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 2025년 7월 20일
루가 10:38-42. 창세 18:1-10. 시편 15.
영적인 환대, 경청의 영성
마르타와 마리아, 두 자매 중 마르타는 손님을 접대하느라 분주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발치에 앉는다는 것은 가장 총애받는 제자의 자격이기도 합니다. 많은 손님 앞에서 언니가 자기 동생 때문에 불평하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갈등이 예사롭지 않음에도 예수님은 두 자매를 화해시켜 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고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그래야 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를 두 자매의 대립과 분리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이 봉사보다 우선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누가 나은지 아닌지,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와 같은 이분법적 해석은 이제 뒤로 물리고, 우리 자신과 교회 공동체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영적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마리아가 한 행동은 들음 즉 경청입니다. 경청은 한마디로 듣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귀로 열심히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다는 것은 온 마음과 정신을 쏟아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발치에 앉아서 들었다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정서적으로 안정이 돼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평화가 있을 때 더 잘 새겨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평화로움에 더하여 말을 하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신뢰도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경청이란 말하는 사람을 나 자신 안으로 기꺼이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를 “경청은 영적인 환대”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말씀을 들은 것은 물론, 이로인해 자신의 영적인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경청의 모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을 끌어들여 성장하는 일에 골몰하는 일에 우선하여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새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깊이 듣고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말씀의 진리를 선포하셨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몸으로 보이셨습니다. 경청 그리고 환대 그리고 치유입니다. 당신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 무엇보다 먼저 광야에서 기도하셨고,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고 지상에서의 일을 마치셨습니다.
기도는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묻고 경청하는 기도가 우선이라는 말을 새깁니다.
몇 해 전 지도력 피정에서 함께 나눈 건강한 교회의 일곱 지표 중 가장 우선하는 것이 ‘신앙으로 활력을 얻는 교회’였습니다. 탄탄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는 교회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성사에 충실한 교회, 거기서 기쁨과 활력을 얻는 교회가 결국 성장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오늘 마르타의 행동은 분주함에 들떠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과연 누가 마르타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손님을 환대하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마르타가 없었다면 많은 손님의 접대와 필요한 것을 베푸는 일을 누가 살펴야 하나요!
환대의 마음 없는 경청은 있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마르타의 행동을 비난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르타라는 상징을 통해 우리는 경청과 같은 날개인 환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환대는 적극적인 기쁨의 표현입니다. 경청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사람을 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찬례가 말씀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들이는 것에까지 가야 하듯이,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행해야 하는 것과 같이 경청은 환대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같은 개념입니다.
마르타의 불평이 상징하는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쁜 마르타가 아니라, 마음을 쓰며 걱정하는 마르타‘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마음이 들떠 실제로 제일 중요한 본질을 알아채지 못하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에 가장 주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환대하는 일이 즐거울 것입니다. 그 환대의 초점은 단 한 가지, 예수님에게로 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독서로 들은 창세기의 말씀도 함께 새깁니다. 주보의 이콘은 러시아 안드레이 류블로프 수사(1360~1430)가 수도 생활을 한 성 세르기예프 삼위일체 성당에 소장돼 있는 삼위일체 성화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오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이 성화는 신적 신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곧 초대와 환대를 통해 서로 안에 내주하는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지친 나그네를 대접하는데 바로 그분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바로 우리 주변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배척하지 않고 환대하려는 마음가짐은 곧 가장 좋은 몫을 택하는 축복의 통로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린 마음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다름을 찾기보다 서로의 닮은 점을 알아가도록 노력하는 마음이 환대이고 경청입니다. 환대와 경청은 그래서 ‘존중’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환대는 금방 속내가 밝혀지기 마련이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것이겠지요. 환대와 경청은 함께 걷는 동반자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주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 곧 모든 초점을 주님께로 맞추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잘 식별하며,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관심과 환대 그리고 경청하기를 권고하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 다른 여러 가지 일로 들떠있지 않고 차분히 말씀을 경청하고 성찬례와 친교를 통해 서로를 지극히 환대하는 일에 집중하기를 권하고 계십니다.
잘 듣고 들은 바를 마음에 새겨 실행으로 옮기는 그리스도인이 원칙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경청은 영적인 환대에까지 가야 하며, 환대를 통해 온전한 경청에 이르러야 합니다.
잘 듣고 잘 행하여 하느님과 온전한 관계로 굳게 서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