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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쉬룬포사원
1447년 1대 달라이 라마에 의해 세워졌다
달라이 라마 5대떄 승원장이였던 로산 체키 카르첸이
아미타불의 화신인 판첸 라마로 인정 받고 이 지역의
통치권도 부여 받게 되었다
그는 사원의 수도원에 5,000명이 넘는 승려들을 수용할 수있도록
대규모로 확장하여 시가체에서 가장 큰 사원이 되었고
겔룩파의 4대 사원이 되었다
1988년 문화혁명 당시에 홍위병들에 의해 일부의 동상과
스투파가 파괴 되었으나 10대 판첸 라마가 복원하였고
현재는 30만m2의 대지 위에 57개의 법당과
3,600개의 객실이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로
산의 지형에 맞게 들어서 있다
눈에 들어오는 4개의 큰 건물은 좌측부터 <미륵보살 신전>
<10대 판첸 라마의 영전> <4대 판첸 라마의 영전>
맨 우측이 1대 달라이 라마가 1447년에 건축했던 <대법당>이다
**뒷산엔 천장(조장)터가 있다
▼ 좌측 미륵보살전으로 오르며...
▼ 쵸르텐
초르텐은 인도의 스투파가 티벳 고유의 양식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부처의 사리나 유물을 보관하는 탑
티벳어로 신에게 헌납하는 그릇을 뜻한다고 한다
ㅁ 울~ 강단장님의 불심 깊은 탑돌이 중
▼ 금빛 지붕의 파고다 건물의
10대 판첸라마 영묘신전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중이라
중국 정부는 티벳내 불교도의 회유책으로
10대 판첸 라마의 영묘를 건설 에 수많은 돈과 금,은 등으로
1990년~93년까지 3년간 티베트 건축 양식으로
지역 종교적 특성을 살렸으며
영묘는 253m2(84평)면적에 11.55m높이 금으로 도금후
보석,호박,다이아몬드등으로 장식 했다고 한다
★ 10대 판첸 라마는
1949년 국민정부에 의해 판첸 라마로 인정 되었다
1959년 티벳 무장 독립 봉기로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후
중국에 남아 이후 비교적 중국정부에 협조 하였다
1962년 정부 비판과 자유와 인권 요구의 탄원서 발표와 달라이 라마 지지 연설로
북경에 5년간 감금되었다
1966년 문화 대혁명떄 티벳트 문화 파괴활동에 강력한 비판으로
9년간 연금되었으며 1979년 복권되어
1989년 1월에 타쉬룬포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는 독립 봉기 30주년을 앞두고 티베트인들의 심기를
무마시키려는 방편 이였다
그러나 그는 과거 공산당의 잘못을 용서하자고 말하면서도
달라이 라마를 찬양하고 신앙과 문화를 보호하고
유지 할 것을 역설했다
판첸 라마 5세~9세의 영묘 재건과 봉헌식을 하고
3일만인 1월 28일 돌연히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돌연한 사망을 많은 티베트인들은 의심했었고
3월 5일 독립 봉기 30주년을 맞아
대규모 시위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중국 정부가 10대 판첸 라마의 영묘 신전 건설에 큰 돈을 들인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 4대 판첸 라마 영묘 신전
이 영묘에는 5~9대 판첸 라마 영전도 같이 있는데
1966년 문화 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해
5~대 영묘가 파헤쳐지고 유물을 강에 던졌는데
불교신도들이 이를 거두어 보관하고 있다가
10대 판첸 라마가 돌아온 1989년에 영묘를 재건하였다
★ 4대 판첸 라마--로쌍 최끼 개쨴 (로산 추키 겐센; 로산 체키 카르첸)
많은 달라이 라마를 가르쳤던 훌륭한 교사로서
5대 달라이 라마가 공식적인 승인을 받는데
중요한 역활을 했기 때문에 "위대한 스승" 이라는 뜻으로
판첸 라마로 호칭하였다
당시 시가체 지역은 다른 종파의 세력이 강하여
황모파(겔룩파) 세력의 우위를 유지키 위하여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에 이어 2인자로 인정하고
타쉬룬포사원의 법왕으로 추대하고 91세로 1962년에
사망하자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환생을 인정하고
윤회를 거듭하며 시가체 지역을 통치케 하였다 한다
1~3대 까지는 실존하지 않았던 추존한 판첸 라마로
4대가 실질적으로는 초대이다
▼ 측면에서 본 ~ 켈상사원
▼ 켈상사원
타쉬룬포사원에서 가장오래되고 큰 건물이다
1대 달라이 라마떄 세운 대법당으로 내부에 거대한 집회 장소가 있다
승려들이 경전을 배우고 판첸 라마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장소이다
복도 뒷편에 5m높이의 석가모니 동상이 있으며
석가모니 유물중 일부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 대법당 앞에서 내려본 아래의 공간
▼ 탱카(탱화) 걸이대
1447년 수도원 완공을 축하하기 위하여
만들어 탱카를 걸기 시작했다 한다
높이 32m 넓이 42m
▼ 시가체 시경
인구 8만의 소도시
얄룽창포강과 란체강이 만나는 티베트의 곡창지
암염의 산지, 축산물의 집산지
라싸에서 318국도를 따라 273Km 거리 4시간 소요되었으나
2014년 개통된 청장열차로 253Km의 2시간으로 단축
해발 3,950m의 티베트 제2의 도시
▼ 우측으로~ 돌려
▼ 앞 광장으로 내려오며..
▼ 사원 주변 상점가 풍경
▼ 수유차와 짜이 맛보기!
수유차=버터+보이차+소금 -----고소에 좋으며 입술이 마르지 않는다
짜이 =버터+보이차+밀크(홍차)
▼ 시가체의 건물 양식풍
▼ 먼 길 떠날 준비로
든든히 배불리고...
▼ 시가체도 여러 곳에서
신축과 증축공사들로 거듭 발전하는 모습
▼ 서부로 그리고 내팔로 이어지는
G318도로 우정공로입니다
▼ 황량한 들녁
농사가 잘될 것 같지 않는데..
집단 농장 같은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농사중
▼ 이동중의 곳곳에 신,증축 공사용으로
건축자재 생산 작업장도 성업중
▼ 작은 강을 만나 다리를 건너..제법 큰 마을도 지나며..
▼ 완전 새로운 건축 양식으로
새로운 마을 단지가 건설되기도 하며..
▼ 척박한 구릉지에선 양떼가 많이 보입니다
▼ 상해인민광장에서 동부와 중부의 많은 대,중도시들을 지나
라싸를 거쳐 네팔 카트만두로 연결되는
G318공로의 상해인민광장에서 5,000Km지점에
위치하는 공인 표지물입니다
휴게소에 잠시 쉬어 갑니다
▼ 좌측 산에는 강공사라는 사원이
낮은 산중턱에 자리하고 산정상엔 천장터 일 것 같습니다
▼ 야크의 교배종이 농사일에 이용되는
주변의 농사일 모습입니다!
▼ 농사가 주업일 것 같은
농촌 마을 풍경입니다
▼ 서부 티베트의 나 날이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 농촌의 풍경
▼ 양떼만 자주 보이는 목축업 마을도
▼ 자주 목격되는
한쪽은 흙벽으로 만들어진
반터널형 비닐하우스도 자주 목격됩니다
▼ 큰 도시가 가까워 지는 시가지 분위기
▼ 행복을 추구하는 예술적 분위기의 동상이 눈을 사로잡슴니다
▼ 라쯔(라체)현의 중심가를 지납니다
▼ 검문소
잠시후 좌측으로 꺽어지며 팅그리로가는 318공로와
직진하여 서쪽 사가현으로 가는 219공로와 갈림길이 있는
교통의 요충지 입니다
▼ 까다롭지 않게 통과한 검문소에서
잠시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 오르면
협곡 오름길로 접어들고
▼ 게곡의 능선을 따라 오름길은 이어지고
옛 날엔 신성시되어 타르쵸를 걸어 둘만한 위치에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신설 송전탑과 통신시설이
자꾸만 새로운 생각을 떠 올리게 한다
▼ 마을과는 멀어진 계곡의 상단인가 보다
양떼를 가두는 돌담 우리가 곳곳에 눈에 띈다
▼ 펑퍼짐한 넓은 산능선에 편리 시설이 설치되어있다
▼ 좌촐라산5,248m
(가쵸라패스5,248m)
▼ 뉴팅그리로 가는 가쵸라패스에서
부산 님의 기념사진
▼ 다정한 가족사진!
▼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이젠 브라마푸트라강이 아닌
갠지스강 본류로 흘러 들어가는 가는 물줄기를 만듭니다
▼ 내림길에서 만나는
몽고족 정서가 많이 느꺼지는 가옥 형태입니다!
▼ 마을이 끝나는 위치에
초모랑마국가공원 표지석이 있슴니다
아마도 초모랑마(에베레스트)가 저 멀리 보이는
이 지역부터 초모랑마국가공원지역으로 편입되는 것 같슴니다!
▼ 초모랑마 없~~다 !!!!
이 날의 에베레스트는
짙은 구름속에 갖혀버렸슴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도 했슴니다만
오늘은 아니랍니다!
아쉬움에 같은 위치에서 촬영된 자료 사진으로
구름뒷편의 에베레스트와 로체의 정상위치를
마킹해 보았슴니다!
▼ 뉴팅그리 백파호텔 도착
이어진 내림길로 잠시후
뉴팅그리의 중심 시가지로 들어 가지 않고
입구의 우정공로 변에 자리하고 있었슴니다
고산증세가 염려되는 4,300m 고도의 밤이 됩니다
▼ 조금 아래 지역에 위치한 상가 지역으로 이동
▼ 석식을 해결한
식당으로 들었슴니다
고산증에 대한 염려와 내일의 기대감으로
이른 잠자리에 들었슴니다
♥ 감사합니다!
다음 7편에서는 세계 최고봉 초모랑마(에베레스트)와
주변의 히말라야 산군의 파노라마를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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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촐라 산 정상에서 저와 유목민 여인 및 자녀 2명과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미륵 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