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5월27일, 수요일, 맑음, 고 노무현 대통령 조문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그 무서운 바위에서 뛰어내렸을까?
얼마나 답답했으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 외로운 길을 택했을까?
그분이 떠난 지 닷새째가 되는 오늘, 나는 눈물을 거두고 일어났다.
목욕재개하고 검은 옷을 찾아 입고 봉하마을로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통곡을 해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늘도 땅도 말문을 닫아 버렸다.
너무도 분하고 억울해서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
이래도 되는 건가?
참말로 원통하고 절통하다.
깜깜한 밤이 돼도 조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봉하마을 입구에서 분향소가 차려진 마을회관까지 조문객들의 줄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문객들은 더 많이 몰려들고 있다.
정말로 대단한 행렬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오는 것도 처음 보았고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조용한 조문객도 처음 보았다.
역시 특별한 사람이었으며,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은 수준이상이다 는 걸 알았다.
2시간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그분의 영정 앞에 섰다.
참말로 억장이 무너진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슬픈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식이 없는 사람 노무현,
앞뒤가 다르지 않는 사람 노무현,
없는 자의 고통을 아는 사람 노무현,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 노무현.
사람들은 사는 거 별거 아니라고 하더마는, 나는 사는 게 별거였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돈도 없고, 울도 없고, 건강도 없는 외로운 나,
그래서 좋은 일도 없었고 좋은 사람도 없었다.
살아남는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잠 못 드는 어느 날,
심야 라디오프로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초대 손님으로 나왔다.
음성이 너무 곱고 맑고 부드러우며 발음이 정확하고 힘이 있었다.
어중간하게 대답하여 요리조리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의 답변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확실한 답변의 말을 하는 게 너무너무 좋았다.
즉, 어중간한 답변이 없고 흑백이 분명했다.
야!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이 사람이야 말로 말과 뜻이 진실하고 귀와 눈이 총명한 사람이구나?
그때부터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람은 떠났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라고 말하고 떠났다.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다.
사람들은 너무 정직하고 바른말을 잘하는 사람을 버거워하고 무서워한다.
그래서 자꾸 없애려고 한다.
노무현은 희생당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이 넘쳐나는 분이십니다.
그동안 어리석은 백성들과 함께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모든 것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가십시오.
살아생전 한번 만나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당신은 서민과 함께한 따뜻한 대통령이었다고 엽서라도 한 장 보낼 것을.
진정한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용기 없는 자신이 밉기만 하다.
워낙 조문객들이 많고 계속 몰려드는 관계로 신발도 벗지 않고, 잔도 올리지 못하고
한꺼번에 50명씩 단체로 국화 한 송이만 바치고 묵념으로 조문을 마쳤다.
너무나 애석한 나머지 분향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못하고
영정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한참을 서 있었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일어나노?’
억장이 무너진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섰다가,
그분이 생각나면 다시 보기 위하여, 그분의 진실된 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그분의 영정사진과 조문객들의 분향하는 모습을 찍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서럽고 외로운 마음을 애써 참으며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어떤 남자가 나를 보더니 “리본 거꾸로 달았소” 라고 한다.
‘무슨 리본?’
그 사람의 눈길을 따라 가슴을 쳐다보니 어머나! 이게 왜 이래?
謹弔(근조) 리본이 거꾸로 달려있지 않은가?
핀이 꽂혀 있는 쪽으로 달았는데 그게 바로가 아니고 거꾸로였나 봐.
보통 리본을 다는 자리에 핀이 꽂혀있는데 꼬리 쪽에 핀이 꽂혀있었나 봐.
어두워서 글도 잘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당연히 핀이 꽂혀있는 쪽이 위쪽인줄 알았지,
꼬리 쪽에 핀이 꽂혀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대로 달았더니 그렇게 된 것이다.
에-구 쯧쯧, 내가 글을 몰라서 거꾸로 달았더라면 또 서러워서 어찌할 뻔 했던가?
얼른 리본을 바로 달고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그리고는 저녁으로 자원봉사자들이 끓여주는 쇠고기국밥을 한 그릇 먹었다.
떡도 한 조각 얻어먹었다.
이렇게 슬픈데도 밥이 넘어가네?
이렇게 원통한데도 밥이 넘어가네?
이 세상에 ‘먹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더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면서 방명록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벽보에도 나의 애절한 마음을 몇자 적었다.
캄캄한 밤이지만 촛불로 밝혀진 봉하마을은 대낮처럼 밝다.
그래도 대통령께서 가셨다고 하는 부엉이바위는 잘 보이지 않는다.
1년 전에 봉화산을 오르며 꼼꼼히 살펴보았기에 부엉이바위가 눈에 선하다.
그분이 뛰놀다 가신 바위이기에 꼭 한번 올라가 보고 싶지만 지금은 갈수가 없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마음마다 슬프다.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늘어선 조문행렬은 가히 장관이다.
떠난 자를 애도하는 국민들의 촛불은 아름다움이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들려고 한다.
한줄기 바람만 지나가도 뼈가 시리고 머리가 아파오는 나,
지나가는 실바람에도 목이 따갑고 콧물을 줄줄 흘리는 나,
얼른 준비해온 모자를 쓰고 윈드자켓을 입었다.
손에는 촛불을 들고 왔던 길을 돌아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밤이라 불이 번쩍번쩍하니까 나를 향하는 것처럼 보일뿐일 것이다.'
'이 장엄한 광경을, 이 슬픈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식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으니까.
봉하에서 김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버스 안은 답답하고 열이 확 올랐다.
당연히 모자도 벗고 자켓도 벗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 일을 어떡해?
자켓도 그냥 자켓이 아니고 새빨간 자켓이 아닌가?
세상에!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얼마나 욕을 했을까?
저 예의도 없고, 속아지도 없는 그런 인간도 있었다고
집에 가서 내 사진을 보여주며 얼마나 욕을 할꼬?
나의 진정한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목욕재개하고 머리카락하나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정히 빗어서 묶고
장롱 깊은 곳에 있는 검정색 옷까지 찾아서 입고 왔던 사람인데...
나의 뜻과 달리 결과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고 노무현 대통령만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노무현대통령을 좋아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진정한 대통령이었다고 알고 있듯이.
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든것 내려 놓으시고 편히 가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