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은총교회의 러시아 동행단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6일간의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가방을 하루 전에 꾸려야할 정도로 직장생활이 바빴던 나는 그저 꿈만 같았다. 나에게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이번에는 두 아이와 함께 하기에 의미가 더 컸다. 신경써야할 부분이 2배였지만 둘째 아이의 여행
기대감에 덩달아 설레었다. 여행 목적지가 가고 싶었던 곳이었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
식구들이 동행한다는 사실이 설레임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 9시간의 비행시
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6시간의 시차로 인해 밤11시쯤 되어야할 시간에 러시아 모스크바는 오후 5시. 6시간이 젊어진 느낌
이었다. 한국식 석식을 먹고 야경이 근사한 이즈마일로보 감마 호텔에 투숙하였다.
다음날 8월 1일 화요일.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동행단은 부지런히 짐을 꾸려 나왔다. 모스크
바의 심장부인 크렘린(우스펜스키 사원(성모승천 성당), 성수태고지 성당, 이반대제의 종루, 황제의 종,
황제의 대포), 붉은 광장, 바실리성당, 굼백화점, 아르바트 거리,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레닌언덕(참새언덕)의
일정이 짜여있었기 때문이다. 맑은 날씨로 인해 크렘린의 건물들은 빛을 내며 웅장함을 자랑했다.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들로 내부 분위기는 비슷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해서 아쉬었다. 그 아쉬움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활동량이 많아서인지 석식인 광어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모스크바의 ‘이은종’ 가이드와 삽산열차 앞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내 여행용가방을 열차 안에까지 운반해준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모두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삽산열차로 4시간이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상트 페테르
부르크는 모스크바와 또 다른 고풍스러움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늦은 밤에 새로운 가이드를 만나
카렐리야 호텔에 여정을 풀었다.
8월 2일 수요일. 이슬비를 맞으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전용관광버스를 타고 푸쉬킨시로 이동하여
예카쩨린궁전의 화려한 호박방을 본 뒤 다시 버스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하여 쉴새없이 관광을
하였다. 표트르대제의 청동기마상, 피의 사원, 카잔성당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건물들이 입이 벌어지게 했다. 맛있는 한국식 석식 후 카렐리야 호텔에 다시 투숙하였다.
8월 3일 목요일. 호텔 조식후, 쾌속선을 타고 페테르고프로 이동하여 여름궁전의 분수공원을 보았다.
삼손이 사자의 입을 찢는 분수의 형상은 퍽 인상적이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힘을 엿볼수가 있었다. 날씨
가 청명해서 하늘만큼이나 발트해도 푸르렀다. 다시 쾌속선을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궁전식으로
중식을 먹었다. 니꼴라이 궁전에서 먹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는 맛보다 분위기가 고급스러워 좋았다.
젊은 피아니스트의 아름다운 선율을 음미하며 먹는 음식은 역시 맛있었다. 찻잔 가장자리가 초록색테두리.
아기자기한 꽃무늬 찻잔에 나온 커피는 여느 때보다 더 감미로웠다. 러시아 여행내내 만들어진 음식을
대접받으니 즐겁기만 했다. ‘무엇을 만들어야하나?’ 라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주부들의 심정.
게다가 궁전에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 이렇게 매일 먹으면 살이 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만족스런 중식을 먹은 뒤 에르미타쥐 박물관(겨울궁전)을 관람하였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에 포함된다는 에르미타쥐 박물관. 본관인 겨울궁전과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된 작품들의 규모가 매우 방대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관람할 만한 것은 125개의 홀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의 전시실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매우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를 거쳐 소련 시절의 예술품까지
모아놓은 박물관이었다. 총 3백만점에 이르는 소장품들은 약탈된 것이 없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었다.
관람 전, 가이드가 자칫 한 눈을 팔다 길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개인행동을 삼가고 잘 따라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과연 예상대로 관광객들이 많았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부터 바로 옆 방인 루벤스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강하’등. 종교적인 색채를 지닌 그림들은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다. 미술책에서만
보던 대작들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왜 대작들인지를 확고하게 깨달았다. 시간관계상 미술품들을
세세히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직접 육안으로 보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카메라에 담았다. 안타까운 점은
고호, 고갱, 세잔, 르느와르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별관으로 옮겨졌기에 감상하지 못한 점이었다.
석식 후,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열차역으로 이동하였다. 열차를 타기 전 백화점 마트에서 기념품들을
구매하여 짐이 늘어나 있었다. 캐리어들을 끌고 밤 11시 남짓해 짙은 청색 열차에 올랐다. 침대가 있는
야간열차라 통로가 비좁았다. 티켓이 9번부터 21번까지여서 첫째 칸이 9번부터 12번까지. 둘째 칸은
13번부터 16번까지. 셋째 칸은 17번부터 20번까지. 넷째 칸은 21번부터 24번까지여서 21번만 해당했다.
정해진 열차칸에 올라가 4명이 들어가는 칸의 미닫이식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저 승차한 나와 언니네가
첫 번째 칸으로 자리 잡았다. 자정이 가까웠기 때문에 짐을 푸는 것과 동시에 아이들을 먼저 씻게 하였다.
공중화장실을 써야했기에 불편했지만 비행기와 달리 편히 누워서 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정신없이
침대를 배정하고 여행가방을 열어 기념품을 정리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승무원이 들어왔다. 한 손에는
서류를 들고 또 다른 손에는 50루블이 들려있었다. 얼굴표정과 몸짓으로 보아 50루블을 지불하라는 것 같았다.
요구하는 대로 50루블 1장을 주니 1인당 지폐를 내라는 의사표현을 한다. 여승무원이니 거부하지도 못하고
200루블을 지불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음 칸으로 이동하였다. 궁금해서 따라가 보았다. 비은님 가족이 있는 칸.
똑같은 요구를 하는 그녀. 가이드에게 전혀 50루블에 대하여 들은 바가 없었던 비은님은 영어로 쉽게 설명하셨다.
하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는 그녀는 티켓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티켓을 보여주자 곧 들고 나갔다. 그제서야
나 자신이 그녀에게 당한 것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 명의 가이드가 여행 중에 했던 말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뒷돈을 챙기는 러시아인과 비이성적인 행태들에 대한 고발이었다.
여승무원이 고집스럽고 무뚝뚝하게 생긴데다가 대해보니 오만불손했다. 여승무원에게 손해본 것 같았다.
사실 50루블이면 한화로 천 원정도밖에 되지 않는 돈이었다. 하지만 합법적인 돈이 아닌 강탈당한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상했다. 불을 끄고 2층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리숙해서 당한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바로 옆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내 안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너는 겨우 천 원 가지고 그렇게 억울해하니?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음성을 듣고
곧바로 회개를 했다. 주님의 값없는 희생과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그리곤 덜컹거리는 침대위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새벽 4시쯤 눈이 떠졌다. 전 날의 피곤함 때문에 다시 눈이 감겼다. 아침 햇살이 커튼쳐진
창가로 스며 들었다. 어제와 다르게 기운이 났다.
모스크바역에 도착할 즈음 여승무원은 친절하게 대했다. 간편식으로 나온 도시락을 조금 먹고 다시 짐을
꾸려 열차에서 내렸다. 세 번째 가이드인 ‘최 율’님의 안내를 받으며 갈비탕 조식을 먹었다. 그의 해박한 역사
적 배경을 들으며 노보데비치 수도원과 묘지를 구경하였다. 근처 볼쇼이 극장 외관을 구경한 뒤 가이드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는 모스크바의 지하철을 탔다. 오래된 지하철은 박물관과 다름 없었다. 80년 전에 시공
했다고 하는데 견고함과 예술성이 놀라웠다. 지하 200미터의 키예프역은 놀이공원처럼 재미있었다.
또한 시원한 바람이 순환하는 지하철역 내부구조가 신기했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 내에서 가이드는
‘빅토르 최’의 노래 ‘혈액형’과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인 ‘비창’을 들려주었다. 그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을 주었다. 10년이상 러시아에서 살면 러시아인들의 인정을 알게 된다는 그. 다른 두 가이드와는 사뭇
다른 그의 태도가 진정으로 러시아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야간열차의 50루블에 대하여
물어보니 열차내 이불값이라고 말해주었다. 순간 여승무원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미안함이 들었다. 몰라서
잠깐이나마 미워했던 것을 회개하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번 여행은 주님의 사랑만큼이나 값진 여행이었다. 가기 전에는 바쁜 회사 업무로 인하여 심신이 지쳤었다.
그리하여 여행에 대한 기대감보다 부담감이 컸었다. 하지만 주님은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그 모든 일상을
잊어버리고 오직 여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동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건강을 허락해주시고,
화창한 날씨를 베풀어주셨다. 이번 여행은 기도로 준비된 여행이었다. 기도했던대로 이루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야간열차의 50루블을 통하여 미천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50루불 승무원에게 주었을때 러시아 사 람들을 오해했어요. ㅎㅎ 열차에서 에스더양 바로 앞에 코를 곤 사람은 바로 접니다. ㅎㅎ 이번 러시아 여행은 저에게 안식과 평화를 주었습니다 . 주님께 감사합니다 .
그날 일이 떠오르네요ㅎㅎ
이번주 러브레터글이네요^^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