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이웃들
<농장님, 열무 많이 있으니 가져가세요.>
<네, 알았습니다. 조만간에 들르겠습니다.>
그리 대답하고 일에 파묻혀 살다가 며칠 흘렀다.
<농장님, 더 지체하면 세어져서 먹지 못해요. 빨리 가져 가세요.>
<네, 태기산님 당장 오늘 저녁에 달려가겠습니다.>
이쯤되면 받는 사람이 떼쓰는 게 아니고 주객이 전도되는 형편이다.
너무 황송하고 감사하여 저녁약속을 취소하고 태기산님과 동생네 들르는 일을 앞당기기로 작정하여 차를 몰고 달려갔다.
연세있는 분들이 좋아하는 누룽지 사탕을 샀다.
그리고 꽃을 좋아하시는 권사님 내외분을 위하여 다투라 모종도 챙기기로 하였다.
========
다투라 모종을 얻으러 단골 카센타에 들렀다.
<사장님, 외상값 여기 있어요>
<외상갚는 날에는 커피를 한잔 하셔야죠.>
<물론이죠.>
많지도 않은 외상값 3만원을 치르고 받아먹는 커피가 향그럽다.
<콩이 잘 나왔나요? 가뭄끝에 심는 걸 보고 꽤 불안하더구만>
<그런대로 잘 나왔지요. 웬수같은 비둘기만 아니면 꽤 재미있는 농사지요.>
<하여간에 농장님은 농사방법이 특이해서 다른 사람이 보면 될 것 같지도 않은 농사법으로 잘 한단 말이야.>
갈지도 않고 파종해서 김도 안매고 예초기로 쓱쓱 풀을 깎으니 그런 말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 농사방법이 자연농법 상으로는 좋으나 수확량이 보잘것 없어서 이번에는 트랙터 로타리 작업과 골타기 작업을 하였다. 한창 가물 때 콩파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일게다. 다음날 비가 억수로 온다는 예보를 듣고 작업한 것을 간과했겠지만.
<사장님, 다투라하고 과꽃 모종 좀 얻을께요.>
<그러세요.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대로 가져가요.>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가니 작년에 떨어진 종자가 발아하여 빽빽하여 숫제 뽑고 자시고 할것없이 호미로 한웅큼씩 떠내니 더 이상 욕심부릴 필요가 없다. 모종 얻는데 걸린 시간이 30초!
<더 가져가요.>
<아뇨. 이 정도만 해도 남아요.>
<나중에 더 필요하면 또 가져가세요.>
꽤나 넉넉한 이웃이다.
카센타 사장과 거래한지 육, 칠년 되어간다.
오래된 경차의 뒤펌퍼가 덜렁거려 정비공장에 가니 무조건 갈아야 한다고 했었다. 수중에 가진 것 없어서 한적한 카센타를 들렀다. 그랬더니 이곳 사장님이 피스못 몇 개 박아주니 덜렁거리던 것이 완벽하게 치료되었다. 그러면서 공짜란다. 수리할 일이 있어서 들르면 경비가 덜 들어가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해 주니 자연적으로 단골이 되었다.
심한 기계치이다.
농기계가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사소한 고장이 나도 직접 수리를 하지 못하면 이 곳에 맡기면 바쁜 중에도 틈틈이 돌보아준다. 깡마른 체격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데 반하여 인심좋고 후덕한 사장님이다. 요즘은 아이들과 대화하기 위하여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아들들의 싸이에도 가끔씩 들른다고 한다. 기계 만지는 분들은 컴에 취약한데 좀 특이한 사장님이다.
============
차를 달려 어스름할 때에 태기산님 댁에 도착하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어디서 발견하셨는지 한달음에 뛰어오신다.
<농장님, 어서 오세요.>
반가운 악수를 청한다. 언제 가도 반갑게 맞이하시는 태기산님이다. 별 볼일 없는 내게 이리 친절하신데 다른 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잘 하시겠지. 풋풋한 인정 때문인지 권사님댁에는 외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는 가 보다.
<마트에 들렀더니 맛있는 사탕이 있길래 가져 왔습니다.>
<뭐 이런 걸 들고와요. 다음엔 그냥 오세요.>
<아비가일님, 제가 귀한 꽃모종을 가져왔습니다.>
<이게 무슨 꽃이에요?>
<이름이 다투라이고 인도원산인데 꽃이 사발만 하고 씨앗이 꽃한송이에 50개는 달립니다. 햐얀 꽃이라 내외분이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열무를 뽑아주신다고 하여 온실에 갔다.
오이가 망을 타고 한창 자라고 있었다. 꽃이 피고 어떤 것은 새끼 손가락만 하게 맺혀 있었다.
<일주일 후에 오세요. 파치 남는 거 드릴께요.>
<아직 새끼손가락만 한데 일주일 후에 되겠습니까?>
<오이 크듯 한다는 속담 모릅니까? 쑤욱쑤욱 크는 게 오이란 말입니다.>
열무가 얼른 뽑아가란 듯이 도열해 있었다.
싱싱하게 자라 이파리가 너울거린다.
<이거 비료 안주고 깻묵액비와 목초액으로 잘 기른 거에요. 오이도 마찬가지지요.>
<와아, 이렇게 넓은 면적을 유기농법으로 다 합니까?>
<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하지만 김치를 담가서 아이들에게 보내는데 아이들이 먹을 걸 화학비료와 농약을 주고 기를 수는 없어요. 담뱃잎 우린 물 뿌리면 벌레걱정 할 필요가 없어요.>
자재창고에 벼라별 통이 쌓여져 있다. 숙성액을 담은 통들이다.
<오이재배는 벌레만 막아서 될 일이 아니던데요.>
<그럼요. 균에 의한 병충해가 꽤 있긴 한데 과습하지 않고 통풍을 잘 시켜주면 세균에 의한 병은 어느 정도 해결되지요. 내년엔 온실 천장에 환풍구도 설치하려고 해요.>
태기산님은 젊으셨을 때는 건설공사 현장대리로 일하시다가 60이 넘으셔서 청일면에 귀농하신 분인데 육, 칠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친환경 전문농부가 되셨다. 어느 때 들러도 일을 소같이 부지런히 하시고 농한기에는 사이버 영농교육을 열심히 들으셔서 농림부에도 친환경 영농인으로 등록되었다고 하신다.
허드레 자루 두 개를 가져갔는데 꼬옥꼬옥 눌러서 두 자루 가득하다. 아비가일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저녁상을 물리고 잠깐 환담을 하다가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
<제 정신이냐, 밤을 낮삼아 돌아다니게.>
어머님댁에 도착하니 한밤중이다. 어머니 옆에는 동생이 피곤한지 곤하게 자고 있었다.
<마누라에게 쫓겨났냐. 여기서 자게.>
인기척에 부스스 눈을 뜬 동생에게 한마디 했다.
동생은 스무 살 시절에 사촌형님 박스 공장에 두어달 있었던 적을 제외하면 친환경 농사만을 고집했다. 우렁이 농사법으로 몇해 실패하다가 벼농사를 접고 잡곡농사와 마늘농사 등으로 전환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태기산님이 자재를 직접 제조하는데 비하면 동생은 영농자재를 거의 구입하는 편이다.
<자재를 사서 쓰면 얼마나 남겠냐.>
마을에 펠렛기계를 지원받아 들여놓고도 활용하지 않아 고철로 변해 있단다.
한살림과 계약하여 시금치, 알타리무 등을 재배하다가 물량이 과다하거나 가격이 떨어지면 납품하지 못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이제는 참깨, 율무, 두부콩 같은 잡곡과 마늘농사로 전환하여 재작년에는 참깨 납품 전국 1위를 했다고 한다.
농사규모가 많다.
일만 이천 평이나 되니 말이다. 대부분 포트에 파종하여 흑색비닐멀칭 후에 이식을 한다. 씨앗을 심으면 야생조류 등살에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조류기피제를 발라서 파종하면 되지.>
<유기농에서는 농약을 쓰면 안돼. 기피제를 발라도 배고픈 녀석들은 달려든다고.>
포트파종부터 이식까지 적지않은 품이 든다. 이식하면 수확량은 30% 정도 늘어난다고 하니 인건비는 충당할 수 있으려나? 규모를 삼분의 일로 줄여 자력으로 농사일 하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구하여 농사를 하라고 권했다.
<어머니, 열무 필요하시면 드릴께요>
<우리도 채소가 넘친다. 늦었는데 그냥 자고 가면 어떻겠니.>
새벽에 돌아다닐 생각을 하며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고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그 많은 채소를 다 뭐해요. 교회에 김치거리가 없으니 드리고 오세요.>
중간에 교회에 들러 열무 한 푸대를 내렸다.
<시골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열무에요.>
<권사님, 고맙습니다.>
여집사님이 매우 반가와한다. 열무를 내려놓고 마침 생각난 김에 교회학교 아이들 정원에 다투라 모종을 세 뿌리 심었다. 한밤중에 꽃묘를 심었으니 달밤에 체조하는 모습을 상상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
띵동띵동띵동 초인종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없어서
쾅쾅쾅 이웃집 대문을 두들기니 아주머니가 예하고 나오신다.
<할머니 어디 가셨어요?>
<예, 동네 순찰하러 가셨어요.>
<항상 바쁘신 분이니 그렇겠지요. 아주머니 굉장히 귀한 꽃묘 드릴께요.>
한 포기만 드리면 중간에 실패할 지도 몰라 세 포기를 드렸다. 한 포기만 심어도 씨앗이 오백 개이상 달린다고 하지만 뿌리가 부실해서 여유있게 드렸다. 바로 옆 이웃인데 막내아들 내외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트럭운전이 생업이다.
요즘은 경유값이 많이 올라 벌이가 신통치 않다고 한다. 그래도 없는 내색하지 않고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둘이나 있지만 이렇게 조용한 이웃은 보기 드물다. 다만 할머니의 귀가 좀 어두워서 모자간에 이야기소리가 좀 크게 들릴 뿐이다. 할머니의 연세가 75세인데도 새벽 다섯 시부터 밤 열 한 시까지 꽤 돌아다니신다.
이곳에 이사온 후 사년간 골목청소를 한번도 해 보지 못했다. 매일 아침에 할머니가 빗질을 하시고 길옆 흙에 돋아난 잡초까지 제거하여 흙이 반질반질하다. 그런 후 동네의 이곳저곳을 다니기 때문에 한낮에는 그 분을 뵙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침 산보하러 갔다가 20여분이나 떨어진 신애원(고아시설) 앞에서 만나기도 하고 재래시장 앞에서 뵙기도 한다.
<할머니, 청춘이시네요. 오래오래 사시겠어요.>
<그래도 다리 아파서 힘들어요.>
=================
아침먹은 후 출근전에 밭으로 향했다.
8시에 밭의 고랑을 작업해 줄 트랙터 할아버지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도착해 보니 아직 오시지 않아 자주 뵙는 할머니에게 꽃묘를 드려야겠다고 집을 찾아갔다.
<할머니, 이건 아주 귀한 꽃묘에요. 인도에서 건너온 ‘다투라’ 인데 꽃이 사발만 하고 한번 피기 시작하면 서리올 때까지 피고 지는 겁니다. 예쁘게 길러주세요.>
<아유, 고마워요.>
밭을 처음 임대하여 돌 고르고 퇴비와 석회 뿌리러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릴 때 하루는 부탁을 하는 거였다.
<차 좀 태워 주오. 시장에서 지갑을 두고 왔는데 여기 들어오는 택시가 없어요.>
편하게 농사짓고 살려면 동넷분을 몇 분 사귀는 것도 좋겠다 싶어 쾌히 승낙하고 남부시장까지 모셔드린 적이 있었다. 얼마나 고마워 하시던지...
<뭘 심을 거유?>
<서리태 심으려고요.>
<콩심기에는 아까운 밭이지. 고구마를 심으면 아주 좋은 밭인데...>
<하지만 가을에 캐내는 일과 판매하는 게 보통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내가 전에 고구마 농사를 많이 해서 보관창고도 있다우. 새벽시장에 나가서 팔아도 되지.>
고구마 쉽게 심는 방법도 알려주셨었다. 이후 그 밭에 오갈적에 나오셔서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고 트랙터 작업을 해야겠다고 했더니 후덕한 인심의 할아버지를 소개해 주셨다. 조그만 텃밭을 가꾸면서 소 세 마리를 기르신다.
꽃묘 드리고 조금 있으니 탈탈탈 거리며 트랙터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할아버지. 여긴 웬 일입니까?>
<젊은이에게 전화하려니 휴대폰 밧데리가 다 됐지 뭔가. 그래서 할머니의 전화 좀 빌려 쓰려고 왔지. 오늘 작업하려고 보니 어제 내린 비로 질척해서 일하기 곤란해서 좀 미루었으면 하는데...>
<어느 정도면 땅이 마를까요?>
<보통 이틀 정도만 날이 좋으면 바삭하게 마른다네.>
<그러면 화요일 쯤에 작업해 주세요. 아참 할아버지 작업하는 시간과 제 시간이 맞지 않으니 선불로 드릴께요.>
약속한 오만원과 막걸리값 하시라고 만원을 더 드리니 흡족해 하신다.
이 할아버지는 65세 정도인데 트랙터 작업일을 곧잘 하신다.
소 기르는 할머니에게 트랙터 작업하실 분을 소개받아 작업을 부탁했었다. 150평 한마지기에 이만원이라고 하여 작업을 부탁했었다. 모월 모일 아침 6시에 시작한다고 하여 약속한 날짜에 가보니 이 할아버지가 바람을 맞혔다. 11시 경에 작업시작 한다고 전화하여 12시경에 나와 봤더니 내가 의도했던 게 아니었다. 경사면의 직각으로 타 주길 원했었는데 경사방향으로 작업한데다 골이 너무 좁은 것 같았다. 게다가 금액을 평수에 맞추어서 12만원을 준비해 드렸는데 삼만 원을 더 달라고 하신다. 만원을 더 드리면서 더 이상은 더 드릴 수 없다고 하여 조금 옥신각신하였다.
후에 석자 비닐을 씌우면서 보니 많은 경험이 있으셨던지 골의 두께가 딱 맞았다. 75-80cm. 한 줄로 파종하면 적당한 골이었고 950평에 15만원이면 비싼 값이 아니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래서 밑엣 밭의 트랙터 작업도 이 분에게 부탁했다.
로터리 작업하던 날, 모직장에 다니면서 주말농사를 한다고 정체를 밝혔더니 이 할아버지는 아들이 소방대원이고 자부는 어느 병원 간호사며 손주들 자랑이 분분하다. 약간 술취하신 데다 할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 덕분인지 마음을 금새 열어 놓는다.
로타리 날에 마대자루가 걸린 것을 보고 낫으로 잘라 빼내 드렸다.
<할아버지, 작업 잘 부탁드려요.>
300평의 작업비 삼만원과 전에 못 드렸던 이만원, 막걸리값 하시라고 만원을 더 얹어서 육만원을 선불로 드리니 싱글벙글 하신다.
트랙터를 몰고 나가시면서 빠이빠이 인사를 하셨다.
처음에 작업대금 때문에 옥신각신할 때는 꽤나 쌀쌀맞더니 마음을 열고 대하니 선한 이웃임이 분명하다.
할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사철가든을 들렀더니 영업전이라 문이 굳게 걸려 있었다.
개를 길러 보신탕 장사를 하는 집이다. 여사장님이 화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페퍼민트와 애플민트의 순을 잘라주고 지천으로 자라나는 꽈리 뿌리도 드렸었다. 후로 밭에서 일할 때는 물 한 그릇과 커피대접을 받고 밥도 얻어먹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농사해서 얼마나 남아요?>
<조금은 남지요. 남는 것보다는 아침저녁으로 하기 때문에 몸건강이 남고요, 일을 해서인지 잠이 잘 오고 걱정거리가 줄어드는 것 같아 좋습니다.>
언젠가 바깥사장님과의 대화내용이다.
식당문이 잠겨있어서 굴러다니는 종이컵에 물담아 꽃묘 대 여섯 개를 넣어 출입문 앞에 장미화분에 살짝 놓고 왔다. 꽃묘 잘 길러 달라고 전화해 드려야지.
첫댓글 ^다투라~꽃이 어떠케 생겼을까~??이름도 첨 들어 보는데... 그런대 황골님~!! 난 왜?? 석죽씨는 분명 심었는데 잎도 않나는지요~?? 지두 ^다투라 좀 주셔요...마가렛꽃 씨 받으면 나눠 드릴게요...
금년 가을에 억수로 드리겠습니다. 마가렛도 좋아하는 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