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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
대본 미파니 파이퍼
초연 1973년 올드버러 음악제 중 스네이프 몰팅스 극장
배경 1911년 뮌헨과 베네치아
<2008년 6월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 155분 / 한글자막>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 연주 / 브루노 바르톨레티 지휘 / 피에르 루이지 피치 연출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소설가.................................................................................마를린 밀러(테너)
나그네, 늙은 멋쟁이, 곤돌라 사공, 호텔 지배인, 이발사, 유랑악사, 디오니소스 목소리 등.....스콧 헨드릭스(바리톤)
아폴로의 목소리......................................................................................................라젝-프란시스 비타르
타치오...................................................................................................................알레산드로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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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글>
벤자민 브리튼 최후의 걸작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올드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것이 1973년이다. 그러나 같은 토마스 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또 다른 장르인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루키노 비스콘티의 연출로 발표된 것이 그보다도 2년이 빠른 1971년이었다. 이 영화에서 비스콘티는 원작 소설이 쓰였던 상황을 잘 연구하여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아다지에토 악장을 영화에 사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어버렸다.
그러므로, 이후에 만들어진 브리튼의 오페라는 그 음악의 분위기가 말러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며 내용도 또 같다고만은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연출가들은 비스콘티의 영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감독 비스콘티가 또한 당대 최고의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하였기에 아예 그의 영화를 벗어날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하고 본다면 이번 2008년 라 페니체 극장의 실황 프로덕션은 한 마디로 비스콘티로부터 자유로웠고 비스콘티를 모방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더러 결과적으로 비스콘티와 다른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연출을 완성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 프로덕션의 가치를 높게 인정할 만한 것이다.
그런 배경에는 이 프로덕션의 연출가인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바로 베네치아 사람이라는 것에 가장 큰 강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즉 토마스 만이 이 원작 소설을 쓰기 위해서 베네치아를 방문했던 것처럼, 아마 이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연출을 맡은 연출가라면 으례히 이 섬으로 된 도시를 다시 한 번 방문하여 그 공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피치의 경우에는 그 자신이 이미 이 도시에 대해서 통달하여 있는 것이다. 그가 이 도시를 꿰뚫고 이 도시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프로덕션 자체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피치의 이전 프로덕션 중 하나인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에서 그는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세 가지의 무대세트로서 곤돌라, 다리, 우물을 골랐다. 그리고 이 세 가지만을 무대에 배치하여 관객들을 이탈리아 북부의 아름다운 고도로 데려가는데 성공한 바가 있다. 그렇듯이 이번에는 더욱 과감한 연출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특정한 상징물 대신 요소요소에 실제 베네치아에 실재하는 구조물을 보여주어서 사실감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이 작품이 올려진 극장조차도 바로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인 점을 생각한다면, 무대에서 보이는 도시 베네치아의 풍경들은 그야말로 베네치아란 도시와 거리에 대한 사랑과 분석에 대한 연출가의 자신감이 넘친다. 더불어 이런 점은 피치가 흔히 그러듯이 연출뿐만 아니라, 무대 미술, 의상, 분장, 심지어는 안무에까지 직접 개입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뮌헨의 아센바흐의 서재, 카페 플로리안을 배경으로 하는 산 마르코 광장의 모습, 리도 섬의 호텔 전용 모래사장과 같은 곳들은 피치 특유의 미장센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프로덕션 중에서는 특히 섬세하고 마감이 잘 처리된 것이 돋보였다.
또한 피치의 프로덕션의 특징으로서 남성 무용수들의 무용을 대단히 아름답게 처리하여서 보는 이를 더더욱 브리튼의 음악과 토마스 만의 드라마 속으로 몰입시켰다. 그리고 톤을 다운시켜서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무대의 색채감이나 20세기 초반 의상의 세련됨 같은 것들이 더더구나 돋보인 프로덕션이다.
=== 작품해설 ===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글>
벤저민 브리튼 1913 ~ 1976
베니스에서의 죽음
Benjamin Britten <Death in Venice>
꿈의 도시에서 마주치는 은밀한 사랑의 운명
지난 2013년은 오페라계의 두 거목인 베르디와 바그너가 모두 탄생 200년을 맞는 해가 되어서 세계의 오페라계는 모두 베르디와 바그너의 작품들을 올린다고 분주하였다. 하지만 사실 2013년은 더욱 중요한 해이기도 한데, 그것은 바로 벤저민 브리튼(1913 ~ 1976)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브리튼은 베르디나 바그너에 비해서는 그 인지도가 분명 떨어지고 또한 그의 오페라들은 베르디나 바그너 오페라들보다도 훨씬 더 일반인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2013년 한 해 동안 영국에서는 브리튼에 대한 많은 공연과 행사가 있었으며 여러 가지 출판물로 음반 그리고 영상도 세상에 나왔다.
영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음악의 소비시장 중의 하나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몇 개의 레코드 레이블이 런던에서 나왔으며, 런던은 한 도시에 대여섯 개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하우스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오페라 스타들이나 클래식 연주가들이 모두 런던을 그들의 활동 기반으로 하여 지금의 명성을 이루었다. 특히 오페라란 분야에 있어서 영국이 가진 그 영향력과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영국에서 공연되는 그 많은 오페라는 대부분 외국의 작품들이며 그런 영국은 자신들의 오페라 작곡가를 배출하지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서 20세기에 들어서 영국은 오페라에서 그야말로 홈런을 친 셈이 되었으니, 그가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오페라 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인 벤저민 브리튼이다. 영국의 오페라 작곡가로 퍼셀이 있었지만, 세계 오페라 계에서 브리튼만큼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헨델이 런던에서 영어로 많은 오페라를 선보였지만 그는 결국 독일인이었으며 그의 작품 세계도 이탈리아 바로크 오페라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브리튼의 오페라들은 실로 다양한 오페라 세계를 보여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오페라 작곡가들은 그 누구도 브리튼의 영향력으로부터 무심할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올랐던 것이다.
브리튼은 어려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대단히 젊은 나이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작곡가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세계 정상급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였으며 지휘자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또한 그는 1946년에 잉글리시 오페라 그룹을 설립하고 1948년에 올드버러 음악제를 창설하기도 하는 등 많은 활약을 보였다.
브리튼은 다만 오페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 분야에서 활약하였으며, 작곡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특히 그는 많은 성악곡을 만들었으며, 오페라 분야에 관한 그의 독창성은 실로 대단하다. 그는 '실내 오페라'란 장르를 확립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적으로 쇤베르크나 베르크 같은 신 빈 악파의 영향도 크지만, 말러,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등과 보다 밀접한 음악적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오페라들은 낭만 오페라들처럼 선율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신 빈 악파의 그것처럼 난해한 것도 아닌, 절충적인 거리에 있다.
브리튼이 완성한 오페라는 16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은 지금 이미 완전히 국제적인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브리튼은 1900년 이후 즉 20세기에 태어난 모든 작곡가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작곡가라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에 나온 모든 오페라 중에서도 푸치니와 리하트르 슈트라우스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작곡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브리튼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손꼽아 본다면 <피터 그라임즈>, <빌리 버드>, <글로리아나>, <한 여름 밤의 꿈>, 그리고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있는데, 이상의 다섯 가지 작품은 다들 대극장용 대작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루크레티아의 능욕>, <알버트 헤링>, <나사의 회전>의 세 작품은 소극장용 오페라인데, 이상의 8개의 작품이 브리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8개 작품 중에서 마지막 작품이 바로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토마스 만이 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는 동성애에 관한 주제를 매우 몽환적이고 미술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 작품은 동성애를 넘어서 당시 사회 전반을 매우 심도 깊게 다른 작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1911년으로 추정되는 때에 토마스 만은 크로아티아에 있는 휴양지인 브리오니 섬에서 휴양을 하던 중에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부음(訃音)을 듣는다. 그때에 만은 무언가 계시를 받는 듯한 심정으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집필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베네치아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서 만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즉 아직도 세기말의 분위기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유럽의 예술가 전반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으며, 그속에는 자신에 대한 가혹한 비판 역시 포함되어 있다. 만은 예술가들의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정신과 행동, 그리고 당시 경직된 독일 사회를 동시에 비판하고 나섰다.
작품속에서 만은 베네치아라고 하는 백 퍼센트 인공의 미로 이루어진 도시를 배경으로 하여, 미소년 타치오를 등장시켜서 그를 자연의 미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베네치아와 대비시킨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역시 아폴로적인 요소와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주인공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는 독일의 뮌헨, 즉 성(性)에 관해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로 대표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저명한 소설가이다. 그는 시민계급과 예술가계급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고 내면의 조화를 이루어낸 고귀하고 점잖은 예술가이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그의 모습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를 연상시킨다. 그가 소설가가 아니라 작곡가라고 했다면 거의 모든 것이 말러와 일치한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아센바흐라는 인물은 괴테와 말러 그리고 작가 토마스 만의 세 인물을 모두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주인공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남쪽 나라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는데, 베네치아로 가는 여행은 꿈과 고향을 찾아서 가는 여행이며 또한 동시에 병과 죽음을 찾아서 가는 복수의 의미를 지닌 여행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베네치아에서 미소년 타치오를 만나고,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강렬한 동성애에 대한 정열을 느낀다. 타치오는 미의 절대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인데, 그는 아센바흐에게 희열이자 동시에 죽음이다.
브리튼은 이 소설을 오페라로 표현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남은 모든 역량을 이 작품에 다 쏟아 붓는다. 무엇보다도 브리튼은 그 자신이 동성애자였다. 그는 영국의 테너 피터 피어스와 평생 동반자적 관계로 지냈다. 두 사람은 음악계의 중요한 인사들이었지만, 그들의 성적인 취향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백안시당하기도 하였다. 그런 브리튼이 만의 소설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역시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작품 속의 주인공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리튼은 아센바흐 역할을 테너에게 맡겼는데, 그것은 당연히 자신의 파트너 피터 피어스를 위한 역이었다. 사실 피어스를 만난 이후 브리튼의 오페라의 테너 역할은 거의 다가 피어스를 위한 배역들이었고, 모든 세계 초연에서 그 역할은 피어스에 의해서 처음 해석되었다. 아센바흐 역 역시 피어스의 음성과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이다. 1973년 브리튼과 피어스가 함께 만든 올드버러 음악제의 몰팅즈 극장에서 올려진 초연에서 역시 피어스가 열연하여 아센바흐의 첫 해석을 보였다.
이 오페라에서 아센바흐 역 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리톤 배역인데, 단 한 명의 바리톤이 여러 바리톤 역할들을 모두 혼자서, 즉 일인다역(一人多役)을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즉 아센바흐를 처음 여행을 하도록 이끄는 나그네 역할에서부터 그가 베네치아로 가는 증기선 속에서 만나는 늙은 멋쟁이, 그를 호텔이 있는 리도 섬으로 데려가는 곤돌라 사공, 리도 섬에 위치한 호텔의 지배인, 이발사, 유랑 악사 그리고 디오니소스의 목소리까지 모두 한 명의 바리톤이 계속 의상을 바꾸어 입고 나와서 부르게 되어 있다. 그러니 사실 테너가 계속 다른 사람을 만난다지만, 계속 같은 바리톤과 대화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바리톤의 역할들은 디오니소스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주인공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센바흐가 호텔에서 만나는 미소년인 타치오 역은 가수가 아니라 무용수가 맡도록 되어 있다. 오페라식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묵역(默役)으로서, 노래는 커녕 말하는 대사도 하나 없다. 그는 오직 연출에 따라서 무용이나 마임과 같은 몸짓으로만 자신을 표현한다. 타치오와 동행하는 어머니인 폴란드 귀부인과 타치오의 두 자매도 모두 무용수가 연기한다. 그 외에 아폴로의 목소리가 앞에서 언급한 디오니소스의 목소리와 대비되게 카운터테너가 부르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이 작품의 주요 오페라 가수는 테너 1명과 바리톤 1명일 뿐인 매우 독특한 구성이다.
이 작품은 절제되고 원숙하며 세련된 음악이 온 드라마를 지배한다. 폭발적인 표현이나 화려한 가창은 없다. 모든 것은 절제되고 또한 정제된다. 그러므로 아센바흐 역은 아주 어려운 역으로 일컬어지며 어떤 이는 이 역할을 영국 오페라 사상 가장 어려운 배역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자신의 최후 최고의 대작을 쓰는 동안 브리튼은 심장병이 악화되어서 그야말로 죽음과 싸워가면서 겨우 완성하였다. 결국 그는 초연의 최종 리허설에도 초연에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의 평생의 연인이었던 피어스의 품에 안겨서 63세의 아까운 일생을 마감하였다.
1976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브리튼에게 올드버러 남작의 작위를 수여하였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 여왕은 피어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는 조문을 보냄으로서 동성애 커플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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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3 / 박종호> ★★★
베네치아의 주민이기도 한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그려 낸 이 작품에는 자기 고장에 대한 사랑이 묻어 있다. 특히 뮌헨의 아셴바흐의 서재, 카페 플로리안을 중심으로 하는 산 마르코 광장, 리도 섬의 호텔의 전용 모래사장과 같은 곳들은 섬세하고 마감을 잘 처리한 미장센의 극치를 보여 준다. 특히 남성 무용수들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는 토마스 만의 원작과 브리튼의 음악을 돋보이게 한다. 브루노 바르톨레티가 지휘하는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는 쉽지 않은 작품을 잘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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