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아직도 첫 새벽엔 10도를 겨우 넘어 제법 쌀쌀한 느낌이 듭니다. 밭에는 매화꽃을 시작으로 앵두와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습니다. 사과는 모진 겨울을 넘기는데 지쳐 꽃을 피울 힘이 달리는지 잎새만 겨우 돋기 시작했습니다. 강인한 딸기도 소담스런 하얀 꽃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올봄엔 나비도 꿀벌도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암술에 수술이 수정하여 씨방이 자라나 열매가 되는 것인데 과일이 잘 열릴지 걱정됩니다. 강화도에서 10여 년째 벌을 치고 있는 한 양봉가는 꿀벌이 작년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합니다. 꿀벌의 감소는 양봉가들에게는 소득의 감소로 직결됩니다. 벌꿀 값이 오르고 건강식품 애호가들이 면역력의 상징으로 여겨온 국내외산 꿀벌집 성분의 ‘프로폴리스’ 가격도 덩달아 뛰겠지요.
세상에서 열매를 맺는 식물의 70퍼센트 정도는 꿀벌이 꽃가루를 옮겨 수정된다는데요. 특히 미국에서는 이동 양봉업자들이 수백억 마리의 벌통을 트럭에 싣고 플로리다에서 캘리포니아로 약 4,000 킬로미터를 이동하여 3주간 6,000만 그루나 되는 아몬드 나무의 꽃가루를 수정시키는데 이에 힘입어 아몬드 매출액이 연간 200억 달러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꿀벌의 감소에 대해서는 몇 해 전부터 해외의 생물학자들이 큰 우려를 표명해왔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여왕벌과 소수의 일벌만을 남긴 채 많은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벌이 떠나간 일부의 벌집에선 바이러스 등 각종 병원균이 검출되었답니다. 아직 원인이 불명확한 '벌집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입니다.
벌과 나비가 올 일이 없는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혹시 고추를 키워보신 분들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조심스레 붓끝으로 꽃가루를 이리저리 옮겼던 수고를 생각하면서 꿀벌의 역할을 되새겨보십시오. 이런 일을 들판에서 사람들이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꿀벌이 왜 사라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먼저 환경오염입니다. 무분별한 살충제의 사용으로 죽어간다는 것이죠. 강화군 논두렁을 보면 부지런을 떠는 농부들은 벌써 제초제를 뿌려 풀들이 누렇게 말라죽어갑니다. 그렇게 뿌려진 제초제는 비가 오면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죠. 꿀벌들도 물을 먹는다는데 오염된 물로 온전할 수가 없죠. 또 살충제는 흙으로 스며들어 식물의 뿌리에서 줄기, 꽃으로 올라가 미량으로도 꿀벌을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에선 꿀벌에 유해한 8종의 살충제 시판을 아예 중단했다고 합니다.
아주 옛날에는 낫으로 베다가 예초기의 등장으로 회전 날을 돌려 초고속으로 풀을 베었는데 이젠 농촌 일손이 늙다보니 예초기마저도 보기 드물어졌습니다. 손쉬운 분무기로 제초제를 뿌려 들꽃들을 고사시키는 것이죠. 해마다 봄철 시골에 ‘논두렁 밭두렁 태우지 맙시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리지만 오히려 태우는 것이 제초제를 뿌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꿀벌의 생태계 교란에 대해서는 최근 스위스의 생물학자이자 아마추어 양봉가인 다니엘 파브르가 휴대폰의 전자파도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꿀벌을 사랑하는 나머지 여섯 달에 한 번 휴대폰을 쓸 정도인 그는 휴대폰을 벌통 위에 놓고 전원을 끈 상태, 대기 상태, 통화상태의 3가지로 꿀벌의 활동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통화하지 않을 때는 450 헤르츠에 있던 꿀벌의 움직임이 약 30분간 통화한 뒤에는 4,000 헤르츠로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것이 벌집의 교란을 의미하는 것이고 심지어는 꿀벌들이 벌집을 떠나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몇 년 전 배나무를 전정(剪定)하다가 파리만한 꿀벌에게 쏘였습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흘러 119에 전화를 했더니 운전이 가능하면 빨리 응급실로 가고 아니면 구급차를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진땀을 흘리면서 차를 몰고 읍내의 응급실에 거서 해독제 주사를 맞았습니다.
아내도 언젠가 풀밭을 매다가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뛰쳐나와 인근 보건지소에 가서 부운 팔목을 보여주었더니 직원은 “뱀에 물렸다고 생각하면 뱀에 물린 것이고 벌에 쏘였다고 생각하면 벌에 쏘인 것이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희한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런 사람도 세금으로 월급 주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급히 몰고 김포시 대곶면의 의원에 나갔더니 대번에 이건 뱀이 문 것이 아니라는 명쾌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살펴보니 풀밭에 있던 벌집을 건드렸던 것이죠. 모두 꿀벌에 대한 추억담입니다.
우리 산하 어디에서나 봄의 전령으로 알았던 제비는 이제 흥부전에나 나오는 옛날이야기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윙윙거리며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부지런히 꽃가루와 꿀을 모으는 꿀벌들의 모습도 같은 운명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천재 물리학자인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우리들의 생존은 꿀벌에 직결되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만약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도 겨우 4년이 더 남은 것이다.”
|
첫댓글 환경오염 심각하죠...
꿀벌이 못사는 동네에 인간인들 살 수 있을까요? ㅠㅠ
그래서 분리수거도 잘해야 하는데, 분리수거장에 가보면 비닐인지 깡통인지 구별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디다.
아직 의식은 후진국민...
수십년 자란 멀쩡한 가로수들...공무원들은 왜 그리 용감하게 싹둑싹둑 베어내는지...그것도 생명인데, 아까운 줄을 모르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