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혼자 사는 것이 고생이 된다고 생각되거든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재혼해도 좋다고 했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했소.
그 뒤로 아내는 편지를 하지 않았소.
3년 반 동안이나 석방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소.
우리가 살던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소.
나는 편지에서,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 달라고 말했소.
만일 아내가 재혼을 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그래서 손수건을 달아 놓지 않으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 버릴 거요.”
그의 얼굴이 이렇게 굳어져 있는 것은
거의 4년간이나 소식이 끊긴 아내가
자기를 받아줄 것인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물론이고 그녀의 일행들도
이제 잠시 뒤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
궁금해 하며 가슴을 조이게 되었다.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져
버스 안은 설레임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빙고는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창 밖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에서 깊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는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날 실망의 순간을 대비하여
마음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20마일. 15마일. 10마일!
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들 창가로 몰려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드디어 버스가 마을을 향해 산모퉁이를 돌았다.
바로 그때. “와~!!”
젊은이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버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다.
20개, 30개 아니 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물결치고 있었다.
혹시라도 남편이 손수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 사람뿐.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차창 밖의 참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늙은 전과자는 승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버스 앞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말했다
"나 집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