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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침묵을 위하여 떠나는 또 다른 침묵
─如如山房에서 보내는 편지
양문규
강원도 영월 김삿갓면 예밀리, 유승도 시인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두고 어떻게 다녀와야 할까 며칠 동안 행복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장맛비가 시작되어 며칠째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득한 게 문제가 되었지요. 머릿속은 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로 여간 어지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유승도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일정을 조정해볼까 고려도 했었지요. 하지만 서울 임형신 시인까지 함께한 약속을 일기 때문에 번복한다는 건 두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였지요. 고심 끝에 떠나기 전날 승용차 대신 기차를 이용하기로 마음 굳혔습니다. 그러기까지 원주의 강태규 시인의 도움이 컸습니다. 다음날 오후 영주에서 박승민 시인의 첫 시집 출판기념회가 있는데, 거기 함께 참석한 후 여여산방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 여여산방을 떠나 읍내 집에 들러 여장을 꾸린 뒤 기차에 올랐습니다. 달랑 배낭 하나 메고 떠나는, 얼마 만에 만끽하는 장거리 기차여행인지요. 충청도 최남단 영동에서 대전까지, 거기에서 충청도 최북단 제천까지, 또다시 기차를 바꿔 타 충청도와 도계를 이루는 영월까지의 여정은 유승도 시인을 만나는 기쁨을 배가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유승도 시인을 알기 전 서점에서 구입한 시집 『작은 침묵을 위하여』(창작과비평사, 1999)와 그 이후 그가 손수 보내준 『차가운 웃음』(랜덤하우스, 2007), 산문집 『고향은 있다』(랜덤하우스, 2007)를 열차 안에서 다시 읽는 건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한 기쁨이었습니다. 책과 차장 밖 풍광에 번갈아 시선을 대다가 졸리면 눈을 붙이는 자유로운 독서가 되었지요. 자가운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또 다른 묘미였습니다.
유승도 시인과의 해후는 그간 두 번 이루어졌습니다. 2006년 늦은 봄 원주 박세현 시인과 점심식사 후 그를 찾게 되었고요. 2010년 늦은 가을 그가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를 찾아 만날 수 있었지요. 그땐 서로 인사만 나누는 짧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린 오랫동안 사귀어 온 벗처럼 속내를 읽어낼 수 있었는데요. 아마도 같은 처지의 삶과 자연에서 일구는 글에 있을 것입니다.
유승도 시인의 시와 산문은 자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연은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즐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의 사부 김명인 시인은 ‘홀로 고립되는 격정을 비로소 자각하는 우주적 외로움, 이 개성은 유승도 시인만의 특화인데, 여기엔 정선 구절리에서 혼절하며 발견해낸 눈부신 햇살’로 봤습니다. 김춘식 평론가 역시 ‘산, 자연을 안주의 터전이 아니라 새로운 질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안식의 대상으로 새롭게 바라본 점은, 시인의 진정성이 유난히 돋보이는 대목’이라 하였지요.
영월까지 가는 동안 유승도 시인에 대해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시인은 어떤 연유로 강원도 땅에 자신을 유폐시킨 걸까요. 그것도 오지 중 오지인 정선 구절리를 거쳐 영월 망경대산 예밀리에 똬리를 뜬 여정에 대해 크게 궁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지리산의 박남준 시인과 이원규 시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두 시인은 1980년 말부터 지금까지 이런저런 일들로 뜻을 같이하며 한 동지처럼 살아온 탓에 어렴풋이 그 깊은 속내를 읽을 수 있었지요. 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자연, 생평, 평화를 삶의 한가운데 둔 것 역시 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유승도 시인은 이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습니다. 우선 이들 시인들처럼 작고 큰 모임의 직간접적인 접촉이 적은 데서 찾아볼 수 있겠지요. 아무튼 유승도 시인의 삶은 최근 몇 년간 제겐 화두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아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승도야
─유승도, 「나의 새」 전문
이 시는 「침묵」과 더불어 유승도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태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내력을 밝혀줄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지요. 제가 이 시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살아온 유승도 시인, 무엇이 이토록 그를 세상 밖으로 밀어낸 것일까요. 왜 문을 걸어 잠그고 유배의 땅으로 들어서게 한 걸까요. 자연, “숲의 세계”에서 새의 이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게 하는 건지요. 그는 아직도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려하지 않았음으로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 않”(유승도, 「침묵」 부분)습니다. 그 끝자락은 아마도 자연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물상들이 비로소 “승도야” 부르며 같이하는 자리가 아니겠는지요.
영동에서 대전을 거쳐 제천까지, 또다시 기차를 타고 영월역에 내리기까지 한나절을 달렸습니다. 가는 동안 크고 작은 산과 산 사이 들녘은 여느 들녘과 별반 다르지 않는 풍광을 보여주었지요. 그러나 충주를 지나면서 옥수수, 감자, 더덕, 마, 배추 등이 논과 밭을 전부 채우고 있었는데요.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감자바위 강원도로구나……. 기차는 높은 고개를 느릿느릿 가다가 바쁠 것 없다는 듯이 스르르 미끄러져 오후 4시 반쯤 영월역에 닿았습니다.
영월역에는 유승도 시인과 서울의 임형신 시인이 마중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요. 차일피일 미루던 이번 영월을 찾은 것은 지난 5월 문효치 시인과 홍신선 시인이 주관한 충북 북부(충주, 단양, 제천) 문학기행에서 만난 임형신 시인 때문에 이루어졌지요. 그때 전 임 시인에게 제천 가까이 유승도 시인이 살고 있다고 전했더니, 얼마 전 유 시인을 찾아 그곳에서 하룻밤을 유했다고 했습니다. 임 시인은 교직에서 물러난 후 영월 조그만 산골마을에 거처를 두고 서울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더군요. 그런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유 시인을 만날 수 있었고요. 저는 그날 단박에 가까운 날 유승도 시인과 함께하자 했었지요.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강 위 좁은 도로를 달려 김삿갓면으로 들어설 때 유승도 시인은 그냥 ‘삿갓면’이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한마디 던지고는 또 김삿갓 묘에 대한 유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김삿갓 묘의 사실 관계를 떠나 현재는 영월의 문화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김삿갓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는 매년 그의 문학적 업적과 시 정신을 기리고 문학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김삿갓문학상’을 시행하고 있지요. 그동안 유배지와 탄광의 멍에를 벗고 동강과 함께 자연, 문화 관광 고을로 거듭나는 영월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망경대산은 70년 대 전후 영월 대표적 탄광촌으로 우체국, 학교, 극장, 술집 등 수많은 사람들이 성시를 이루었다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망경대산 곳곳의 마을이 보잘것없는 폐촌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요. 유승도 시인의 예밀리(삭도)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우리는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 산허리 중턱 외딴집에 들었습니다. 바로 그곳이 유승도 시인이 다 쓰러진 집을 일으켜 세워 보금자리를 만들고, 아내와 아들과 자급자족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농경지를 일궈 곡식을 가꾸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의 아내는 장화를 신은 채 텃밭에서 고추, 오이, 쑥갓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나오며 반겨주었습니다.
누군들 살아가면서 가슴 아픈 사연 하나쯤 없겠는지요. 술좌석 중간 중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와 침묵 속으로 그가 살아온 질곡의 역사가 흘러들었습니다. 그 삶은 제가 겪지 못한 또 다른 것으로 뒤울안 급하게 흘러가는 도랑물소리처럼 콸콸 가슴을 후려쳤는데요. 그가 한때 구절리에 거처를 두기 전 막노동판과 탄광촌으로, 그리고 연안 어선을 탄 경력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요. 그러나 저는 그로부터 그동안의 삶의 여정을 직접 듣고자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그 역시 착한 학생처럼 스스럼없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진솔하고 뜨겁게 이야기를 펼쳤는데요. 이야기를 듣는 도중 저도 모르게 소주를 훌쩍훌쩍 마시며 눈시울을 붉혔지요. 끝없이 전개되는 이야기 도중 그가 대학을 간 동기를 들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크게 박수를 치며 짠한 웃음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형제 중 하나 정도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형의 권유였다니요.
그의 시에는 가난이나 아픔을 토로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설픈 현실도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원적 삶의 예찬도 드러내지 않는데요. 이를 두고 김명인 시인은 그것을 “세상과의 불화로 그 바닥을 오래 헤매본 자만의 요청할 수 있는 눈물겨운 화정(和淨)의 세계”로 명명한 바 있습니다.
골바람 속에 내가 있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려하지 않았음으로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도 않았다
골짜기 외딴집 툇마루에 앉아 한 아낙이 부쳐주는 파전과 호박전을 씹으며 산등성이 너머에서 십년 묵언에 들어가 있다는 한 사람을 생각했으나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 속에 내가 있으므로 바람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유승도, 「침묵」 전문
유승도 시인은 산속에 살고 있지만 산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산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유승도 시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골바람 속에 앉아 있는 시인은 산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예밀리 외딴집, 골짜기를 휘돌아 나가는 물을 바라보고 바람소리를 들을 뿐이었지요. 그러므로 저는 “십년 묵언에 들어가 있다는 한 사람을 생각했으나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았지요. 그가 바람 속에 있으므로 “바람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작은 침묵을 위하여 또 다른 침묵을 생각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밤새 나누었던 이야기 끝자락에 저는 유승도 시인에게 앞으로의 삶도 지금처럼 여기 그대로의 삶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승도 시인은 지난 2004년 세계일보 조용호 기자의 『전원 속의 작가들』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평생 이곳에 눌러 살겠다는 뜻도 없고…….” 그리고는 “떠날 상황이 되면 떠나는 것이고요…….” 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는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유승도 시인과 임형신 시인을 툇마루에 남겨둔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물소리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맑은 아침을 맞았는데요. 임형신 시인과 전 “물안개도 잠시 매달아놓았다 하늘로 올려보내고 지나가는 새소리도 담아두었다 스치는 바람에 안”(유승도, 「절벽 밑을 지나며」부분)겨 망경대산을 올랐습니다. “골짜기와 숲, 저 하늘로 가는 길을” 묵묵히 걸었지요.
“술을 먹고 10시 이전에 일어나는 건 손님으로서 예의가 아닌데…….” 산행을 하고 온 우리에게 건네는 나지막한 그의 농담과 함께 시원한 해장국을 먹고 유승도 시인의 차로 임형신 시인의 거처로 가 잠시 한숨을 돌렸습니다. 영월 오기 전 흩뿌리던 장맛비는 소강상태인지 내리 불볕더위를 선사했습니다. 강태규 시인과의 약속이 한두 시간 남아 탄광생활촌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거기에는 젊은 유승도 시인이 까만 눈으로 어둠보다 더 깊은 침묵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엇 하러 이 산중에 들어왔느냐/한 발만 헛디뎌도 생명의 저 끝이 보이는 곳이 이곳인 줄 몰랐더냐/나 또한 이 벼랑을 의지해서 목숨 한 가닥 붙이고 사느니,/흐느끼지 말아라//나를 노려 이 벼랑으로 뛰어오르는 짐승이 있다면/내 두 뿔을 치켜 올리며 그 짐승과 함께 낭떠러지 아래 저 계곡 속으로/곤두박질친다 해도 무릎 꿇지 않으리/목을 물려 끌려가지 않으리//네가 왜 나를 바라보고 섰느냐/얻으려 하지 말고 살아라/차가운 마음으로 살아라” (유승도, 「절벽에 붙어선 산양을 보았다」 부분)
유승도 시인은 까만 눈과 까만 수염으로 세상을 보고 또 굽어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까만 눈 속에는 까만 세상보다 더 어두운 세상을 향해 “얻으려 하지 말고/차가운 마음 살아라”, 그리고 까만 수염을 통해 “낭떠러지 아래 저 계곡 속으로/곤두박질친다 해도 무릎 꿇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상하는 건 아닌지요. 얻으려 하면 잃고 비움으로써 충만한 삶을 견지하는, 떠나고 머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유승도 시인! 아마도 그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나의 새」 부분)”과 같은 것이겠지요. 그의 작은 침묵을 위하여 또 다른 침묵을 불러봅니다. 승도야! 어디로 가야 하나?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길을 나섰습니다. 잠자던 침묵이 부스스 눈을 떴습니다.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1년 · 하반기 제5호
양문규
충북 영동 출생. 1989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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