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2)
마르크스가 추구한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진리였다. 다른 사람들의 저서에서 진리를 발견하면 그는 자신이 새로 종합한 이론 속에 그것을 결합하려고 애썼다. 그의 사상의 기본 방향이 모습을 갖춘 파리 시절에는 특히 그랬다. 결과에서
독창적인 것은 어느 하나의 구성요소가 아니고 중심 가설이다. 중심 가설이 각 구성요소를 나머지 모든
구성요소들과 결합시킴으로써, 부분들은 단일한 체계의 전체 안에서 전제와 결론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59)
마르크스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매우 뛰어난 유머감각을 갖고 있었던 그는 평생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경박했다거나 천박했다고 평가한 사람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러다가도 시대상황이
바뀌어 긴박하고 비참한 분위기가 조성되면, 늘 그렇듯이 곧 정신을 차리고는 정력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탐구하고 비판하는 데 몰두했다.
(77)
따라서 모든 시대를 진실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과거의 관계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는 그 자궁 속에 미래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고 앞으로 올 시대의 예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용의주도하고 명백한 사실증거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역사가라고 해도 이러한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관계를 고려할 경우에만 역사가는 자기를 다루고 있는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올바른 전망 속에서 기술할 수 있고, 중요한 것을 사소한 것으로부터 구별해낼 수 있다. 또한 그 시대의 결정적 특성을 우연적이고 이차적인 요소들-이 요소들은
어느 때 어디서든 뿌리박고 있지도 않고 한 시대의 특정한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로부터
구별해낼 수도 있다.
(90)
진정한 자유는 외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를 극복하는 데 있다. 이것은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는 자신이 살고 있는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자신을 필요적으로 지배하는 법칙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합리적 본성, 즉 준법적 본성의 잠재력들-이러한 잠재력들의 실현은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을 ‘유기적으로’ 포함하고 있고 뭇 개인들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한다-을 현실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135)
피지배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항적이 되고 결국 전제적인
소수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데 생명을 바친다. 상황이 유리할 때는 피지배자들은 소수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피지배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노예 상태에 머무른 탓에 점차 타락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 주인들의 이상보다 더 높은 이상을 품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피지배자들이 권력을 쥐게 되더라도 그들은 자신을 억압했던 과거의 지배계급 못지않게 비합리적이고
부정한 방식으로 권력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그들이 새로운 피억압계급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차원에서의
투쟁을 또 다시 시작된다. 인류 역사는 그러한 투쟁의 역사이다.
(150)
엥겔스는 또한 치밀하고 명쾌한 지성과 현실 감각의 소유자였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급진주의자들 중에 이러한 점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만일 있다고 해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직접 독창적인
이론을 만들어 낼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실천적인지 그 여부를 가려내고 그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자기 생각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데다
성미도 까다로워서 글에 종종 서투르고 과장되고 모호한 구석을 내보였던 것과는 달리, 엥겔스는 글을 빠르면서도
알기 쉽게 편이었고 대단히 헌신적이면서 참을성이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이상적인
동지이자 공동 작업자가 될 수 있었다.
(185)
대립은 언제가 경제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계급들 사이의 충돌이다. 계급이란 사회 구조를 결정하는 생산 제도들 속에서 각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자신들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
내의 인간 집단으로 규정된다. 개인의 지위는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결정되며, 사회적 생산 과정은 주어진 단계에서의 생산력의 특성과 발전 정도에 직접 의존한다. 인간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자기 이외의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과 맺고 있는 경제적 관계들에 따라
행동한다. 생시몽이 말했듯이 이 관계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생계 수단의 소유권에 바탕을 둔 관계이며
모든 필요 가운데 가장 긴급한 것은 생존의 필요이다.
(186)
마르크스는 역사의 본질을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연의 왕국에 속해 있으므로-자연의
왕국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자신을 완전히 실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곧 인간이 신비롭고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보이는 힘들의 노리개에서 벗어나 그 힘들과 자기 자신을 지배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다.
(194)
그는 인간 생활에서 행위의 근본적 원천은 인간들이 경제 투쟁에서
맺고 있는 계급 간의 연합 관계에 있으며, 이러한 원천은 인간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으려면 한 가지 요소만을
알면 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지배계급에 속하는가 아닌가, 그들의
행복한 삶이 지배계급의 성공이나 실패에 달려 있는다, 그들이 기존 질서의 유지를 꼭 필요로 하는 위치에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사회적 위치가 그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주원인이다. 일단 이것을 알기만 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개인적 동기와 감정들, 이를테면 그들이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관대한가 인색한가, 현명한가 어리석은가, 야심적인가 수수한가 따위는 연구와는 비교적 무관한 것이 된다.
(216)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현상을 유지하고자 할 뿐 세계를 바꿀 생각이 없다. 이들은
자기 계급의 현상 유지를 위해 잠정적 도구로 쓰이는 개념들에 의거해서 행위하고 생각한다. 부르주아들이
사용하는 개념은 자기 계급과 함께 발전한 특정한 역사단계의 산물이며, 외양에 상관없이 부르주아 계급의
현상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263)
정신적인 고통에는
오로지 하나의 해독제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 칼 마르크스 -<보크트 씨>
(356-357)
<자본론>은 처음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얼마 안 있어 점점 유행해지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놀랄 정도의 명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자본론>은 신념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쓰여진 그 어떤 저술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본론>은 이 책을 한 줄도 읽지 않았거나 혹은 때때로
등장하는 모호하고 애매한 문장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읽은 수백 만의 사람들에 의해 맹목적 숭배, 또는
그 반대로 맹목적 증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자본론>의
이름으로 혁명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반혁명 세력은 적의 무기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면서 은밀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무기를 집중적으로 탄압했으며 지금도 탄압하고 있다.
(405)
이에 비해 마르크스가 맞서 싸운 상대는 당대의 천박하고 냉소적인
사회였다. 그가 보기에 기존 사회는 극심한 혐오감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저속화하고 타락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타락한 사회보다 더 강하고 질겼다. 마르크스는
정신적, 정서적으로 외부의 영향에 민감하지 않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의지 또한 강했다.
마르크스를 괴롭혔던 원인들은 밖에 있었다. 그것은 빈곤과 질병, 그리고 적의 승리였다. 그의 내적 삶은 단순하고 확고했던 것 같다. 마르크스는 세상을 단순히
흑백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에게는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은 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 편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 편을 위해 싸우는 데 평생을 보냈으며, 결국에는 그 편이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407)
마르크스의 사상은 ‘역사
과정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관념이다’라는 명제를 논박하기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스스로의 테제의 힘을 약화시켰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개인이 환경이나 다른 개인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그때까지 널리 퍼져 있던 인식에
변화를 일으켰고, 또 그러한 관계 자체까지 변화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의 행위 방식과 사유 방식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적 힘들 중에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