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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잃지 마십시오.
설교본문 : 로마서 9:1~33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2월 13일
서 론 :
지난 몇 주 동안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거듭남이란 주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을 받은 것을 말하는데,
누구나 간절히 구하면 주께서 주시는 그 거룩한 생명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고, 또 거기에 성령까지 부어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거듭남도 쉬운 일이고 신앙생활도 참으로 쉬운 일처럼 보입니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을 보면 신앙생활처럼 어려운 일은 없어 보입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는데 구하는 것조차 힘들고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그 이유를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9장의 말씀을 통해
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음에도 거듭난 삶을 사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동족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아픔
1. 유대인들이 가졌던 특권들
바울은 동족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된 것에 대하여
그 마음에 끝없는 아픔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가졌던 특권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를 정리합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자의 자격을 주셨습니다(4절)
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바울은 롬 8:15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래 하나님께 양자로 인정받은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양자의 자격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2)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을 주셨습니다(4절)
(성경구절 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자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 된 자로서의 직분과 영광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3) 그들에게 언약들과 율법을 주셨습니다(4절)
(성경구절 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을 주시리라고 약속하시고,
그 대신 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율법이 창세기~신명기의 모세 5경에 있습니다.
4) 그들에게 예배를 주셨습니다(4절)
(성경구절 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배를 주셨고, 그들의 죄를 위한 희생제사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이 예배와 희생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그들 앞에 열렸습니다.
5) 그들에게 많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4절)
(성경구절 위에)
노아의 홍수 후에 무지개를 통해 주신 약속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들을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수없이 많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이 그들을 통해서 메시야가 나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6) 그들은 참으로 훌륭한 신앙의 조상들을 둔 자들입니다(5절)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들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엘리야, 예레미야 등
수없이 많은 훌륭한 선조들의 후손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참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7)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5절)
(성경구절 위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바로 그들 이스라엘 백성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바울의 아픔과 고통 ➠ 우리가 가져야 하는 아픔
1) 본래 하늘의 복을 가졌던 자들이 이제 저주의 백성이 되었다(4~5절)
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본문 4~5절에 언급한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주시리라 약속하신 모든 하늘의 복이
본래 구약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알았고,
어떻게 해야 구원받게 되며, 구원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은혜와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저주받은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2) 구원의 길을 아는 자가 겪는 고통
바울은 그의 동독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저주받은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그의 마음이 마치 뼈가 녹는 듯한 큰 아픔 끊임없이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그의 동족에 대하여 이런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그가 구원의 기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도 알고,
그 구원의 길을 걷지 않는 자가 당하게 될 멸망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도 잘 알기에
바울은 그의 동족 유대인을 위해 큰 고통을 겪습니다.
바로 이 아픔이 그로 하여금 유대인들로부터 그렇게도 핍박을 받으면서도
항상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도를 하게 했습니다.
● 묵상 :
바울이 그의 동족에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느낀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대하여 이런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 친지, 주변 동료들을 두고 이런 깊은 고민과 아픔을 느껴야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용기와 결심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 궁핍한 자보다 믿음 없는 자를 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기에서 복음을 증거하려는 열망이 일어나게 됩니다.
제 2 부 :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된 하나님의 자녀
1. 참 이스라엘 : 약속의 자녀, 택하심을 받은 자
1) 하나님의 백성의 두 조건 : 약속의 자녀, 택하심을 받음(6~13절)
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내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의 두 자녀 이삭과 이스마엘 중에서 이삭을 선택하셨고,
이삭의 두 자녀 야곱과 에서 중에서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선택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권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중요한 두 가지를 요약합니다.
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라야 한다는 것,
②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들이었고,
또한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2) 이제는 이스라엘의 칭호가 그리스도인에게로 옮겨졌습니다(24절)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그런데 이제 이 두 가지가 모두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리라는 새로운 약속이 주어졌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리라는
새로운 선택의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예수님의 공동체가 참 이스라엘이 됩니다.
3) 우리도 기각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었던 유대인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말씀을 존중하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싫어하며,
기도와 찬양과 예배드리는 모든 신앙의 행위들을
마음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것이 되게 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절대 주권
1)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18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옛날 조선시대에도 임금이 소위 ‘권도(勸導)’로 명령하는 것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단어의 뜻은 임금이 신하를 설득하여 이끈다는 말이지만,
실상은 왕이 자기의 권한으로 명하는 것이었기에
신하들은 왕권으로 명하는 것에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긍휼히 여기를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케 할 자를 강퍅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심판하리라 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당신이 만일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에 반항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주권을 믿는다면서 그 말씀을 존중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다면
그 고백이 모두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말씀을 경청하는 것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2)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21절)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하나님께서 그 절대주권으로 사람을 선택하여 쓰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진노의 그릇으로, 즉 심판하실 자로 정하신 자도 쓰실 때가 있습니다.
출애굽 때에는 바로 왕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리셨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할 때에는
바벨론을 통해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징벌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 멸망 받은 자로 정해진 자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질 때
이를 가리켜 ‘천한 그릇’이라 했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때
이를 가리켜 ‘귀한 그릇’, 또는 ‘긍휼의 그릇’이라 했습니다.
➠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의 해석에 주의할 점
많은 사람들이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은 귀한 그릇이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은 천한 그릇이라 해석합니다만 잘못된 해석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한 듯 보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라면 천한 그릇이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쁨으로 섬기는 자라면 귀한 그릇인 것입니다.
3) 악한 자에 대하여 오래 참으며 관용하시는 것에 대한 주권(22~23절)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세상이 악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왜 악이 더 기승을 부립니까?”하고 질문합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은 이 또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해있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의 그릇에 대하여 당장 심판하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관용으로 오래 참으셔서
그들 또한 할 수만 있다면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용이 한없이 계속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관용이 끝이 나면,
그동안 참으셨던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한꺼번에 쏟아질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주님의 심판날입니다.
언젠가 우리 앞에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택함 받은 자들에게는 큰 영광이 부어지는 날이 됩니다.
제 3 부 : 우리도 멸망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 이제는 멸망의 자녀가 된 유대인들
1) 유대인이 멸망의 사람이 된 이유(30~32절)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 되었고, 저주받은 멸망의 자식들이 되었습니까?
이제는 구원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온전하신 의를 받는 때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기들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를 얻으려면 율법 전체를 모두 지켜야만 하는데
율법 전체를 지키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이제는 그들이 멸망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2)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린 유대인들
율법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여는 문에 불과합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달은 자가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계속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의를 지켜갑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이루었다는 것에만 머물렀습니다.
그것도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킨 것이 아니라
고작 율법의 첫 출발점인 할례를 받은 것을 가지고
마치 율법의 모든 것을 다 이룬 양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받은 것을 의로 여기고
그 후에 하나님과의 일체의 교제를 갖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 율법주의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경고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가 주후 54년이니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고작 20년이 채 안 된 때입니다.
그런데 벌써 많은 그리스도인에게서
실패한 유대인의 고질적인 습관인 율법주의의 병폐가 생겼습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았다는 것만 믿고 타락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세례받은 것이나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으로
신앙의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여기고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율법주의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를 빼앗기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멸망의 자식이 되었는데,
그 저주의 습관을 그대로 이어받으려 하니
바울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동원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직분이 무엇이든, 전에 어떤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든 간에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하나님과 교제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내가 드린 영광을 받고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어느 순간에서 멈추어버렸다면
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하루 중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2.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
1) 유대인이 자랑하는 율법이 그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이미 가졌다고 생각하는 율법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할례이든, 혹은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의 법조항을 하나하나 지키는 것이든 간에
그것이 그들의 자랑거리이고 동시에 그들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랑하는 율법이 도리어 유대인을 망하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율법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이 기적을 보고도 주님을 믿으려 하지 않는
강퍅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2) 유대인들에게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가 된 예수님(33절)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새로운 구원의 법, 새로운 믿음의 법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지난 유대인들도 수천 년 동안 그들의 자랑거리였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 출발을 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자랑거리인 율법을 파괴하고,
예수님이 그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가 된 것입니다.
3) 당신의 믿음을 방해하는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는 무엇입니까?
① 내 마음에 드는 말씀만 들으려하지 마십시오.
내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를 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주신 말씀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지키려 합니다.
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진보적인 성향의 것만,
보수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보수적인 성향의 것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고집하는 것과 다른 것은 모두 배척하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예수님께 배척당하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② 내 믿음을 방해하는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극복하십시오.
내 급한 성격이 믿음을 방해하기도 하고,
유혹에 쉽게 넘어지는 것이 믿음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돈을 좋아하는 성격, 벌컥 화를 잘 내는 성격,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 묵상 :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언젠가는
하나님이냐 세상이냐를 결정할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내가 주님을 버려야만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을 믿지 못 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다른데, 내 생각을 포기할 수 없을때
그것이 바로 신앙의 걸림돌입니다.
그 걸림돌에 걸려 주님을 버리게 되면,
심판 날에 우리도 주께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때를 잘 이기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기 바랍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100년밖에 안 되는 세상의 일 때문에 영생을 포기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100년밖에 안 되는 세상의 일 때문에 영생을 포기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결 론 :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비유(누가복음 7:31~35)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한 이 말씀을 하시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무리들은
다 그 말씀을 옳게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그 말씀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들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비유(31~32절)
31.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32.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당시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놀이 중에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가 있었습니다.
두 놀이는 둘 다 비슷하게 두 편을 나누어 한 편에서 피리를 불거나 장송곡을 부르면
다른 편에서 그 피리 소리나 장송곡 소리에 따라
춤을 추든지 통곡을 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때 피리를 부는 것과 장송곡을 부르는 것이 그 놀이를 주관하는 것이 되어
아이들은 저마다 피리를 불거나 장송곡을 부르는 편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자기가 다른 아이의 부르는 노래 박자에 맞추어 춤추고 통곡하는 편에 들면
그 놀이의 판을 깨버리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그 놀이의 주관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놀이판을 깨뜨리는 자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바로 이렇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놀이판을 깨버리는 아이들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이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는 귀신 들렸다고 했습니다.
장례식 놀이에 참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니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라고 욕했습니다.
결혼식 놀이판을 깨뜨린 것입니다.
● 묵상 : 주님의 놀이판을 깨뜨리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들이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
이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힌 자들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신을 조심합시다.
저 사람이 먼저 제안했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말을 했으면
나도 그 모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거부하면
그들처럼 나도 하나님께 거부를 당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세우신 구원의 길에
항상 서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마당에
우리도 함께 참여하게 하옵소서.
우리도 버림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늘 긴장된 마음으로 주께서 명하신 영적인 질서 안에
항상 머무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속한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진노의 그릇이 아니라
귀히 쓰임 받는 긍휼의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