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에서 모락산으로 발 길 가는 대로
1. 일자: 2020. 5. 16 (토)
2. 산: 백운산, 모락산
3. 행로와 시간
[골사그네/지지대(07:41) ~ 광교 헬기장(08:47)
~ 미군부대(09:16) ~ 백운산(09:41) ~ 수목장묘지(10:17) ~ (백운동산) ~ 백운호수 갈림(10:24) ~ 능안마을 갈림(10:54) ~ 모락약수터(11:19) ~ (모락산) ~ 효민교회(12:15) / 12.76km]
골사그네에서
버스를 내렸다. 한남정맥을 종주하며 지나던 그때와 같이 육교 난간 위에는 봄 꽃이 곱게 피어있었다. 프랑스군 참전비가 있는 지지대까지는 꽤 멀었다. 음침한 지하 터널을
지나 산으로 접어든다. 어제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도 이슬비가 내린다. 제법 긴 오름을 오르다 부러 옆 길로 들어선다. 오래 전 기억에
남은 어느 산악인의 무덤에는 표식은 없어지고 돌무더기만이 남아 그 위치를 알려준다.
지지대에서 광교 헬기장 가는 길은 리기다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푸른 잎 사이로 노란 꽃술들이 한창인 시절을 말해준다. 숨을 크게 들어 마신다. 차고 맑은 공기가 한 가득 폐에 들어온다. 정신이 맑아진다. 이 시원한 기운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곧 종식시켰으면
좋겠다.
한 시간 만에 광교헬기장에 닿는다. 망설임 없이 백운산 방향으로
길을 튼다. 숲의 운치는 더해간다. 갈색 낙엽과 초록의 새잎이
숲에 피어나는 안개를 배경 삼아 색을 뽐낸다. 맑은 날은 기대할 수 없는 몽환적인 풍경에 취한다.
입구 간판의 페인트가 벗겨진 미군 통신 부대 간판에서, 옛
전만 못한 미국의 힘이 느껴졌다. 부대 펜스를 돌아 백운산으로 향한다.
길게 이어진 시멘트 계단을 보며‘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산에 흉물을 만들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못 보던 나무 계단을 지나 백운산 정상에 오른다. 산정에도 풍경은 없다.
잠시 망설이다 이내 방향을 잡는다. 모락산을 넘자!
새로 계단이 길게 놓였지만 거친 비탈이 대세인 등로는 여전하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풍경이 낯설더니 거대한 묘지가 등장한다. 이게 뭐지? 하는
의아함은‘수목장 공원’이라는 이름 앞에 사그라진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한다.
도로를 건너니 거짓말처럼 낯익은 모락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심에는 잣나무 군락이 있었다. 백운호수와 능안마을 갈림을 지나 본격적인 모락의 품으로 들어선다. 절터 약수터 앞 고목은 언제보다도 멋지다. 두 가지 사이에 너른
공간이 보는 이로 하여금 여유를 가져다 준다. 모락의 정상으로 향한다.
곧 인파 속에 묻힌 나를 발견한다.
국기봉을 지나 내려서는 길에도 풍경은 없다. 안개는 더 짙어진다. 모락중학교로 내려서다 모퉁이에서 사람이 오길래 길을 묻는다. 내가
모르는 새 길이 또 있나 보다. 교도소 건물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보이는 모락고 펜스를 돌아 도로로
내려선다. 그 끝은 갈매마을이었다.
아침에 골사그네로 향하던 버스가 지나간다. 꿈을 꾼 느낌이다.
집에 가자.
< 에필로그 >
백운산을
다시 찾은 건, 광청종주 길에 잠시 스치듯 지난 걸 포함해도 5년만이다. 지지대에서 백운산 정상까지 오름에는 변함없이 한적하고 운치 있는 익숙한 숲이 있어 반가웠고, 백운호수로의 하산 길은 변화가 많아 옛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백운산
넘어 모락산으로 향하는 길은 처음인데 막판 오름이 만만치 않았다.
반 나절에 두 개의 산을 넘었다. 기록을 보니 휴식시간은 2분이고
4시간 31분을 내쳐 걸었다. 정상과는 떨어져
있어도 산 기슭은 그 산의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백운산의 리기다 소나무가 있는 숲으로, 모락산은 잣나무 군락으로 특징지어 진다.
집 근체에 있어도 두 산을 연결해 걷지는 못했었는데, 새 길을 걸어본 것에 의미를 둔다. 모락약수터까지는 간혹 스치는
지나는 이들은 있었으나 오롯이 홀로 걸었다. 이슬비가 내리는 운치 있는 숲을 음악을 들으며 걷는 행위
자체가 힐링이었다. 살랑거리는 바람, 흔들리는 나뭇가지, 숲에 찾아든 자욱한 안개…. 발 길 가는 대로 빈둥거리며 자연을
즐기는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