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는 군함처럼 생긴 작은 섬이라 하여 붙여진 별명이고, 원래는 하시마섬으로 불린다. 나가사키에서 남서쪽 18.5킬로미터 해상에 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남북 480미터, 동서 160미터, 해안선 길이는 불과 1200미터이다. 원래 더 작은 섬이었는데 메이지시대에 석탄이 발견되면서 꾸준히 매립을 하여 이나마 규모가 되었다. 더구나 나가사키조선소에 석탄을 공급해야 했던 시대의 요청에 따라 태평양전쟁 기간 중에 대규모로 채굴이 이루어졌다. 나가사키는 나중에 핵폭탄을 맞는 저주 받은 도시가 된다. 일본이 이 섬을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이유는, 이 작은 섬이 일본 근대화에 끼친 영향이 크고, 작은 섬에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산 역사사실을 기리자는 것이다. 이 작은 섬에 5300명이 살았다고 한다. 석탄을 캐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인데 이들을 기반으로 학교, 병원, 상점, 여관이 섰다. 이 군함도가 세계인류문화유산 등록을 앞두고 한일 외교 마찰이 일어났는데, 일본은 단지 산업시설 가치만 강조할 뿐 이 섬에서 석탄을 캐는데 종사한 조선인 강제 징용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나가사키조선소를 비롯해 조선인강제징용자들이 이 섬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군함도에서 일한 강제징용자는 약 800여 명으로 추정되며, 이중 122명이 사망하였다. 사망자 중 27명은 확실히 강제징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분들이다. 더구나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자 일본은 이곳의 탄광노동자들을 나가사키로 보내 도시복구를 강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폭되었다. 이 점에서 일본은 한국인, 중국인 등 강제동원노역자의 존재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메이지시대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만 유네스코에 제출, 태평양전쟁 시기의 범죄를 감추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군함도에서 채굴에 나선 광부 중 일본인이 절대적으로 많고, 나가사키시에서 핵폭탄 벼락을 맞아죽은 사람도 대부분 일본인이다. 이에 대해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아픔만 강조하고 자신들이 강제징용하여 전쟁범죄 현장에 있던 조선인, 중국인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의 한계다. 한편 군함도에서 강제징용되어 지하갱도에서 채굴하던 조선인 노동자 이야기는 한수산의 <까마귀>란 소설에 잘 그려져 있다. 일본에는 군함도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 폐광 이후의 군함도 전경 - 조선인 강제징용자가 남긴 낙서. 고향에 가고 싶다는 것은 죄수나 다름없이 붙잡혀 있어 가지 못한다는 뜻이고, 배가 고프다는 것은 콩깨묵이나 줄뿐 다른 먹을거리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고,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것은 어머니를 뵐 수 없다는 뜻이다. 일본인 노동자나 정상 취업한 노동자라면 이런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강제징용이었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이다. 물론 이런 죄에 대한 대가로 일본은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인류 사상 최초로 핵폭탄을 맞는 천벌을 받았지만 아직도 그들의 36년간 저지른 죄의 양은 후지산이 터져 도쿄를 덮을지언정 결코 해소될 정도가 아니다. |
출처: 알타이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알타이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