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관람 기
박래여
우리 고장에도 도깨비 영화관이 생겼다. 이 작은 고장에 영화관이라니 관람객이 있을까? 의문부터 들었다. 개인이 영화관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고 일반인 상대가 아니라 경상남도 교육청 미래교육원을 찾아오는 단체 학생을 위해 군에서 지은 영화관이 아닌가 생각했다.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우리 고장에 미래 교육원을 지어 개관했다. 날마다 관광차가 줄을 잇는다. 경남교육청 미래교육원과 의령군이 연계해 지역 내 23곳 체험 장에서 망개떡 만들기, 전통공예품 만들기 등, 지역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또한 의령에 다녀가는 학생들은 의령군내 기존 식당 20여 곳과 연계해 한 끼를 해결한다. 전국에서 가장 인구수가 적은 우리 고장이 경남교육청 미래교육원 덕에 활기를 띄고 있다. 도깨비 영화관도 미래교육원에 소속된 것인 줄 알았다.
딸이 영화를 보러 가잔다. ‘국산이야? 외국산이야?’ 내 말에 딸은 재미있는 국산 영화란다. 김성수 감독의『서울의 봄』이 한창 뜨는 중이란다. 1979년 12, 12 사태를 다룬 영화란다. 혁명이냐, 반란이냐, 이기면 혁명이요. 지면 반역이다. 이미 저승 길 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묏등에서도 편한 잠은 못 들겠다. ‘보자. 어떻게 만든 영환지. 진주시내에 나가야하잖아?’ 했더니 ‘아니, 읍내 도깨비 영화관에서도 상영한다네.’ 인근 도시까지 나가야 볼 수 있는 영화를 우리 고장에서 볼 수 있단다. 아니 보랴. 도깨비 영화관에서 도시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단다. 65세 이상은 할인도 해 준단다.
도깨비 영화관이 도대체 뭔가. 궁금했던 나는 읍내 영화관으로 가자고 했다. 딸은 인터넷 예약을 했다. 오후 1시 45분에 상영한단다. ‘잘 됐네. 영화보고 수영장 갔다가 저녁 먹고 집에 오자.’ 오후 계획이 짜였다. 딸과 지내는 나날은 햇살 환한 봄날 같다. 도란도란 지나간 이야기도 하고, 살아갈 이야기도 나눈다. 각자 제 할 일을 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나날이다. 딸과 나들이도 하고 싶은데 먼 길 운전이 겁난다. 딸은 ‘엄마, 내가 운전면허증 따면 엄마 모시고 다닐 게. 엄마 운전하기 힘들잖아. 엄마가 원하면 어디든 가자.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자 내가 사줄게.’ 말만 들어도 고맙다. 딸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렇게 도깨비 영화관에 갔다. 관람자는 여섯 사람이 전부였다. 긴 광고가 지겹긴 했다. 지역 농산물 홍보니 열심히 보는 것도 도움주기라는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앉아 영화가 상영되길 기다렸다. 전두광으로 분장한 황정민, 실제 전두환이 그랬을까. 권력을 탐하고, 돈을 탐하고, 날라리 조폭 두목을 연상시키는 전두광, 영화 속의 전두광을 보는 내내 화가 치밀었다. 그는 싸가지(싹수)없는 인간이었다. 그 싸가지 없는 인간이 승자가 됐다. ‘됐나? 됐다.’ 밀어붙이는 배짱은 있었다. 배짱과 지도력은 상통하는 걸까.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읽고 임기웅변에 능한 그는 운이 따랐던 것일까.
1979년 10. 26 사건이 터지면서 나라는 혼란스러웠다. 그 틈새를 타고 12.12 사건을 주도한 그는 권력을 잡기위해 오랫동안 물밑 작업을 했던 것이다. 하나회라는 비밀조직의 우두머리로 야망을 키웠다. 거기에 동조한 친구, 두 사람의 우정은 그럴 듯 했다. 그는 계엄사령관을 용공분자로 몰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가 승리하면서 대한민국의 운명은 바뀌었다.
영화는 보안사령관 전두광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진의 한판 승부다. 운 좋게도 승자는 전두광에게 돌아갔다. 반역자는 혁명의 승자가 되고, 애국자는 죄수가 되었다. 실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산이 29만 원 뿐이라고 했으면서도 구십이 넘도록 잘 먹고 잘 살다 편하게 죽었다. 5.18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고 국정의 실권을 장악했던 그는 영화 속 전두광이다. 수도경비 사령관 이태진, 그런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은 평화롭고 온전할 것이다. 영화에서 본 군상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며 어디 붙어야 떡고물이라도 얻어 걸칠까 몸을 사리는 회색분자들을 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한국의 정치계는 4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보인다.
영화는 지루하지 않았다. 속이 터져서 울화가 치밀었지만 끝까지 몰입했다. 어디까지가 실제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르나 그때 그 시절 간접경험이든 직접경험이든 했던 국민들 심정은 비슷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삶이나 해방 후 이승만과 김구 선생의 삶을 생각했다. 1979년 전두광과 이태진, 그들의 대결 구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봤는가. 어떤 삶을 사는 게 인간다운가. 영화를 만든 감독은 어떤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가. 선악의 대결에서 악이 득세해 천수를 누리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 나라를 위하고 애국하면 죄인이 되어 감방에 갇힌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도 아니다. 솔직히 헷갈렸다.
전두광 패가 승자가 되어 승리를 자축하는 결말부분은 참 마음에 안 든다. 차라리 전두광이 비참하게 죽어가며 12.12 사태로 죽은 군인과 5.18 사태로 죽은 광주 시민에게 사죄하는 장면이라도 나왔다면 좋았겠다. 전두광을 향해 ‘너는 군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절규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진, 그를 따르던 군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팠다. 전두광을 따르던 무리들,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고문하던 그들은 죽을 때까지 권력과 부를 움켜쥐고 살다 갔을 것이다. 그 후손들 역시 호의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서울의 봄> 그것은 영화라는 이름을 빌린 대한민국 역사적 사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그 시절 국방부 장관을 했던 머저리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르나 그 머저리가 나라를 망친 것이다. 단두대에 올려야 할 마땅한 인간들이 부지기수였던 영화, <서울의 봄>을 열흘 뒤 농부랑 다시 봤다.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서울을 반란군으로부터 사수하려던 수도경비사령관의 마지막 모습은 처절했지만 참 인간적이었다. 올곧은 그런 사람 덕에 나라는 건재할 수 있는 것이리라.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 장에서 나와 화장실로 간 전두광이 미친 넘처럼 웃는 모습과 죄수복을 입은 이태진이 고문실에서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 교차했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대통령도 권력도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보통사람, 민초들이다. 민초가 없으면 나라도 없다. 실제로 전두환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그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바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딸이랑 영화를 보고 나온 날은 흐린 하늘이었다. 경남교육청 미래 교육원이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농부랑 그 영화를 재탕하고 나온 날은 경남 교육청 미래 교육원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음도 고프고 배도 고팠던 것이다.
202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