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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어떻게 살 것인가
저-유시민
출- 아포리아
독:2015.9.29,30
• 선생님이라는 존칭에 대하여-내 수필 집 이름을 선생님으로 할 것이다.
시지프스의 신화를 쓴 알베르 카뮈는 우얼한 유전자나 훌륭한 가정교육과 관련되지 않은 문맹인 홀어머니를 만나 알제리 빈민가에서 자라 삶을 비관할 수 있었으니 낭만적이고 열정적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에서 인연 맺은 교사 루이 제르맹때문이었다. 그는 불운에 짓눌린 어린 제자를 세심하게 보살피고 격려했다. 장학금을 주선하여 상급 학교에 진학을 도왔다.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을 루이 제르맹에게 헌정함으로써 교사가 얼마나 위대한 직업일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다.
김대중 대통령 생전에 대통령님보다 더 극진한 존칭으로 선생님이라 불렀다. 출판계에서 글 쓰는 사람을 보통 선생님이라 부르는 게 대세다. 백범 김구 선생은 친일 반공주의 국가권력에게 암살당했다. 그를 그냥 김구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모두 백범 김구 뒤에 선생이라는 말을 붙인다. 존경의 칭호다. 기독교 개혁가 장 칼뱅은 ‘칼뱅 선생님’이라 하지 않고 ‘칼뱅씨“라고 하는 자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만큼 우리는 존경의 칭호를 들으며 살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대표적 직업 760여 개 종사자 2만 6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직업 만족도 조사(직업의 사회적 기여도, 지속성, 발전 가능성, 업무 환경과 시간 여유 등을 고려해 당사자가 주관으로 만족한 것 평가한 것? 만족도를 보면 톱 10은 초등학교 교장, 성우, 상담전문가. 신부, 작곡가. 학예사, 대학교수, 국악인, 어나운서, 놀이치료사 등이다. 10위~30위는 한의사, 대학 총장, 초등교사, 세무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판, 화가 등이다. 소설가(35위), 육군장교(49위), 시인(54위), 미용사(65위) 변호사(57위), 국회의원(73위), 요리 강사(93위) 프로 골프선수)96위), 증권 애널리스트(100위)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열 가지 직업은 교사, 공무원, 경찰, 간호사. 회사원, 기업 CEO, 의사, 요리사, 사회복지사. 생명과학 연구원 순이다. 반면 학부모가 선호하는 자녀 직업은 공무원, 교사, 의사, 간호사, 경찰관, 회사원 순이다. 사람들은 안정되고 근무 환경이 좋고, 돈 많이 벌고, 남의 존경을 받는 직업을 선호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일 그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는 직업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환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천부적 재능이란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진정으로 축구나 일을 즐기는 사람을 보면 보는 사람이 덩달아 즐겁다.
• 1541년 스위스 제네바 시의회를 장학한 기독교 개혁가 장 칼뱅은 거리에서 다투는 선원 두 사람을 교수대에 매달았다. 세례식에서 웃거나 포도주를 걸고 주사위놀이를 한 사람에게 징역형을 내렸다. 바이올린으로 춤곡을 연주한 맹인 여자와 거리에서 노래 부른 남자는 도시 밖으로 추방했다. 칼뱅의 예정설을 비판한 남자를 도시의 모든 교차로에서 채찍질한 다음 불태워 죽였다. 술에 취한 칼뱅을 욕한 출판업자는 불타는 쇠꼬챙이로 혀를 찔러 도시 밖으로 내쫓았다. <교회 규율>이라는 것을 만들어 법률로 대체하고 이것을 위반하면 처벌하는 종교국과 도덕경찰을 창설했다. 신학 논쟁을 벌인 신학자 미카엘 세르베투스를 불태워 죽이며 머리에 유황을 묻힌 면류관을 씌웠다. 신앙이나 이념은 관용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이 이념의 도구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려면 빛나야 할 것은 자연이 준 본성과 욕망을 긍적으로 표출하고 실현해야 한다.
• 헬렌 켈러는 자서전을 포함하여 열두 권 책을 썼다. 산문과 신문칼럼, 에세이는 많이 썼다. 갤럽은 그를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 18인에 포함시켰다. 불운 앞에 절망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주어진 행운에 감사하며 기꺼이 그 도움을 받아 불운과 싸웠다. 불운에 고통받으며 신음하는 자들에게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을 나누어주려 했다. 이것이 그의 삶에서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 훌륭하게 살기 위해서는 훌륭한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을 올곧게 실현해야 한다.
•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아 행복한 건 아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기거나 지거나 행복할 수 있다. 착한 이미지로 인기를 잠시 붙잡아 두더라도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운영할 수 있는 세력을 구축할 수는 없다.
• 글 쓰는 사람은 스스로 글의 진실성, 논리의 정합성, 인간에 대한 예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존중 그런 것들을 위해 자기가 쓴 글을 객관적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수정하는 자기 검열 습관이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원래의 나, 내가 되고 싶었넌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살고 싶다.
• 나는 열정이 있는 삶을 원한다.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자유롭게, 떳떳하게 살고 싶다.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의 마지막 여정까지 그렇게 철이 덜 난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 내 삶에 단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사는 게 나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자유로움과 열정, 설렘과 기쁨이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삶의 기쁨, 존재의 의미, 인생의 품격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분들의 건투를 빈다. 그 무엇도 의미 있는 삶을 찾으려고 분투하는 그대들을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 (서문에서)
• 진정한 프로가 되는 것, 이것이 삶의 행복과 인생의 성공을 절반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일이 아니라 놀이를 앞자리에 두어야 한다. 재능의 본질은 즐기면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디밴드 카라잉넛은 진정한 프로다. 하고 싶은 일을 제멋대로 하면서 돈도 번다. 행복하다고도 한다. 제일 큰 나무가 아니더라도 내게 적당한 나무를 골라 오르면 된다. 내게 맞고 오르는 것이 즐거운 나무라면 된다.
• 하느님 빽보다 더 좋은 게 삼십육계다.
• 좋아하는 놀이를 직업으로 삼으면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일과 놀이가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사랑과 연대다. 세상은 나더러 체념, 굴복하라고 했고, 나는 거절하고 저항했을 뿐이다.
• 글쓴이들은 죽음 임박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마지막 모습을 들려주지만 실제로 말하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인가? 무엇이 인생을 훌륭하게 만드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런 것이다.
• 바위를 굴러 언덕 꼭대기까지 올리고, 그 바위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뱌위를 굴려 올리는 행위의 무한 반복, 이것은 시지프스가 신들을 골탕 먹였다가 받은 형벌이었다. 죽을 수 없다면 삶은 형벌이 된다.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오늘의 삶을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한으로 채우고 더 많은 돈을 얻으려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하면 행복이 내일로 미루어진다. 운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았음을 허무하게 깨닫는다. 그러나 한 번 살아버린 인생은 되돌릴 수 없으며, 놓쳐버린 삶의 환희는 되찾을 수 없다. 사람은 모두 던져진 존재로 이 세상에 온다. 생존권이나 ‘먹고사니즘’이나 생계유지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을 정당하다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특고 형사나 유대인 학살을 집행한 나치 돌격대 대월들 행위도 비난할 수 없다. 삶의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엄한 개인의 고유한 권리이지만 그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데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려고 노력해야 인성의 원리, 도덕법이 있다.
• 외가는 축대가 높은 오래된 기와집이었다. 외가에선 동네가 다 내려다보였다. 외할머니는 언제나 앉아 계셨다. 관절염으로 안방 여닫이문으로 밖을 내다보거나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동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훤히 꿰고 있으셨다. 외할머니는 종종 다른 사촌들 모르게 나를 불러 벽장에 숨겨둔 곶감이나 사탕을 꺼내 주었다. 빨갛고 하얀 종이꽃으로 장식한 애기 가마가 앞서 나갔고, 장정들이 맨 상여가 뒤따라 집을 나섰다. 대나무 지팡이를 든 이모들과 삼베옷을 입은 외삼촌들이 곡을 하며 뒤따랐다. 외할머니는 들판 건너 야산 중턱에 묻였다. 햇볕이 내리쬐는 논두렁길을 따라 봄바람에 날리는 만장이 구불구불 줄은 지어 따라갔고 상엿소리가 끊어질듯 이어졌다. 처량하면서도 흥겨운 소리였다. 대청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않자 양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했다. 나는 왜 태어난 것일까? 집 뒤 대나무숲을 쓸어가는 바람소리가 무서웠다. 정체 모를 두려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요즘 내 휴대전화에는 부고 메시지가 자주 뜬다. 중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인생은 의전의 연속이다. 백일과 돌잔치, 졸업식, 입학식, 신입사원 환영회, 개업 축하 행사, 의전을 게을리 하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학교 동창, 고향 친구, 직장 동료들끼리 서로의 결혼식 하객이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지인의 부친상, 모친상 조문이 잦아진다. 친구의 며느리와 사위를 맞는 행사가 뒤섞인다. 내가 지금 딱 그 나이가 되었다. 더 시간이 흐르면 선배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고 그 다음은 동년배 친구의 사망 소식이 들릴 것이다. 그렇게 친구를 보내다 보면 내 차례가 올 것이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마지막이 있어 마지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 품격이 달라진다. 남은 삶의 시간이 길수록 죽음에 대한 생각는 더 큰 가치가 있다.
• 예순 다섯 살은 특별한 나이다. 예순 다섯 살이 되면 국민연금을 받는다. 도시철도 요금이 면제된다. 공공시설 사욜료가 할인된다. 건강이 나빠지면 노인장기양보험 혜택을 받는다. 특별 보호와 배려를 받아야 하는 고령자임을 공인받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해도 노화를 막지 못한다. 특히 뇌조직의 소실이다. 나이가 들면 뇌신경세포인 뉴런의 수가 줄어 정보 전달을 돕는 화학 물질 분비도 원활하지 않다. 익숙한 것에 집착, 고집 부리고 화 잘 내고 새로운 문제에 합리적 의사 결정이 어렵다. 노인 헤겔은 청년 헤겔과 달랐다.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어떤 압제에도 굴복하지 않는 자유의 열정과 건강한 생명력을 찬미했던 젊은 솔제니친과 달리 만년의 솔제니친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신비주의로 과도하게 빠져들었다. 나이 들어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만 젊은 시절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변절이 아니라 변화일 뿐이다.
• 인간은 약 100조 개의 세포를 가진 다세포 생물이다. 심장박동과 호습, 두뇌활동이 정지되어 모든 세포들의 기능이 총체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야 사망을 인정한다.
• 1.4킬로그램의 회백색 세포 덩어리 뇌가 죽으면 찬 이성과 더운 가슴이 함께 사라진다.
사람의 뇌는 거대한 신경망 덩어리다. 타인의 죽음은 객관 이성으로 받아들이지만 자기 자신의 죽음에는 주관 감정으로 대응한다. 언젠가는 죽어야한다면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이끌려 사는 인생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나들이를 가는 것과 비슷하다. 내 몸에 맞고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었다. 내게는 매순간 미래의 삶을 새로 설계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권리가 있다. 물론 욕망을 충족하는 것보다는 규범을 따르는 삶이 더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타성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도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른 행위일 때 기쁨이다. 규범은 자신이 기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따르면 된다. 나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음을 밝혀 정치 조언을 구한 레이건이 훌륭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철학적 자아의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했다. 지는 해가 만드는 낙조는 일출만큼 눈부시지 않지만 아름다움은 낙조가 일출을 능가한다. 레이건의 마지막을 보면 그런 생각이다. 사람들은 좋은 삶을 살려고 가훈, 좌우명을 정하고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을 읽는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어 자기 계발서도 읽고 성공하는 인생에 관심 둔다. 그런데 오직 사는 데만 집중할 뿐, 잘 죽는 법을 알고 품위 있게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전쟁이 끝나자 신종인플루엔자나 메르스 같은 악성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덮쳐 사람을 무더기로 죽였다. 정부는 아직 강력한 공중보건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능력이 없었다. 왕조의 몰락, 제국주의의 침략과 강점, 해방 후의 사회정치적 혼란, 전쟁, 절대 빈곤의 질긴 사슬에 묶여 있었다. 백연 년의 세월 동안 갓 태어난 아이들의 기대여명은 40년을 넘기지 못했다. 죽음이 남기는 것은 가슴 저린 한과 애통함, 억울함뿐이었다. 죽음은 피해 할 재앙일 뿐 미리 준비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될 수 없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고 삶이 바뀌었다. 살아남는 것, 오래 사는 것 그 자체가 삶의 목표일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죽음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건이 되었다.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죽기 위해 국가나 사회의 허락을 받을 이유는 없다.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의 의사 결정에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음을 밝혀 정치 조언을 구한 물론 쓸모와 훌륭함은 다르다. 많이 팔리는 책이 꼭 훌륭한 책은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훌륭함, 존엄, 품격이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가치이고 쓸모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타인의 상대적 가치 평가이다.
• 비행기를 타고 추락 전 마지막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스마트폰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길 것. 그 외 살아온 추억들, 참 많은 사람을 사랑했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면 가슴이 따뜻해질 것이다. 영원히 헤어진다고 해도 가슴 아리게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잘못 산 것일터.
데이트할 때는 정성 들여 눈 화장을 하고 멋져 보이는 옷을 입고 고급 레스토랑 가서 밥값을 생각마면 목에 넘어가지 않을 비싼 메뉴를 고르고 닭살 멘트를 날리고 품위 있는 말투를 쓰려고 노력한다. 상대의 정체를 알려면 함께 살아봐야 한다.
• 입맞춤만으로 황홀감에 젖었든 연예시절이 끝나면 같은 욕실을 쓰고 상대의 몸과 마음을 다 알고 나면 편안함과 친숙ㄷ함이 남는다. 그게 가족이고 사랑이고 책임으로 이어진다.
사랑하면 주고 싶다. 아낌없이 주고 싶은 대상은 자식이다. 동물도 그렇다. 본능이다. 모든 부모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한 가지, 그것은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행복은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기 삶에 만족하여 마음이 흐뭇한 상태다.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태아 뇌는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신경세포를 만들어도 사용하지 않는 신경세포는 잡초처럼 뽑혀 사라진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도 만져주지도 않으면 신생아는 쉽게 죽는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인지, 정신, 정서, 신체적 능력을 포함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 인지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자녀를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이가 살고 싶은 삶을 설계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 믹도 격려하며 어려울 때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며 조금 도와주는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최대한 표현함으로써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 품격있게 나이 먹기-자기 주장을 하기보다 남의 말을 경청,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노년기 롤모델로 삼고 싶은 인물이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초등 4년이 전부였지만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소ㅓ설 습작을 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유명 지식인들의 강의와 논쟁을 보며 사회를 보는 눈을 길렀다. 저널리스트, 연설가. 사회비평가, 극작가로서 성공. 영화 <마이 페어 레이드>의 원작인 희곡 <피그말리온>, 그는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사회주의자, 책식주의자, 반전평화주의자로 비평을 썼다. 95세로 세상을 떴다. 최근 쇼가 쓴 에세이가 <쇼에게 세상을 묻다>로 번역 출간되었다. 정당, 경제, 금융, 전쟁, 미학, 건축, 과학, 생물학,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언급. 그는 88세에 제 2의 아동기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나도 버나드 쇼처럼 오래 살지는 못하더라도 내 지성적 자아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능력을 가진 마지막 시간까지 무슨 글이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 부모 잃은 아이, 자식에게 버림 받은 노인
• 80만명의 1959년 돼지띠 출생자 중에 대입 예비교사 응시자는 34만 명, 4년제 대학에 제때 진학한 사람은 7만여 명. 전문대학까지 합해도 대학 진학률이 15%가 되지 않았다. 가난한 부모 및에서 중하교를 겨우 마치고 공장으로 갔다. 고등학교를 마친 남자들은 폴리텍 대학이 된 전국 각지 직업훈련원에서 2년 정도 교육을 받고 마산, 창원, 울산 등의 중화학산업대단지공장에 갔다. 그때 국가가 지원한 직업훈련생 1인당 식비 예산은 교도소 수감자 식비 예산보다 적었다. 그렇게 일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녀 검정고시를 치고 방송대학 공부를 했다. 자식 키우고 부모 봉양하면서 집 한 칸이라도 장만하려고 몸부림쳤다. 오늘 그 아들과 딸들은 85%가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한다. 지금의 5060은 그렇게 한 시대를 살았다. 그렇게 자기 시대를 살면서 대한민국을 산업화와 민주화 둘 모두 성공한 나라로 만들었다.
• 1978년 야학생을 가르칠 때 이야기
야학 학생들은 모두들 회사 기숙사 아니면 벌집이라 불리는 조그만 방에서 여럿이 함께 살았다. 봉제 공장에서 미싱을 타거나 전자제품 공장에서 납땜을 했다. 휴무는 격주에 한 번, 하루 평균 열 시간 일하고 잔업수당까지 합쳐도 월급은 2만 3천 원 수준이었다. 한 달 용돈은 천 원 미만, 월급의 일부를 저축하고 나머지는 집으로 송금했다. 여가활동은 휴무일에 음악다방에 가서 킾 한 잔 시키고 신청곡 쪽지 넣은 것이다. 어서 결혼해서 고된 노동을 면했으면 했다. 수출 대기업들이 단군 아래 최대 순이익을 내는 시대에 해고당한 노동자와 가족들이 잇달아 목숨을 버린다. 이런 현실 앞에 분노, 슬픔,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우리다. 왜 타인의 고통 앞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나?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공감하는 능력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본능이다. 개인이 생존하는 데는 사회적 결속과 유대, 상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기는 능력 뿐만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감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타인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해고 노동자의 고통과 죽음에 마음잉 불편하고 눈물이 나려한다면 지극히 정상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밤에 불이 나서 죽은 장애인 활동가. 송전탑 위이 해고 노동자, 대통령 선거 결과에 절망해 목숨 끊은 노동조합원은 가까운 동료나 친척이 아디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시리다.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해주고 싶다. 사람의 능력이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경쟁에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의 격차가 너무 크다. 치열한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가 삶을 옭아맨다. 그러나 현실의 한 측면일 뿐 사람들은 경쟁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각자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사회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이 약육강식의 정글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대가를 받지 않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피를 내준다. 라디오 방송에서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면 ars전화를 돌린다. 부모 잃은 아이들을 위해 자장면을 만들고 장애인 생활시설 목욕탕을 청소하며 외로운 독거노인들을 찾아 말벗을 하고 서울역 노숙자들을 위해 밥을 푼다. 이 모든 연대는 유전적 근친성이 없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인간 봉성에서 비롯된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 사회제도와 대통령
노동시장에서 생계를 유지할 자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는 최저생계비와 필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다. 김대중 정부가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 노동 능력을 잃은 후 삶 대비를 위해 국민연금제도를 만든 것은 노태우 정부다. 국민연금은 저게 벌고 적은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 더 높은 수익률을 적용해 연금을 준다. 실직의 고통을 덜어주는 고용보험과 산업재해로 입은 히피행를 덜어주는 산재보험은 김영삼 정부가 크게 확충했다.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과 가족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지원을 받도록 노무현 정부가 도입했다. 이런 제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세금과 보험료를 큰 저항 없이 낸다. 공감을 위해 돈만 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 건강, 열정과 같은 비금전 생활 자원을 내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바친다. 작은 노력의 공감으로는 인터넷 포털 뉴스에 응원 댓글을 달 수 있고 트위터나 패이스북에 응원 맨션을 붙이고 관련 기사를 링크할 수도 있다. 사람을 돕는 단체에 후원금과 격려의 편지를 보낼 수도 있다. 따뜻한 차와 국수를 건넬 수도 있고.
•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누구나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 예술성과 대중성 하고 싶은 것과 팔리는 것 사이네 겪는 갈등이다. <밀양>과 <피에타>로 유럽 영화에서 큰 상을 받은 영화감독 이창동과 김기덕 영화는 수준 높은 전문가에게 극찬을 받지만 대학 흥행은 못한다. <꿈꾸는 다락방> <리딩으로 리드하라> 베스트셀러작가 이지성은 성공했지만 사회에서 적절한 수준의 존중을 받지 못한다. 나만의 세계에 갇히면 대중 소통이 고립되고 취향만 따라가면 창의적, 독자적 세계가 없어진다.
• 무엇이든 쓰려면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껴야 한다. 쓰는 일은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작업이다. 배움과 깨달음이 따라온다. 글쓰기는 지성과 영혼을 건드리는 작업이지만 정치는 국가권력을 다루는 사업이다.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폭력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거나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살벌한 것은 신념이다. 저마다 옳다고 믿는 삶의 원칙이 있다. 신념에 따라 살고 죽은 사람-이찬돈이 26살에 목이 베여 죽었다. 부처님의 진리가 신념이었다.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역성혁명을 준비하던 이방원 부하에게 피살되었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누나 유관순과 민족 지사 안중근은 일제 손에 죽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친일 반공주의 국가권력에게 암살당했다.
• 빈 라덴이 미국 기독교 성경을 배우며 자랐다면 부시 같은 인물이 되었을 지 모른다. 부시가 아랍에서 태어났다면 빈 라덴과 같은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인간은 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 선이라고 믿는 것들이 언제나 진리는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났다. 한반도를 가로지른 휴전선 북쪽이 아니라 남한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다. 70억 지구인 중에서 대한민국 정도 되는 나라에 태어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자식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부모를 만났다. 아무 노력도 않고 그저 태어남으로 얻은 행운이다.
• 아버지의 일은 학교, 사랑은 가족, 놀이는 책과 꽃이었다. 삶의 위대한 세 영역 모두에서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다.
• 인간은 영생불사에 대한 욕망이 있지만 유한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여기, 오로지 지금 여기가 귀중함을 알고
• 영생
인류 역사상 유한에 가장 격렬하게 맞섰던 인물은 중국 진나라 시황제 즉 진시황이다. 전국에 황제 찬양비를 세우게 했고 주나라를 이상향으로 간주한 유학자들이 봉건제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자 황실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불살랐다. 불로장생을 위해 역사상 최대 사기를 당했다. 산동 출신 서복이 바다 건너 신선이 사는 전설의 산에 가서 불로초를 가져오겠다며 60척 배에 엄청난 양의 귀금속과 사람 5천 명을 태우고 가서 신선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선발한 미소년 미소녀 3천 명을 데리고 이거대한 선단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장인과 전문가들이 타고 바다 건너 세 산 가운데 봉래(금강산)과 영주산(한라산)에 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제주도 서귀포에 들렀다가 일본으로 간 것으로 추정된다. 대륙의 황제가 아니면 당하고 싶어도 당할 수 없는 대형 사기 사건이었다. 산시성 시안에 50제곱킬로미터의 무덤 부지에 마차와 철제 농기구, 활과 화살, 창과 칼, 합금 주형, 수천 개의 미니어처가 나왔다. 진시황은 70만 명을 동원해 무덤을 팠다. 누가 침입하면 화삭이 자동 발사되는 장치를 했다. 이세황제 호해는 자식 없는 후궁들을 순장시켰다. 장례가 끝나자 무덤 안쪽 바깥쪽 문을 폐쇄해 기술자와 노예들을 가두었다. 풀과 나무를 심어 무덤 밖에서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생물학 지식이 풍부한 현대인들도 불로장생의 꿈에 젖으면 규모가 작을 뿐 본질은 똑같은 건강식품 시사기사건에 걸려들거나 엉터리 만병통치약을 먹고 병에 걸린다. 재산을 헌납하고 인생을 맡기며. 인간은 잘 속이고 잘 속는 동물이다. 사행심은 사기가 성공하는 필수 조건인다. 20만원 짜리 백화점 굴비를 단돈 3만원에 준다는 사기에 넘어가 썩은 생선 상자를 받는다. 피해자가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에 이끌려 사기꾼과 모종의 공감을 이룰 때 사기극은 성공한다.
• 가야 시대와 삼국 시대 이래 만들어진 수많은 왕릉, 대한민국 곳곳의 양지바른 야산마다 들어서 잇는 토호들의 무덤과 송덕비, 절정을 자랑하는 계곡 바위에 파놓은 이름들은 영원성을 향한 헛된 갈망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의 몸은 누구나 다 똑같은 물질로 이루어졌다. 60킬로그램의 몸을 원자 단위로 나누면 산소 38.8 kg, 탄소 10.9, 수소 0.6, 질소 1.9, 칼슘 1.2. 인 0.6, 칼륨 0.2km 등이다.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특별한 원자는 없다. 원자 단위로 보면 별과 달, 풀과 누무, 아메바와 사람은 모두 같다. 그런데 무생물이나 다른 생물들과 달리 인간은 지성을 가졌다. 몸은 모두 똑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서로 다른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 인간의 정신, 사유 능력, 지성, 자아 또는 영혼은 도대체 어디서 왔다. 그것이 물질이라면 다른 사물에도 있어야하고. 이게 선명한 대답은 물질-정신, 이원론이다. 영혼은 육체와 따로 존재하며 이 둘이 합쳐 인간을 만든 셈이다. 신은 오직 그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육채와 분리되는 영혼의 존재 역시 그렇다.
우리학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만능 해결사 복지부장이 <21g>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혼의 무게가 21g임을 증명했다는 과학자의 주장에서 유래했다. 영혼이 질량을 가진 물질이라면 사망과 동시에 몸무게가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로 맥두걸은 여섯 명 환자의 임좆 직전과 직푸 몸무게 차이를 확인했다. 빠져나간 수분과 공기의 무게보다 몸무게가 21g 더 줄어들었다. 개를 대상으로 한 측정 실험에서는 그런 차이자 나타나지 않았다. 이 계산을 근거로 영혼은 사람에게만 있고 21g이라고 주장했다. 육제가 죽은 다음에도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주장은 매력 있다.
•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줏빛 안개가 일어나고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긴 강이 걸려 있구나.
날아 솟았다 바로 떨어진 물줄기 삼천 척
아마도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하구나.-이 태백의 여산폭포를 보며
• 영화 <2012>는 지구 자전축이 이동해 땅과 바다가 모두 뒤집힌다. 히말라야 꼭대기가 파도에 잠기고 대양 한가운데 땅이 솟는다.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 자전주기는 23시간 56분 4초. 자전축은 북극과 남극을 잇는 선이다. 지구 표면을 둘러싼 바닷물과 대기의 밀도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면 자전추고 조금씩 흔들린다. 어디선가 대지진이 일어나 지각의 모양과 위치가 달라지면 더 크게 움직인다. 심하면 지각의 변화를 일으킨다. 해수, 대기, 지각의 변화와 자전축 사이에는 서로 영향을 미치는 되먹임 현상이 D Lt다. 이론적으로 영화 <2012>처럼 지구 표면이 완전히 리셋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 미국과 체코 공동 연구진이 과학 잡지<네이버>에 공개한 결과를 보면 화성과 목성 사이를 돌던 지름 170킬로미터와 지름 60킬로미터 소행성 둘이 충돌하면서 수없이 많은 파편이 생겼다. 큰 조각만 해도 300여 개나 되었는데 그중 지름 9.6킬로미터 크기의 조각 하나가 멕시코 만 인근에서 지구와 충돌했다. 6500만년 전 일어난 사건이다. 그 충돌의 위력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렸던 원자폭탄의 무려 50억 배였다. 지구 표면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고 수증기와 가스, 먼지와 연기 때문에 태양빛이 사라졌다. 이때 공룡을 포함하여 지구 표면의 생물이 대부분이 사라졌다. 지구 생태계가 회복되는 데는 수백만 년이 걸렸다.
지구의 33만 배나 되는 태양 질량은 4분의 3이 수소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은 수소 원자핵 네 개를 헬륨 원자핵 하나로 융합해 열과 빛을 낸다. 그 에너지를 받아 광합성을 함으로써 지구 식물이 살아간다. 식물이 만든 에너지를 받아 동물이 산다. 다시 50억 년이 지나면 태양은 내부의 수소를 다 태운 다음 부풀어 오른다. 그때 지구는 태양에 흡수되거나 대기를 빼앗겨 생물이 존재할 수 없는 행성이 된다. 태양마저도 에너지를 잃고 늙은 별이 되어 쓸쓸한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 계산이 옳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 행성은 앞으로 50억 년 넘게 존재할 수 없다.
은하와 행성의 생애 주기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삶과 하루살이의 삶은 양적 차이가 없다. 둘 다 찰나의 시간을 살 뿐이다. 차이는 인간은 자기 삶이 찰나에 지난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특별한 지성으로
• 이름 남기기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예수도 이름을 남기려고 살지 않았다. 스스로 설계한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살다 죽었다. 이름이 길이 남지 않는 것은 행복한 삶의 본질 요소가 아니다.
이름 남기기는 삶을 덜 파괴하면서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달래는 온건한 방법이다.
천국, 윤회에 대한 믿음에서도 큰 위로를 받지 못할 때, 유한한 삶의 허무함을 달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이름이 후세에 오래 기억되게 하는 것. 진리에 대한 호기심, 깨닫는 즐거움, 내면에서 솟구치는 열정, 선을 행하려는 의지를 자기 나름대로 실천. 훌륭한 인생, 행복한 삶은 죽음 너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장자 <외편>에 따라면, 부하가 도둑질을 하는 데도 도가 있다.
남의 집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알아맞히는 것이 성인이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다.
남보다 뒤에 나오는 것이 의로움이다.
도둑질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아는 것이 지혜다.
고르게 나우어 가짐이 어짊이다.
• 생전 장례식을 한 사람이 있다. 병원 영안실의 검은 띠 두른 네모 틀에 갇혀 절을 받고 싶지 않다. 미국 회계볍인 KPMG 회장 유진 오켈리는 53세에 뇌암 확진을 받고 남은 석달 동안 삶의 기걱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편지와 전화로 1천 명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친척을 초대해 좋은 식당에서 고급 와인을 나누며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90일 동안의 경험과 사색을 책으로 남겼다. 자기 삶을 충분히 음미하며 지구를 떠났다.
• 생전 장례식을 한 사람이 있다. 병원 영안실의 검은 띠 두른 네모 틀에 갇혀 절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다 쓰고 떠난 육신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이면 좋다. 수의로 감싸고 관에 넣어도 보이지만 않을 뿐 흙 속의 벌레와 미생물이 뜯어먹기는 마찬가지. 그 벌레와 미생물이 결국 죽어 흙이 될 것이니 결과는 마찬가지. 그런 과정ㄷ을 생략하고 곧바고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게 화장이다. 다 태우고 남은 것은 잘 썩늕 천으로 만든 보자기로 사서 묻으면 된다. 해와 달, 밤하늘의 별, 풀과 나무와 물과 바람에게로 돌아가게 하자. 내 몸과 우주의 모든 것들이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내가 쓴 책을 만드는데 쓰인 나무가 한두 그루가 아니다. 그것만 해도 미안한데 죽은 육신을 묻느라고 표지를 만듥어 자연을 더 해셔서는 안 된다. 내 생각이 날 때 나무 그늘 디룬 돌에 걸터앉아 서로 안부를 나누면 좋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제사는 지내지 말고. 죽은 후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진 나에 대한 기억과 느낌 뿐일 텐데. 내 자식들은 촛불을 켜고 음식을 차린 제사상 앞이 아니라 새가 노래하고 바람이 숨 쉬는 자연의 품에서 그런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가까이 온 만큼 남은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 애통함을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 믿는다.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웃으며 지구 행성을 떠나고 싶다.
• 유시민 팬클럽 <시민광장> 팬들은 무언가를 책임지라 하기보다 부담을 느끼지기 말라하고 내가 자기네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네가 나를 선택했다고 했다. -유시민은 행복하네