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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능력으로 삽시다.
본문/롬5:17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를 다스리거나, 세상의 종노릇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스리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음 질문은 무엇입니까? 과연 나에게 왕노릇할수 있는 능력이있는가입니다.
개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치와와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곰을 아실 것입니다. 치와와는 몸집이 작고 앙칼지게 짖는 사나운 개입니다. 치와와는 자기 영역에 들어온 사람을 사납게 쫓아내려고 짖습니다. 때로는 발목도 뭅니다. 그개는 끈질기게 자기 영역을 사수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사람이 한 대 차면 아무리 앙칼지게 달려들어도 꽥하고 소리 못하고 도망하거나,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회색곰이 똑같이 자기 영역에 침범한 사람을 몰아내려고 마음먹고 잇는데 마침 내게 소총이 없다면 우리의 목숨이 위태로울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곰은 또한 출산중에 있다면 더더욱 위험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곰은 총이 없다면 쉽게 우리의 목숨을 잃게 됩니다.
잘 알다시피 이 세상에는 우리가 소명을 완수하는 것을 원치 않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들을 이길 힘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초자연적인 적들과 싸울 때 우리는 치와와 같습니까? 아니면 회색곰와 같습니까? 원수들을 제압할 힘은 어디에 있습니ᄁᆞ?
그 답은 오늘 본문 롬5:17절에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로 인해 통치할 수가 있습니다.
은혜는 실제적인 능력이다.
“넘치는 은혜”라는 말씀은 잘모르는 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은혜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범위는 구원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엡2:8-9절/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많은 신자들이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세례를 받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종교적인 율법을 지키거나, 선한 행위들을 더 많이 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엡2:8-9절에서는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라고 합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구원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자신의 행위와 공로에 의존하는 가슴 아픈 상황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어떤 수고로운 일을 해도 그것이 곧 구원을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닥칠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 할 때에 허락하십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그 후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를 받을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도 슬픈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기초를 두고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갈5:4절에서 사도 바울은 잘못된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것을 믿고 받아들일 때에 에베소서1:7절의 말씀이 실재로 이루어집니다. 죄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그러나 몇 년전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처럼 은혜는 죄문제를 해결해주고, 구원을 주시는 것 뿐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고전1:18절에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리고 사도바울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복음서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은 붉은 색으로 써놓았습니다. 본문도 그렇게 붉은 색으로 써놓았습니다.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이 전하였다고 하더라도,그의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를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위의 고후12:9절에 쓰인 “약한”이라는 단어는 “무능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네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 나의 은혜[능력]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마게도냐 신자들에게 한 말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고후8:1,3절)
하나님의 은혜로, 마게도냐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능력을 넘어서서 일을 하게됩니다. 그것이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주심입니다.
그전에 바울은 똑같은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고후1:12절에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은혜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벧후1:2-3절입니다.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여기서도 “은혜”가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헬라어도 “은혜”를 “카리스”입니다. 이것은 “선물, 혜택, 은총, 후함”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한 은혜의 특징을 분명하게 볼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은혜”를 마음에 미치는 거룩한 영향력, 그리고 그것이 삶 속에 나타나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에서 우리는 마음속에서 행해진 일이 외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이는 은혜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를 보고 기뻐하”(행11:23)였다고 말합니다. 바나바는 은혜에 대해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은혜의 증거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마음의 능력을 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은혜)를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은혜)를 네게 보이리라”(약2:18)라고 말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내가 “믿음”이라는 단어에 “은혜”를 끼워 넣은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갈수 있기 때문입니다.(롬5:2절/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야고보는 네가 믿음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는 참된 지쵸인 능력을 증거를 내게 보여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주의깊에 읽어보면 은혜의 간략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릴 수가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권능을 주셔서 우리의 자연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게 해 주시는 것]이다.
(예화)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원수민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물을 길어오는데 먼 거리를 걸어서 길어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하루동안 멀을 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먹을 거리를 얻기 위해 사냥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깊은 숲속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매복해서 사냥감을 기다리고 수 많은 실수 끝에 결국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옵니다. 굉장히 운 좋은 날이면 토끼도 잡아옵니다. 너무나 먼거리를 걸어서 그들은 물과 동물을 사냥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어떤 마음씨 좋은 분이 그들의 이런 피곤한 인생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자동차는 선물한다고 해 보십시오. 자동차 한 대를 가지고 그들의 마을로 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그대들에게 선물을 줍니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멀리 걸어서 물을 길러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멀리 숲속에서 사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자통차 한 대만 있으면 여러분들이 원하는 곳으로 갈수가 잇을 것입니다. 추울때도 걱정하지 마세요, 따뜯한 온기를 이 차안에서 보내줍니다. 더위를 걱정하지 마세요, 차가운 공기도 보내줍니다. 추울때는 이 버튼을 누르시고, 더울때는 반대쪽 버튼을 눌리면 됩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때로는 노래도 들을 수가 있고, 위성수신으로 여러 가지 방송도 들을수가 있습니다. 이 선물을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아무런 댓가없이 여러분 부족들에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하고 이 도시 젊은이는 떠났습니다.
그후 몇 달후 그곳을 찾아가 보니 그들은 계속해서 과거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번마다 먼거리를 걸어가서 물을 길어왔고, 사냥을 했습니다. 그리고 물품을 구하려고 사냥한 동물을 이웃 마을로 가 걸어갔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이 자동차가 운송수단이라는 것을 재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특징 한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추장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이 자동차는 어디든지 갈수 있는 운송수단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잘 모르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중요한 기능적인 정의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능력을 전혀 사용하고 잇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충만함을 주신다.
은혜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수가 있죠? 라고 반박할수도 잇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리가운데로 인도하는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진리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의 보고가 있는 성경을 보시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롬1:16절에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그리고 전에 말씀드렸던 고전1:18절에 보시면 은혜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라고 합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말한대로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벧후1;2-4절) “성품”이라는 단어는 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나 성격을 나타냅니다. 따라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 자신의 본질적 특성과 성격을 온전히 값없이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4:17) 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능력과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정확히 에수님처럼 재창조했습니다. 우리는 말 그래도 믿는 자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토록 담대하게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 지니라.”(요일2:6)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새겨 놓으세요,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자신 것처럼 사랑야 합니다. 그것은 가능햐냐?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처럼 살수 있다.
요일2;6절에서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예수님과같이 승리하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가?라는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놀라운 만큼 경건하고 순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욕망에 지배받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연스럽고 불경건한 욕망들을 다스리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고후7:1절에서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재미있는 사실은 성경이 “하나님이 너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할때에 우리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대속의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들이 지은 모든 죄를 깨긋하게 해줍니다. 그것이 구속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내서는 안됩니다. 더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함이며, 신학적으로 성화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을 삶으로 나타나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구속의 결과로 나타나야 할 외적인 변화에 대해 말합니다.
위의 구절에서 (고후7:1) “온갖”이라는 단어를 보십시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더렵게 하는 “어떤 것들”이나, “대부분의 것”이 아니라. 온갖 것들입니다.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벧전1:15절에서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가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희석시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섬기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처럼 경건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행해야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 라고 한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의지적 결단으로 행해야 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의지적 결단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안에 하나님께서 내안에 계셔서 내게 능력을 주시고, 내힘으로 이룰수 없는 것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나 영혼을 더럽히는 모든 것에서 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완전히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2:28절에서,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자신을 깨끗하게 하슨 것은 한계가 뚜렷합니다. 은혜안에서는 가능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강력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자유의지로만 경건하게 살수가 없습니다. 자유 의지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저 교회만 출석하는 것으로는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려고 말씀생활과 성령충만함을 위하여 기도에 힘쓰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 최고가 될려면 그 최고가 되는 방법을 매뉴얼 대로 해야 합니다.
가령 몸짱이 되려면 그냥 헬스장에 등록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어떻게하면 각 모든 육신을 강력하게 만들 수 잇는지를 지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가슴, 팔뚝, 다리, 배, 등,모든 분야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가장 최신의 교화서를 본받아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병에 걸렸을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한때 위암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제발이되지 않도록 의사의 처방을 받고 의사의 권면에 귀기울이고, 의사의 말대로 살아야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성경을 잘 읽고 그것을 잘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갈 떄에 승리합니다. 아무나 경건한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유의지로도 중요하지만 또한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가능합니다. 내 힘으로는 사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 주신 자유의지는 중요합니다.왜냐하면 나의 목표는 주님을 닮는 것이다 라는 개인적의 의지적 결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예수님처럼 사는 승리의 비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일부 신자들과 지도자들은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라고 합니다. 그런 자들은 믿지 않는자들과 바를바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지만 계속적으로 은혜 안에 있고, 그 은혜 가운데서 주님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롬6:14절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바울은 우리 각자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헛되이 쓰는 것에 되하여 권면하기 보다는 즉 “나는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고 잇지 않다. 하지만 나는 구원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덮어주니까 괜찮다.” 많은 경우에 여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냥 교회 나온다고 예수님을 입술로 고백한다고 만사형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미신입니다.
아프리카 원수민들에게 자동차를 선물해도 그들은 그것을 사용할줄 모릅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줘도 여전히 그들은 예전과 같이 고생하면서 물을 긷고, 사냥을 하고, 또 이웃 마을로 가서 물물 교환을 하는 고생을 반복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가장 중요한 축복과 유익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6:1, 7:1)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우는 은혜의 능력
앞에서 요일2:6절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이 구절은 권면이나 제안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그분처럼 세상에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즉 세상에서 살면서 부딪히는 재정문제, 인간관계문제,직장문제, 그리고 신앙의 문제, 여러 가지 부분을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인 자녀로서 어떻게 승리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서 공생애와 사생애를 사시면서 말할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1절)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절)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우리와 다른 자들이 아닙니다. 특별히 야고보서에 나오는 엘리야는 그가 기도할 때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또한 기도할 떄에 비를 내리게하는 역사르 ㄹ행하셨습니다. 그는 어떤 자입니까?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5:17절)
이와 똑같은 은혜를 받은자입니다. 우리모두에게 이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만 기적과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1:12절에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삶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은혜 안에서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을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질병, 고통, 문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능력을 주님게서 주십니다.
지혜를 주시는 능력
예수님은 놀라운 지혜와 이해, 통찰력,독창성, 창의성을 가지고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혜는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분의 지혜는 어디서 왔습니다.
눅2:40절에,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예수님에게 특별한 지혜가 잇던 것 바로 은혜입니다.
여기서 질문은 만일 많은 그리스도인 베워 온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오직 죄사함과 천국에 들어가기위한 것이라면 왜 예수님에게 은혜가 필요했을까요?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으셨기 때문에 용서받을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에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서의 신적인 특권을 모두 벗어 버리셨습니다.(빌2:7) 따라서 예수님이 지혜와 이해, 통찰력, 독창성, 창의성을 갖고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지혜와 독창성으로 한 여자를 구원하는 사건이 성경에 나옵니다. 요8장에서 보시면 종교적인 열성분자들이 간음한 여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광장으로 끌고와서 예수님앞에 물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합니다.
그런 대립 상화에서는 창의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쪼그리고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개인적으로 예수님앞에 여자를 고발하는 그들의 숨겨있는 죄를 낱낱이 쓰기시작한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질문을 계속하자, 예수님은 글씨를 쓰시다가 그들을 올려다보시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그리고 나서 계속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이 독식한 체하는 지도자들이 자기들과 불륜관계인 여자들의 이름을 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 바라빈다. 이런 이유에서 인지, 아니면 예수님이 매우 예리한 최후통첨을 보내셨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급히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가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요8:9절)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주는 것이고, 자비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것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그녀를 정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는 그녀가 안음이라는 치명적인 덫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 다른 상황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날은 그곳 어부들도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고기를 한마디로 잡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큰 장사를 운영하는데 하루종일 물건이 팔리지 안항ㅆ습니다. 그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그날은 가히 최악의 날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창의적인 지혜의 한 마디가 그날을 그들 중 일생 가장 성공적인 날로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큰 지혜와 능력으로 어부들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통찰력은 놀라웠습니다. 사탄이 유다를 통해 그의 사악함을 드러내기 전에 이미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중 한 사람에게 마귀가 역사하고 있다는 걸 아셨습니다. 또 나다니엘을 만나기 전에 그가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
예수님의 삶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이 속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셨습니다. 혼인예식은 작은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온 마을 사람이 참여하는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일짝 바닥이 나는 바람에 잔치의 응이 깨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럴 경우 이 양가 가족들이 앞으로 몇 년동안 느낄 수치심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그 혼인 잔치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훌륭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구조적인 악에 기생하여 기득권을 누리던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도덕한 악에 기생하는 삭개오는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삭개오로 인해 복지의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살길을 찾앗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삭개오는 자기가 속여서 빼앗은 것을 4배로 값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그동안 불법으로 착취해 온 돈을 사회에 환원한 것입니다. 그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 시켰던 것입니다.(눅19:1-8참조)
예수님에게 잇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정부에서 더 이상 부양할 필요가 없어진 모든 장애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뿐 아니라. 이 사람들은 스 사회에서 생산적인 시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 그 이상을 짐작해 볼수가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3년간 공적인 사역을 하시는 동안 행하신 은혜의 기적을 책에 모두 기록할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2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나의 삶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은혜안에 거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은혜안에 살면서 세상을 바꾸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세사을 변화시키고, 나에게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자로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해쳐나갈수 있는 모든 것이 되십니다.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30-31절)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로움과 지혜와 거룩함이 되십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모든 것을 가지고 가정과 세상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두운 세상 권세자들은 우리가 이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우리가 사용할수 있는 놀라운 능력에 대해 무지한 이상, 원수는 우리가 멋진 교회 건문을 짓거나, 책을 출판하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든 큰 집회를 열거나, 어떤 큰일을 하는것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안에 잇는 능력을 발견하고, 그 능력으로 예수님처럼 담대하게 세상을 대하는 것입니다. 원수 사단은 이 생명안에서 왕노릇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제는 좀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에 있는 올세인츠 교회문앞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여 시작되었습니다. 투러의 행위는 종교개혁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 후로 교회는 변화되었습니다. 거것은 한 사람을 통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의 논제들을 요약하자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입니다.
루터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속박했던 기존 교회의 면죄부에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낡은 나무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반박문을 붙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은혜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의 귄위와 능력을 나타내서 주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할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롬5:17절의 새로운 이해와 왕 노릇하는 삶의 능력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다함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여전히 명목상의 신자에 그친 우리 자신을 회개하면서 성경을 알고 성경에서 약속한 모든 언약을 나의 삶에 적용시키고 능력이 잇는 하나님의 자녀가되기를 기도합시다. 문제앞에 전전긍긍하는 나약한 신자가 아니라. 은혜안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당당하게 사용함으로 이땅에서 왕노릇하는 자가되기를 다함께 부르짖으면서 기도합시다. 아울러 지금 당하고 잇는 문제들을 주님앞에 간구하며 해결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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