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하는 누구인가?
불교 탄트라(Tantric Buddhism)를 최초로 정립(定立)시킨 사람이다.
사라하는 누구인가?
불멸의 탄트라 도하(Doha) 문학을 남긴 사람이다.
다시, 사라하는 누구인가?
대승불교(大乘彿敎)의 창시자, 나가르쥬나(Nagarjuna, 龍樹)의 스승
이다.
그는 불멸후(彿滅後) 346년 남인도의 마하라수트라 지방 비다르브하
(Vidarbha)에서 태어났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그는 불멸후(彿滅
後) 30년에 베나레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전통적인 브라만(바라문)
가정에서 5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5형제는 모두 베다에 통달했
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사라하는 베다(Veda)의 최고 통달자가 되었다.
이러한 사라하의 일대기는 3단계로 나누어진다.
제 1기: 브라만(Brahman, 婆羅門) 시절
베다(Veda)의 최고 통달자가 된 사라하는 마하빨라(Mahapala)왕의 스승
이 되었다. 아울러 마하빨라왕궁의 최고 법정관을 겸하게 된다.
왕은 물론 인도 전역이 사라하의 깊은 예지에 고개를 숙이는 시절이다.
그러나 사라하는 차츰 지식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라하는 마침내
극구 만류하는 왕의 일행을 뿌리치고 브라만 대사제에서 불교 승려가 된
다.
제 2기: 명상의 시절
불교 수행자가 된 사라하는 갖은 구도여행 끝에 쉬리 끼르띠(Srikirti)
를 만났다. 쉬리 끼르띠는 붓다로부터 정통으로 내려온 불교 탄트라의
제 3조(祖)로서 당시 최고의 명상가였다. 브라만의 대학자 사라하는
쉬리 끼르티 밑에서 그가 배운 베다의 모든 지식을 버렸다. 그리고 명상
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탄트라 명상의 최고 경지를
얻은 사라하는 쉬리 끼르띠를 이어 불교 탄트라의 제 4조(祖)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붓다로부터 그의 아들, 라훌 바드라로 전해지는 불교 탄트
라의 법맥(法脈)은 라훌 바드라에서 다시 쉬리 끼르띠에게 전해지며,
쉬리 끼르티에게서 사라하로 전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라하와 붓다
사이에는 라훌 바드라와 쉬리 끼르티, 오직 이 두 스승의 간격이 있을
뿐이다.
한편, 선(禪)은 마하가섭(Mahakasyapa, 大迦葉)→아난다(Ananda, 阿難)
→……→달마대사에게로 전해져 나아갔다.(『밀교의 세계』를 참고할 것.)
이제 사라하에게 남은 것은 명상, 그리고 끝없는 침묵이었다. 그렇게도
빛나던 베다의 학식은, 우파니샤드의 그 많은 지식은 이제 그에게서
모두 떨어져 나간 것이다. 아니, 그 스스로가 아무 미련 없이 내던져
버린 것이다. 이러자 이번에는 인도 전역에 브라만 사라하가 아닌
명상가 사라하의 이름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당대 제일
의 브라만은 이제 당대 제일의 명상 수행자가 된 것이다.
어느 날, 그가 깊은 명상 속에 들어 있는데, 그 명상 속에 시장바닥이
나타나고 거기 화살 만드는 한 여인의 비젼이 보였다. 사라하는 명상
에서 깨어나 급히 시장으로 달려 갔다. 아아, 거기 그가 명상 속에서
본 그 여인이 정말로 화살을 만들고 있었다. 삶의 온갖 희비애락이
뒤엉키는 시장바닥 삶의 그 한가운데에 앉아 그녀는 열심히 화살을
만들고 있었다. 화살 만드는 그녀의 그 행위, 과거에도 연결되지 않고,
미래에도 연결되지 않고 오직 <지금 여기>에만 몰입하고 있는 그 행위
에서 사라하는 깊은 암시를 느꼈다.
『비천한 여자여, 당신은 지금 화살을 만들고 있군요.』
사라하의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일손을 멈췄다. 거기 승려의 오랜지빛
가사자락으로 전신을 감은 한 젊은이가 서 있었다. 그 젊은이의 모습
에서는 깊은 명상의 경지에 들어간 성자의 그윽함이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라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여, 너무 냄새를 피우고 있군요. 붓다의 가르침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 명상의 세계까지 넘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붓다의 의미는 상징과 행동으로밖에 표현되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크게 웃었다.
아아, 그녀의 웃음은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었다.
전혀 인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그 생명력이 바다처럼 넘치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사라하는 아찔했다.
그가 그토록 깊은 명상을 통해서도 맛볼 수 없었던 그 생명의 에너지가
그녀에게서 철철 넘치고 있었다.
『자, 나를 따라 오시오.』
그녀는 사라하를 데리고 화장터로 갔다.
제 3기: 비난의 시절
이 화장터에서, 시체들이 타고 있는 이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사라하에게 중도(中道, Madhyama-Pratipad)의 진짜 의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언어와 명상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로 역력히 느낄 수 있
는 그 체험의 세계를 가르쳤다. 체험과 행동의 세계를 가르쳤다.
아아, 온갖 지식을 버리고 명상가가 된 그는 이제 명상마저 버릴 때가
온 것이다.
명상을 버린 거기에 살아 움직이는 체험과 불타는 행위가 있을 뿐이다.
갖은 고난 끝에 사라하는 마침내 깨달음의 참 의미, 중도(中道)를 터득
하게 되었다. 그녀를 통해서, 그 생생한 생명의 에너지를 통해서
사라하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녀는 몹시 기뻐했다. 그녀는 사라하를
부둥켜 안고 말했다.
『당신은 마침내 진리의 과녁을 적중시켰군요.
이제부터 당신의 이름은 사라하(Saraha, Sara = 화살, ha = 과녁을
적중시키다.)입니다. (사라하의 원이름은 Rahul-Bhadra였다. 부처님
의 친 아들, 라훌 바드라와 같다.) 아아, 당신은 마침내 미지의 과녁
을 적중시켰습니다.』
사라하는 그녀에게 깊이 절했다. 시장바닥의 화살 만드는 이 비천한
여자가 사라하에게는 쉬리 끼르티보다, 붓다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었
다.
『자, 이 절을 받으십시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내 스승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화살 만드는 여자는 수카나타(Sukhanatha, 樂主) 부처
님의 화신(化身)이었다. 수카나타 부처님이 사라하를 제도하기 위하여
미천한 여자, 화살 만드는 여자로 변신하여 시장바닥에서 사라하를 기다
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사라하의 그 화장터는 춤과 노래의 축제장으로 변했다.
그렇다. 이 삶의, 이 환영(幻影)의 꿈에서 깨어난 그가 어찌 춤추고
노래하지 않을 수 있는겠는가? 죽음의 한가운데에서조차 춤추고 노래할
수 없다면 그 즐거움은 진정한 의미의 즐거움이 아닌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하에게로 사라하에게로, 이 화장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타는 이 혼(魂)의 자석에 끌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잠든 혼은 사라하에게 닳는 순간 불붙기 시작했다.
아니, 인도 전역이 이제 사라하의 불로 무섭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권위주의자들의 비난도 점점 격렬해져 갔다.
사라하에 대한 비난의 소리는 마침내 마하빨라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왕은 당황했다.
『당대 최고의 바라만 대학자요, 당신의 스승이었던 사라하가
이제 베다를 버리다니…….
화장터에서 그런 비천한 여자와 살고 있다니…….
아아,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왕은 몹시 불안했다. 사라하를 설득시키기 위하여 왕은 네 명의 브라만
대사제들을 보냈다. 사라하는 이 네명의 대사제와 거기 모인 사람들을
위하여 160개의 노래를 지어 들려 주었다. 이것이 바로 사라하가 첫 번
째로 남긴 도하문학, 160頌, 즉 『People Dohas』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사라하를 설득하러 간 네 명의 대사제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마저 사라하의 불에 점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왕비가 사라하를 설득하러 가겠다고 자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왕비는 사라하에게 딸을 주려고까지 한 일이 있었다. 왕비는 그만큼
사라하의 재능과 지혜를 사랑했던 것이다. 왕비는 누구보다 사라하를
아끼고 있었다.
『아아, 그 젊은이가, 그렇게도 예지에 차 있던 젊은이가
이제 미치다니…….』
왕비는 급히 사라하의 화장터로 달려 갔다. 그러자 사라하는 왕비를
위하여 80개의 노래를 지어 들려 주었다. 이것이 사라하가 두 번째로
남긴 도하문학, 80頌, 즉 『Queen Dohas』이다. 그리하여 왕비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마하빨라왕은 자신이 직접 사라하에게 찾아갔다.
그러자 사라하는 또 마하빨라왕을 위하여 40개의 노래를 지어 들려
주었다. 이것이 사라하가 세번째로 남긴 도하문학, 40頌, 즉 『King
Dohas』이다. 사라하의 40개의 노래를 들은 왕은 왕관을 벗어던져 버
렸다. 그리고는 사라하와 같이 화장터에서, 그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때가 오면 인도 전체가 텅 비게 되리라.』는 베다의
옛 예언이 마침내 입증된 것이다.
사라하의 이 세 개의 노래는 그의 제자요, 대승불교의 창시자인 나가르
쥬나(龍樹)에 의해서 편찬되어 불멸의 도하(Doha)문학으로 남게 되었다.
이 세 개의 노래 가운데에서도 특히 세번째로 왕에게 들려주었던,
『사라하의 노래 (40頌, King Dohas)』는 문학적인 면에서나 종교적인
면에서나 아주 중요하다. 무엇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것은 다음의 셋으로 요약된다.
① 도하(Doha)의 비장본(秘藏本)이며, 도하문학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② 불교 탄트라(Tantric Buddhism)의 경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원형적(原形的)이다.
③ 모든 탄트라 경전이 이 『사라하의 노래 (40頌, King Dohas)』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을 갖고 있다.
한편, 이 사라하의 노래(40頌)는 현대어로도 번역되어 서양에 소개되기
도 했다.
① 최초의 번역본은 불역본(佛譯本)으로…….
『Les chants Mystiquest de Kanha et de Saraha』
By Shahidullah, M. 1928, Paris
② 두 번째의 번역본은 영역본(英譯本)으로…….
『Saraha's Treasury of Songs』
By Snellgrove, D.L.
※ pp.224∼239 in E. Conze(ed) 『Buddhist Texts through the Ages』,
Oxford: Cassires, 1954
③ 세 번째의 번역본도 영역본(英譯本)으로…….
『The Royal Song of Saraha』
By H.V. Guenther, 1973 Berkely, U.S.A.
※ 이 중에서 1973년 서양에 소개된 『The Royal Song of Saraha』를
오쇼 라즈니쉬가 강의하였고, 석지현 스님이 번역하였다.
그리하여 <사라하>는 거의 250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셈이다. 중국, 일본에도 일찌기 <사라하>가 소개된 일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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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사라하의 노래 (The Royal Song of Saraha)』
사라하·頌 / 오쇼 라즈니쉬·講義 / 석지현 & 홍신자·共譯 / 일지사·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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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초반, 일지사에서 출판된 『사라하의 노래』에는 24번째의
송(頌)이 빠져있었다. 필자는 이것을 메루 데비(이경옥氏)가 번역한
태일 출판사의 『그대 가슴 속에 꽃을 피워라.』에서 보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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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하의 노래
四十頌
King Dohas
문수사리(文殊舍利)에게 경배하나이다
이 세상을 정복한 그에게 절하나이다
頌 一
고요한 연못 위에 바람이 불면
수면(水面)은 잔 파도로 부서지듯이
왕(王)이여, 그대는 나를 여러 측면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나 사라하(Saraha)는 한 사람이라네
頌 二
어리석은 자, 사팔뜨기여
한 개의 촛불을 두 개로 보고 있네
그러나 보는 자(主觀)와 보여지는 자(客觀)는 둘이 아니네
아, 마음이여, 그대 착각으로 하여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로 나뉘었느니…….
頌 三
집안에 등불은 이미 켜져 있건만
눈먼 자가 거기 살고 있구나
그대여, 주위를 보라
하염없는 진리(無爲法, 眞空)로 충만하건만
미망(迷妄)으로 하여 진리로부터 떨어졌구나
頌 四
모든 강물이 바다로 가서 하나 되듯이
모든 거짓이 하나의 진실 속에 흡수되듯이
태양이 떠오르면
이 밤의 어둠은 사라지리라
頌 五
구름이 바다에서 피어올라와
마침내는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네
그러나 바다, 그 자체는 저 하늘이듯
결코 줄거나 불어나는 일이 없네
頌 六
자연스러움은 유일한 것이며
붓다의 완전성(慈悲와 智慧)으로 가득차 있네
뭇 생명체들이 이 진리 안에서 태어나고 죽어 가지만
그러나 그 자체는 물질(몸)도 아니요, 정신(마음)도 아닌 것을…….
頌 七
축복으로 넘치는 이 길을 저버리고
그대여 가짓길로만 가고 있는가?
감각의 자극, 그 기쁨만을 찾아가고 있는가?
넥타(甘露)는 바로 그대 입 속에 있네
머뭇머뭇하다가는
아아, 넥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네
頌 八
그대여, 이 세상이
환영(幻影)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지 못하는가?
그 환영의, 칼날 위의 꿀맛을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저 넥타(甘露)의 물을 마시려 하네
頌 九
고기 썩는 냄새에 취한 쉬파리여
향내음은 더럽다고 코를 막는가?
어리석은 자여, 니르바나(Nirvana, 涅槃)의 충만을 등져 버리고
삼사라(Samsara, 輪廻)의 어둠 속을 헤매는가?
頌 十
소 발자국에 가득히 빗물 고이나
머지않아 그 물은 말라 버리네
마음이여, 제 아무리 굳세다 해도
사념(思念)으로 차 있는 한, 그것은 불완전하네
이 불완전함은 때가 되면 말라 버리네
頌 十一
짠 바닷물이 구름으로 증발하여
비가 되어 땅에 스며 맑은 샘물이 되듯이
남을 위해 일하려는 그대의 마음이여
감각의 독소(毒素)는 변하여 감로수(甘露水)가 되느니…….
頌 十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만족한 것이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축복임에 틀림없네
저 구름 속에서 두려운 우뢰소리가 들려오네
그러나 그 소리 뒤에 비가 내리고
만물은 이로 하여 무르익어 가네
頌 十三
시작(과거)이요, 중간(현재)이요, 끝(미래)이라고 말하나
시작과 중간과 끝은 그 어느 곳에도 실재(實在)하지 않네
이는 오직 그대 마음의 착각에서 비롯되었나니
마음은 하나도 아닌데 두 개로 갈라져서
부정(空)과 긍정(慈悲)을 역력히 보는구나
頌 十四
벌은 알고 있네 저 꽃 속에
깊이 숨겨진 꿀을 알고 있네
삼사라(Samsara)와 니르바나(Nirvana)는 둘이 아닌데
어리석은 자여, 이 이치를 어떻게 하면 알겠는가?
頌 十五
어리석은 자는 거울을 볼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반사체(反射體)가 아니라 실체(實體)의 제 얼굴로 착각하네
이와 같구나, 진리를 거절해 버린 마음이여
진리 아닌 것(反射體)을 진리(實體)라고 굳게 믿고 있네
頌 十六
꽃 향기를 손으로는 만져 볼 수 없지만
이 누리 그윽히 그 향기 퍼져 가네
본질(本質), 그 자체는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지만
아아, 나는 지금 느끼고 있네
본질을 싸고도는 신비한 이 방향(芳香)을…….
頌 十七
겨울 바람이 수면(水面)을 치면
물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얼어 버리네
그대 마음에 사념(思念)의 바람이 불면
형태(形態) 없는 이 마음은 고체(固體)로 굳어 버리네
頌 十八
진공(眞空), 그 자체로서의 마음의 순수성은
결코 삼사라(Samsara)와 니르바나(Nirvana)의 불결함에 때묻지 않네
값진 보배가 진흙 속에 묻혀 있으매
그 빛을 발하지는 못하나 광채만은 그대로 있네
頌 十九
지혜(般若)는 무지(無知)의 어둠 속에서 빛날 수 없으나
이 어둠 사라지면 그 순간에 고통도 사라지네
새싹은 씨로부터 터져나오고
새싹 속에서는 푸른 잎이 밀려 나오네
頌 二十
수많은 이 사념(思念) 때문에 빛은 꺼지고
그대는 삼사라(Samsara)의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가네
어린 자여,
두 눈을 뜬 채 삼사라(Samsara)의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자여
그대보다 더 불쌍한 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頌 二十一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그 즐거움을
무한한 실제(眞空)라고 외쳐 대는가?
그것은 집을 떠난 자가 문에 서서
『연인이여, 지금 이 키스의 즐거움이 어떠냐?』라고 묻는 거와 같네
頌 二十二
영원한 집에 어느 날, 일진광풍(一陣狂風)이 불어와
삼사라(Samsara)의 환영(幻影)을 낳았네 그리고 그 환영은 다시
권좌(權座)요, 부귀요, 명예요, 갖가지 환(幻)을 불렀네
때문에 요기(Yogi)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심한 고통을 받다가는 마침내
저 거룩한 공간(眞空)으로부터 추락하여 어둠의 유혹을 받네
頌 二十三
사제 브라만(Brahman, 婆羅門)은 생명의 진수(眞髓)인 쌀과 버터를
불 속에 태우며 <불의 의식>을 집행하네
『번제물(燔祭物)이여, 어서 신(神)의 앞에 이르거라
거룩한 공간이여, 여기 감응하여 감로수(甘露水)를 내리소서』
마법(魔法)의 긴 주문(呪文)을 외우면서
이 번제물은 이제 본질의 상징화라 흡족해하고 있네
頌 二十四
또 어떤 이들은 몸 속의 열(熱)을 점화시켜
정수리(百會)까지 끌어올려
성교(性交)하듯 혀로 목젖을 어루만지며
그런 속박시키는 행위를 모크사(Moksa; 解脫)의 길인 양 착각하네
그리고는 자만에 빠져 자신을 요기(Yogi)라 부를 것이네
頌 二十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람들
그들은 갖가지 경지를 체험했다고 말하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해탈(解脫)이란 또 다른 족쇄(足鎖)에 지나지 않네
빛깔이 푸른 유리 장신구(裝身具)가
그들에게는 에머랄드로 보였을 뿐이네
그들은 말하네
『이것은 틀림없는 보석』이라고 그들은 말하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유리그릇에 불과하네
頌 二十六
그들은 구리(銅)를 보고 금(金)이라 하네
깊은 사색(思色)과 논쟁(論爭)을 통해서만
궁극적인 실제(眞空)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네
이 방법이야말로 본질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네
그들은 꿈 속에서의 그 희열(喜悅)을 아직도 갈망하고 있네
이제 곧 사라지고야 말 이 몸과 마음을 보고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네
『영원한 축북이여
세월이 가도 세월이 가도
영롱하게 불타오를 이 빛의 응결(凝結)이여』
頌 二十七
만트라(Mantra, 眞言)의 암송을 통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네 개의 문(four seals)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깨달음의 저 바다에는 결코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우리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대들은 말하네
허나 이는 착각이네
거울에 비친 반사체(反射體)를 보고 실체(實體)라고 착각하는 것이네
頌 二十八
저 환영(幻影) 속으로 한 무리의 사슴 떼가 뛰어가네
신기루의, 그 환각(幻覺) 속의 물을 마시러 달려가네
아아, 어쩔거나 이 환각의 물로써는
까르마(Karma, 業)에 불타는 그 목마름을 축일 수 없나니…….
그대여, 그 환각에 취하여, 그 환영(幻影)의 기쁨에 도취하여
『이것이 궁극적인 실제(眞空)』라고 소리치는가?
頌 二十九
무사념(無思念)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진리네
그리고 마침내는 마음마저 사라져 버려야 하네
이 경지야말로 최후의 완성이요, 충만의 극(極)이네
벗이여, 이 정상(頂上)에 올라와 샛별같이 잠깨어라
頌 三十
<사념(思念)의 안개가 끼지 않는 곳>에서 마음은 사라지네
여기 완전하고 순수한 감동만 남아 있을 뿐…….
선(善)과 악(惡)이 어떻게 이것을 더럽힐 수 있겠는가?
연꽃이 진흙 속에서 자랐다 하나
진흙이 어떻게 연꽃을 더립힐 수 있겠는가?
頌 三十一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침내는
마술사의 주문(呪文 = 환영)으로 보여져야 하네
모든 차별심이 사라졌다면 이제
속박(삼사라)과 자유(니르바나) 사이를
그대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네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나온 그대 마음이여, 확고하여라
사념(思念)의 안개 속을 지나 자신이 만든 감옥(까르마)을 나와
존재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네
頌 三十二
이 모든 현상(現像)은 빛의 원천으로부터 나왔으며
그 빛의 원천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네
무형(無形)의 에너지,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갖가지 형상(形象)과 그 형상을 있게 하는 질서가 태어났네
그리고 이 모든 형상과 질서 속에는
영원히 이어지는 생성(生成)과 파괴(破壞)가 있네
그대여, 참다운 명상에 들고자 하는가?
이 흐름의 법칙에 묵묵히 따라가라
이 흐름의 법칙은 사념(思念)의 작용도 아니며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 응시(凝視)요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은 거기 존재할 수 없네
頌 三十三
사념(思念), 이지(理智), 그리고 저 마음속에서 부침(浮沈)하는
갖가지 환영(幻影)들은 모두 이 진공(眞空, sunya)에서 비롯되었네
이 세상 모든 것이…….
감각과 그 감각을 느끼는 주체(主體)와
우둔함과 혐오와 욕망, 그리고 깨달음
이런 모든 것들이
저 진공(眞空)에서 떨어져 나와 각기 다른 것처럼 보일 뿐이네
頌 三十四
불빛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진공(眞空)의 지혜는
지식의 축척으로 분열되고 있는
마음의 어둠을 지워 버리네
욕망의 바람이 잔 존재의 이 상태를
아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
頌 三十五
부정할 것도, 긍정할 것도, 그리고 집착할 것마저도 없네
진공(眞空)은 결코 말로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에…….
지적(知的)인 이 갈등은 바로 무지(無知)에서 비롯되었네
그러나 분리할 수도 없으며 순수한 그 자체는
하염없는 저 무위법(無爲法 = 진공)으로 남네
頌 三十六
본질(本質)이 무엇이냐고 캐묻는다면
그러나 본질은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
오직 반야(般若)의 지혜만이
살아 있는 뭇 존재(衆生)를 해방시켜 주네
빛은 지식의 티끌에 파묻혀 있네
이 빛은 마침내 명상으로 나타나야 하느니
변하지 않는 마음만이 우리의 본질이네
頌 三十七
감각의 이 깊이를 경험한 자여
이 세상을 보는 눈이 폭넓어졌네
이로부터 모든 것의 그 용도(用途)를 알게 되고
비록 세상 일에 얽매여 분주하다 해도
그 마음은 언제나 깨달음과 더불어 있네
頌 三十八
기쁨의 꽃봉오리 열리고
영광의 잎들은 자라네
그대 주시력(注視力)이 그 어느 곳으로도 흘러나가지 않고
주시(注視), 그 자체로써 충만할 때
더 없는 이 축복은 열매 맺으리
頌 三十九
어느 곳에서 무슨 짓을 했든지
그것은 모두 간밤의 한바탕 꿈이었네
그렇지만 그 긴 방황은
삼사라(Samsara)와 니르바나(Nirvana)를 아는 데 도움이 되었네
정열적으로 살든지 아니면 그럭저럭 살아가든지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
한바탕 부질없는 꿈인 것을…….
頌 四十
내가 돼지 같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리네
왕(王)이여, 당신이 한번 말해 보시오
내 마음이 이렇게 순수한데
여기 무슨 잘못과 거짓이 있겠는가?
그 어느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내가
어떻게 지금 당신에게 다시 속박될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