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를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화두를 들고 가고 화두를
들고 오되 아무 자미가 없어.
먹먹해가지고 아무 자미가 없다가 쪼끔 자미가 생긴다는, 생긴 때가 온단 말이여.
화두를 들랴고 안해도 들어지고, 알 수 없는 화두를 드는데 뭐라고 표현헐 수 없는 그 기쁨이 있고, 있단 말이여.
그럴 때에 번뇌, 번뇌심을 내지를 말아라.
환희심(歡喜心)을 내지를 말아라.
‘아 공부가 잘되는구나.
계속해서 이렇게 좀 되았으면...’ 그러헌 생각도 내지를
말아라. 그 생각이 벌써 화두가 아니니라. 그렇게 공부가 잘 되아가다가 뚝 변해가지고 영 시간이 지루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골이 깨끗지를 못하고 먹먹허고
몸이 뒤틀리고 이렇게 또 공부가 영 안 될 때가 와.
그러더라도 번뇌심을 내지를 말아라.
공부가 시원허니 잘되는 그러헌 경우가 오더라도
환희심을 내지를 말아라.
이것이 공부해나가는 사람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여.
늙은 쥐가 쌀 두지(뒤주)를 쏠듯이.
새끼 쥐는
여가 조끔 썰다가, 저가 조끔 썰다가,
그래가지고 공연히 쌀 두지만 긁고 다니지 쌀 맛을
못 보는데,
늙은 쥐는
여기 좃다 저기 좃다 하질 않고 한 군데만 계속해서
박박박박 밤새도록 쏠아가지고 기어코 구녁을 내거든.
그래가지고 그 구녁으로 쌀을 빼먹는다 그 말이여.
늙은 쥐가 쌀 두지를 쏠듯이 다못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꽉 맥힌 상태에서 자기에 본참공안을 관조해나갈 때에
반드시 우리는 의단을 타파허게 된다.
앉어서나 누워서나 서서나 다 헐 수 있는 것이고
일헐 때에도 헐 수가 있는 것이지마는,
그래도 우리 중근기 하근기는 좌중에, 떠억 좌중에 가장 득력허기가 쉬워.
그래서 고래로부터서 참선을 ‘좌선’이라 이렇게 일러왔단 말씀이여.
그러니 될 수 있으며는 앉아서 정진을 헐랴고 애를 쓰고.
또 그렇다고 해서 서서나 다닐 때나 그럴 때 화두를
놓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여.
이 정진이라 하는 것은
동중에서나 정중에서나 항시 일여허게 공부가
되아가도록 용심을 헐 것이여.
이렇게 말하면 너무 또 앉어서만 할랴고 앉은 것에만
너무 국집을 허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재미가 없는
거여.
앉어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너무너무 고요해가지고
편안하고 고요하고 말로써 표현헐 수 없는 그러헌 경지에 들어갔을 때에 깜짝 잘못 허며는 화두를 망각하는 수가 있는데,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은 경지에 취해가지고 화두를 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조심을 해야
할 점이여.
아무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화두가 역력해야 혀.
알 수 없는 의심이 독로해야지,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다고 해서 화두에 대한 의심을
놓쳐버리면 그 공부는 잘못 들어가는 공부다.
공(空)에 떨어져가지고
영 깨달을 분이 없는 것이여.
그러니 고요한 가운데에 화두에 대한 의심이 떡 깨끗이 허도록, 독로허도록 그렇게 공부를 잡두리를 해가며는
반드시 확철대오할 때가 있을 것이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