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10,8-11; 루카 19,45-48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성녀는 260년경 순교하신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박해 시대 내내 성녀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13세기에 성인들의 이야기를 모아 쓴 ‘황금 전설’이라는 책에는 ‘체칠리아’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우선 ‘천국’을 뜻하는 ‘첼룸’caelum과 ‘백합’을 뜻하는 ‘릴리아’lilia가 합쳐져 ‘천국의 백합’을 뜻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한편 ‘체치스’가 ‘눈먼 사람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눈먼 이들의 길’을 뜻하는 ‘체치스 비아’caecis via와 관련될 수 있고, ‘눈이 멀지 않은’을 뜻하는 ‘체치따떼 카렌스’caecitate carens와 연관될 수 있다고도 합니다. 또는 ‘천국’을 뜻하는 ‘첼룸’과 ‘사람들’을 뜻하는 ‘라오스’laos가 합쳐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종합해보면, 체칠리아 성녀는 ‘천국의 백합’으로서, 훌륭한 모범을 통해 ‘눈먼 이들에게 길’이 되고, ‘사람들에게 천국이라 불리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체칠리아 성녀는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하고 살아가기를 원했는데, 이교인이었던 부모에 의해 강제로 발레리아노라는 사람과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첫날 밤 체칠리아 성녀가 남편에게 그 사정을 말하자, 남편은 자신에게 천사를 보여주면 그 말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체칠리아 성녀는 남편을 교황 우르바노 1세에게 보내어 세례를 받게 하였고 마침내 남편 발레리아노는 체칠리아 성녀가 방에서 천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천사가 장미와 백합으로 된 두 개의 월계관을, 하나는 체칠리아에게 하나는 발레리아노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후 발레리아노의 동생 티부르시오 또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고, 형제는 자선활동을 하며 신자 생활에 전념하였습니다. 소문을 들은 총독에게 끌려간 형제는 막시모라는 사람에게 넘겨졌는데 형제의 말을 듣고 오히려 막시모와 가족, 사형집행인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결국 두 형제와 막시모는 순교했고, 체칠리아 성녀는 그들의 장례를 치른 뒤 체포되어 순교하셨습니다.
순교하시기 전에 성녀는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셨고, 당신의 집을 성당으로 축성해 달라고 말씀하셨는데, 로마에 있는 ‘싼타 체칠리아 인 뜨라스떼베레’라는 성당이 바로 그곳입니다. 제가 로마에서 공부할 때 지냈던 기숙사 근처에 있었는데요, 떼베레 강 건너편에 있기에 ‘뜨라스 떼베레’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성녀는 자신의 결혼식 날 무리에서 떨어져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셨는데, 이 때문에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계십니다.
박해 시대 때 신자들에게는 순교가 최상의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나고 더 이상 순교할 기회가 없어지자, ‘동정’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라났고, 이를 ‘지상에서의 순교’ 또는 ‘제2의 순교’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영성체 후 기도에서 우리는 “체칠리아에게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라고 기도드리는데, 동정과 순교의 월계관은 오늘 우리 삶에서는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삶으로 실천될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가난한 이웃을 위한 자선, 자신의 성소에 충실한 삶, 그리고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요한은 천사에게서 두루마리를 받아 삼킵니다. 입에는 꿀같이 달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립니다. 이는 에제키엘서(3,1-3)와 예레미야서(15,16)와 연관이 되는 말씀인데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예언자로서의 숙명을 말하면서, 이 말씀이 교회의 승리를 선포하기 때문에 입에는 달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이 포함되기에 쓰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예언자로서의 행동이고 메시아로서의 행동입니다. 성전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성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 자신이 새로운 성전이 되실 것임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지도자들은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는데요, 온 백성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느라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백성’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라오스’인데요, 체칠리아 성녀의 이름에 들어있다고 한 라틴어 ‘라오스’ 역시 여기서 유래한 말입니다.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는 백성 자체가 하늘나라 곁에 서 있는 사람들, 즉 체칠리아가 되네요?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제게는 이 말씀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느라 예수님 곁에 있을 때,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일이 가능했던 때는 사람들이 예수님 곁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되뇌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곁에 머물러야겠습니다. 오늘 화답송의 말씀을 다시 듣겠습니다.
“주님, 당신 말씀 제 혀에 달콤하옵니다.
온갖 재산 다 얻은 듯, 당신 법의 길 걸으며 기뻐하나이다.
당신 법이 저의 즐거움, 그 법은 저의 조언자이옵니다.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당신 말씀 제 혀에 얼마나 달콤한지!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 다옵니다.
당신 법은 제 마음의 기쁨, 영원히 저의 재산이옵니다.”
오라찌오 젠띨레쉬 & 지오반니 란프란코, "성녀 체칠리아와 천사", 1621-1627년.
출처: Saint Cecilia - Wikipedia
https://youtu.be/Tgwm5ZuXWC8?si=EScDe7DsODNtro0H
샤를르 구노, 성녀 체칠리아 미사곡 중 "거룩하시도다" (Sanctus)
첫댓글 퇴근길 전철에서 신부님. 평일미사 강론 잘듣고있습니다
오늘은 구노의 산타체칠리아장엄미사곡. 중 씩씩한 쌍뚜스를 들으니 피곤함이가시는군요
.....
풍월당주인 박종호님이 내가사랑하는 클래식. 책에 소개한. 곡이지요....
신부님 고맙습니다
황비오드림
저도 그 책 읽었는데 아버님도 읽으셨군요~
영상 올리면서 저도 그 글을 떠 올렸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