할아버지 영린의 산소가 있는 가평마일로 벌초를 다녀왔다.
벌초만큼은 가위다리 봉사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방꼴 재수가 낫을 갈아가지고 망태에 보리밥을 싸 가지고 건너 와서 재덕에게 원댕이골로 벌초를 가자고 왔는데,
“아니 형님은 벨도 없소, 재천이형도 재운이형도 그리고 경동이 재구 재봉이 줄줄이 많은데 왜 하구 한날 우리만 벌초를 해야 하우.”
“그래도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나.”
“많은 재산 차지한 경동이는 코빼기도 볼 수 없는데 우리가 미쳤다고 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양묵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양묵은 재수와 함께 물막골 유가 모이 터(원탱이골)에 있는 할아버지 기호와 아버지 영훈 그리고 동생과 전처 무덕이의 벌초를 했다.
둘이서 네 개의 산소를 깎자니 보통 힘 드는 게 아니었다.
속으로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 올해도 예외 없이 옛 며느리의 산소도 깎았다.
양묵에게는 첫 번째 며느리며 명자의 어멈으로 사글사글한 게 괜찮은 아이였는데, 왜 목을 매 죽었는지…….
지금 정자 어미나 상호 어멈이 절반이나 따라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정순이 마석 장에서 화판과 크레용을 사와서 수동이는 얼마 전 새 운동화를 사 어서 부러움을 줬던 병숙 이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병숙 이네 집 뒤 바위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현숙 이가 귀여워 보였는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동아 그림 그리니.”
사실 그림 솜씨가 없는 대다가 양초에 물감을 넣어서 적당히 굳힌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은 별로 여서 얼른 감췄다.
“어디 좀 보자.”
하고 현숙이 손을 화판에 대는 순간 수동이가 현숙의 손을 물어버렸다.
어쩌다 살기를 띠면서 그랬는지 수동이는 한참을 숨어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숨어서 있다가 저녁 먹을 때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돌아왔다.
“애가 살매가 들어 가지고. 이빨 자욱이 얼마나 크게 났는지 알아”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양묵이
“입에 물린 사람이 물린데 똥을 바르면 문사람 이가 몽땅 빠진다.”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동면이 생기게 되어 운수리로 학교를 다니던 지둔리 애들 10여명이 전학을 왔는데 거기에는 운수 초동학교에 근무하던 송기봉 선생이 가양초등학교로 전근을 오면서 운수 초등학교에 다니던 지둔리 학생들을 전부 가양초등학교로 전학을 시킨 공이 컸다.
담임은 심상봉 이라는 선생이었는데 장난기가 많았다.
“오늘은 받아쓰기를 한다, 한 문제 틀리는데 한 대씩 이다.
애들은 벌써부터 울상이다.
받아쓰기가 끝나고 옆 짝꿍과 바꾸어서 채점을 해서 다 맞은 애들은 남고 틀린 애들은 하나씩 나와서 선생님이 검사를 받아서 30cm자로 틀린 문제 당 한 대 씩 때렸다.
수동이는 작년 운동회 때 입었던, 흰 러닝셔츠에 검정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고무줄이 끊어져 재덕이의 대님 두 개를 이어매고 허리에 고리를 지어서 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아이들이 거의 다 틀린 숫자대로 매를 맞고 수동이와 지봉이만 남아 있었는데 수동이는 두 문제를 틀려서 두 대를 맞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수동이의 입고 있는 모양을 보니 검정 반바지를 여미어 허리띠를 맨 데다 뒤에 있는 매듭이 무슨 토끼꼬리 같은 게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는데 결정적으로 자리를 돌아갈 때 울상을 해가지고 토끼처럼 꾸부리고 가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김수동 이리 나와”
수동이가 자리로 가다 말고 선생 앞에 섰다.
“옷 입은 꼴이 이게 뭐냐”
고리지어 묶은 허리띠 한쪽 끝을 잡아 당겼다.
수동이는 팬티가 흘러내려가는 순간 팬티의 허리춤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앞 춤이 벌어진 팬티를 움켜쥔 모습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열중 쉬어”
손이 뒤로 가면서 흘러내리는 팬티의 뒤를 잡고 다리를 벌렸다.
“차려”
수동이는 울상이 되어가면서도 이번에도 팔을 바짝 붙여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하도 웃음이 난 심상봉의 장난기는 멈추지 않았다.
“열중 쉬어”
“차려”
이제 팬티는 무릎 밑에 내려와 버렸고 그때마다 팬티를 끌어 올려 입으려 안간힘을 써보는데
“앞으로 나란히”
이젠 잡을 수 없다,
반 아이들은 자지러지고 나리가 났고 뒤에 있는 아이들은 책상 위에까지 올라서서 보고 있었다.
“뒤로 돌아.”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심상봉 선생은 수동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팬티는 벗겨서 불알을 움켜쥔 수동이를 교실을 가로 질러 뒷문을 열고 사학년 교실에 까지 가서 문을 열어 보여주었다.
“들어가.”
수동이는 황급히 팬티를 주어입고 허리띠를 매고 들어가 자리에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이지붕 이리 나와”
이지붕은 작년에 서울서 전학 온 아인데 늘 말이 없고 온순한 아이였다.
수동이 하나만 그래 놓으면 놀림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든 상봉은 지붕이의 팬티도 안 입을 반바지를 의자에 앉아서 휙 잡아 당겨 내렸다.
“열중 쉬어.”
“차려.”
“옷 입어 들어가.”
“황명숙 이리 나와”
황명숙이 울상이 되어 나왔다.
“황명숙 이가 제일 좋아해”
명숙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명숙이는 여자니까 봐 준다”
들어가 그러다 보니 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었고 시계를 들여다본 상봉은
“만약에 김수동이나 이지붕을 놀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도 똑같이 할 거니까 놀리지 않도록 알았나.
“네”
몇 칠 후 그 이야기를 진승이 아버지로부터 들은 재덕이 정순에게
“애 고무줄이 끊어졌으면 좀 넣어서 해주지 않고.”
“내가 놀면서 안 해줘요. 그리고 애가 여간 극성이 이어서 고무줄도 안 남아나요.
“고무줄이 극성하고 무슨 상관이야 당신이 신경을 안 써서 그렇지.”
“그래요 그게 다 나 때문이에요 다 이년 때문이라고요.”
“뭘 잘했다고 겨올라.”
‘짝’ 정순의 뺨을 때렸다.
“읍.”
순간 정순은 빠른 판단을 했다
더 말대꾸를 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요즈음 정순은 아이가 들어서서 그런지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고 신경질 적으로 변해 있었지만 잘 참았다.
이튿날 아침 식사가 끝나고 정순은 정자를 용단에게 맡기고 순자를 들쳐 업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학교에서 수동이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정순이 없었다.
수동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밥솥에서 보리밥을 퍼서 열무김치에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고 놀고 돌아왔는데도 정순이 보이지 않았다.
양묵도 낮에 지둔리 소침을 놔주고 점심을 대접받고 왔는데 수동이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네 어미 어디 갔냐.”
“모르겠는데요.”
수동이가 낯놀림을 하면서 대답을 했다.
“이 그 이젠 시아비 때도 안 챙겨 주고 친정에 가서 박혀 있나 그래.”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도 정순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올 리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어느새 수동이는 잠이 들어 있었다.
깜깜한 집에서 불을 켜 봤자 모기 각다귀만 몰려들 것이고 양묵은 장죽에 담배를 꾹꾹 눌러 담아서 화롯불을 뒤적여 불을 붙여서 빨았다.
허기가 져서 그런지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하는 짓거리 하고는 에이 칵 퇴.”
하고 가래침을 뱉어버리고 어기적, 어기적 걸어서 꽃재로 올라갔다.
“저녁은 드셨어요.”
인사말처럼 묻는 순례의 말을 양묵을 먹었다고 해야 하나 안 먹었다고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영감 귀를 잡쉈나 대답이 없어요.”
“응 먹었소.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한 것을 느낀 순례가 양묵의 대답이 신통치 않음을 느끼고
“저녁 자신 목소리가 영 기운이 없어 보여요.”
“응 어제 밤에 년 놈이 싸운 모양이야.”
“그래서요.”
“오늘 아침 조반상을 들고 들어오는 수동 어미가 잔뜩 부어터져 있어서 싸운 게로구나 했지.”
“뭣 때매 싸운 거래요.”
“알 게 뭐야 오늘 점심은 지둔리에 소 침주러 가서 먹고 왔는데. 정자를 데리고 친정에 께미처 갔는지 지금 까지 보이지 않아.”
“그럼 여태 저녁을 못 자셨겠네요.”
“내 차려 드릴게요.”
순례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명자는 숙제를 하는지 엎드려서 공책에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래 명자는 요새 뭘 배우냐?”
“나눗셈이요.”
“그래. 공부는 잘 하고.”
명자가 픽 하고 웃는 사이에 순례가 밥을 비벼서 가지고 들어왔다.
“명자 너도 먹으련,”
“네.”
예측이나 한 듯이 순례는 숟가락을 두 개나 가지고 들어왔다.
한편 재덕은 순복이네 피사리를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불도 안 켜진 집에 수동이 혼자 잠들어 있었다.
“이 놈의 여편네 뭘 잘했다고 친정에 가서 애 새끼 밥도 안 먹이고 들어오질 않아.”
재덕은 수동이가 일어나기 전에 어제 일 대답을 해 놓은 현용이네 피사리를 해주러 갔고 뒤이어 일어난 수동이는 밥이 없으니 굶은 채로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도 안 먹고 아침도 안 먹은 수동이는 수업의 첫 시간이 되기도 전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그러니 선생이 달려오고 훈호 형인 육학년 종영이가 수동이를 업고 태구내 사랑방에 있는 의사에게 데러다 주어서 약을 먹고서 진정이 되었다.
재덕이 수동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집으로 돌아와 부추를 뜯어다 죽을 쑤어 먹이고 수동이 기운을 차린 것 같아서
“수동아 외갓집에 가서 엄마 있나 보고 와라.”
“네.”
수동이가 용단을 찾아가서
“외할머니 울 엄마 안 왔어요.”
“아니 안 왔는데.”
수동이가 돌아와 재덕에게
“아버지 엄마 없던 데요.”
“그래 순자도 없디.”
“네.”
그럼 처갓집에 간 게 아닌데 이놈의 여편네가 어디로 갔지?
네 년이 뛰어야 부처님 손바닥이지.
다음날 재덕은 수동이를 밥을 해 먹이고 일찌감치 서울 명순 이네 집으로 정순을 찾으러 갔다.
재덕은 명순이의 미장원을 찾아가 들어가지 않고 한참을 밖에 숨어서 끈질기게 기다려서 정순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 쫓아가 잡았다.
“당신이 뛰어 봐야 부처님 손바닥이지.”
정순은 속상한 마음에 뛰쳐나와 명순에 집에 머물렀지만 재덕이 찾아올 줄은 알고 있었다.
추석을 얼마 앞두고 작은아버지라고 금순이가 양묵을 찾아 왔었고 정순은 옥수수를 쪄냈다.
재덕은 다른 것은 몰라도 무덕이의 차례를 지냈다.
가을 운동회가 끝나고 현용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현용이 할아버지는 순복이 증조할아버지하고 동갑으로 일 년 정도 더 사시다 돌아 가셨다.
그리고 장사를 지내는 날 희상은 수동이에게 줄 체크무니 남방에 베이지색 바지를 사 가지고 내려왔다.
수동이가 반혼제에서 떡을 받아서 들고 들어오다 희상을 보았다.
애가 어찌나 눈치 밥을 먹었는지 “엄마” 하면서 달려와 안길 법도 하지만.
“엄마 오셨어요.”
하면서 절을 하는 게 전부였다.
“이리 온.”
주춤 하면서 다가온 수동이게
“어디 팔 좀 보자.”
하면서 작년에 부러 졌던 팔부터 살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튀어 나왔던 부분이 작년보다는 덜 나와 있었다.
“아프진 않지.”
수동이의 튀어나온 팔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물었다.
“네.”
“그래 엄마 안 보고 싶었어.”
애가 대답이 없다.
일부러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물어 보았는데 대답을 안 한다 못하는 건지, 미칠 것만 같은 감정을 억누르고.
“수동아.”
“네.”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다.”
그러고 보니 희상은 하얀 옥양목 한복은 한 벌 입고 머리에는 하얀 리본을 꽂고 있었다.
희상이는 수동이가 놀라거나 슬퍼하는 기색을 기대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수동이의 기역으로는 청파동에서 나무방서모자(피스 헬멧)(Pith Helmet)를 쓰고 일을 다니던 모습 외에는 별다를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얼굴이 잊힐 무렵에 한번 다녀간 기억 밖에 없으니…….
그리고 순례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간의 일은 연순으로 부터 들어서 대강은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재덕이 현용할아버지 장사를 지내고 술이 잔득 취해서 몸을 못 가눌 정도가 되어서 도림개말 도연이가 재덕을 부축해서 집으로 왔는데 의야 해 하는 도연에게 재덕은.
“내 안 사람.”
“그러시면 형수님.”
하면서 절까지 하는데. 재덕이
“우리 수동이 엄마지.”
다음날 수동이는 일찍 일어나 순복이네 밤나무 갓에 가서 러닝샤스 속에다 밤을 서너 움큼이나 주어 왔다.
그리고 일요일이라 수동이는 들락날락 하면서 주머니며 러닝샤스 속에서 주어 온 밤을 꺼내어 희상이 에게 주었다.
희상이 밤을 까서 입에 넣어 주려고 하면.
“엄마 난 주우면서 많이 먹었어요.”
하면서 어미의 속을 모르는지 받아먹지를 않았다.
그렇게 다음날 희상 이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동이는 그저께 희상이가 사온 체크무니 남방에 베이지 색 바지를 입고 뛸 듯이 좋아하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대문을 나섰다.
희상의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고였다.
조금 후 집을 나서며, 정순이 에게
“동세 나 이제 가봐야 갯내.”
“내 형님.”
정순은 벨이 꼬였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내가 차지하고 있잖아 하고 마음속으로 위로를 삼으며 대문 밖까지 배웅을 했다.
희상은 동내어귀를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서 새창벌을 지나면서 수동이가 다니는 학교를 올려다보며 몇 번이나 눈물을 훔치며 석고개로 향해 걸어갔다. 그날 학교에서 선생 심상봉이 보니 어라 늘 구멍 뚫린 흰 러닝셔츠에 철지난 바지를 입고 있던 수동이 녀석이 초록색 남방에 세련된 색깔의 베이지 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수동아 너 새 옷 입었구나 누가 사줬니?”
“서울 엄마가요.”
“그래 참 예쁘구나.”
아 무언가 사연이 있는 아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가장 오래된 이홍규 선생으로부터 사연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심상봉은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을동안 밤을 주어다 모으면서 작고 버러지 먹은 밤을 입으로 까서 먹었는데 속껍질을 퇴 퇴 하고 뱉어서 러닝셔츠에는 밤물이 들고 혓바늘이 돋아서 행경나무 속껍질 말려 빻은 것을 정순이 혀에 뿌려 주기도 했다.
겨울이 다가오자 심 선생은 미안한 마음에 수동이가 우리 반에서 둘째로 공부를 잘 한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실은 수동이는 나름대로 명랑하였으나 글씨를 알아도 국어시간에 ‘책 읽을 사람’ 하면 손을 들지 못했다.
그 때는 읽다가 틀리면 다른 사람이 빼앗아 읽는 학습을 하는 방법을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번도 읽지를 못했다.
집에서는 줄줄 읽고 쓰다가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더듬거렸다.
그런가 하면 장도영이 지면에서 사라지더니 중앙정보부에 의해 기소되어 노태우 대위가 장도영을 체포하였는데 간첩으로 이북에 전화를 걸다가 들켰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희 헝겊을 가져오게 해 등사기로 방공 방첩 이라고 인쇄를 해서 가위로 잘라서 이름표 아래에 옷핀으로 달고 다니게 했다.
그리고 재덕은 올해도 무덕이의 제사를 지냈고, 방꼴 재수는 전쟁 통에 불길에서 화상을 입고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떠돌이 여인을 만나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형하고만 살던 재만은 형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는지 형수가 구박을 한다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
군 지프차에 영사기를 실고 와 오학년 교실과 육학년 교실에 사이에 있는 칸막이 문짝을 떼어 내고 홍보영화를 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겨울 방학을 앞두고 차력사가 왔는데 송판에 기압 소리와 함께 주먹으로 못을 박고 이로 물어서 빼곤 했다
그리고 소품 중에 하나인 깡통 모자를 꺼내어 교탁에 올려놓고 맨 앞줄에 앉아서 구경을 하던 수동이를 불러내어.
“야 똑똑하게 생겼구나. 이름이.”
“김 수동이요.”
“그래 수동아 여기 모자에다 캑 해 봐. 자 캑.”
“캑.”
‘땡그랑.’
“캑.”
‘땡그랑.’
“캑.”
‘땡그랑.’
아이들이 와 하고 웃었다.
그렇게 간단한 마술도 곁 드리고 종이를 불을 붙여서 먹고 색종이를 입에서 토해 내고 종이를 잘게 찢어서 국수로 변하게 해서 먹고 손수건으로 쥐를 접어서 쥐가 살아 있는 것처럼 튀어 오르게 하는가 하면 펄펄 불속에서 녹은 납을 입에 물어 식혀서 박수를 받으며 이 차력을 하다가 삼켜서 죽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커다란 칼을 가슴에 대고 철사로 묶은 다음 힘을 가해 철사를 끊어 내기도 했다
보자기를 씌운 공이 보자기 뒤에서 둥둥 떠다니는 마술도 했다.
그리고 시뻘겋게 달은 부젓가락에 손잡이 부분을 쥐고 끈으로 묶은 다음 확 잡아당겨 시뻘겋게 달은 부분을 통과 시켜서 박수를 받았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는데 이지봉 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서울로 전학을 갔다는 소리만 들렸다.
그 일이 있고서 설 때 재만은 양묵에게 세배를 와서 수동이하고 놀다가.
“수동아 나 차력 할 수 있다.”
하면서 화로에 꽂혀져 있는 부젓가락을 손에 움켜쥐고 얍 하면서 잡아 빼서 손바닥을 데어서 아파했다.
그리고 바로 꽃재 순례에게 세배를 갔는데, 순례가 재만 에게
“형수가 잘 해주냐?”
하니 재만이 낯놀림을 했다.
“왜 잘 안 해 주냐?”
재만이 고갯방아를 찧었다.
그러면서 손을 보고서
“손이 왜 그러냐? 데었냐?”
“형수가 부젓가락으로 지졌어요.”
“이런 세상에?”
그렇다고 순례에 입장에서는 조카며느리에게 따질 게제도 아니고 사십이 넘어서 장가를 간 조카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부터는 재만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봄이 명자와 영순이는 육학년 수동이는 사학년이 되었고 담임은 송기봉 선생이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정순이 아이가 나올 것 같다고 하면서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치마만 입고 아이 낳을 준비에 들어갔고 재덕은 수동이에게
“수동아 가서 외할머니 오시라고 해라.”
수동이는 아침도 못 먹고 물막골로 가서 용단에게
“외할머니 엄마가 애기 낳으려고 해요. 빨리 오시래요.”
그 시간 정순은 꿇어앉은 재덕의 팔에 매달려 힘을 쓰기 시작했다.
용단이와 수동이가 도착했을 때에는 정순이 딸을 막 낳은 직 후로 용단이 들어오자 바로 재덕은 태를 가르는 것도 잊고 힘들여 출산한 정순을 위로하는 것도 없이 땀에 젖어 방문을 나왔다.
이번엔 꼭 아들을 낳아야 할 덴데 이번에 꼭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날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삼신할머니께 얼마나 빌었는데. 정순은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그렇게 울면서 용단이 태를 가르는 걸 지켜봤다.
용단의 도움으로 후산을 하고 먹히지 않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넘기고 있었다.
“엄마 수동아빠 어디 갔어요.”
“응 지개 지고 산으로 가더라.”
“수동이는?”
“학교에 갔지.”
정순은 재덕이 다음에 아들을 낳으면 되지 하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으나 매정한 사람은 그냥 산으로 나무를 하러 떠난 것이다.
용단이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용단의 마음은 그뿐만 아니었다. 며느리 삼순도 아직 태기가 없어 딸이라도 좋으니 제발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 이 간절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묵이 왼새끼를 꼬아 숯덩이와 솔가지를 사이사이에 넣고 금줄을 대문에 해 걸었다
그리고 이름은 경자라고 지었다.
첫댓글 그 선생 성추행을 떠나서 완전히 인간 말종이네요.
그렇수 있는지 의문이 가내요
그런 선생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