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삼잎국화 잎
올봄 사월 어느 날 아침 창원천 천변으로 산책을 나섰더랬다. 주말은 근교 산행을 나서 산나물을 마련해 우리 집 식탁은 물론 이웃이나 지기들에게 나누어 봄 향기를 맡고 있을 때였다. 그날은 주중 평일이었는데 창원대로가 걸쳐진 창원천교를 지나 덕정교 부근 이르자 대형 굴삭기를 동원해 냇바닥을 정비했다. 여름 홍수를 대비해 창원천 유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작업인 듯했다.
냇바닥엔 상류로부터 흘러온 퇴적물과 함께 갈대나 물억새가 지천으로 자란다. 봉암갯벌까지 멸종 위기 동물 2급으로 분류된 기수갈고둥을 비롯해 칠게 집단 서식지다. 겨울 철새는 물론 여름새들도 개체가 다양함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그곳에는 삼잎국화가 어디선가 씨앗이 흘러와 퍼트려져 자랐다. 봄을 맞아 새움이 돋는 삼잎국화는 중장비에 의해 흙더미로 파묻기 직전이었다.
삼잎국화는 원산지가 북미지만 오래전 우리 땅에 들어와 토종이 되다시피 한 귀화식물이다. 꽃을 가꾸는 웬만한 화단에는 쉽게 볼 수 있으며 텃밭에 자라면 꽃보다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나물이다. 잎사귀가 세 갈래로 결각이 져 대마의 잎을 닮아 삼잎국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키가 높이 자라 ‘키다리나물’이나 ‘절나물’로도 불리는데 북한에서는 ‘세잎나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그날 창원천 산책을 나섰다가 흙더미 묻히기 직전에 놓인 삼잎국화 잎을 가득 따서 배낭은 물론 봉지를 양손에 들었다. 집으로 곧장 돌아갈 처지가 못 되어 교외에서 주어진 봉사활동을 하러 나갔다. 1번 마을버스로 가술로 나가 찾아간 마을도서관 사서와 아동 안전지킴이 동료들에게 안겼더니 고마워했다. 도심 하천 하류 삼잎국화 잎을 시골 사는 이들이 맛보게 한 셈이었다.
그 일 이후 차량 통행이 혼잡한 근교 국도변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도 삼잎국화가 자람을 알게 되었다. 묵혀둔 관사 담벼락 밑에 삼잎국화는 키가 높이 자랐는데 산나물 철이 지나 잎사귀가 쇠어도 몇 줌 따 나눔을 하고 우리 집 식탁에도 올렸다. 장마가 시작되던 어느 날 폐가로 방치된 사택 담벼락 곁의 높이 자란 삼잎국화는 잎줄기를 문구용 칼로 잘라 제초하듯 눕혀 놓았다.
보름께 전 한림정으로 나가 행정복지센터 주택지를 지나다가 여러 화초 가운데 삼잎국화가 노란 꽃을 피워 반가웠다. 그 집 주인은 삼잎국화를 좋아하는지 뜰 여기저기 삼잎국화가 보였는데 쓰러질 듯 키가 높이 자라 깻단을 묶듯 잎줄기를 끈으로 감싸 묶어주었다. 앞서 내가 국도변 초등학교 묵혀둔 관사 뜰의 삼잎국화 줄기를 잘라 놓음은 새순이 돋으면 나물로 삼기 위해서였다.
내가 텃밭을 가꾸면 장마철에 길러보고 싶은 작물이 열무 농사다. 퇴직 첫해 재작년은 우연한 기회 연이 닿은 텃밭이 생겨 열무를 심어 잘 가꾸어 먹었다. 여러 해 전 북면 지기 텃밭 자투리땅에도 장마 기간 열무 농사를 잘 지었던 적이 있다. 열무를 대신 자연에서 구하는 재료는 돌나물인데 그걸 마련할 틈이 나질 않았다. 열무와 돌나물에 비길 만하겠느냐마는 삼잎국화로 대체했다.
한 달째 진행 중인 장마가 끝물인 칠월 하순 화요일이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 창원역에서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앞서 언급한 근교 국도변 초등학교 방치된 관사로 갔다. 운동장 가장자리는 쉼터로 원두막을 지어놓아도 다녀갈 아이들이 없어 먼지만 쌓여 갔다. 연못에 수련은 아침을 맞아 하얀 꽃잎을 펼치고 가장자리에는 꽃대가 솟은 부처꽃이 자주색 꽃송이를 층층이 맺어 피었다.
거미줄이 쳐진 울타리 너머로 가 삼잎국화 줄기를 잘라둔 현장을 살펴봤다. 쓰러트려 둔 가닥은 시들었고 바닥에는 새로운 순이 보드라운 잎을 펼쳐 무성했다. 지난 봄날 창원천 천변에서 봤던 그 삼잎국화가 같았는데 채집량은 많지 않았다. 장마로 귀한 대접받는 푸성귀인데 이만큼도 어딘가 싶었다. 봉지를 채운 삼잎국화는 인근 편의점에 맡겨두고 마을도서관을 찾아 책장을 넘겼다. 24.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