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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상)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는 이들이 모여
‘나 주님께 의탁하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1928년 벨기에에서 창립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이를 모토로 살아가는 국제 수도회다. 일생을 주님께 의탁하는 수녀회의 모토는 창립자들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녀회는 폐결핵, 골수 결핵을 앓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픈 어린 소녀였던 성삼의 마리 마들렌 수녀, 선교 사제인 페르디낭 마르카스 신부가 설립했다.
마들렌 수녀는 생후 11개월에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했다. 그녀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원하실 때 다시 걷게 될 것”이라며 주님께 의탁했고, 그녀는 9살 때 제라 성인에게 9일 기도를 바친 후 기적적으로 다시 걷게 됐다. 일생을 거의 침대에서 생활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하느님을 향한 그녀의 의탁 정신은 강했다. 만 10세 무렵인 1910년 처음으로 영성체하며 매일 미사 참례와 묵주기도를 약속했고, 1917년 2월 1일 기도 중 ‘너를 희생 제물로 봉헌하여라’라는 주님 말씀을 듣고 “예”하고 답했다.
1923년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그녀 주위로 함께 기도하려는 자매들이 모여들었다. 1925년부터 그녀 집으로 하나둘 와서 기도하며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고, 1928년 6월 15일 공동체가 리에즈로 자리를 옮기며 수녀회가 뿌리내렸다.
마르카스 신부 역시 주님께 의탁했다. 첫영성체 날부터 사제가 되겠다고 밝힌 그는 평생 목자로 살았다. 벨기에 말린-브뤼셀대교구장 메르시에 추기경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수도회 창립을 제안할 때도 그는 여자 수도회를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과 적군을 보호, 숨겨줬다는 이유로 독일군에 체포돼 고통받았을 때도 그는 어떤 혹독함을 겪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3년간 체중이 40㎏ 이상 빠진 고통에도 그는 “미사를 봉헌하며 주님의 기도를 바치려면 용서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다 1953년 눈을 감았다.
마르카스 신부는 건강 때문에 환자 방문이 어려운 마들렌 수녀의 본당 신부 대신 병자영성체를 해주기 위해 1923년 그녀를 만났다. 메르시에 추기경이 “도와줄 영혼이 있을 것”이라며 수녀회 창립을 제안한 말씀을 그녀를 보자마자 떠올렸다. 둘은 병자영성체를 위해 매일 만나며 영적으로 대화했다.
수녀회 창립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을 뿐 아니라, 전염병과 가난·실직 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사람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고, 이를 잊기 위해 알코올·약물 등에 의존했다. 때문에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고통받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인 중독자와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빠져있던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수녀회는 주님께 의탁하며 탄생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5월 29일, 이소영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중)
이웃에 자신 내어 주는 ‘성체’가 되어
어린아이와 같은 의탁 정신으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두려움 없이 단순하고 기쁘게 살아간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긴 채 그분 뜻을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녀회의 정신은 수도복에서도 잘 드러난다. 흰색이나 상아색인 수도복은 제병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믿고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수녀들은 자신들이 성체가 되어 서로에게, 이웃에게, 온 인류에 자신을 내어 준다.
모든 것을 의탁하고 성체가 돼 살아가는 수녀회는 미사와 성체 조배를 중심으로 산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하고, 삼위일체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성찬의 전례 안에서 체험한 은총을 매일 살아가려 노력하는 수녀회는 성체 현시도 계속한다. 벨기에 본원에서는 수녀들이 돌아가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국 분원에서는 사도직 상황을 고려해 저녁 동안 성체 조배를 한다.이러한 수녀회의 일치, 의탁, 봉헌하는 카리스마는 ‘성체 뽑기’에서도 나타난다. 수녀회는 성탄이 되면 성체 뽑기를 하는데, 각 뽑기에는 ‘침묵의 제병’,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제병’ 등이 적혀 있다. 뽑기에 따라 수녀들은 다음 성탄까지 그 내용대로 삶을 구체화해 봉헌한다.
현재는 다양화 등의 이유로 지속하고 있지 않지만, 초기 수녀들은 한자리에 모여 소임지 열쇠를 모두 모아놓고 그 가운데 하나를 집어 사도직을 정했다. 이 역시 아이 같은 단순함을 보여 주는데, 각자 바람과 욕구도 있지만, 하느님 뜻이 더 크고 기쁠 것임을, 어떤 몫이든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시기에 감사할 것임을 믿고 의탁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수녀회는 명칭대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는다. 성인은 ‘작은 몫’이라는 뜻의 ‘포르치운쿨라’에서 공동체를 시작했고,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이 작고 허름한 성당을 품고 세워졌는데, 수녀회는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수녀회는 형제적 사랑과 단순함으로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며 공동체 삶을 살아간다.
특히 수녀회는 사제들과 복음화 사명을 위해 산다. 이는 비오 11세 교황이 성삼의 마리 마들렌 창립 수녀에게 보낸 강복장에서 비롯됐다. 1927년 마들렌 수녀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녀회 미래를 교회에 의탁하기 위해 교황에게 편지를 썼고, 같은 해 10월 17일 교황은 이렇게 답신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희생과 기도와 사도직을 통해 성직자들의 성화와 선교 사업의 성공이라는 숭고한 목적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우리의 사랑하는 딸 제르멘 고도(마들렌 수녀 본명)와 그녀와 함께하는 관대한 모든 영혼들에게 특별한 강복을 보냅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6월 5일, 이소영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 (하)
시대적 요청 따라 사도직 활동 펼쳐
‘작고 가난하지만 단순한 천상의 기쁨을 증거한다.’
세상 속 성체로 살아가는 천사의 모후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이 같은 정신으로 하느님께 의탁한다.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수녀회의 단순하고 기쁜 삶은 사도직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수녀회는 가장 절실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살기 때문이다.
수녀회는 그 창립부터가 시대적 요청을 향한 응답이었다. 벨기에 말린-브뤼셀대교구장 메르시에 추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 수도회 창설을 제안했고, 이는 1928년 수녀회 설립과 ‘천사의 모후 정신 병원’ 개원·운영으로 이어졌다. 가장 고통받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은 당시 전쟁으로 힘든 온갖 중독자와 우울증·자살 충동에 빠진 사람들이었고, 수녀회는 이들을 전인적으로 돌보고자 했다.
시대적 요청에 따르는 수녀회는 지금도 이 병원에서 사랑을 펼치고 있다. 200개 이상 병상을 보유한 병원에는 벨기에 전역 환자 500명 이상이 매일 오가거나 함께하고 있고, 2028년이면 100년 역사를 맞는다. 본원에는 20여 명 수녀들이 공동체를 꾸리고 있고, 이들은 장애인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머물 장소를 제공하고 정서적 상담 등도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녀들은 언제 어디서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으면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단순하고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말없이 가서 동반한다.
수녀회의 한국 진출도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결과였다. 벨기에로 유학을 떠난 한국 사제들이 미사를 봉헌할 제구조차 없다며 도움을 청하자, 수녀회는 이를 신문에서 보고 돕기 위해 페르디낭 마르카스 창립 신부의 제구 일체를 그들에게 줬다. 이 도움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노기남(바오로) 대주교가 성삼의 마리 마들렌 창립 수녀를 방문하면서 한국과의 연이 본격 시작됐다. 1950년대 초 당시 서울대목구장 노 대주교는 마들렌 수녀에게 “한국에 젊은 자매(여성 성소자)들이 많이 있는데 받겠느냐”고 물었다. 이를 수락하며 1957년 한국 자매들이 입회했다.
본원에서는 자연스레 한국 진출 계획을 세웠다. 수원교구에 보낸 서신에 1988년 당시 수원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가 “와서 보십시오!” 초대하며 수녀회가 1989년 한국에 자리했다. 한국 활동에서도 수녀회는 시대적 요청에 따랐다. 정신 질환보다 노인 복지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고려해 어르신 주거 복지 시설 ‘아녜스의 집’ 문을 열었고, 현재 분원에는 한국인 6명, 벨기에인 1명 등 총 7명 수녀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어르신 39명이 걱정 없이 살다가 하느님께 안길 수 있도록 그 여정의 동반자로 살고 있다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상)
어머니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 돌봐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총원장 장정숙 모데스타 수녀)는 고(故) 이우철 신부(시몬·1915~1984)가 설립한 방인 수녀회다. 이우철 신부는 수녀회를 창설하기 오래전부터 예수 성심께 봉헌된 불우한 소년들의 아버지였다.
이 신부는 1944년 서울 약현본당(현 중림동본당) 보좌신부 겸 가명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해방 전후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고 많은 소년들이 거리를 부랑하고 있었다.
1946년 이 신부는 좁은 사제관에 5명의 소년들을 위해 사랑의 안식처를 마련하고 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 신부가 소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제들과 주변인들은 버림받은 어린 소년들을 그에게 의탁했고, 소년들의 수가 늘어났다.
이 신부는 이 모든 일을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사도직으로 받아들이면서 1947년 서울 잠실리(현 잠원동)에 불우한 소년들을 위한 보육원인 성심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영아들은 성심원에, 큰 아동들은 이 신부의 본가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신부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매년 200명이 넘는 소년들을 국가의 도움 없이 양육하고 보호했다. 그러나 이 신부의 관심과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신부는 아이들을 위해 희생 봉사할 어머니들이 필요함을 절감했고, 또한 간절히 바랐다.
때마침 성심원 창립 당시부터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했던 김의경(막달레나) 동정녀와 몇몇 자매들의 청원으로 1969년 ‘어머니회’라는 신심 단체가 발족했다. 김의경은 훗날 수녀회 초대 원장이 됐다. 수녀회의 모체인 ‘어머니회’는 자모적인 사랑과 헌신적인 희생으로 아이들을 보살폈다. 이 신부는 이들의 믿음과 삶을 보고 ‘어머니회’를 수녀회로 만들려고 했지만 교구가 해체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이 신부는 이 모든 상황을 하느님 섭리에 맡겼고, 어머니회는 마침내 1978년 프란치스코회 제3회 수녀회로 재발족했다. 곧이어 수녀회는 지금의 이름으로 1980년 정식으로 수원교구 인가를 받았다.
그러다 성심원은 아파트 개발 사업으로 잠원동을 떠나 수원교구 내 용인시 동천동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이 신부는 1984년 2월 성심원 건축 첫 삽을 뜨고 다음 날 지병이 악화돼 선종했다. 수녀회는 성심원의 모든 운영권을 이어받으며 모성적 사랑으로 아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사도직을 펼쳐갔다.이 신부가 지녔던 성모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은 그의 온 생애에 큰 힘이 됐다. 그는 늘 수녀회 회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불우한 소년들의 어머니가 되도록 하십시오.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돌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미처 사람들이 못하는 부족함을 수도자가 해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5월 8일, 박민규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중)
주님의 침묵 · 인내 · 사랑 본받기 위해
“교구 설립에 의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묵·인·애 가르침을 남겨 주신 우리 설립자 이우철(시몬) 신부님과 그분을 중심으로 모인 최초의 자매들의 정신에 따라… 예수님 말씀과 발자취를 따르고자 노력하는 자매들로 구성되는 수도가족이다.”(수도회 회헌 제1조 중에서)
고(故) 이우철 신부에 의해 해방 전후 불우한 아이들을 보살피는 데서 시작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모성적 사랑의 카리스마에 기초한 묵(默)·인(忍)·애(愛) 활동 원칙과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와 지향, 그리고 프란치스칸 정신으로 하느님께 영광과 구원을 드리는 수도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묵·인·애 활동 원칙은 “용기 있는 침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 예수의 침묵, 인내, 사랑을 조용히 바라보라”는 뜻이다. 이는 내적 신비를 외적 행위로 이끄는 관상과 외적 행위를 내적 신비로 이끄는 활동의 상호 통합적 영성이다.
수도회는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전한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를 실현한다. 곧 세계 평화, 자신과 죄인들의 회개, 주님의 존엄을 욕되게 한 보속,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을 상하게 한 모든 것을 보상하기 위해 봉헌과 묵주 기도, 보속, 희생을 바친다.
티 없으신 성모성심을 공경하는 지향으로 매월 첫 토요일에 보속의 고해성사를 바치고 영성체를 하며 묵주기도를 바친다. 첫 토요일 신심 행위는 시작하는 달을 기준으로 다섯 번 연이어 진행한다.
또한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3회 형제자매들의 회칙과 생활’을 기초적인 법규로 택함으로써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따르며 프란치스칸 가족과 영적인 일치를 이루고자 한다. 곧 피조물, 형제자매들과의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며 프란치스칸 영성을 실현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고유 영성과 일반 영성으로 나뉘는 수도회의 영성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고유 영성은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에만 있는 묵·인·애 활동 원칙과 모성적 카리스마이며, 일반 영성은 교회 전체에 통용되는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인 기도와 보속, 희생정신, 그리고 프란치스칸 정신이다.
이러한 영성은 역동적으로 실현된다. 묵·인·애 활동 원칙과 파티마 성모님 메시지, 프란치스칸 영성이 관상과 활동의 상호 역동을 이루며, 여기에서 체험한 하느님 사랑을 모성적 사랑이라는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통해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5월 15일, 박민규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하)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금자리 제공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고(故) 이우철 신부가 해방 전후의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설립한 성심원 운영에 매진했다.
수도회는 1984년 이우철 신부 선종 후에도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문적인 접근을 통해 성심원 아이들의 성장을 도모했다. 2018년에 성심원 건물을 신축했고, 지역사회와 긴밀히 교류하며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고 있다.
수도회는 성심원 이외에도 다양한 사도직을 통해 설립자의 정신을 세상에 전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1988년에는 용인 수지에 기도와 피정을 위한 성심교육관을 마련했다. 성심교육관은 수도회 모토인 묵·인·애 정신으로,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기도처가 되기 위해 시작했다. 막다른 처지에 놓인 신자들의 영성 성장을 돕기 위한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수도회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한 쉼의 장소가 되도록 프로그램을 운영, 관리하며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이우철 신부는 노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컸다. 1962년에 시작한 양로회에 이어 1992년 무료 양로원과 1995년 유료 양로 시설인 ‘여주 파티마 성모의 집’을 개원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지만 더 윤택한 상황 안에서 신앙생활을 원하는 어르신들을 배려한 시설이다. 수녀들의 보살핌이 동반된 양질의 서비스를 통해 풍요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갈망하며 목말라 하는 모든 신자들의 몸과 영혼의 쉼을 위해 1992년 여주에 피정의 집을 개원했다.
1999년 수지에서 시작한 그룹홈을 기점으로 2000년 서울에 2곳을 더 개원했고, 현재 서울 방배동에 여아들로 구성된 그룹홈 ‘성심 효주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의 아동들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 여건을 제공하고 돌보며 이들의 올바른 인격 형성을 돕는다.
북한이탈주민과 관련된 다양한 과제들이 발생했던 2010년에는 부모와 함께 내려온 아동들의 문제가 심각했고, 이들을 돌볼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다. 이우철 신부는 성심원을 운영하면서 훗날 남북이 통일되면 북한의 불우한 어린이를 돌보라는 당부를 남겼다. 수도회는 북한이탈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정착하는 동안 그들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서로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성모 소화의 집’과 ‘아녜스의 집’을 마련해 아이들을 돌보고 부모들의 정착도 함께 도와주고 있다.
5명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며 복음의 씨앗을 전하기 시작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며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다.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상)
“사랑에서 태어나고, 사랑 위해 생겼으니, 우리 본(本)은 사랑이요, 목적도 사명도 사랑일세.”
그 어떤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었던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교회를 이끌었던 시대에 태어난 방유룡 신부(레오, 1900~1986)는 1930년 10월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뮈텔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하느님 사랑에 더 다가가기 위해 수도자가 되길 원했으나, 당시 한국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수도회밖에 없었다. 이에 방유룡 신부는 한국인 심성과 정서에 맞는 수도회, 즉 이 땅에서 하느님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한국인 설립 수도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방유룡 신부는 해방 후 첫 주님 부활 대축일이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46년 4월 21일 개성본당에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최초의 한국인 설립 수도회를 창설했다. 공동창설자인 윤병현(안드레아) 수녀와 홍은순(라우렌시오) 수녀는 수도복으로 가장 가난한 차림인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수도회의 역사를 함께 시작했다.
한국 수도생활의 맥은 신앙 선조인 한국 순교자의 얼을 이어가는 것이라 하여 수도회의 이름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로 명명했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교정신과 형제애로 복음선포’를 수도회의 목적으로 삼으며 한국 순교자들을 수도회의 주보(主保)로 삼았다.
수도회 창설 후 얼마 되지 않아 공산정권으로 인한 정치 상황이 심각해져 개성본당과 첫 수도공동체를 이뤘던 보금자리를 떠나 1950년 3월에 서울 청파동으로 본원을 이전했다. 곧이어 6·25 전쟁이 발발했고, 수도회 뿌리를 내리는 초창기에 닥친 전쟁과 피난살이의 어려움 속에서도 수녀들은 흩어지지 않고 수도생활을 이어갔다. 전쟁 때의 폭격으로 무너진 청파동 본원을 수리하며 수도회 재건에 전념을 다했다.
누구나 어려웠던 그 시절에 수녀들도 재정 자립을 위해 인형과 조화를 제작해 팔기도 했지만, 1954년에는 첫서원을 한 홍은순 수녀를 제2대 수련장으로 하여 자체 양성 기반을 마련할 정도로 수도회가 튼튼해졌다.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나자, 공의회 정신에 따라 살기 위해 수도복장을 간소화했으며 2007년에는 회원 수가 많아진 공동체 내의 소통과 친교를 증진시키고자 대전관구와 수원관구를, 2009년에는 미주지부(미주준관구 전신)를 설립했다.
또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의 수도회로 시작했지만 수도회의 카리스마가 보편교회에 선물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21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는 교황청의 인준을 받아 ‘성좌 설립 수도회’로 새롭게 태어났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4월 17일, 박지순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중)
‘한국 순교자’ 주보로 모시고 생활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들은 매일 아침 “완덕(完德)을 위하여 점성, 침묵, 대월로 면형무아를 약속합니다”라는 수도 근본정신을 서약하며 기도를 시작한다. 이 수도 근본정신에는 창설자 고(故) 방유룡 신부(레오, 1900~1986) 영성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방 신부가 수도생활의 최종목표로 삼았던 ‘면형무아’(麵形無我)란 ‘성체’를 뜻하는 말이었던 ‘면형’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 위해 사욕을 없애고 자신을 온전히 비운 상태를 의미하는 ‘무아’가 연결된 말이다. 이는 마치 누룩 없는 빵이 성체가 되듯, 우리도 자신의 사욕을 없애고 비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면 ‘면형무아’가 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 되는 것이다.
‘점성정신’(點性精神)은 ‘점’의 성질을 일컫는 ‘점성’과 ‘정신’을 합쳐 만든 방 신부의 고유한 영성 용어다. ‘점’은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는 것이면서도 모든 도형의 기초가 된다. 이렇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점’이 가진 특성 안에서 방 신부는 겸손의 극치를 발견하고, 이 ‘점’이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성체면형’이 되신 그리스도와 닮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처럼 작은 자가 돼, 일상 안의 작고 미소한 일에 충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점성정신’이며, 이것이 수도생활의 기초이며 뿌리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성체면형’이 되신 주님께로 가는 출발점이요 길이다.
‘점성정신’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기 시작한 영혼은 자기 자신은 물론 하느님 아닌 일체의 것을 버리고 비우며 정화하는 ‘침묵’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극복하는 길, 자기 비움(케노시스)을 뜻한다. 방 신부는 이 ‘침묵’을 ‘육신 내적 침묵’(분심 잡념과 사욕의 침묵), ‘육신 외적 침묵’(이목구비, 수족, 동작의 침묵), ‘영혼의 침묵’(이성과 의지의 침묵)으로 구분해 완덕(完德)을 위한 방법으로 수행하게 한다.
‘침묵’으로 정화된 영혼이 하느님과 인격적인 친교를 맺고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을 ‘대월’(對越)이라 한다. 대월은 수도생활의 중심으로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잡념과 분심을 뛰어넘고, 사욕을 억제해 빛이신 하느님과 대면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수도생활이며 대월생활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점성’, ‘침묵’, ‘대월’을 넘어간 영혼은 ‘면형무아’라는 목적지에 도달한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또한 순교자들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앙과 사랑을 위해 생명을 바친 한국 순교자들을 주보로 모시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을 순교정신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4월 24일, 박지순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하)
한국 넘어 11개국서 선교 활동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체성사의 신비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을 살고 전하는 것이 우리 사도적 생활의 핵심이다.”(한국순교복자수녀회 회헌 56)
올해로 창설 76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창설의 현장이었던 서울대교구 개성본당에서 사도직을 시작했다. 6·25전쟁 이후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지만, 반면 한국교회 교세는 오히려 급격한 성장을 보여 전국 각 교구의 본당에서 수녀들을 청해 왔다. 이에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1951년에 마산교구 통영본당(현 태평동본당)을 시작으로 현재 15개 교구 72개 본당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전교 수녀회로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수도회의 정신과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해 유아교육도 시작했다. 1955년 문을 연 서울 후암동본당 부설유치원이 그 시초였다. 현재는 본당 부설유치원 14곳과 자치 유치원 3곳에서 사도직을 수행 중이다.
2003년에는 유아교육뿐 아니라 유아교육 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온전한 교육자로서의 품성과 자질,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교육자 양성을 목적으로 복자몬테소리교사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교육사도직에도 투신하고 있다. 1961년과 1963년에는 천안에 복자여자중학교와 복자여자고등학교를 각각 설립했다. 이 학교들은 교육 평준화가 된 현재에도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다.
수도회는 다양한 계층의 약자들에게도 눈을 돌려 사회사도직도 실천하고 있다. 1963년부터 2005년까지는 부평성모자애병원(현 인천성모병원)을 직접 운영하다 인천교구에 헌정한 후 교구 운영에 협조하고 있다. 1985년에는 성모자애보육원, 1999년에는 성모자애복지관 등을 운영하면서 아동, 청소년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사도직도 계속하고 있다.
그 외에도 1967년에는 일본 오사카에 진출해 교포사목을 시작했고,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인 1984년을 맞아 외방선교에 투신하라는 교회의 권고로 1987년부터 멕시코에 회원을 파견해 현지인 사목을 돕고 있다. 오늘날에는 5개 대륙, 11개국에서 해외 선교를 담당한다.
한편 한국순교자들의 얼을 이어받고자 했던 창설 취지와 뜻을 살려 창설 당시부터 한국교회에서 추진하는 순교자현양사업에도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협조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유품 수집과 보존, 순교성지 개발·관리는 물론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순교자영성센터를 중심으로 한 순교영성 교육과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2021년 9월 20일 성좌 설립 수도회로 승인되면서 한국인에 의해 창설된 수도회의 은사가 지역교회를 넘어 보편교회의 선물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