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귀가동안의 바쁜 일정들을 수요일 모두 잘 마쳤고 목요일 아이들을 다시 픽업해 영흥도집에서 1박한 후 금요일 제주도로 일찍 출발했습니다. 아이들이 일주일가량을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제 자리로 유턴해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양치질이 어려운 완이는 비복합 보충이 안되면 입안에 염증이 커져 버립니다. 아니나다를까 아랫입술 안쪽으로 구강염이 크게 번져 입술을 아프리카 흑인수준으로 내밀고 있습니다.
완이의 구강염으로 인한 통증은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하고 단 것만 계속 탐닉하게 만드는 큰 요소입니다. 완이가 좋아할만한 메뉴의 음식을 주어도 다소 시큰둥. 그러고는 단 것 찾아 온 집안 헤매기. 마침 영흥도 집에 샤인머스캣이 좀 많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완전 집 밖으로는 한발자욱도 나가지 않았을 준이는 상태가 더 심각합니다. 손흔들어 대는 것이 너무 심해져서 허리춤에서도 마구 흔들어댑니다. 작렬하는 혼잣말에다 뭐든 싫어 안해의 반복. 그래서 제주도 온 것 역시 준이에게도 잘된 일입니다. 이제는 백수가 되가는 성년의 길목이라 별달리 집에서 해줄 게 없는 형편이다보니 집에 있는 시간들은 끝없는 자극추구의 방치입니다.
어제 배타고 제주도돌아오는 길에 그토록 좋아하는 컵라면 먹을까 하고 물으니 '싫어. 안먹어'하며 진저리치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집에서 라면을 너무 많이 먹은듯 합니다. 그렇게 마치 집을 떠나 고행순례를 하고 돌아온 아이들처럼 제주도집에 도착하니 원래 집으로 돌아온 듯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밥을 먹습니다. 완이는 급하게 끓여내놓은 육개장을 두 그릇을 비우고도 부족해하는 눈치입니다.
완도에서 배타야해서 영흥도에서 완도까지 내려오는 6시간. 차 트렁크에 바리바리 싸놓은 짐들 뒤지기 선수 완이. 씻지도 않은 샤인머스캣하며 요플레까지 닥치는대로 손을 대길래 안되겠다싶어 하리보 사주고. 달콤한 젤리를 너무 좋아해서 최대한 자제시키려 하는데요. 하리보 꽤 큰 놈을 바로 비우고는 결국 태균이 보충제박스에 들어있던 멜라토닌 구미를 노리다가 결국 꺼낸 모양입니다.
아직 하리보를 먹고있겠다싶어 운전에만 열중하고 있었는데 태균이가 자꾸 완이 먹는 것을 빼앗으려 합니다. 하리보가 먹고싶어 그러나보다 했는데 문득 태균이를 하리보를 먹고싶어 한 적은 거의 없는데 좀 이상하다싶어 차를 졸음쉼터에 세우고 상황을 보았더니... 오 마이 갓. 멜라토닌 구미를 먹고있는 현장.
원래 멜라토닌 구미를 밤에 자기 전 1알만 주다보니 집착이 심해서 늘 이 통을 꺼내서 들고다니곤 합니다. 다행히 통을 여는 방식이 눌러서 열어야하기에 스스로 개봉을 못하니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는데요, 어찌된 일인지 개봉을 했던 것입니다. 어젯밤에 주고 꼭 안닫았었나?
몇 개를 먹었는지 알 수 없으나 목포지나면서 잠에 완전 빠져서는 배 탈 때도 겨우 차에서 내렸고 배 안에서도 오는 내내 잠만 자느라 움직일 새도 없었습니다.
우리를 늘 배려해주는 여자직원이 있어 단독의 방을 배정받아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더니 들어오는데 아주 인물이 좋은 서양 젊은 남녀. 둘이 등에 멘 짐들이 쓰러질 듯 잔뜩입니다. 보라섬까지 놀러갔다가 누군가 완도항에 내려줘서 제주도가 어딘지도 모르고 출발 5분 전에 배표끊어서 겨우 승선했다고 기분좋게 말합니다.
그냥 발길닿는대로 여행하는 독일 젊은 남녀였는데 영어를 너무 잘해 독일어 액센트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폐스펙트럼이라서 좀 불편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하니까 마침 여자도 교사랍니다. 물론 특수교사는 아니고 일반아동 교사. 서로의 영어실력을 칭찬하며 간만에 신나게 영어수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어딘가 야외에서 텐트치고 잔다고 하길래 속으로 제가 좀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처음 입실할 때 아이들에 대해 (완이의 부산함과 준이의 혼잣말 등) 양해를 부탁한 것 때문인지 자꾸 자리를 비켜주려 노력합니다. 예의바른 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차승선때문에 일반승객보다 먼저 하선준비를 해야하기에 인사도 못하고 왔지만 즐거운 제주도 여행이 되길 바랄 수 밖에요.
덩치큰 녀석들이 되다보니 이제는 정말 우리들만의 공간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하긴 합니다. 이 와중에 윗몸일으키기를 한다고 바지부여잡고 온 몸을 비틀며 일어나는 코미디를 연출하는 태균이. 어서 뱃살 다 날리고 가뿐하고 산뜻하게 하기를 바랄 뿐...
첫댓글 수고 많으셨네요. 멜라토닌 효과를 완이가 입증 했군요.
제주에서 태균씨, 준이씨, 완이 모두 한층 발전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