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포스트모던, 그리고 동시대
1. 포스트모더니즘은 양식인가 시기인가?
‘포스트모더니즘 회화’,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라고 할 때는 양식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할 때는 시기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이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문제와 사용의 유무에 관해 많은 의견 대립이 있다.
2.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계승이며 초월인가?
영국계 미국인 건축사가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1939~)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What is Post-Modernism?』(1986)에서 “근본적으로 어떤 전통과 그 바로 이전 전통간의 절충주의적 혼합 즉, 모더니즘의 계승인 동시에 초월”이라고 했다.
이 명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After(post) Modernism이란 어의로 인해 그럴싸해 보이지만 모더니즘의 개념이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터에 모더니즘의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진전 혹은 초월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3. 모더니즘은 양식인가 자의식인가?
헝거리 태생으로 영국에 귀화한 미술사가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1892~1978)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는데, 그는 미술에서의 모던 기질이 16세기 초에 생긴 것으로 보았다.
그는 저서 『매너리즘: 르네상스의 위기와 현대 미술의 기원 Mannerism: The Crisis of the Renaissance and the Origin of Modern Art』(전2권 1965)에서 현대 미술을 자의식의 문제로 규정했다.
우리는 미술에서 누가 최초의 모더니스트 미술가이냐고 물을 수 있다.
시인이자 비평가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1821~67)는 삶의 경험 자체가 변화하기 때문에 예술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친구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1832~83)가 이를 받아들였다.
마네가 파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으므로 그러한 회화의 주제 변화와 인상주의의 양식의 출현에서 모더니즘의 기원을 찾는다면 마네는 최초의 모더니스트이며 그 시기는 1860년대가 된다.
모더니즘이 자의식의 문제인지 양식의 문제인지 이에 대한 의견 대립이 있고 그 시기의 차이도 커서 모더니즘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계승인 동시에 초월”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젱크스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4.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클레먼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94)는 모더니즘을 순수하게 시각적 경험과 관련된 지속적이며 자기 비평적 전통으로 인식했다.
그는 마네를 최초의 모더니스트로 보았고 사실상 파리와 뉴욕을 제외한 곳에서 제작된 미술품을 무시했다.
그는 논문 <모더니스트 회화 Modernist Painting>(1960)에서 평편한 표면으로서의 회화의 물리적 성질을 인식한 마네의 회화 경향을 기술하기 위해 ‘모더니스트 회화’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린버그는 과거 화가들이 회화 매체를 구성하는 평면적 한계를 부정적인 요소로 취급한 데 반해 모더니스트 회화에서는 이같은 한계를 긍정적인 요소로 인식했으며 마네는 표면 아래의 평면을 솔직하게 선언했기 때문에 최초의 모더니스트라고 주장했다. 그린버그는 말했다.
관람자들은 옛 거장의 작품을 접할 때 작품을 하나의 그림으로 보기 이전에 작품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려는 경향을 띠는 데 반해 모더니스트 회화는 우선 하나의 그림으로 본다.
물론 이것은 옛 거장의 그림과 모더니스트 회화에 상관 없이 그림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그것만이 유일하고 필요한 방법이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서 거둔 모더니즘의 성공은 자기 비평의 성공이다.
이를 두고 많은 미술사가들은 가장 훌륭한 모더니즘의 비평적 입장을 전형화한 말이라고 동조한다.
그린버그는 말했다. “모더니즘은 결코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모더니즘 미술은 어떠한 단절이나 충돌 없이 과거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그린버그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와 팝 아트Pop art처럼 자신의 비평적 틀에 적당하지 않은 현대 작품은 ‘진기한 미술 novelty art’로 제쳐두었다.
5. 지성인을 위한 예술에서 대중을 위한 예술로의 전이
바실리 칸딘스키는 저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 Uber das Geistige in der Kunst』(1912)에서 미술가들은 좀더 위대한 정신성을 향해 인류를 고양시키는 삼각형의 정점에 있다고 적었다.
그린버그는 아방가르드 미술을 대중 문화와는 거리가 먼 필연적 엘리트주의로 보았다.
가장 진보적 사상을 가진 엘리트 미술가들에 의해 대중 미술보다 한층 격이 높은 미술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시각으로 이는 곧 모더니즘이 소수 지성인들의 미술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예술이 소수 지성인을 위한 지적 진지함에 머물자 절충적 방법으로 좀더 대중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1960년대부터 시작된 광범위한 문화 형상을 가리켜 모스트모던이란 말이 사용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지성인을 위한 예술에서 대중을 위한 예술로의 전이를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의 전이로 보는 시각이다.
팝 아트는 고급 미술과 대중 문화간의 구분을 흐리게 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한다.
그린버그는 팝 아트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미술사가 곰브리치와 그 밖의 그린버그 추종자들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팝 아트를 퇴행적 미술 운동으로 보고 이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