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십자가의 길(14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전 안에서 늘 마주하게 되는 14처이지만, 이 작품이 우리 본당에 모셔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기도, 그리고 쉽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번 글은 최광호 바실리오 신부님의 강론을 중심으로, 그 여정을 교우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미사 강론 중 (2022. 11. 20)
찬미 예수님! 오늘은 그동안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14처’ 작품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우선 지금까지 십자가의 길 작품에 대해 말씀드리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작품이 완성될 수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14처 작품을 모셔오기 위한 노력은 성전 건축 방향이 확정된 이래로 지금까지 약 2년이 넘도록 진행되어 왔습니다.
우선 이 작품의 작가님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우리 본당 14처 작가님은 일랑 이종상 요셉 화백님이십니다.
요셉 선생님께서는 ‘일랑’이라는 아호에 걸맞게 늘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화백이십니다. 특별히 오천 원과 오만 원 속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그리신 화폐 영정 화가로서 많이 알려져 계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생존 화가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가지셨고, 고구려 벽화 연구와 독도 수호 운동 등을 추진하시며 역사 수호 및 문화 운동 전반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화가이십니다.
또한 깊은 신앙심을 지니신 천주교 신자로서 많은 성미술 작품을 남기셨고, 최근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하신 순교 기록화와 성인들의 영정화를 신리성지에 봉헌하시며 최초의 순교 미술관이 건립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신 이종상 요셉 선생님께서 우리 성당 ‘14처’의 작가님이십니다.
이종상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이재웅 다미아노 아버지 신부님 덕분이었습니다. 이재웅 신부님께서는 팽성 성당을 건축하시던 당시에 광주 가톨릭대학교 성당에서 이종상 선생님의 14처를 보시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시며 이종상 선생님을 감동시키셨고, 결국 팽성 성당에 이종상 선생님의 14처를 모시게 되십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본당 신학생이었던 저도 이종상 선생님을 종종 뵐 수 있었고, 신부가 된 이후로는 여러 계기들을 통해 이종상 선생님을 더욱 가까이에서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6월 제가 이곳 동탄송동성당에 부임하고 성당을 지어야 하는 입장이 되니, 부전자전이라고 이재웅 신부님처럼 이종상 선생님께 14처를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즉답을 피하셨습니다. 첫째는 당신보다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셨던 것이었고, 둘째는 건강 문제였습니다. 38년생 곧 여든넷의 고령이시다 보니, 선생님께서는 본인이 새로운 작품을 그릴 체력이 될지에 대해 우려하셨습니다.
더욱이 코로나19가 한창인 시기였다 보니 더더욱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첫째 문제는 제가 잘 설득해 낼 수 있었지만, 둘째 문제는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실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선생님의 건강을 지향에 두고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약 1년여의 기간 동안 안부와 설득이 반복되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드디어 긍정의 신호를 보내주시게 됩니다.
다만 새로운 작품을 그릴 만한 건강 상태가 아니셨기에, ‘지클리 판화’라는 기법으로 작업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지클리(Giclee) 판화 : 아주 정교한 극세 잉크를 사용하여, 캔버스나 고급 종이에 정밀하게 분사하는 초정밀 인쇄 방식. 원작의 색채와 질감까지 그대로 구현 가능하기에, 작가의 사인이 더해지면 진본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판화 기법]
이 지클리 판화 기법을 사용하여 팽성 성당에 걸려 있는 원본을 그대로 본을 뜬 후 당신께서 직접 싸인을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 작업은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고, 당신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제자 한 분을 소개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임채욱 화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임채욱 화백 역시도, 현재 매우 높은 반열 에 올라 계신 사진 작가님이셨습니다. 혹시라도 거절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스승님에 대한 존경을 담아 작업에 함께 해주시기로 결심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클리 판화의 첫 작업은, 원본의 사진을 찍는 작업이었습니다. 팽성 성당 주임신부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신 덕에 순조롭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조명에 대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각 처마다 조명이 설치될 수 있도록 준비는 해 두었는데, 팽성 성당처럼 벽면에 조명기구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팽성 성당에 비해 우리 성전이 매우 아담하다보니 조명 기구 14개가 벽에 노출 되어 있으면 시각적으로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문득 머릿속에 한 단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루브르!” 이종상 선생님께서 루브르에서 시도하셨던 배면 조명 기법을 응용하여 각 처의 작품 뒷면에 조명을 설치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에 대해 임채욱 화백님과 의논하였고, 임 화백께서는 이종상 선생님만 동의해주신다면 좋은 방식이 될 듯하다고 답변해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종상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작품에 싸인하는 날 샘플을 보시고, 결정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에 임채욱 화백께서는 연구에 돌입하셨고 너무 까다로운 작업이어서 굉장히 고생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지난 11월 14일 월요일에 첫 샘플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걱정이 설렘으로 바뀌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종상 선생님께 곧바로 전화를 드렸고 싸인해 주실 날짜를 조율하여 지난 금요일인 11월 18일에 뵙기로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11월 18일 금요일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점점 커졌습니다.
‘이제 싸인만 받으면 우리 본당에 이종상 선생님의 14처를 모시게 되는 것이 확정되는 것인데 혹시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어쩌나…’
임 화백도 같은 마음으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11월 말부터 예정된 전시 준비로 바빠지실 예정이셨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종상 선생님께서 재작업을 요구하시게 되면 올해 혹은 내년까지도 14처 완성이 어려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긴장 속에 이종상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종상 선생님 역시 매우 흡족해하셨습니다. 심지어 사실상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고 말씀해주시면서 감탄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지에 배면조명 기법을 사용한 14처 작품은 아마도 세계 최초일 것이라며 자부심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작품이 하느님과 동탄송동성당의 교우들을 이어주는 좋은 통로가 되길 바라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몫은 기도입니다. 남은 기간 동안 14처 제작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하느님께 손을 빌려드리고 계신 이종상 선생님과 임채욱 화백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끝으로 이종상 선생님께서 14처를 그리시며 바치셨던 기도문을 나눕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림이며 기도뿐이오니, 이제 혼신을 다하여 바치는 이 성화가 메마른 가슴가슴에 단비가 되어 말씀의 향기로 스며들게 하소서. 화가의 그림으로 보는 이를 막아서게 하지 마소서.
다음 글에서는 동탄송동성당의 십자고상, 성모상, 성가정상을 제작하신 김형근 야고보 작가님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성당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마주하고,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되는 성모상과 십자고상에 담긴 의미와 그 제작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이종상 요셉 화백(1938~) 약력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호는 ‘일랑(一浪)’이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비교미학 석사와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미술계와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특히 5천 원권의 율곡 이이와 5만 원권의 신사임당 초상화를 그린 화폐 영정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한민국 역사 인물 초상화와 성미술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긴 작가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임채욱은 동양화의 정신과 진경(眞景) 산수의 전통을 사진이라는 현대적 매체로 확장해 온 작가이다. 대학 시절 일랑 이종상 화백을 사사하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진경 정신을 체득했으며, 이후 붓 대신 카메라를 통해 현대적 진경산수를 구현해 왔다.
첫댓글 14처의 작가님 이종상 화백님께서 우리본당에 오시어
잠시였지만.
함께 뵐수 있었던 순간들이 생생히 기억 납니다.
화백님 부부 함께 오시어 매우 흡족해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순시기가 좀더 특별함이 느껴짐이 복잡 하진 않지만 ,
한 획의 느낌이 오롯이 주님의 아픔과
고통이 오롯이 느껴짐은 역시 깊은 내공의 신심이 바탕이었음이 ~~
모니카 님의 이러한 기록으로 송동 성당의
역사의 기록됨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