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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일요일, 교동 나들이
6월 2일 일요일,
교동도의 화개사로 사찰순례를 가기로 한 날이다.
전날 밤에 미리 효소에 물을 타서 냉동실에 넣어두었고
또 참죽이랑 엄나무순으로 만든 장아찌도 반찬통에 넉넉하게 담아두었다.
일요일 아침 8시 20분,
화도와 양도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차 한 대에 같이 타고 가기 위해 양도면 가람도서관 앞에 모였다.
해안도로로 해서 내가면 외포리를 거쳐 창후리 선착장으로 갔다.
오늘 총무를 맡은 황정자 님이 미리 와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교동도에 들어가려면 누가, 언제, 어디에, 무엇을 하러 가는지 등등을 적어서 해병대에 제출해야 한다.
교동은 북한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섬이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교동의 화개사에 사찰순례를 간다고 적었다.
배가 언제 출발을 하느냐고 누가 물었다.
"배에 차가 가득 차면 출발하겠지요."
사람은 한 명당 편도 2600원 밖에 안 하지만 차는 도선료가 꽤 비싸다.
그러니 사람보다 차가 더 우선이다.
차가 가득 차면 배는 출발한다...
강화도는 석모도, 교동도, 동검도, 황산도,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등을 거느리고 있는데
저기 보이는 섬은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이다.
육지에 닻을 부려놓고 배는 어디로 갔을까.
(함민복 시인이라면 이 닻을 보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했을 텐데...
나는 암만 생각해도 뻔한 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문학은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기에서 출발한다고 하는데...ㅎㅎ)
석모도로 가는 배를 타면 갈매기들이 알아서 포즈를 취해주는데
교동 앞바다 갈매기들은 카메라가 낯선지 새우깡을 던져줘도 공중에서 받아먹는 묘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갈매기들이랑 놀 생각에 새우깡을 큰 봉지로 두 개씩이나 샀는데,
종일 들고 다니며 먹었는데도 끝에 보니 아직도 과자가 남아 있었다.
까꿍~~~.
장난도 치면서 우리는 소풍을 간다.
오늘은 모두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다.
강화정토불교대학에 다니는 우리는 좋은 도반이다.
도반(道
오늘은 봄 사찰순례를 하는 날이다.
불교대학과 경전반이 모두 모여 교동의 회개사로 나들이를 했다.
여럿이 함께 해야 하니 날을 잡는 것도 큰 일이었다.
일일이 물어보며 날을 잡은 실무팀이 애를 썼다.
처음에는 교동에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차를 두고 걸어서 가는게 사찰순례의 본 뜻에 맞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동 다을새길을 여러 번 걸어본 지라 길안내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배터에서 화개사까지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약 30분 정도 걸으면 될 것 같아서 나들길을 따라서 화개사까지 가기로 했는데...
화개사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나들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미 걷는 것에 익숙해서 쑥쑥 잘 나아가지만
사찰순례 팀 중에는 어린 아이도 있고 또 전혀 걷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분도 몇 분 계신다.
그 분들을 배려해주면서 걷다보니 화개사까지 근 두 시간이 걸렸다.
화개사는 규모는 작지만 역사는 꽤 오래된 절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시대 때 지은 절이라고 나오며
목은 이색은 이 절을 좋아해서 詩도 남겼다고 한다.
실제로 화개사 금당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면 풍광이 아주 좋다.
앞이 탁 트여서 보는 맛이 호쾌하다.
그러나 거친 듯 호쾌한 게 아니라 아담하고 다정해서 정겹기까지 하다.
화개사 직전에 교동향교가 있다.
교동 향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라고 한다.
교동은 삼국시대 때부터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중국으로 오가는 길목이기도 했고 또 한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강과 바다를 통해 물자와 사람들이 오갔으니 교동은 지금으로 보면 인천공항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사신들이 맨 처음 발을 딛는 곳이 바로 교동이었다.
강화 앞 바다는 썰물과 밀물이 있어서 물때를 타고 한강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신들은 한강으로 물이 밀려들어갈 때까지 교동에서 기다렸을 게다.
절하는 법을 배운다.
절은 비우고 내리기 위해 한다.
비우고 내려야 빈 자리가 생길 테고,
그래야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강화정토회는 법륜스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공부를 하는데
남의 집에 얹혀서 더부살이를 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자그마하나마 우리들만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지금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고 있다.
몇 분이 매주 토요일에 백련사에서 천 배를 드린 지 벌써 여러 달이 되었다.
또 몇 년 째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를 올리면서 수행을 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절은 나를 비우고 내리는 것인지라
절을 하면 내가 변하고 내 주변이 변하고 종래에는 세상을 변화 시킬 수가 있다.
더 맑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 많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내세우며 나서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입을 모아 외치지 않지만 그들의 소리없는 외침은 사방으로 퍼진다.
그들은 조용한 힘을 가졌다.
그들과 인연이 닿은 게 참 고맙다.
화개사~~~~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웃는 얼굴들이 다 예쁘다.
교동 역시 조선시대에 간척을 해서 넓힌 섬인지라 들이 넓다.
교동에서 나오는 쌀이 전국 쌀 생산량의 몇 퍼센트를 차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들이 넓다.
교동에서는 보통 만 평 이상 논농사를 짓는다.
오만 평씩 짓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육지의 논농사와는 규모 면에서 차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교동읍성을 보러 가는 길,
6월 초는 작약꽃의 계절인 것 같다.
송덕비는 고을을 다스린 사람의 공덕을 칭송하며 세우는 것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대개의 경우 송덕비는 고을의 원이 떠날 때 고마운 마음에서 세우는 것이었지만
임기 중에 미리 세워주는 경우도 있었다.
가렴주구를 하며 백성들을 괴롭히는 고을 원의 경우 미리 송덕비를 세워
편히 잘 살펴달라고 빌었다.
이렇게 세운 비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 비석 앞을 지나가면서 침을 뱉기도 하고 또 돌을 던지기도 했는데
'비사치기'라는 어린아이들의 놀이는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교동의 송덕비는 그러하지 않으리라.
모두 선정을 베풀어서, 고마워서 세운 송덕비였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비석에 새겨져 있는 한자들을 읽어본다.
(비사치기) :
예문 :
교동읍성
교동은 조선 시대에는 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었다.
수군통제영이란 삼도 수군통제사의 군영이 있던 곳을 말하는데
남도에 경상, 전라, 충청도를 아우르는 수군통제영이 있었고
북으로는 경기, 황해도와 평안도를 아우르는 수군통제영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교동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읍성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교동은 매우 한적한 섬이다.
최근에 인천시의 송영길 시장이 교동을 경제평화특구로 만들어서
개성공단처럼 만들자는 제의를 했는데,
만약 남북이 서로 화해를 해서 교동을 평화특구로 만든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이보다 더 다행한 일으 없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교동의 읍내리에는 교동읍성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읍성을 지나 연산군이 유배를 와서 지냈던 곳으로 간다.
연산군 적거지 앞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의 특이한 점은 우물 안에 나무가 자랐다는 점이다.
연산군은 교동에서 넉 달을 지내다가 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연산군 적거지.
적거지란 유배를 와서 지낸 곳이란 뜻.
조선 시대의 중죄인들은 위리안치를 당했는데 위리안치란 지금으로 보면 감옥의 독방인 셈이다.
물론 대역죄인이니 아무도 근처에 오는 사람이 없었겠지만 죄인 역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바로 집 둘레에 가시울타리를 쳐서 출입을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교동 다을새길은 화개산 자락을 걷는 길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바닷가 둑길을 따라서 걷기도 한다.
바닷가는 그늘이 없다.
그래서 여름에는 되도록 바닷가 길은 피하는데
아직 유월의 초입이라 그리 덥지는 않았다.
길을 걷다가 그늘을 만났다.
잠시 장기자랑을 펼쳐보기로 한다.
야간 불교대학 팀이 나와서 장기자랑을 한다.
사홍서원을 수화로 했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이란 모든 보살이 공통으로 세운 네 가지의 큰 원을 말한다.
곧,
중생을 다 구하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불법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주간 경전반이 말춤을 춘다.
못 해도 괜찮다.
불심(佛心)으로 다 봐주기 때문이다.ㅎㅎ
미리 준비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모두 열심히 한다.
주간 불교대학 팀도 나섰다.
'심청가'중 한 대목을 들었다.
시키면 군소리없이 "예, 제가 하겠습니다."
정토회의 모토다.
모토 : 일상의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 지침이 되는 신조
보리심이란 법명 그대로인 분.
조용하나 힘이 있다.
그 힘이 사람들을 변화 시킨다.
보리심 :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
배를 타기 위해 월선포 선착장을 향해 나아간다.
길이 좋아서 계속 감탄을 연발한다.
교동은 얼마 안 있으면 육지가 될 것이다.
다리를 놓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교동과 강화 사이를 흐르는 바닷물이 얼마나 세찬지 다리를 놓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물살에 휩쓸려서 교각이 무너져 내려 다시 작업을 하고 있는 구간도 있다고 한다.
사람은 각각 생긴 모양도 다르고 마음도 달라서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제 스스로 마음을 내면 일은 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날 우리 모두는 각자 역할을 스스로 알아서 하면서, 나를 돌아보며 남을 챙기는 시간을 가졌다.
배려와 충족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창후리로 돌아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도반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 본문의 사진은 '강화정토회'의 '황정자' 님이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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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짝짝짝~~~~이지요? ㅎㅎ
고맙습니다~~~.
저는 지난 토요일에 교동 갔었는데 참 좋았더랬어요.
육지화 되기 전에 또 가야겠어요.
여기저기 함박꽃이 활짝 피었네요~~
작약꽃을 함박꽃이라고도 부르는가 봅니다.
작약 = 함박
ㅋㅋㅋ 교동은 주로 고려시대에 남송과 교류시대에 물류의 중심기지 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양보다는 개성 앞 벽란도로 밀물에 맞추어서 오르 내렸다고 합니다.
ㅎㅎ, 좋은 지적 고맙습니다.
맞아요, 고려는 송나라와 교류를 했고, 고려의 무역항이 벽란도라고 국사책에도 나오는데 그걸 잊고 고만...ㅎㅎ
초등 5학년 사회에서 지금 고려시대를 공부하고 있어요.
벽란도라고 애들에게 말해주고서는 정작 저는 이렇게 실수를 ㅎㅎㅎ
후다닥 빨리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교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다을새길을 걸으셨는데 사진속에 잡히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발길이 닿지않은 곳은 풀이 많이 자랐는데 불편하셨겠습니다?
바쁜 농번기로 길을 정비 못해서 그렇습니다.
에고~~~ 농사일과 맞물려서...
감사와 고생하셨습니다.
또 오십시오!~~ _()_
네, 교동분이시군요.
길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 했던 도반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길이 참 좋다고 경탄을 했습니다.
교동분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비사치기.. ^^
우리동네는 비석치기라고 했는데요~^^
교동에선 보슬보슬 비내리던 날 한바퀴 돌던 기억이 납니다. 동네에서 아주~ 얼큰한 짬뽕 한그릇 사먹었었는데요. 을매나 시원하던지..^^
노시는 모습, 참말 행복해 보이고
월선포 가는 길은 푸르름이 싱그럽습니다. 잘해놓았네요. ^^
우리도 비석치기라고 했는데 교과서에는 비사치기라고 나오길래...ㅎㅎ
초등 4학년 국어에 비사치기가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교동의 짬뽕 먹으러 또 가야 되겠군요.
그것도 비 오는 날에..ㅎㅎㅎ
환한빛 님, 정말 이름 멋져요~~~.
강화도에서는 비사치기 라고 합니다.
와~그러셨군요 그렇게 재밌게 교동을 다녀오셨군요
머리 하얗고 얼굴뽀얀 아름다운 저 여인
최영찬샘 어부인이신가요?
모두가 참~아름다운모습들이네요~
나들길과 약간다른분위기~새롭네요..
미소짓고 갑니다. 덕분에..
최형찬 씨 안사람 맞습니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가진 사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