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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가을의 전쟁
김 광 욱
1
식사 당번이 주먹밥을 배식한다. 권총을 찬 상관이 옆에서 배식 광경을 지켜본다. 대원들은 질서 있게 줄을 서서 당번이 건네주는 주먹밥과 국그릇을 받아 들고 자유스럽게 흩어져서 먹기 시작한다.
국은 멀건 된장국물에 시레기 몇 개 들어간 거지만 대원들은 그래도 맛있게 먹어댄다. 국 위에 하늘의 휜구름이 흘러간다. 국과 함께 포대종이에 싸서 나눠준 군 생선토막을 아끼고 아껴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쥐처럼 뜯어먹는 대원도 있다.
생선토막은 좀처럼 맛보기 힘든 특식이고 한 달 만에 구경하는 것 같다. 생선토막보다 더 먹고 싶은 게 얼큰한 김치지만 오늘은 김치가 없다. 사찰에 김치가 떨어져서 어저께사 구해서 소금에 절여 놨다니까 내일은 김치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밭에서 막 뽑은 채소를 소금에 절이지 않고 양념만 칠해서 먹게 할 순 없잖은가. 한국의 김치엔 그런 절차가 필요했다. 채소를 소금에 절여 하루쯤 간해뒀다가 물에 씻어서 양념을 버무려야 그걸 김치라고 할 수 있다. 그 일은 총을 든 남자들이 하지 않고 여자가 할 일이다.
여자는 총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어떻게든지 양념감을 구해다 정성들여 김치를 담아서 반찬답게 대원들을 대접하려고 노력했다. 여자는 전에 읍내에서 식당을 하던 사람이었다. 전쟁이 나자 식당업을 그만두고 경찰관과 의용군의 부대인 이 전투부대에 봉사원으로 합류했다.
대원들은 식사하면서, 두 달 전에 있었던 승리의 축하 파티를 상기했다. 얼마 전까지는 군부대의 배급품 없이도 주민들로부터 제공된 식량과 반찬거리가 줄을 이어서 배불리 먹고 배식 걱정이 없었다. 일 년 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젊은이들은 군대로 의용군으로 입대하거나 지원하여 여자와 노약자들만 마을에 남게 되고 안전한 곳으로 떠나는 피난민도 점차 늘어나서 고을 인심이 전과 같지 않았다. 나 먹고 살기도 어려운 판국이었다.
경찰부대는 군부대에서 지급하는 보급품과 지방 유지들이 기부하는 식량 등으로 근근이 버텨 나가고 있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대원들의 식단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잖아 겨울이 찾아온다. 나무엔 단풍이 들어 빨갛게 노랗게 형형색색으로 치장하지만 대원들의 가슴엔 전쟁 못지않게 두려운 추위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두 번째 맞는 겨울의 공포였다.
쌀쌀한 산공기를 마시며 차게 식은 주먹밥을 먹는 대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주먹밥은 배도 빨리 꺼졌다. 저녁 밥때까지 여섯 시간을 또 허기와 싸우며 기다려야 한다. 한참 식욕이 왕성할 때여서 주먹밥 한 덩이를 게눈 감추듯하고 멋쩍어서 솔잎으로 이를 쑤시는 소년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혹시 누가 배탈이라도 나서 밥을 좀 남기지 않나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늦게 밥을 배식 받은 대원은 한참 맛있게 쩝쩝거리며 먹고 있고, 아직 줄을 서서 기다리는 대원도 보인다. 배식은 경찰과 의용군의 구분 없이 먼저 줄서는 사람부터 차례로 밥덩이를 배식 받았다.
경찰관의 계급장만 없지 의용군들도 경찰과 똑같은 국방색 복장이었다. 군부대에서 지급 받은 옷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격의없이 농담도 하고 음담패설도 지껄이며 허물없이 지냈다. 경찰관 중에 음담패설의 고수가 있어서 심심찮게 대원들을 웃기고 전쟁터 같지 않게 화기애애했다. 그들은 목숨 걸고 내 고장을 지킨다는 사명감에 굳게 하나로 뭉쳐 있었다.
삼팔선을 넘어 남으로 진격해 오는 중공군과 북한군 대부대를 이 고지에서 2백 명의 경찰, 의용군 소부대로 괴멸시킨 공로로 국군부대에서는 식량과 보급품을 이 부대에 적으나마 보내 주고 있고 이 지역의 방어에는 안심하고 있었다. 이곳은 산악 지형이 험해서 적들이 쉽게 침공할 수 없는 중요한 요새였다. 이 고지 요새가 뚫리면 삼팔선도 무너진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적들이 공격하기 어려운 철통 요새이다. 2백 명의 우리 한국 경찰과 의용군 부대가 지키고 있는 한은.
2
젊은 서장은 늘 그랬던 것처럼 한쪽에 홀로 쓸쓸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계급은 높아도 대원들과 똑같은 주먹밥과 된장국, 생선토막 하나를 앞에 놓고 먹고 있었다. 생선은 먹지 않고 주먹밥도 절반쯤 남긴 상태에서 먹기를 중단하고 무슨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었다. 요즘 전황이 아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서 그 걱정을 하는 것이리라.
서장은 저만치 낙엽 쌓인 참나무 아래서 솔잎으로 이를 쑤시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서장이 가장 믿고 '존경하는' 의용군이었다. 작년 여름 전쟁이 터지고 고향 마을이 괴뢰군들에게 쑥대밭 됐을 때, 운 없게도 부모님과 형이 인민재판에서 총살당하고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의용군에 자원한 아이였다. 그때 종화는 열 일곱 살이었다.
일 년이 지나 종화는 이 부대의 영웅으로 귀빈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의 사격술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종화는 고지 전투에서 두 명의 적장을 사살하여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아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종화가 밀물같이 쳐들어오는 적들 속에서 적장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침착한 성격 때문이었다.
적들이 쳐들어올 때 저는 적들의 전방을 보지 않고 후방을 주시했지요. 우두머리는 항상 후방에 있으니까요. 특공대 출신인 형이 그렇게 가르쳐 줬다고 했다. 형은 부대가 이동하는 도중 고향집에 잠깐 들렀다가 인민군들에게 붙잡혀 부모와 함께 불귀의 객이 되었다. 종화는 외가에 심부름 간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의 뛰어난 사격술은 형한테서 배운 것이었다.
서장이 소년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종화는 서장이 자기를 부르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고개를 가로 흔들고 오지 않으려고 했다. 서장이 거듭 오라고 손짓하자 못 이긴 척 일어나서 서장 앞으로 다가왔다. 서장은 남겨둔 밥덩이와 생선토막을 소년에게 주며 먹으라고 했다. 소년이 미안해서 멈칫거리자,
"내가 먹기 싫어서 남긴 거야. 어서 먹어라."
"예."
서장은 여자 있는 곳으로 가서 남은 된장국을 조금 얻어 왔다. 소년이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나서 서장은 경찰관들 있는 쪽으로 가고, 소년은 서장이 준 밥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양은 차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뱃속의 공복감이 지워졌다. 고마운 서장이었다.
서장은 대원들과 똑같이 주먹밥을 먹는데 그렇게 절반을 소년에게 남겨 주고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지 걱정스럽고 미안했다. 사흘에 한 번씩은 서장이 소년에게 베푸는 호의였다. 소년은 밥을 먹고 나서 그 느낌을 자기만의 공책에 기록했다. 기록하는 게 소년의 취미였다.
전투 중에도 짬을 내어 뭔가 기록하고, 기록한 공책을 신주처럼 소중히 품속에 보관했다. 아이는 기록한 것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으려고 했다. 마치 자기만의 비망록이란 듯이.
서장은 소년을 사수라고 부르기도 하고 시인이라고도 불렀다. 어느 날 서장이 소년의 공책을 훔쳐보고 소년의 장래 꿈이 '시인'이란 그 말을 존중해서 불러 준 별명이었다.
"너는 꼭 시인이 될 거다.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든지 대학에 가서 문학을 전공해라. 이 전쟁에 꼭 살아서 한국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대시인이 되어 네 꿈을 펼치도록 해 봐."
그런 조언도 했다. 전쟁 중에도 자기 취미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은 있었다. 서장은 소년의 취미를 존중했다. 아마도 서장의 마음이 좋아서 인간을 보는 안목이 넓다는 뜻이 아닐까.
식사를 끝낸 대원들은 각자의 참호로 돌아가서 식사하지 않은 동료들과 교대를 하고, 또 한 차례의 배식 행렬이 이어졌다. 식사 시간은 길어야 이십 분. 휴식도 그 시간에 끝내야 했다.
소년이 자기 참호로 걸어가면서 보니, 여자와 장정이 빈 식기를 몇 개의 대바구니에 담아 지게에 싣고 있었다. 대원들의 식사가 모두 끝난 것이었다. 소년의 참호는 배식 장소에서 가장 가까웠다. 여자의 일거일동이 한눈에 훤히 바라다보였다.
여자는 젊고 미인이었다. 사찰에서 여자가 혼자서 준비한 음식을 힘센 장정이 지게에 지고 그녀가 머리에 이고 경찰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고지까지 오르내리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길은 가파른 숲길이었다.
여자와 장정은 일 년여 동안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힘든 봉사를 했다. 2백 명의 세 끼니 음식을 만들어 고지까지 운반하는 일을.
운반하는 일은 대원들이 당번제로 도와 주지만 여자 혼자 음식 준비하는 일이 중노동이었다.
여자도 장정도 아프지(병이 나지) 않고 잘 참아냈다. 숲 속 군데군데엔 비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참호와 막사가 있었다. 그 속에 본부도 있을 것이나 어디가 본부인지 여자도 장정도 알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경찰서장과 간부들, 그리고 부하 경찰관들이 자기 고장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이 고지 요새를 사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지 북쪽엔 중공군과 북한군이 호시탐탐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고 언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의 삼팔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과 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 그 속에 이 경찰부대가 있다. 허공을 지키기 위해서. 허공을 빼앗기 위해서.
서장은 경찰과 의용군 참호를 둘러보면서 과연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회의할 때가 있었다. 전쟁은 민족을 위한 것도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 중공 등 강대국들의 전쟁 도박에 죽어나는 건 우리 국민들이다. 지금 그 전쟁을 위해 목숨 걸고 이 고지를 지킨다. 지켜서 무엇 하는가? 내 고장 내 고향이니까 지키는 것이다.
우리 조상이 묻혀 있는 곳. 우리 선조들이 지키고 가꾼 땅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중공군이든 북한군이든 적은 단 하나다. 평화의 적들이다. 나는 평화를 지키려고 이 고지에 서 있는 거야. 목숨보다 소중한 그 평화를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말이야. 결국 평화가 우리의 생명이었다. 평화 없이는, 한국을 도와 주는 미국도 우리의 친구가 아닌 것이다.
3
전선은 조용하다. 이 강산의 가을이 너무 곱고 거룩하기만 하다. 이런 평화라면 휴전도 괜찮을 것 같다. 기왕에 잃어 버린 건 잃어 버린 거고 더 많은 목숨, 더 많은 상처를 만들기 전에 양쪽이 다정히 손잡고 삼팔선을 경계하여 남과 북을 나눠 갖는 것도 현명한 도박일 것 같다.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이 휴전협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더 길어지기 전에 이쯤에서 피의 동족상잔 전쟁을 마감했으면 한다.
고지너머엔 드넓은 들판이 있고 그 들판 북쪽으로는 산과 산이 겹겹이 가을 단풍에 물든 금수능선의 자태를 자랑하고 있구나. 아름답고 평화로워야 할 국토가 왜 피와 살육의 전장으로 변했단 말인가. 저 능선 겹겹이엔 북한군의 참호와 살상무기가 이 가을의 단풍을 싸늘히 비웃고 있겠구나. 우리가 너희들에게 그렇게 보이듯이, 모든 남한의 형제가 적으로 보이듯이. 같은 조상의 피를 나눈 우리 형제가. 아, 악몽으로 돌리고 싶은 이 모순이여.
산너머에서 간간이 포성이 들린다. 따다다다! 총성도 심심찮게 정적을 깨뜨린다. 북한군이 모택동 중공군의 지원에 힘입어 전투력을 과시하는 빈 포성과 총성이다. 우리에게도 미군의 첨예 전투기, 폭격기와 탱크부대가 있으니 전투력에선 불리하지 않다. 불리한 쪽은 군인들이 아니고 항상 양민이다. 전쟁이 길면 길어질수록 죽어나는 건 죄없는 양민들뿐이다.
따다다다! 따다다다다다!
연이어 총성이 산야에 메아리쳤다. 빈 총성이 아니고 북한군들이 전투 개시를 앞두고 사격 연습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자 남한군 쪽에서도 따다다다! 따다다다다다! 응수하는 총성이 앞선 산울림을 덮는다.
서장은 간부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경찰과 의용군의 참호를 하나하나 직접 점검했다. 참호는 뗏장과 나무로 비가 세지 않게 집처럼 단단히 지어져 있었다. 서장이 지나갈 때 참호 안에 또는 밖에 앞드려 있던 대원들이 소리없이 경례를 붙였다. 소년도 힘있게 경례를 했다. 점심을 배불리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경례로 답례한다.
의용군 참호엔 두 명씩 혹은 세 명씩 모두 열 개의 참호에 28명이(교대하는 내무반의 의용군까지 총병력은 그 두 배다), 식사와 용변 때만 빼고 스물 네 시간 교대로 거주하며 지키는데, 서장이 참호에 들어가 보니 한 명이 감기 몸살로 누워 있었다. 바닥에 이렇다 할 이부자리도 없이 낙엽과 건초만 깔려 있었다. 이불이 빗물에 젖어 말려 놨다고 했다. 이런 환경에선 적의 침략시 전투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장은 경찰보다 의용군 참호에 더 신경을 썼다.
왜 아프다고 보고하지 않았냐고 소년을 꾸짖고, 서장은 천막 막사로 가서 감기약과 자신이 덮던 이불을 갖다 주었다. 의용군의 이불이 마를 때까지 서장 이불을 빌려줘야 한다.
"서장님!"
서장이 참호에서 나갈 때 소년이 따라오면서 조그맣게 불렀다. 전투할 때 용감해도 평소엔 말수없고 얌전한 아이였다. 아이는 총을 어깨에 메고 있으면서도 그 조그만 공책을 꼭 지참하고 있다. 공책이 분실되지 않게 허리춤에 노끈으로 연결돼 있다.
"아프다고 보고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형이 보고하지 마라고 해서……"
"보고하지 마라고 해도 아픈 것은 내게 알려줘야지. 내 성미를 모르나?"
"다음에는 보고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도 시를 썼나?"
서장은 전쟁과 관계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서장의 버릇이었다.
"시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쓰고 있습니다. 주제넘은 짓인 줄 알면서"
"시인 흉내를 내고 있단 말이군. 그건 지나친 겸손이야."
서장이 소년의 다음 말을 가로채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난 네가 부럽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불안할 땐 공상을 하는 것보다 시를 쓰는 게 좋겠지. 전쟁보다 더 슬프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시를, 나도 너처럼 쓸 수 있다면 좋겠구나. 난 글솜씨가 없어서 편지도 제대로 못 쓴다. 어머님께 안부 편지 하나 쓰는데 이틀 사흘이 걸리는 정도로 글재간이 없어."
"그렇지 않던데요. 지난번에 저한테 읽어 보라고 보여 주신 어머님전상서 보고 눈물이 나왔어요. 조국이 있기에 어머님 사랑도 있다는 그 구절. 저도 어머님이 살아 계시면 편지를 쓸 텐데……"
소년의 음색이 슬픗한 음조를 띠기 시작했다. 서장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전쟁 이야기로.
"요새 전황이 심상찮게 돌아가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걱정된다. 지난 겨울 강추위 속에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올 겨울엔 특단의 월동대책부터 세워야겠어. 마을에서 가마니와 마람장 같은 거라도 많이 얻어 와야지. 네가 수고 좀 해 다오."
"염려 마십시오. 그런 일은 제가 잘합니다. 저는 마람도 잘 엮어요. 짚만 있으면. 짚보다 이불을 얻어 오면 좋을 텐데……"
"누가 자기 덮을 이불을 줘야 말이지. 작년에 준 이불도 서로 덮으려고 끌고 잡아당기니까 걸레가 다 됐어. 걸레 같은 이불이라도 누가 좀 기증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호강 바라겠냐? 우리가?"
서장은 말하다 말고 두껍게 쌓인 참나무 낙엽에 미끄러져 엉덩방이를 찧었다. 소년이 얼른 부축해서 일으켜 주었다. 그러다 소년도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이 산에는 참나무가 많다. 산 전체가 참나무 군락지였다.
서장은 전투 대비를 위해 막사에 가서 전술을 구상하겠다며 소년과 헤어졌다. 막사는 내무반과 무기고, 경찰 간부들의 작전회의 장소로서, 크고 작은 천막 막사가 숲 속의 참호 사이사이에 여섯 채가 있었다. 그곳이 경찰부대의 본부가 있는 이 부대의 심장부이다.
4
미향은 칠복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자 곧 저녁밥을 준비했다. 2백 명의 대원들이 먹을 한 끼니 밥을 짓는데 꽤 많은 식량이 소요되었다. 식량은 이 고장 유지들이 모아서 보내 준 것도 있고 군부대에서 무기 등 보급물자와 함께 보낸 것도 있었다.
양쪽에서 온 것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주먹밥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어른 주먹에서 아이 주먹 크기로 바뀌었다고 대원들은 투덜거렸다. 그러나 배고프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시에 굶주림과 추위는 기본이란 걸 알고 있다. 폐허가 된 마을에 농토를 경작할 사람이 없으니까.
내 고장을 지키는 사람은 먼 훗날에 존경받을 애국자이다. 미향은 이 고장이 고향이고 여고를 졸업한 교양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읍내에서 식당업을 하면서 김현태 서장을 알게 되었다. 서장은 그 식당의 단골이었다.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경찰 관사에서 잠자고 식당에서 밥을 사 먹었다.
공산군이 남한으로 쳐들어왔을 때 고향은 폐허가 되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탈환되고 국군과 미연합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보는 듯했으나, 중공군의 뜻하지 않은 개입으로 다시 국군은 퇴각하여 양 진영이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피의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삼팔선이 무너지면 북한군은 밀물같이 남으로 쳐들어올 것이고 이 고지는 위태해진다. 두 달 전의 전투에서 2백여 명의 소수 전력으로 북한군과 중공군 대부대를 섬멸하고 이 고지를 지켜낸 김현태 서장이었다.
처음에 3백 명이었던 아군 경찰이 그 전투에서 백여 명이나 전사했다. 미향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찰에서 대원들의 밥을 지어 날랐다. 전투에선 세 끼니 식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총을 들고 싸우진 않았지만 그녀도 내 고장을 지키는 데 일조한 것이었다.
고지 전투엔 승리했지만 사상자가 많아서 경찰 부대의 타격이 컸다. 내 목숨 살겠다고 비겁하게 도주하는 경찰관도 있었고 자원봉사자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었다. 미향은 머슴 칠복과 끝까지 남아서 그 힘든 일을 하고 있다.
미향의 거처는 산 아래 사찰의 한 암자였다. 주지스님의 허락을 얻고 빌린, 우리 경찰부대의 취사터였다. 밥 짓고 반찬 만들고, 그 암자에서 미향과 머슴 칠복이 생활한다. 젊은 여자와 남자가 한 집에 사니까 동거하는 줄 알겠지만 칠복은 성불구자였다.
게다가 그는 팔푼이여서 미향이 하라고 몸을 열어 줘도 덤벼들 줄 모르는 위인이었다. 그래서 마음놓고 암자의 방 두 칸을 따로 쓰고 한 식구처럼 생활한다. 전쟁이 만들어 준 가족이지만 그보다 먼저 미향이 읍내에서 식당업을 할 때부터 한 가족처럼 지냈던 특별한 관계였다.
밥 지으랴 반찬 만들랴 일인이역을 하는 미향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칠복을 보면 한심하지만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고 미향의 명령에 고분고분 잘 따랐다. 칠복은 미향을 따라온 자원봉사 필수요원인 셈이었다. 칠복이 없다면 자원봉사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백 명의 대원들 세 끼니 식사를 준비하려면 첫새벽에 일어나서 쉴새없이 움직여야 했다. 칠복도 땔감 나무하랴 부엌일 거들랴 놀 시간이 없었다.
"칠복이, 나 부침 만들 테니까 밥솥에 불 좀 때요." 했다가
"불은 내가 땔 테니까 우선 땔나무 좀 해 와!" 했다가
"나무는 이따 가고 어서 지게에 밥 지고 떠날 준비해!"
하는 등, 자기가 칠복에게 무슨 주문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빴다. 칠복은 장사여서 2백명분의 밥과 국을 지게에 지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오리 산길을 잘도 올라갔다. 미향도 반찬거리를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고지까지 하루 세 번을 날랐다. 산길을 절반쯤 올라가면 대원들이 마중나와서 도와 주었다.
대원들이 도와 주는 사람은 미향이고 칠복은 그 무거운 걸 지고 꺼떡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고지까지 지고 가겠다고 고집했다. 그는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충복이었다. 칠복의 바지춤이 내려가서 배꼽 아래 털이 보일 듯했다.
"칠복이, 꼴말이 빠졌어."
하고 미향이 일러줘도 들은 체 만 체하는 칠복.
결국 미향이 그의 꼴말을 올려 주면 그때는 이미 그의 연장까지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한겨울에도 속옷을 입지 않는 칠복이었다.
5
고지에 대원들의 저녁밥을 나르고 돌아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목욕을 하고 법당에 들어가 천수경을 독송했다. 천수경을 읽고 있으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잊어졌다. 북으로 끌려간 가족들에 대한 걱정, 그리움을 잊기 위해 천수경을 읽는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제 치하의 이름 있는 한의사였고 오빠도 한의사로서 아버지와 함께 한의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미향은 여고(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의 식당일을 도왔다. 식당은 읍내에서 유명한 전통 한식집이었다. 어머니는 자주 아팠다. 죽기 전에 딸에게 자신의 요리 기술을 전수시켜 그 식당의 전통을 잇게 하려고 했다. 미향은 요리에 재능이 있어 어머니 못지않게 음식을 잘 만들어서 손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미향이 스물 세 살 때 어머니가 숙환으로 별세했다. 미향은 아버지와 오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니의 식당업을 이어받아 식당 주인이 되었다.
나어린 식당 여주인으로서 미향의 이름은 알려졌고, 노처녀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그 직업에 몰두하여 재산도 많이 모았다. 그녀는 돈의 궁색함을 몰랐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서울은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 그녀의 고향도 북괴군의 세상이 되었다. 김현태 서장은 고장을 지키기 위해 경찰부대를 만들어 전선에 뛰어들었고, 미향은 김 서장을 만난 인연으로 식당업을 그만두고 자원봉사자의 길을 택했다. 미향이 식당업을 해서 취득한 부동산은 전쟁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전쟁 중에도 아버지는 찾아온 환자들을 받고 성실히 치료했다. 집에 와서 식사할 시간도 없었다. 미향이 도시락을 싸들고 아버지의 한의원에 가 보니 실내는 난장판이 돼 있고 아버지와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이웃 가게 사람들 말이 한의사 부자가 인민군들에게 끌려갔다고 했다.
아버지와 오빠는 그렇게 북한군에게 납치되었다.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황이 국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수도 서울이 탈환되었지만 북한으로 끌려간 두 분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북한땅에 살아 계실 거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지 한 해가 지나고 두 번째 가을을 맞았다. 이렇게 경찰부대에 봉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헤어진 가족 생각뿐이었다. 전쟁 당사자인 우리 나라를 제쳐두고 강대국들 사이에 휴전협정의 기류가 무르익고 있다 한다. 휴전이 되면 뭘 하는가?
휴전이 되면 우리 강토는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갈라져 그리운 가족을 영영 못 만날 게 아닌가? 그녀의 소원은 그리운 가족과 상봉하는 것. 남쪽 땅으로 돌아오지 못할 아버지와 오빠라면 내가 북녘 땅으로 달려가서 두 분들을 만나야 할 게 아닌가? 그래야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릴 것 같다.
어젯밤 꿈속에서 오빠를 만났다. 오빠는 인민군 부대에서 고급 장교들의 병을 고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북으로 끌려가면서 혀를 깨물어 자결하셨다고 했다. 오빠 품에 안겨 통곡하다가 꿈에서 깼다.
꿈대로라면 오빠만이라도 찾아 그리운 오빠 품에 안기고 싶다. 누이동생을 끔찍히 귀여워하던 오빠였다. 장가가서도 네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 이혼하고 싶다고 농담하던 오빠. 전쟁은 뭇생명들을 앗아가고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삼팔선과 똑같은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전쟁의 의미는 실종되고 삼팔선 같은 상처만 여기저기 처참하게 남아 있다. 조국이 뭔가. 애국이 뭔가를 따지기 전에 그저 이 전쟁이 밉고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모든 인간들이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하루하루 식사때 맞춰 고지에 부대원들의 무거운 음식 나르는 것도 지겹고 나날이 힘들게 느껴졌다.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다면, 가족과의 이별이 이처럼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가족을 따라 북으로 간 것만 못하단 생각이 들었다. 강대국들에겐 장난이나 도박일 이 전쟁이, 우리 국민의 가슴엔 슬픈 분노의 멍울로 자리잡고 있다.
천수경을 소리내어 읽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법당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침입자는 발소리를 죽여 들어와서는 실내의 불을 끄고 여자의 몸을 애무했다. 미향은 놀라지 않고 기다렸단 듯이 남자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남자는 김현태 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