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23 오늘 단청 수업 첫날이다. 지금까지 배우던 불화반 수업과 겹친 데다 불화반 반장님도 단청 수업을 듣느라 불화수업에 빠지게 되어 하릴없이 불화반 수업을 다른 요일로 옮겨줄 수 있느냐고 이야기해놓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단청 수업은 마포 불교방송에서 진행한다. 다른 데는 단청 자격증반 수강료가 3개월에 60만원도 하고 한 달에 30만원씩도 한다는데 거기는 3개월에 8만원이다. 10시부터 시작이라 아침 7시 40분에 건희 학교 가는 시간에 함께 출발했더니 9시 반쯤 도착했다. 오늘은 연화주문양을 설명 듣고 그대로 따라 그렸는데 당연히 컴퍼스나 디바이더 그런 거 필요할 줄 알고 도구들을 챙겨갔는데 전혀 쓰지 않고 자와 연필로만 그린다고 한다.
뭔 이름이 그리 많은지, 아찔하다. 먹당귀, 황실, 녹실, 직휘, 휘에는 사람인자 닮은 인휘, 늘어놓은 늘휘, 엮어놓은 바자휘로 나뉘고, 직휘에는 색직휘, 금직휘, 궁궐에서 주로 쓰는 광두정으로 나뉘고 색직휘는 또 장단직휘, 하엽직휘로, 금직휘는 결련금, 십자금으로 나뉘고 양 끝에 이빛이 있는 것은 온질림, 한쪽만 이빛이 있는 것은 반질림, 곱팽이 문양, 석류 문양, 항아리 문양, 낙은동 문양, 뒤집힐번자를 쓰는 번엽, 수직문양은 당기, 수평문양은 긋기, 연화장구머리초, 연화병머리초, 직휘는 녹실 사이에 들어가고, 아, 머리가 빙빙 돈다. 며칠 머리 좀 써야 할 거다. 남들은 지난해부터 공부하는 이들이 많다. 늦었지만 바짝 매달려볼 테다.
단청 수업은 2시까지인데 3시까지 수업하다가 종로로 판소리 수업 갔다. 첫 수업이다. 개인수업. 심청가 눈대목을 배우기로 했다. 판소리 배우기 전부터 다섯바탕 중 가장 좋아하던 소리가 심청가인데 여러 바탕 소리 중 어느 걸 배울 거냐 하기에 심청가를 골랐다. 매 주 금요일마다 수업하기로 했다. 올 초 철학원 하는 동무가 올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건데 심리적으로 훨씬 만족스러울 거라 해서 더 배울 짬도 없고 여유도 없거니와 기왕 배우던 거 다지기도 정신없을 거라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다.
며칠 전에 새로 주문 들어온 탁본체험 두 점이 있는데 어제 작업하다가 그대로 둔 채라 내일부터 며칠 탁본용 서각 작업하러 나다녀야 한다. 아버지 몸이 좋지 않다고 하시고 전주 사는 동생이 가게를 낸다고 인테리어를 봐달라고 해서 계획하기로는 겸사겸사 내일 고향에 내려갔다가 전주 들러 일요일에 올라오려고 했는데 탁본 서각 작업을 마무리하자면 며칠 미뤄야 할 듯하다.
2010.4.26 탁본 작업 며칠 만에 어제는 탁본 몇 장 뜨고 오늘 채색까지 다 마쳐 마감했다. 아무래도 습식 탁본 두 점으로는 행사에 원만하게 이뤄지기가 모자랄 것 같아서 삼족오 탁본 두 점 있는 걸 빌려줬다. 만족스러워 한다. 체험하는 이들이 적으면 시간이야 더 걸리지만 재미도 있고 더 깨끗하게 나오는 습식 탁본으로 하고 만약 사람들이 밀리면 빠르게 할 수 있는 건식으로 작업하라고 일러줬다. 탁본 준비물과 순서를 적은 메모와 탁본을 건넸다. 일 이야기 다 끝나고 소개시켜준 선생님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는 걸 건희 저녁도 먹여야 하고 오늘부터 중간고사 시험이라 잔소리도 할 겸 며칠 후에 다시 뵙자 하고 그냥 왔다. 부리나케 돌아와 장 본 짐 푸는데 '찌개용 목살' 보고 건희가 보더니 그런다. "또 김치찌개예요?" "응. 또라니, 왜?" "맨 김치찌개 아니면 된장찌개, 그렇게 돌잖아요." "엊그제까지 미역국 먹었잖아." "그러니까 김치찌개 아니면 된장찌개 아니면 미역국이잖아요." "그 전에는 감자탕도 먹었잖아. 돼지갈비도 먹고." "그러니까요." "야, 그 전에는 엄나무 백숙도 먹었잖아. 또 그 전에는 순두부찌개도 먹고. 우동도 먹었고." "새로운 메뉴를 좀 개발해 봐요." "그럼 뭐, 햄버거 같은 거?" "그런 거 말고도 닭 꼬치나 부대찌개도 있고 그런데 맨 같은 거만 먹잖아요." "닭꼬치는 반찬 아니거든. 그리고 집에서 먹는 게 그렇지. 남들은 뭐 특별한 거 먹는다든? 아빠는 이게 최선이야. 더는 못해. 불만 있으면 나중에 너 커서 네가 해먹어." 말로는 최선이라고 해놓고 아이 말이 걸려서 김치찌개만 해서 저녁 먹으려던 생각을 바꿔 결국 똑같은 재료지만 반으로 나눠 두부 따로 삶고 김치와 고기를 볶아 두부김치를 더 만들었다.
2010.5.5 금요일 판소리 수업을 바꿔 토요일에 하기로 했다가 다시 오늘로 바꿨다. 그래도 괜찮다. 어제 미리 전화해주셨으니 고마운 일이다. 어쨌거나. 12시 수업인데 적벽가 불러보라고 해서 15분짜리로 맞춰 두 대목 부르고 수업 들으니 2시가 다 되었다. 배 무지 고프다. 다른 분 수업 받으러 오셔서 같이 밥 먹자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나왔는데 배 무지 고프다. 식당에 혼자 들어가 밥 먹는 거 참 싫어했는데 이제 그냥 먹을 만하다. 순대국 먹으러 들어갔다. 몇 숟가락 뜨는데 입에 이물감 있다. 꺼내 보니 머리카락이다. 그것도 한 뼘 넘고 가느다란 여자 머리카락. 복지개 뚜껑에다 얹어놓고 그냥 먹었다. 나중에 김치 떨어져 아주머니 불러 김치 조금 더 달라고 말하면서 머리카락 얹은 뚜껑 가리키며 순대국에서 나왔다고, 저는 괜찮은데 조심하시라고 조용히 말했다. 아주머니 얼른 사과하더니 새 걸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아니, 됐다고, 거의 다 먹었다고 하고 마저 먹고 일어섰다. 나오며 계산을 하려는데 다시 사과를 하면서 돈을 안 받겠다고 한다. 아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괜찮다고, 이럴 거면 얘기도 안 했을 거라고, 그러지 말고 받으시라고 해도 거듭 그냥 가라고 해서 떠밀리다시피 나왔다. 다음에 갈 때 다시 들러 국밥 한 그릇 팔아드려야 하리.
집에 돌아와 어린이날이라고 건희 좋아하는 닭갈비 먹으러 갔다가 생각나서 오늘 있었던 일을 건희에게 하며 빚을 졌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했더니 듣다가 그런다. "아예 이야기하지 말고 그냥 나오시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말하지 않았으면 그 식당에서 모르니까. 모르면 더욱 조심하지 않게 되니까." "어차피 말해도 이미 고칠 수는 없잖아요. " "이미 들어간 머리카락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을 해줘야 앞으로 조심하게 되지. 나야 상관하지 않고 그냥 먹지만 화내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가 싸움이 날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조용하게 얘기해주면 앞으로 생길 지도 모르는 나쁜 일을 미리 막아주는 것도 되잖아." "아, 역시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생각이 있나 봐요. 저는 그렇게까지 멀리 생각을 못 했는데요. 역시 우리가 가진 뇌세포의 5퍼센트만 쓴다는 말이 맞나 봐요." "생각은 끝이 없는 거 같아. 생각의 방법도 사람 수만큼 그렇게 많을 테고 생각의 깊이도 많을 테고." "그래도 기분은 좋았죠?" "응.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
첫댓글 여전히 건희다운 건희! 화이링링링! *^^*
건희는 커도 건희더라고요. 지난 25일은 소영이 등록금 만들어 내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모임에 못 갔습니다. ㅎ
단청이 그리도 복잡한 것이군요~~~
명칭도 어렵고요. 처음 생각하기로는 제도하듯이 도구를 쓰는 줄 알았는데 눈짐작으로만 그리더라고요. 도구 없이 작업하려니 더 난감하더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