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나의 피난처
밤 한 시 반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불을 켜자
내가 떠나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것 같아도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니고 널려 있는 책들
어떤 사람은 본래의 그 모습을 보고 안도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쓸쓸함을 느낀다고도 하는데
지금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애시당초 잃어버릴 것이 별로 없는 집의 이점이란
집을 비워도 그다지 집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시골에 있는 자기 매부 댁에서 며칠간 머문 뒤에 돌아온 카프카에게 나는 인사를 했다.
“댁으로 돌아오셨군요.”
카프카는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댁이라뇨? 나는 부모의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물론 자그마한 내 방은 가지고 있긴 합니다.
이것은 내 집이 아니라., 점점 더 불안에 빠지기 위하여
내 마음 속의 불안을 숨길 수 있는 한낱 피난처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프카가 그의 집을 더 깊은 불안에 빠지기 위한 피난처라고 여겼다면
나는 나의 집, 내가 거처하고 있는 이곳을
그 ‘무엇‘ 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지,
가끔씩 이 집에서 빨리 떠나고 싶은
그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집인데도
나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 집
문득 규슈의 눈 수북하게 쌓인 길에서 보았던 상고대며
기댄 내 몸을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받아주었던 그 나무들이 떠오른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규슈의 호텔이나
내가 내 마음을 부려놓고 쉬었던 그 바닷가도 나의 집이고 방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나의 집은 과연 어디인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길에서 헤매는 길손이라는 것뿐,
그렇다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내가 돌아 다닐 그 길은
또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2022년 12월 27일
출처: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