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
저희들은 정남진이 위치하는 전라남도 장흥군에 거주하는 군민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국사로 다망하신 장관님께 존재 위백규선생 기념관 및 교육관 건립의 청원을 드려서 죄송하옵니다. 그러나 저희 지역사회에서는 숙원사업인지라 염치를 무릅쓰고 소청의 말씀을 올리오니 가납하시고 선처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 음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선생은 장흥이 배출한 천재적 석학입니다. 10세에 천문, 지리, 복서, 율역, 의학, 관상, 도불, 병법, 산수 등을 읽었으며, 한번 보면 대의를 파악했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7세, 8세, 9세에 지었던 詠星, 詠燈火,上春昊 등 한시는 영민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자연히 신동이라는 소문이 인구에 회자된 것입니다.
물론 더 조숙한 천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매월당 김시습은 3세에 시를 짓고, 율곡 이이는 9번이나 장원급제해九度壯元이라 했답니다. 당시는 영재의 척도가 과거로 재단됐기에 그의 천재성을 웅변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존재는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덕산의 윤봉구(尹鳳九)의 문하에서 공부했어도 부모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는 12세부터 과거를 통해서 출세하기를 접었다합니다. 왜냐하면 역대 과거시험의 기출문제를 보면서 참다운 인재를 선발하려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과장에서 응시해보니 부정이 우심했답니다. 부정이 아니면 합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답니다. 그래서 현인이 되고자 爲己之學에 전념키로 결심하고 학문에 천착했습니다.
그 결과는 1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썼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할 무렵 해일피해를 살피러 위유사 서영보가 장흥에 왔습니다. 그는 선생의 문명을 전해 듣고 왕에게 천거했습니다. 왕은 저서를 올려 보내라 이르고 선공감 부사용 등 벼슬을 내리고 입궐토록 했습니다. 1796년 3월 옥과현감에 제수돼 평소 경세관을 펴서 현민들의 마음을 샀습니다.
그런데 방대한 저술은 200여 년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대학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선생의 저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금까지 약 40여 년 동안 그의 학문을 연구해 박사학위 6명, 석사 10여명이 배출되었고, 약 120편의 단행본과 논문이 산출됐습니다. 특히 연시조농가구장은 2003년도 대입 예비시험에 출제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김석회 교수의 평을 보겠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그 언어적 자질에 있다. 농가구장을 통해 생활세계의 일상구어가 현장적 실감을 구성해 내는데 크게 기여했다라고 했습니다. 또 자회가는 노인의 삶을 이 정도로 탁월하게 묘사해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은 최근 박완서 단편을 제외하고는 한국 문학사상 그 유래가 없다라고 평했습니다.
경학관은 떻습니까. 김형련(金亨連)은 전남대석사논문위백규의 경학사상 연구에서 존재의 이기론은 원리로서의 이를 중시하면서 이기를 통합한 일원론적인 입장을 관철하고 있다. 곧이가 기질 속에 있는 뒤에야 성(性)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니, 기질을 버리면 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경세론도 보겠습니다. 우종숙은 교원대석사논문 존재의 교육사상 연구에서다만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여, 관과 민의 중간에서 그 중간자적인 역할을 교육자와 교육기관이 담당해야하며, 교육을 통해 사회가 개선됐을 때만이 국가기강의 확립과 민생의 안정을 기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곧 교육자치주의적 논리를 편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방대한 저술에 담긴 탁견은 빙산의 일각처럼 물밑에 있습니다. 지역마다 저술을 남긴 출신 선현은 물론 생존한 인물까지도 각종「기념관」을 건립해 고장의 자랑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선생에게는 그런 혜택마저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고작 태생지 방촌에 유물관이 있으나 비좁아 체계적으로 전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립된기념관과 교육관이 필요합니다. 현재 유물관에 전시된 선생의 유물은 고문서 몇 점과 문집 등에 불과합니다. 이 유물관은 원래 관내 여러 가정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의 도난방지를 위해 1994년에 지어졌습니다. 그런 연유로 각 가정에서 내어놓은 교지 등 고문서를 수장고에 보관하는 기능에 그쳐 전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생의 저술과 유품들을 분야별로 전시하고, 저술에 담긴 유지를 전승하려면 기념관과 교육관이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 것입니다. 학계는 그의 리얼리즘적 문학작품은 오늘의 문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경학관 그리고 요즘으로 말하면 지방자치를 위주로 하는 교육론 등은 다른 실학자와는 독특한 입론이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생전에 자신의 불우를 삼벽(三僻)으로 치환하며 자조했습니다. 후미진 지역, 후미진 성씨, 후미진 능력을 한탄했습니다. 선생께서 타계하신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삼벽의 한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이유를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열심히 하면 오히려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他山之石으로 삼기 위해 여러 자치단체에서 추진했던 해당지역의 선현들에 대한 추모 사업을 살펴보겠습니다.
他 地域 先賢에 대한 記念事業
1. 다산 정약용 관련, 시설
1) 강진 기념관 : 28,615㎡, 지하 1층 지상 2층, 64억원
2) 강진 다산초당, 문화관, 연수원
3) 남양주 文度祠, 與猶堂, 기념관, 銅像, 실학박물관, 문화관
2. 고산 윤선도 관련, 시설
1) 해남읍 땅끝 순례문학관(2010-2014 : 90억원)
2) 해남 연동 순례객 숙박시설 백련재 4실(1실 10명 기준)
3) 보길도 윤선도 원림 기념관
3. 미암 유희춘 관련, 시설
1) 담양군 대전면 기념관 및 박물관(2004 : 60억원)
2) 박물관에는 인건비 조달이 어려워 학예사가 없음
4. 圭南(河百源)박물관
1)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한옥구조 : 2013 : 14억원))
2) 관장(전남대교수), 학예사 등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해 운영
5. 조정래 벌교 문학관
태백산 문학관 2005년 국비 40여억원 2005년 착공 2008년 11월 21일 준공 개관, 대지 4,360㎡, 2층 콘크리트 구조, 육필 원고 등 900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최대 규모 자연석 벽화로 국토를 형상화한 것도 관람객의 주목을 받은 상징물이 되고 있다.
6. 박경리 관련, 문학관
1)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 문학관, 기념관
2) 통영 박경리 문학관, 박경리 문학 기념관, 박경리 문학의 집
3) 하동 박경리 토지문학관
記念館 設立에 따른 事前 準備案
1. 名稱
1) 存齋, 記念館 및 敎育館
2) 存齋, 實學 敎育館
3) 存齋, 文學과 敎育 記念館 및 修練館
4) 存齋, 著述 記念館 및 敎育館
2. 추진주체
1) 도문회 관련, 기구는 「존재공 동상개수위원회」가 맡되 위원보강(嗣 孫 在鉉과 방촌유물관 聖 등 보강)
2)「존재기념관 건립위원회」도 기존 「존재동상개수위원회」에 위임
3. 위원회 활동
1) 군청 실무자와 군수에게 기념관 건립의 당위성을 설득, 실무자는 물론 군수가 발 벗고 나서도록한다. 자치단체가 앞장서게 하고, 기타 개인 과 단체는 뒤에서 협조한다.
2) 전남도와 문화체육관광부 및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 찾아가 기념 관 건립을 지원해주도록 설득하는 활동을 벌인다. 기재부의 국고국장 (위성백)도 찾아가 부탁한다.
4. 증빙자료
1) 존재학, 연구서 및 논문 리스트
2) 방촌유물관 존재 관련 유물 리스트 및 사진
3) 지리관련 : 환영지의 목판, 지제지 등
5. 기념관 설치장소
1) 장흥읍내
2) 평화 회주사 경내 또는 인근지역
3) 관산 방촌 유물관 인근 <2016년 10월 8일>
율곡학회→율곡연구원 연혁
1992. 2. 12 창립총회(이사 15명, 회원 120명)
1993. 5. 1 설립인가(강원교육청 제11-56호)
5. 24 법원등기
7. 3 초대이사장 김진백 사망
7. 10 2대 이사장 최승순 취임
2000. 10. 25 율곡회관 준공
2001. 3. 28 평생교육원 설립인가
8. 24 평생교육원 강좌개설
2003. 3. 18 사임당 다도대학 개설
2007. 2. 27 중국사천성대외우호협회와 문화교류 협약체결
7. 10 2대 이사장 퇴임, 3대 최익선 취임
2008. 4. 16 중국사천성 율곡연구원 개원(지부장 강옥성)
10. 6 한국다도대학 강릉분원 개원
2012. 2. 22 3대 이사장 퇴임, 4대 김진선 취임
7. 6 명칭 율곡학회에서 율곡연구원으로 개칭 승인
2016. 5. 19 4대 이사장 퇴임, 5대 윤사임 취임
다산 관련, 단체와 세대별 연구교수
1. 문중 : 1998년 다산학술문화재단(이사장 정해창)
2. 학술 : 1980년 다산연구원(이사장 박석무)
3. 다산 관련 논문 1천편(박사논문 50편 포함)
다산학 관련, 세대별 학자 등 관련자 명단
1세대 : 이을호(전남대), 홍이섭, 한우근
2세대 : 천관우(동아일보), 최동희, 이우성, 황원구, 박병호, 이지형, 김태영, 강만길, 원유한, 윤사순 교수
3세대 : 한영우, 정석종, 박성래, 김영호, 정병연, 김상홍, 이남영, 안병직, 금장태, 조광, 박석무, 송재소, 김시업, 임형택, 송영배, 이영훈, 남명진, 유초하, 김언종 교수
4세대 : 방인, 조성을, 심경호, 김영호, 한형조, 배병삼, 이유진, 장동우, 김문식, 정해왕, 김지용, 유권종, 장승희, 최대우, 김인철, 장승구 교수 등 40대 초반 50대 초반의 교수
'●存齋 魏伯珪, 記念館 建立 請願書'는 5-2)에서 계속 됩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존재기념사업회가 장흥위씨문중 중흥의 구심점이 되길 소원합니다. 이를 위해 자금과 인력부문에서 대종회와 도문회가 合力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앞으로 5회에 걸쳐 圓山 씨족문화연구소장님의 名文을 장흥위씨종보 제23호(2017.04.29)에서 발췌하여 게재하겠습니다.
장흥이 배출한 천재적 석학 존재 할아버지 기념관 건립문제는 장흥위씨 문중의 휼륭하신 조상님의 뜻을 받들고 길이 보전하여 명예를 찾아드려야 하고 장흥지역사회에서의 숙원사업이고 우리 위문중 종친분들의 자존심이 걸렸고 문중 구심점이 되어 역사에 길이 남을 휼륭하고 값진 사업이니 만큼 우리 위문중 종친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동참하여 존재기념사업이 잘 추진되길 우리 모두 기원하며 응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