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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섬유공장이었던 대농 청주공장 부지에 입지한 지웰시티 주변은 청주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줄지어 서있고 백화점과 호텔 쇼핑센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인근 거리엔 식당·주점이 즐비하다. 하지만 전망 좋은 지웰시티 34층에 살던 사업가 S씨는 지난해 4년 만에 이 동네를 떠나 서원구 모아파트로 이사했다. 지웰시티옆 거대한 공장과 청주산업단지에서 뿜어내는 오염물질 때문에 거실에서 바라 본 하늘은 늘 흐릿하고 대기질이 좋지않아 호흡기증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지웰시티와 S씨 사례는 기업유치로 발전한 청주와 그로 인한 폐해를 상징한다.
산업단지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대규모 산단이 들어오면 세수증대와 고용창출, 인구증가로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산단 개발은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환경오염을 가속화시켜 공해도시로 탈바꿈시킨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미세먼지가 도시인들의 삶을 악화시키는 현실에서 '산업단지'의 확산은 마냥 반길 일 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청주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청주시 외곽이 빠른 속도로 '산업단지 벨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14개 산업단지가 준공했거나 조성 중이다. 규모가 큰 곳만 꼽아 봐도 청주테크노폴리스(370만8천890㎡), 청주오창테크노폴리스(149만3천630㎡), 오송제2생명과학단지(328만3천844㎡), 오창제3산업단지(57만6천433㎡), 국사산업단지(95만6천229㎡)등이다. 여기에 북이산업단지, 옥산제2산업단지, 남청주현도일반산업단지, 신전일반산업단지, 서오창테크노밸리, 오송 제3생명과학국가산업단지 등 13개의 산업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전문기관의 용역보고서는 긍정적이다. 이들 산단이 문을 열면 생산파급 2조5천702억원, 부가가치 파급 1조6천9억원, 고용유발 2만6천148명 등 파급효과가 기대된다고 한다.
수도권과 가까운 입지, 우수한 교통인프라 때문에 산단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지만 이시종 충북지사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사는 최근 간부 회의에서 "충북에는 기업 유치를 위한 산업단지가 부족하다"며 "국가·일반산업단지 등 산업단지 확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독려했다.
일자리 창출과 도민소득을 높이기 위해 기업유치는 자치단체장으로서 당연한 책무지만 이젠 '환경대책'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맑은고을'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청주의 환경오염은 심각할 정도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작년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충북 지역은 지난해 평균 미세먼지 농도(m³당 51μg)는 물론이고 미세먼지 나쁨 일수도 평균 41일에 달해 전국 최상위권이었다. 특히 충북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끌어올리는 곳은 청주시였다. 지난해 청주시의 미세먼지 나쁨 일수는 53일로 전국 10위였다.
하지만 충북도는 "충북 지역의 미세먼지는 30%가 내부적 요인, 70%는 충남이나 수도권, 중국 등 외부 요인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손을 놓고 있다. 참 무책임한 발상이다. 산업단지가 늘면 늘수록 주민들의 건강엔 치명적이다.
작년 5월 8일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국대 의대 권호장 교수(예방의학)팀이 2012∼2015년 울산, 포항, 시화·반월, 광양, 청주·대산 등 5개 산업단지 주변에 사는 주민(20세 이상) 3만 5,530명의 건강 상태를 비교 분석한 결과 산업단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산업단지에서 떨어진 곳에서 사는 주민에 비해 급성 안질환에 걸릴 위험은 1. 4배, 폐암 발생 위험은 3.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단지 주변 주민은 호흡기 증상을 더 많이 호소했다. 산업단지가 아닌 곳에서 사는 주민에 비해 기침과 가래 배출 위험이 각각 1.1배였다. 아토피성 피부염 유병률은 1.1배 높았다. 급성 눈질환은 1.4배, 폐암은 3.5배, 자궁암은 1.9배 더 많이 걸렸다. 권 교수팀은 논문에서 "산업단지 주변 거주민이 상대적으로 높은 호흡기 질환·알레르기 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결론이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산업단지 주변엔 미세먼지·이산화황·질소산화물·일산화탄소·오존·휘발성 유기 화합물(VOC)·PAH·중금속 등 다양한 오염물질이 체류해 있기 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산업단지가 급증하면 폐기물처리장도 같이 늘어난다. 청주시에는 북이면에만 폐기물처리 수집·운반·분쇄 등 업체가 17개가 있으며 현재 처리용량 증설과 신설 절차를 밟고 있는 소각장이 2곳이다. 2016년 기준 청주시에서 하루 처리되는 민간업체의 폐기물 소각량이 전국(7970t) 대비 18%(1448t)를 차지한다. 산업폐기물을 소각하면 다이옥신,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등 유해물질이 배출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눈에 보이는 재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해가 더 무서울 수가 있다. 그 피해를 금방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단지가 늘고 기업을 유치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기업이 도시를 풍요하게 한다. 하지만 이젠 자치단체장들이 환경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해서 공해배출 기업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환경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해 대기오염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미세먼지를 중국 탓으로 돌리지만 중국은 6년 전부터 미세먼지 저감대책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정부가 지원해 석탄보일러를 가스와 전기보일러로 교체했고 공해배출공장을 1만 곳 이상 문을 닫게 했으며 노후차도 2천만대 이상 폐차장으로 보내면서 대기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지자체가 산단 확장·기업유치에만 매달리다 보면 도민건강은 악화된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삭막하고 황폐한 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없다.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
첫댓글 제가 늘 생각해 왔던 거 회장님이 콕 집으셨네요 . 단순히 IMF시절 넓은 부지 아무도 안 사니 황급히 공장 용지를 일반용지 바꿔서 공장바로 옆에 대규모 주거 상업시설을 두고. 세월흘러 이제는 산업단지 부족하다고 다시 조성하고. 너무 근시안적인 정책을 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