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이곳에 자주 들르는 사람입니다.
밑에 박순종님의 글과 관련된 여러개의 글들을 읽고 제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건축사사무소의 여러 문제중 고용문제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분도 계시고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문제삼는 분도 계십니다.
제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누구를 비난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이 계통에서 계속 몸담고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착잡한 마음에 제 모습이 자꾸 떠올라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글을 씁니다.
제 나이 올해로 40입니다.
건축이 좋아 잘 다니던 대학도 중퇴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입학시험을 치뤄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4년간 결혼도 하고 취직도 했습니다.
직장도 건축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인테리어 회사를 택했습니다.
3년 가까이 다니다 제대로 배워야 겠다는 마음에 건축사사무소로 옮겼죠.
꽤 알아주는 곳이었습니다. 초봉 45만원 이었는데 갓난 아기와 같이 3식구가 살기엔 턱없이 부족했죠.
아무튼 그 때는 이것 저것 배우는 통에 생활에 쪼들리면서도 생기가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건축설계분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습사원부터 시작해서 대리 과장 실장을 거쳐 건축사인 지금에 이르기까지저 또한 여러 사보님들이 겪었던 일들을 절절이 겪었습니다.
명절보너스는 커녕 기본적인 월급마저도 제때 지급이 되질 않아서 마음고생이 매우 심했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아기 분유값도 해결하지 못하는 못난 가장이었으니까요.
심한 자책감에 남몰래 눈물도 흘리고...
처음 입학한 대학의 동창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어렵지 않게 취직해서 자리잡고 잘 지내고 있는데 나는 뭔가. 나 하나의 욕심때문에 가족들까지 고생하게 만드는구나 하니... 비참해 지더군요. 이럴려구 학교에서 그렇게 고생했나 싶기도 하고.
경력이 쌓여 건축사 시험 응시자격은 주어졌지만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고 또 달라질 것같지도 않아서 거들떠도 않보고 한 때는 건축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른 길을 갈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었습니다. 동네 슈퍼를 할까... PC방은 괜찮을까... 이것저것 많이 알아보기도 했었죠.
그렇게 몇년을 지낸 후 이왕 어렵게 시작한 길 끝을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건축사시험에 처음 응시를 했습니다. 작년이었죠.
운이 좋았나 봅니다. 합격통지서를 받아들었을땐 당사자인 저는 무덤덤하였는데어머니와 아내가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올해 초에 개업을 하였습니다.
직원도 2명 구하고 의욕적으로 이것저것 준비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제 마음대로 되지는 않기에 여전히, 아니 그 전보다 마음고생은 더 심합니다.
이제 개업 9개월에 접어든 햇병아리가 무얼 알겠습니까마는 이렇게 힘들줄은 예상못했습니다.
제 사무실 직원들한테는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겪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4년제 대학 졸업한 신입사원 연봉으로 천이백만원에 식대 별도. 전문대 졸업하고 3년 경력인 다른 직원은 천오백만원에 식대 별도.월차에 격주 토요일 휴무를 하고(저는 일요일에도 나옵니다^^)
가급적 야근이 없게 건축주와 스케쥴을 조정합니다.
물론 이것도 타 업종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차차 개선해 나가자고 직원들에게 이해를 구했습니다.
개업후 9개월간 한 일들을 돌이켜보니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꽤(?) 수주를 했더군요.
예상하시겠지만 설계비는 많지가 않습니다.
평당 만원짜리 축사부터 5~6만원의 근생, 주택의 경우 7~8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감리비를 별도로 청구하지 못하는 것은 새로울 것이 없겠죠.
이정도 설계비를 받는 것도 경쟁이 치열한 주변사무소에 비해 다소 높게 책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겠지만 남는 것이 없더군요.직원들 봉급주고 설비, 전기, 소방, 구조계산등 외주용역비와 기타 잡다한 사무실 운영비를 제하면 오히려 모자라더군요.
그나마 깎인 설계비도 제때 입금이 않되니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요.
수금을 하기위해서는 통사정을 해야합니다. 마치 돈을 꾸기 위해 애걸복걸 하듯이 말이죠.
그중에는 잘 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난감해 하더군요.
제가 그렇게 모질지가 못해서인지 대부분은 건축주들의 사정을 이해를 하고 넘어갑니다.
지금 제 사무실의 경우 미수금된 설계비가 약 사천정도 됩니다.
한 두달안에 수금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없이 신용대출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꾸려가고 있는데 참으로 정신이 사납습니다.
저요. 월급이 없습니다. 박순종님은 그나마 50만원이라도 "월급"이 있다지만 저는 마이너스 통장에서 계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작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늘보다는 내일이 좋아지겠지, 금년보다는 내년을 기약하자, 개업후의 핸디캡으로 생각하자... 무엇보다 저와 직원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으니 반의 반이라도 성과가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인간이기에 굶으면서 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렇게까지 할 마음도 없구요. 작지만 이것도 사업인지라 경제원리에 의해 이윤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윤이 생기면 재투자도 해보고 싶고... 그런 여건을 만들기 위해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50평 주택을 계획,설계하면서 밤 늦게까지 고민하며 모형작업도 하고 전기, 설비설계도 외주를 줍니다.
그런다고 설계비를 올려받지는 못하지만 하나 둘 하다보면 인정을 해주지 않겠나 싶고 최소한 우리 팀의 실력을 키워 기술적 경쟁력향상에는 도움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어 오늘도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아시나요. 지금의 설계비로는 외주비용까지 부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어지간한 전기, 설비도면은 건축사사무소 자체적으로 대충 작성한다는 사실을. 건축설비를 전공하지 않은 직원에 의해 비슷한 도면을 참고삼아 대충 그려 착공신고시 관청에 제출합니다. 물론 이 엉성한 도면도 제대로 검토할 줄 아는 공무원이 없기에 별 무리없이 필증이 나옵니다.
그리고 건축주들도 대충 하지 돈들여서 꼭 외주를 줘야 하냐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이들을 이해시키기가 만만치 않더군요.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하는 길임에도 당장의 비용계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언젠가 한 건축주로부터 50평 주택의 설계에 대한 문의가 온 적이 있었죠.
그때 이런저런 얘기와 함께 설계비는 육백만원이라고 얘기를 해주었더니
알았다며 생각해보자고 하며 돌아가더군요.
그 분이 문닫고 가자마자 저는 잊어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시는 안올 사람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아직 연락이 없으니 제 직감이 맞은거겠죠.
말이 꽤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럴바에야 왜 개업했냐고 하시면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자격증 취득하면 너나할 것 없이 다 개업해서 문제라고 하시면 저도 그 범주에 드는 하나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군요.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가 꾸려가고 있는 것은 아직도 간직하고있는
건축에 대한 애착과 매력 때문입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지금 이나이에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어서 한다고 하면 솔직한 답변이 될까요.
이곳에 글 올리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지금의 어려움을 통감하고 나름대로의 해결방안까지 생각하시는 분들 같습니다.
님들의 여러 글들을 접하면서 어떤식으로든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사보의 입장에서 글을 올리시는 분들중 건축사(소장)들을 싸잡아
비난하시는 분이 있던데 건축사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직원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소장들도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그 분들이라고 능력이 없어서, 돈 벌기 싫어서 그러고 있겠습니까.
직원들이 보기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으십시오.
소장이 악덕인 듯 싶으면 노동부에 진정을 하든 소송을 제기하든 형사고발하든 하세요.
저는 실장으로 있었을때 사장한테 사기까지 당해봤었습니다. 검찰에 고발하려고 하기 직전에 망신을 주고 해결을 봤지요.
그런 사주가 있다면 이곳에서 욕할 필요 없이 적극적인 절차를 밟으면 대부분 해결이 됩니다. 그런 곳에는 있을 필요가 없으니 미련없이 나오세요. 생각보다 괜찮은 사무실이 많이 있답니다.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자신의 입장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조금씩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할 때 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
지금 박순종님을 비롯 여러 뜻있는 분들이 소리높여 외치는 것은 다름아닌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여겨집니다.
십인십색이라고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방법론의 차이일 수도 있구요.
해결방안 또한 여러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혼자서는 무엇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사람이 뭉칠 때 몇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고 궁극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장서서 눈물겹도록 힘주어 외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 망정
트집이나 잡고 비아냥거려서야 도리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다소 생각이 틀리고 접근방법에 동의를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힘을 실어 주자구요.
소장 혼자 잘 살자고 그러는게 아닐진대 도와 주자구요.
그러지 못한다면 그냥 잠자코 계시던지.
직원들 박봉에 시달리게 하는게 직원들의 문제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소장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씩의 양보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